허리 굽힌 이재오, "모든 게 제 불찰"

朴측 "지금 누구에게 사과하는 것이냐"

한나라당 이재오 최고위원이 5일 박근혜 전 대표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이회창 전 총재를 직접 만나기 위해 전날 밤 서빙고동 자택 앞에서 두 시간이 넘도록 그를 기다릴 정도로 이 최고위원은 다급해져 있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은 이를 정치적 계산으로 여기는 눈치다. 박 전 대표 측은 이 최고위원의 '사과'를 두고 박근혜 전 대표의 마음을 달래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를 저지해 보겠다는 '쇼'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昌 출마 초읽기…급해진 이명박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이 최고위원의 태도는 진지했다. 이 최고위원은 "당 내의 분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의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진지한 표정으로 허리를 굽혔다.

이 최고위원은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제 불찰이었다"면서 "제 언행이 오만하게 비친 것도 사실이다"고 했다.

그는 "그 동안 보기에 따라 강재섭 대표에게 잘못하는 것, 잘못 모시는 것으로 비쳐진 것도 사실이다"면서 "앞으로는 당 대표를 중심으로 정권교체를 위해 제 전부를 바치겠다"고도 했다.

이날 의총에서는 안상수 원내대표의 즉석 제안으로 강재섭 대표를 필두로 이재오, 김무성, 김학원, 전재희 최고위원 등 지도부가 나란히 서서 손을 맞잡는 '그림'이 연출되기도 했고, 의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앞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의 '사과'는 더욱 구체적이었다.

이 최고위원은 "박근혜 전 대표께서 '오만의 극치'라고 말씀하신 다음, 처음에는 그 말씀이 뭔지 잘 몰랐다"면서 "그러나 이명박 후보께서 저를 심하게 질책하시고, 그 말씀을 가만히 들어 보니 정말로 모든 것이 생각하기에 따라 오만이라는 것은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보기에 따라 진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앞으로 제 언행으로 인한 당 분란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얼마 전까지 지도부 회의에서 책상을 내리치며 고성이 오갈 정도로 박 전 대표 측의 '비협조'를 격하게 따졌던 이 최고위원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출마 초읽기에 돌입한 이회창 전 총재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최고위원의 낮은 자세는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사격 없이 이 전 총재를 제압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린 이명박 후보 측 전반의 위기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명박 후보도 이날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앞으로 우리 진영에서 일했다고 해서 당의 화합을 깨는 어떠한 언행도 용납이 될 수 없다"며 "이재오 최고위원도 지금은 깨달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공개 질책했다.

싸늘한 朴측 "보기에 따라? 자기는 잘못한 것 없다는 것이냐"

그러나 박 전 대표 측이 요구하고 있는 최고위원직 사퇴 문제에 대해선 이 최고위원이 이렇다 할 입장 표명이 없어 박근혜 전 대표 측 의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한 측근의원은 이날 의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의총에서는 사과의 대상도 정확히 명시하지 않았다"면서 "지금 누구한테 사과한 것이냐, 박근혜 전 대표냐, 강재섭 대표냐, 의원들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의총에서는 누구한테 사과한다는 것인지 밝히지도 않았고,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보기에 따라', '생각하기에 따라' 이런 단서를 달지 않았느냐"면서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우리가 그렇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냐"고 이 최고위원을 맹비난했다.

다른 한 의원도 이 최고위원의 '사퇴론'에 대해서는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면서 신중한 입장을 밝히면서도 "'화합'을 위한 구체적 조치가 없었던 것이 오늘의 사태를 불렀다"는 반응을 보였다.

최근 최고위원직을 수락한 이후 애써 '당 내의 화합'을 강조해 오고 있는 김무성 최고위원조차 "우리 쪽 의원들의 경우 여전히 (이 최고위원의) 사퇴 쪽으로 많이 기울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두 마디의 '말'로 치유하기에는 이미 상처가 너무 벌어졌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