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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 국회가 정하라"

[주간 프레시안 뷰] 국회 책임성 높이는 게 '진짜 개혁'

최근 들어 우리 정치에서 일어난 해프닝들은 우리 국회의 수준과 실상을 잘 보여줍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을 관통할 수 있는 하나의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민주주의보다 대의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국회의 역할과 위상, 권위에 관해 그렇습니다.

얼마 전 인사청문회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국회 출신 인사의 청문회 불패 신화가 다시 한 번 입증됐습니다. 위장전입과 병역면제는 이제 공직자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 공인되었지만, 그 중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보여준 동료애는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눈물에서 정점을 이루었습니다.

이로써 야당은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나아가 국민의 대표기구로서 국회가 여야를 떠나 스스로의 결점을 개혁하지 못하는 기득권 집단이라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주었습니다.

▲ 새정치민주연합 우윤근 원내대표가 지난달 24일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이완구 총리의 예방에 인사말을 하다 울먹이자 이 총리가 우 원내대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함께 울먹이고 있다.ⓒ연합뉴스

청와대는 독설가를 자처하는 여당의 세 의원을 정무특보로 임명했고, 이들 세 의원은 반색하며 받아들였습니다. 현직 의원이 장관을 맡는 관례를 넘어 기꺼이 행정부의 보좌관이 되는 사태까지 벌어진 것입니다.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 책무가 여야를 떠나 기본적으로 행정부의 견제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정법상 가능의 여부를 떠나서 국회의 행정부 예속을 가속화 시켰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런 일이 이번 정부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노무현 정부시절에도 현역 의원이 정무특보를 했고, 현직 의원이 총리나 행정부처의 수장으로 가는 일은 흔했습니다. 심지어 장관을 하기 위해 당 대표 직을 버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 당 대표를 맡는 일도 자연스레 벌어졌습니다. 요컨대, 이런 일에는 여야가 따로 없고, 서로를 비방하는 것은 국민을 기망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한 짓입니다.

이런 일을 통해 여야가 쟁점 법안이나 예산안을 둘러싸고 벌이는 언쟁, 때로 물리적 폭력도 불사하는 대립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분명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단 옆차기와 주먹다짐을 일삼는 이유는 정의를 수호한다든지, 국익을 위해서라든지, 국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더 나은 출세를 위한 발판을 만들기 위해서인 셈입니다.

얼마 전 있었던 대정부 질문에서는 한 야당 의원이 신임 총리를 상대로 담뱃값 인상의 목적에 대해 물었습니다. 묻는 이유는 답변자가 단지 총리가 직전 여당 원내대표였기 때문이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총리는 답변을 머뭇거렸고, 야당에서는 잘했다는 평이 나왔습니다.

우윤근 대표의 눈물만큼이나 창피한 일입니다. 국회가 이미 스스로 통과시킨 법에 대해 그 입법 취지가 무엇인지를 정부의 대표에게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정부에서 제출한 법안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법이 통과된 이후에는 모든 책임은 국회에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재의 담뱃세 인상의 취지가 세수 확대에 있는지, 국민 건강의 증진에 있는지를 명확히 아는 국민은 거의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법 자체가, 그리고 그 법의 논의 과정에서 본질적인 문제에 아무도 책임지는 논의를 하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책임이 야당이라고 해서 경감될 리 만무합니다. 더욱이 자신이 통과시킨 법의 취지를 다시 행정부에 묻는 것처럼 무책임한 행위도 없습니다.

이러한 일을 통해 우리 국회가 후진적이라는 구태의연한 지적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엄격한 삼권분립이 반드시 모든 정부가 신봉해야 할 진리인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 헌법이 사실상 의원내각제 요소를 갖고 있으니 이참에 개헌을 하자는 주장도 핵심을 벗어난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국회가 주권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스스로 상실하고 있고, 그 원인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현대 정치에서 행정부의 역할은 점점 확대되고 있습니다.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 늘어나면서, 의회의 활동은 행정부의 기능을 감독하고 입법을 통해 견제하는 것으로 축소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본질이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행정부는 말 그대로 법에 따라 사무를 집행하는 기관이고, 행정부에서 선출된 사람은 대통령 한 사람뿐입니다. 설사 민주적으로 선출되었다고 하더라도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된 상태를 ‘대표체제’로 부르지 않는 것은, 권력행사의 자의성 때문입니다.

민주적 대표성으로 따진다면, 국회의원 한 사람과 대통령 한 사람을 비교할 수 없는 것처럼, 대통령 한 사람과 국회 전체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상징적으로 국가를 대표하고 행정부의 수반이기는 하지만, 전체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은 국회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법에 의한 통치를 기본으로 하는 민주국가에서 입법권은 배타적으로 의회가 갖는 것입니다. 국민의 주권을 담지하는 기관은 국회이지, 대통령이라는 개인일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삼권분립의 한 축을 형성하는 사법부는 본질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입니다. 따라서 사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주권기관이 될 수 없습니다. 사법부가 스스로를 개혁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는다고 해서 그 책임을 해당 기관에게 물을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우리 헌법은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제도화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헌법에서 국회가 가진 위상을 재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재의 국회가 어떠한 지경에 있고, 그것이 얼마나 관행화되었으며, 나아가 국회 스스로는 물론 국민들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가를 따져보기 위해서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 국회가 지난 독재시절에는 대통령을 수반으로 한 행정부의 초헌법적 월권으로 인해 그 권력을 침해받아서 약화되었는데, 민주화 이후에는 스스로 권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정치개혁의 방향을 잘 못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국회 임기 후반부에 선거법 개정과 더불어 논의하게 되는 정치개혁안에서 핵심은 국회의 기득권을 약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최근 몇 대의 국회가 그렇게 해 왔고, 이번 국회의 방향성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어서는 실제로 기득권도 사라지지 않고, 단지 국회의 역할과 위상이 저하될 뿐입니다.

그렇다면 국회 개혁의 방향은 무엇인가? 국회의 개혁은 국회의 실질적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주권기관으로서의 권위를 확보하고, 국회의 책임성이 높이는 것입니다. 그래야 대의정치의 정당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면, 권위는 결코 생기지 않습니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을 탐하는 것은 결국 기득권을 확보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회가 소위 정치개혁 과정에서 늘 해 왔던 행태였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당장 좋은 기회가 있습니다. 최근 최저임금 문제가 공론화 되었습니다. 최저임금을 어떻게 올릴 것인가 하는 논의도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가 최저임금을 결정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선진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모두 국회가 최저임금을 직접 결정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 국회가 왜 국민들에게 존중받지 못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만나 최저임금의 대폭적 인상 필요성에 대해 합의했지만 원칙적으로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대통령이나 국회가 올릴 수 없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논의하고 고용노동부 장관이 공표하게 돼있습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와 공익위원으로 구성되는데, 노사는 늘 큰 이견차를 보이기 때문에 사실상 공익위원들의 안이 최종안이 됩니다.

결국 지금까지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국회가 사실상 나 몰라라 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 이유는 시쳇말로 손에 흙을 묻히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민감한 문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비단 최저임금뿐만 아니다. 최근 법원에서 판결이 엇갈리고 있는 비정규직 파견 문제, 지자체의 무상급식 문제 같은 큰 문제는 물론이고, 수년째 끌어 온 밀양 송전선로 문제, 강정 해군기지 문제 등에 대해 국회는 별다른 안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가장 첨예한 이슈들에 대해서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책임을 회피하면 권한도 생기지 않는 법입니다. 남는 것은 기득권뿐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대부분은 사실 사회적 소수와 약자의 문제입니다. 누가 이들을 보호할 것인가? 이들이 믿고 의지할 곳이 사법부뿐이라면, 그것은 대의 민주주의를 포기하고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이라는 요행을 바라는 일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정치개혁, 국회개혁은 국회에서 여야의 입장 때문에, 늘 그것은 야당의 몫일 수밖에 없습니다. 야당이 스스로 책임정치를 표명하고 시민사회의 지지를 얻어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참에 야당이 최저임금 결정권한을 행정부 소관부서에 맡기지 말고 국회로 직접 가져오자고 한다면, 적어도 그 시발점이 열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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