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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롯데 CCTV 사찰에 고작 '의견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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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롯데 CCTV 사찰에 고작 '의견 표명'?

[베이스볼 Lab.] 전대미문의 사건, 이대로 묻히나

하는 일마다 논란거리를 만드는 국가인권위원회가 또다시 석연찮은 행보를 이어갔다. 인권위는 롯데 자이언츠의 CCTV 사찰 사건이 ‘인권 침해’라는 결론을 냈지만 정책 권고가 아닌 단순 ‘의견 표명’을 하는 선에서 그쳤다. 또 잘못을 한 당사자인 롯데 구단이 아닌 KBO를 상대로 의견을 낸 대목도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1일 보도자료를 통해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구단의 ‘선수단 CCTV 사찰’ 사건을 인권침해로 판단하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 의견 표명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롯데 구단이 “선수들에 대한 헌법상 사생활의 비밀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에게 ‘스포츠 인권 가이드라인 권고’의 취지에 따라 재발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수립,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롯데 자이언츠는 지난 2014년 선수단 원정 숙소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소속 선수단을 감시한 사실이 드러나 큰 파문을 빚은 바 있다. 당시 롯데는 구단 최고위 인사의 지시에 따라 구단 직원이 CCTV로 확인한 내용을 구단 측에 지속적으로 보고했으며, 해당 선수들에게는 사전 통보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매체의 폭로로 진상이 드러나자, 심상정 정의당 국회의원 등 정치권 일각에서도 대응에 나서는 등 스포츠계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파장이 커졌다. 롯데 구단 팬들은 사직야구장과 서울 제2 롯데월드 앞에서 구단 수뇌부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고, 결국 파문의 책임을 지고 대표이사와 단장이 동반 사퇴했다.

인권위는 CCTV 사찰 사태가 불거진 이후 “스포츠계 관행과 관련해 사안이 중대하다”는 판단에 따라 직권 조사를 시작했다. 이에 롯데 구단에 근로계약서와 호텔계약 서류 등 자료제출을 요구하고 방문조사를 실시해 사실 관계를 확인했고, 구단 사장 등 관계자와 선수단, 숙소 측 관계자들을 만나 사안을 조사한 바 있다. 선수나 관계자들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권위가 먼저 나서서 조사에 착수할 정도로 이 사안에 대해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문제는 이런 강도 높은 조사를 통해 인권위가 내놓은 결과는 용두사미에 가깝다. 조사 착수 당시 인권위는 “조사 결과에 따라 롯데 구단이 선수 인권을 침해한 내용이 확인되면 정책 권고 등 조치를 취할 계획”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11일 나온 <스포츠동아> 보도에 따르면 당초 인권위는 행정안전부 장관을 대상으로 “롯데 구단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사실에 대해 고발을 하도록” 정책 권고를 하는 방안까지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막상 11일 인권위가 발표한 내용에는 정책 권고가 아닌 ‘의견 표명’이 전부다. 대상 기간이 답변할 법적 의무가 있는 정책 권고와 달리, 의견 표명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아무 실효성이 없는 상징적인 조처에 가깝다. 또한 인권위가 의견을 표명한 대상도 인권침해를 자행한 롯데 구단이 아닌 ‘KBO 총재’로 사안의 성격에 비춰 볼 때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권위는 발표를 통해 “경기를 주최하고, 프로야구의 발전을 저해하는 행위에 대한 조치 권한을 갖는 KBO 총재에게 의견을 표명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지만, 프로야구 전체가 아닌 특정 구단에서 발생한 범죄 행위인 만큼 KBO가 아닌 롯데 구단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상식에 부합한다.

인권위는 보도자료에서 CCTV 사건이 “사기업이 운영하는 프로야구 구단에서 발생한 것으로 국가인권위원회법 제30조의 조사 및 시정․구제조치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과거에도 사기업에서 벌어지는 차별,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여러 차례 해당 기업을 상대로 권고 혹은 의견 표명을 내놓은 바 있다. 또한 사기업에 대한 권고가 어렵다면, 문화체육관광부나 행정안전부를 대상으로 정책 권고를 하는 방안도 충분히 고려해볼 수 있는 사안이었다.

흥미롭게도 인권위의 의견 표명 직후 롯데 자이언츠 구단은 발 빠르게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롯데는 “인권위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앞으로 비인권적인 요소에 관해 엄격한 잣대로 점검하고 개선하도록 할 것”이라며 “한국 프로야구에서 선수단 인권 보호에 앞장서는 모범적인 구단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KBO를 대상으로 한 의견 표명에 해당 기관인 KBO가 입장을 내놓기도 전에 구단이 먼저 입장을 발표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인권위의 솜방망이 판결과 롯데의 재빠른 사과문 발표로 전대미문의 CCTV 사건이 그냥 묻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인권위가 당초 방침대로 정책 권고를 결정했다면, 주무부처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고발을 통해 책임자에 대한 형사 처벌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권위가 의견 표명에 그치면서 사찰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가리기는 어렵게 됐다. 야구계에서는 그간 전 대표이사와 단장은 ‘깃털’일 뿐 실제 사찰 사건의 몸통은 따로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지만, 이 또한 실체를 밝히지 못한 채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커졌다. 2015 KBO리그 시즌 개막을 앞둔 시점을 고려해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 지은 것 아니냐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인권위의 의견 표명을 두고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혹평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인권위가 이렇게 의문스러운 결정을 내린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권위는 2014년 세월호 참사와 육군 28사단 사건 당시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 인권침해와 사찰 논란이 있었지만 긴급구제나 직권조사 등 인권위가 할 수 있는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고 입장을 표명하지도 않았다. 28사단 사건에서도 현장조사는 벌였지만 군 당국의 수사를 감시하는 데는 소홀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인권위는 올해 들어서도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이달 초 인권위는 한국 정부의 국제 인권규약 이행 정도를 감시해 유엔(UN)에 제출하는 자료에서 세월호 참사, 성소수자 차별, 통진당 해산, 시위 현장에서 경찰의 채증 등 민감한 내용을 삭제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가 “정부에 불리한 인권 사안을 일부러 제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언론을 통해 제기된 바 있다. 인권위의 최근 행보는 독립기관으로서 중립성과 신뢰성은 물론, 이제는 존재 이유마저도 의문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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