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곤 합니다. 2015 시즌을 준비하며 한창 전지훈련 중인 프로야구 10개 구단은 어떤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랄까요. <베이스볼 Lab.>이 구단별로 1개씩의 소원을 정해서 대신 빌어 봤습니다. 우선 지난 시즌 상위 5개팀 편입니다.
삼성 라이온즈: 철벽 불펜을 돌려주소서
지금은 일본으로 떠난 한 투수와 함께하던 시절, 삼성의 불펜은 리그 최강의 견고함을 자랑했습니다. 과거 해태 선동열(전 KIA 감독)이 불펜에서 몸을 풀기만 해도 상대팀이 경기를 포기했다는 전설이 있다면, 2000년대에는 삼성이 6회까지만 리드를 잡아도 상대가 전의를 상실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죠. 그러나 ‘그’는 갔습니다. 삼성은 불펜에서 ‘그’의 대안을 부지런히 찾았지만, 끝내 ‘그’만큼 완전무결한 불펜 에이스를 찾지는 못하였습니다.
2014년 삼성 불펜의 블론세이브는 18개로 리그 최다 5위에 해당됩니다. 오승환이 있던 시절은 어땠을까요. 2013년 삼성의 블론세이브는 7개, 2012년에는 5개, 2011년에는 8개에 불과했습니다. 불펜 평균자책점도 마찬가지. 2014년 삼성 불펜의 ERA는 4.76으로 더 많은 이닝을 버티는 선발(4.39)보다 떨어졌습니다. 2013년 삼성 불펜 ERA는 3.86으로 선발(4.06)보다 좋았습니다. 2012년에도 선발은 3.81/불펜은 2.64로 구원진 쪽이 훨씬 좋았고, 2011년에도 마찬가지(선발 3.88/불펜 2.44)였습니다. 만약 2014년 삼성에 오승환이 남아 있었다면, 삼성은 시즌 중반 일찌감치 1위 자리를 확정지었을 지도 모릅니다. 오승환의 일본 진출은 리그의 전력 평준화에 본의 아니게 기여한 셈입니다.
2015년에는 어떨까요. 삼성은 불펜에 별다른 보강 없이 시즌을 맞이합니다. 결국 임창용, 안지만, 차우찬을 비롯한 기존 투수들이 분발해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가능성을 보여준 우완 김현우와 좌완 백정현이 과거 정현욱-권혁의 역할을 대신해줘야 합니다. 심창민도 이제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해 보일 때가 됐습니다. ‘재활의 신’ 권오준과 신용운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도 기대가 됩니다. 무엇보다 임창용이 올해는 명성에 걸맞은 투구를 펼쳐 보여야 합니다. ‘배영수가 다른 팀으로 갔으니 임창용의 블론세이브가 줄어들 거’라는 ‘웃픈’ 농담이 나오지 않게 말입니다. 만약 삼성 불펜이 2014년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2015 시즌에도 리그 정상의 자리는 삼성의 것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넥센 히어로즈: 포스트 강정호를 내려주소서
지난해 리그 최고의 선수였던 강정호가 영웅에서 해적으로 ‘전직’했습니다. 이제 넥센의 유격수 자리는 공석입니다. 수비도 수비지만, 과연 어느 누가 2014년 강정호만큼의 공격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염경엽 감독은 유격수 경험이 있는 김민성 대신 거포 윤석민에 우선권을 주겠다고 밝혔습니다. 김민성과 윤석민의 공격력을 모두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주로 1루와 3루를 맡은 윤석민이 유격수 자리에 적응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시선도 있지만, 포수 출신인 강정호도 빠른 발놀림이나 넓은 범위를 자랑하는 유형의 수비수는 아니었습니다. 윤석민으로서는 수비를 아주 잘 할 것까지도 없이, 오는 타구를 실수 없이 잘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수비에서는 제 몫을 해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공격력입니다. 강정호는 2014 시즌 WAR 7.4에 wRC+ 189로 유격수로는 가공할 공격력을 자랑했습니다. 물론 윤석민도 두 차례나 두 자릿수 홈런을 때려낼 만큼 공격에서 잠재력을 인정받는 선수인 만큼, 공격에서 강정호의 공백을 얼마나 메워줄지 지켜볼 일입니다.
만약 윤석민 카드가 통하지 않으면? 넥센은 이미 강정호의 공백을 대비해 차세대 유격수 요원을 양성해 왔습니다. 2014년 입단한 고졸 유격수 김하성과 임병욱이 여기 해당합니다. 김하성은 2014년 1군에서 대수비-대주자 요원으로 자주 모습을 보였고, 수비와 주루에서 합격점을 받았습니다. 퓨처스리그에서는 14경기에서 .362/.492/.553(타/출/장)로 ‘강정호급’ 활약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강정호의 공백을 공격으로는 도저히 메울 길이 없다면, 김하성을 통해 수비와 주루로 만회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부상으로 2014년을 통째로 쉬긴 했지만 임병욱도 여전히 넥센의 미래 주전 유격수감 재목입니다. 좋은 신체조건에 운동능력과 주력이 뛰어나고 선구안과 배트에 맞히는 능력이 수준급입니다. 파워를 좀 더 기르고 수비에서 경험을 쌓으면 ‘포스트 강정호’로 손색이 없습니다.
강정호는 떠났지만, 넥센 프런트와 코칭스태프는 어떻게든 길을 찾을 겁니다. 지금까지 그랬듯이.
NC 다이노스: 토종 선발투수를 내려주소서
NC는 더 이상 ‘신생팀’이 아닙니다. 2015년부터는 신생팀 특전 없이 기존 팀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시즌을 치러야 합니다. 4명이던 외국인 선수 TO도 3명으로 줄어듭니다. 올 시즌은 경기수도 144경기로 늘어나고, 시즌 중 휴식일도 사라집니다. 한 야구 전문가는 이를 두고 “불펜야구가 퇴조하고 선발야구가 자리 잡는 계기가 될 것”이라 했습니다. NC로서는 기존 선발 트리오(찰리-에릭-이재학)의 뒤를 받쳐줄 4, 5번째 선발투수의 역할이 아주 중요해졌습니다. 지난해 NC는 5선발 자리에 확실한 주인 없이 여러 선수가 돌아가며 등판했습니다. 노성호-이성민-이민호-박명환-손민한-이태양, 2014 시즌 NC에서 1경기 이상 선발로 나왔던 투수들의 명단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킨 선수도 찾아보기 힘든 데다, 등판해도 좀처럼 5회를 넘기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2014 NC 선발진1~4선발: 평균 27경기 152이닝(경기당 5.2이닝) 평균자책 4.12 BB/9 3.35 K/9 6.135선발: 6명 합계 20경기 84.2이닝(경기당 4.1이닝) 평균자책 5.31 BB/9 5.31 K/9 6.38
이제는 NC에서도 이재학 외에 확실한 ‘토종’ 선발요원이 나와줘야 할 때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NC의 젊은 투수 중에서 ‘제2의 이재학’이 등장해 선발 한 자리를 꿰차는 겁니다. 데뷔 이후 꾸준히 1군 마운드에서 기회를 얻은 노성호, 이민호, 이태양 등이 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같이 뛰어난 구위를 갖춘 선수들인 만큼, 좋은 날과 나쁜 날의 간극을 줄이는 게 과제입니다. 2년간 필승조로 활약한 임창민도 충분히 선발로 통할 만한 스터프와 경기 운영 능력을 갖췄습니다. NC 합류 직전인 2012년에는 퓨처스리그에서 100이닝 이상 투구한 경험도 있습니다. 또 이호중, 배재환 등 신인 투수들도 장기적으로 선발로 키워볼 만한 재능을 갖춘 유망주입니다. 이호중은 변화구 구사 능력과 제구력이, 부상에서 돌아온 배재환은 폭발적인 구위가 강점입니다. 이 둘을 포함한 신인 투수들은 전지훈련과 시범경기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가 중요합니다. 노장 손민한과 박명환은 풍부한 경기 경험과 타자 상대 요령을 앞세워 선발 한 자리에 도전합니다.
김경문 감독 말마따나 “선발 후보는 많”습니다. 이들 중 누가 가장 먼저 껍질을 깨고 확실한 선발투수로 자리를 잡게 될지, 시즌 내내 로테이션을 지키면서 5이닝 이상을 책임지는 투수가 나타날지. 여기에 NC의 2015년 성적이 달려 있습니다.
LG 트윈스: 젊고 힘있는 방망이를 주소서
2014 시즌 LG는 기적의 팀이었습니다. 물론 올라갈 팀이 올라갔다는 시각도 있기는 하지만, 시즌 초반 하위권 침몰과 선장 탈출의 악재를 딛고 플레이오프까지 치고 올라갔으니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양상문 감독 부임 이후 투수진이 급격히 안정되면서, 팀 평균자책점 3위(4.58)로 견고한 마운드를 구축한 게 상승세의 원동력이 됐습니다.
하지만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약해도 너무 약한 타선의 공격력입니다. 2014년 LG의 팀 장타율은 딱 4할, 9개 팀 중 최하위입니다. 이는 LG 출신인 ‘똑딱이’ 이대형(0.401)이나 시즌 홈런이 1개뿐인 NC 박민우(0.399)와 같은 수준입니다. 팀 홈런 수도 LG는 겨우 90개로, 넥센 박병호와 강정호 둘이 쳐낸 홈런(92개)보다도 적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건 LG 타자 26명이 기록한 WAR 합계가 8.8로, 넥센 강정호 혼자 기록한 WAR(7.4)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는 겁니다. 아무리 마운드가 튼튼해도, 이런 방망이를 갖고는 우승까지 바라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LG는 10개 구단 중 가장 주전 야수들의 평균 나이가 많은 팀입니다. 외야 주전도 전부 30대 중반 이상, 내야진도 유격수 빼고는 전부 토토가를 보며 눈물 흘릴 나잇대 선수들입니다. 이제는 젊은 타자들의 활약과 방망이의 파워가 더해져야 할 시점입니다.
이 부면에서 가장 나쁜 소식은 차세대 주전 중견수감인 배병옥을 kt에 내준 겁니다. 대신 김용의, 문선재 등 대체선수레벨 수비수들이 팀에 남았고, 잠실의 드넓은 외야 센터에서 노장 박용택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봐야 합니다. 대신 좋은 소식도 있습니다. 2014 시즌을 통해 1990년생 채은성, 1988년생 최승준 등이 1군에서 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습니다. 채은성은 가중출루율인 wOBA 0.358, 최승준은 0.344를 기록하며 좋은 타격을 해줬습니다. 군 제대 선수들의 가세도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서상우, 윤정우, 김재율 등 힘있는 우타자들이 상무와 경찰청 복무를 마치고 돌아옵니다. 서상우는 상무에서 7홈런에 장타율 0.454를, 윤정우는 4홈런 장타율 0.522를, 김재율은 8홈런에 장타율 0.508을 기록했습니다. 각각 1루와 3루, 외야로 포지션도 제각각이라 1군에서 쓰임새를 찾기도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일단 스프링캠프에는 포수 유강남과 내야수 김재율만 포함됐지만, 서상우와 윤정우도 시즌 중 한 번쯤은 기회를 얻을 선수들입니다. 젊은 LG 타자들이 잠실벌 외야를 펑펑 넘기는 광경을 기대해 봅니다.
SK 와이번스: 불운아 물러가라
2014년의 SK 와이번스는 ‘프로야구 역대 가장 불운한 팀’ 순위를 매기면 독보적인 1위에 오를 만한 시즌을 보냈습니다. 새해가 되자마자 구단 사무실이 압수수색을 당하더니, 4월 초에는 전직 임원과 구단 직원 등 5명이 경찰에 입건되며 뒤숭숭한 분위기로 개막을 맞이했습니다. 선수단에서는 부상이 속출했습니다. 우완선발 윤희상은 5월을, 마무리 박희수는 6월을 넘기지 못하고 부상으로 쓰러졌습니다.
외국인 농사도 완벽한 흉작이었습니다. 2년 계약을 안겨주고 영입한 외국인 투수 레이예스는 2013년보다 더 처참한 성적만을 남기고 6월에 퇴출, 미국에 돌아가서는 구단을 저주하는 SNS 활동으로 물의를 빚었습니다. 거물 메이저리거 출신이라고 기대한 스캇도 부상으로 나오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나중엔 하극상 사태까지 빚으며 퇴출. 선발로 나왔다 하면 난타당하던 울프는 후반기 마무리 보직을 맡아 잘 던지는가 싶더니 개인사를 이유로 돌연 출국했습니다. 여기에 주포 최정마저 시즌 초반 극심한 부진에 시달리다 부상으로 2군행, 7월 이후 돌아오긴 했지만 시즌 82경기 출전에 그쳤습니다. 이만수 감독이 기독교 신자만 아니었다면, 무당이라도 불러 푸닥거리를 해야 할 만큼 온갖 재앙과 재난이 속출한 시즌이었습니다.
하지만 SK는 온갖 악재 속에서도 시즌 마지막까지 4강 경쟁을 펼쳤고, 5위로 시즌을 마치는 끈기와 투지를 보여줬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명기, 김성현, 박계현, 이재원, 박민호 등 신예 선수들이 성장하는 소득도 있었습니다. 스토브리그에서는 시즌 내내 계속된 불운을 만회하기라도 하듯이, 팀 내 FA 선수들이 모두 팀에 잔류를 택하는 경사가 뒤따랐습니다. 팀 잔류를 택한 최정, 김강민은 다른 팀에서도 군침을 흘리던 대어급 FA 선수들입니다. 해외진출을 시도한 김광현의 팀 잔류도 천군만마입니다. 외국인 투수 밴와트, 켈리에 일본에서도 탐내던 외야수 앤드루 브라운까지 영입해 외국인 스카우트도 성공적이라는 평가입니다. 윤희상, 박희수가 부상에서 복귀하고 정우람이 군에서 돌아와 투수력도 한층 강해졌습니다. 여기에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박종훈, 서진용, 김민식, 최정민 등의 가세도 큰 힘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15 시즌 SK가 기대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올 시즌 아무리 불운하고 재수가 나쁘더라도 ‘우주에서 가장 불운했던’ 2014년만큼 불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에이스와 마무리와 간판타자가 한꺼번에 부상으로 빠지고 외국인 3명이 한꺼번에 이탈하는 시즌이 올해도 또 반복되기란 ‘증세 없는 복지’보다도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2014년 너무나도 불운했던 SK, 그리고 사람 좋기로 유명하지만 감독 생활 내내 운이 따르지 않았던 신임 김용희 감독. 이들에게 그간의 지독한 불운 대신 행운이 따라줄 수 있을지, 올 시즌을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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