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의 직분은 봉사자고, 종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면, 왕처럼 행세합니다. 1인 독재 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된 잘못된 역사의 산물입니다. 대통령도 우리 중의 하나입니다. (국민 곁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고문인 함세웅 신부를 찾았다. 지난달 28일 있었던 집회에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낸 함 신부는 '정의'에 대해 물었다.
"5세기경 로마 제국의 멸망을 지켜보던 성 아우구스티노가 신국(神國)론에서 국가 공동체의 기본적 가치로 '정의'를 설파하며,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 집단과 똑같은 것이다'라고 선언했다"는 것. 2012년 대선과 관련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달 9일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 구속된 일이 벌어진 가운데, 전임 대통령이었던 이명박도, 그 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도 '침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함 신부는 강조했다.
함 신부는 "개인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아버지와 같이 폭압을 휘두르는 박근혜 대통령을 폭압에서 구원시켜야 하는 게 종교인으로의 신학적 사명"이라고 했다. 이어 "자신이 휘두르는 권력의 폭압에서 그 자신을 해방시켜 아름다운 인간성을 회복하게 해야 한다"며 그런 점에서 대선 후보 시절 공약을 되찾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에 대한 비판이 곧 박 대통령에겐 '폭압자'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
함 신부는 이어 더 긴 안목을 주문했다. 프랑스 혁명 이후 시대가 바뀌는데 100년이 걸렸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우리 사회도 지금 '100년 전쟁' 중에 있다"며 "민주주의 실현과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해 더 고민하고, 연대의 틀을 키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지난 6일 있었던 5번째 '단박인터뷰' 주인공 함 신부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현 정권, 기초가 부실하다"
프레시안 : 지난달 28일 주말 집회에서 박근혜 정권을 향해 쓴소리를 했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함세웅 : 어른들이 흔히 '좋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라던가, '큰 집을 지으려면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 나라 전체를 말하긴 너무 거창하기 때문에 현 정권에 대해서만 얘기하면, 기초가 제대로 된 정권이 아닙니다. 국가나 정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며 국민으로부터 그 권력을 위임받은 것인데, 국민의 뜻을 왜곡하고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과 권력을 유지하려는 사심과 집단적 탐욕이 우선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는 종교인으로서 '사건을 근원적으로 접근하자'고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지난달 9일 국정원법 위반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 구속됐습니다. 지난 대선이 불법·관권 선거라는 사실을 법원이 인정한 것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큰 책임이 있고, 이에 덕을 본 현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법원은 판결한 것입니다. 2012년 12월 대선후보 TV 토론회 당시 박근혜 후보는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에 대해 '인권 침해'라며 자신과 거리를 뒀습니다. 그러나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구속으로 국가기관의 대선 불법 개입이 분명히 입증됐습니다.
선거를 통해 구성한 정부가 정당성에 기초하지 않았다는 것은 공동선에 위배되는 것이며, 또한 선열에 대한 모독이기도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새정치민주연합(구(舊) 민주당)도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 있으며, 동시대를 살며 침묵하고 있는 우리 모두도 책임져야 할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근원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5세기경 로마 제국의 멸망을 지켜보던 성 아우구스티노가 신국(神國)론에서 국가 공동체의 기본적 가치로 '정의'를 설파하며, '정의가 없는 국가는 강도 집단과 똑같은 것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런 근원적인 문제를 국민과 정치인들, 특히 법조인들이 깊이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고위공직자 후보자 인사 검증 때 수구·부패 언론은 '도덕적 잣대로 접근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도덕이 기초가 안 되는 정치·사회가 어떻게 존립할 수 있습니까? 부패하고 불의한 자를 최고 공직자로 선출하는 것을 정상적인 국정수행이라고 한다면, 아이들에게 양심·도덕·정의를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기초가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건물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프레시안 : 1987년 민주화 운동 이전에는 관건 선거가 노골적으로 있었지만, 법원의 판결로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이 드러난 것은 처음입니다. 도덕과 정의 차원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함세웅 : 참 부끄럽고 마음 아픈 일입니다. 정치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가장 아름다운 예술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도둑들이 하는 것'이라는 혐오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이 새로운 것을 창작할 때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 시작합니다. 정치도 예술이니까 잘못된 것을 찢고 과감하게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회개'와 '정화'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패로 인한 염증과 고름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프레시안 :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절반 이상이었습니다. 지금도 30%대 지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함세웅 : 지지율의 허구성을 먼저 지적하고 싶습니다. 부정·관권 선거였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쨌든 대선 당시 부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결과는 분명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안타깝고 아쉬운 부분입니다. 종교인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 원론적인 것을 얘기해야 합니다. 저는 모든 것이 '정의'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朴 대통령, 폭압에서 해방시켜야…"
프레시안 : 박근혜 정권의 인사 문제 등을 볼 때 우리 사회가 87년 체제 이후 합의한 여러 기준이 그 이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입니다.
함세웅 :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서는 법이 정한 권한이 있기 때문에 존중해야 합니다. 인사권자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대통령 후보자 시절 국민에게 약속했던 것을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자신의 공약을 100% 실천하는 정치인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공약을 아랑곳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국민을 속이고 기만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의 직분은 봉사자고, 종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면, 왕처럼 행세합니다. 1인 독재 체제가 오랫동안 지속된 잘못된 역사의 산물입니다. 대통령도 우리 중의 하나입니다. (국민 곁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권력자의 오만한 자세는 수덕(修德)이 부족한 자격지심인 것 같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연민의 정도 느낍니다. 인격이 부족하고 정직하지 못한, 그리고 그가 스스로 설정한 올가미(함정)에서 해방됐으면 참 좋겠습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설정한 올가미'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함세웅 : 가톨릭도 1960년대 이전에는 아주 독선적이고 배타적이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를 넘어오면서 역사와 시대 앞에서 '교회가 하느님 앞에 정직한가'라며 '우리가 하느님 앞에서 역사적으로도 부족하고 죄인이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렇게 고백할 때 그 교회 공동체가 정화되고 위대해집니다. 이때 비로소 하느님의 백성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에 교회 공동체는 담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한 복판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아름다운 교회관을 확인했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 또는 인간 공동체 안에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 등 여러 부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이 중 악한 사람, 특히 '폭압자를 배척해야 하느냐, 껴안아야 하느냐'를 고민하게 되는데 껴안아야 합니다. 그러나 껴안을 때에는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권력을 남용하고 폭력을 휘두르고 압력을 행사한 당사자가 바로 자신의 인간성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뉘우치고 속죄해야 합니다.
현실에서 '박근혜'라는 실체는 폭압자로 등장한 것입니다. 5000만 남한 국민의 폭압자입니다. 40년 전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시대의 폭압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아버지와 싸웠는데, 또 그의 딸과 싸워야 한다니…. 참, 부끄럽고 가슴 아픈 일입니다. 개인이 아닌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아니, 아버지와 같이 폭압을 휘두르는 그 여인을 폭압에서 구원시켜야 하는 게 종교인으로의 신학적 사명입니다.
자신이 휘두르는 권력의 폭압에서 그 자신을 해방시켜 아름다운 인간성을 회복하게 해야 합니다. 그가 대선 후보 시절 국민에게 약속했던 것의 의미를 되찾게 해 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 모습을 되찾을 때 제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타락한 모습입니다.
프레시안 : 정치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별명 중 하나가 '선거의 여왕'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대선 공약을 어겼다는 이유로) 타락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함세웅 : 정치적으로 능한 게 아니라, 일종의 '언어유희'이자 '언어의 오염'입니다. 그는 아름다운 말을 사용하지만, 사실 단어를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으로 자연 그대로 있어야 할 강만 오염된 게 아닙니다. 정치인이 말을 마구잡이로 사용하면서 좋은 언어가 오염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현 정권에서 어떤 희망을 가질 수 있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신분석학자 빅터 프랭클이 나치 강제수용소 체험 수기를 쓴 책 <죽음의 수용소>(이시형 옮김, 청아출판사 펴냄)와 <의미요법>(이봉우 번역, 분도출판사 펴냄)을 생각합니다. '의미요법'(로고테라피, Logotherapy)은 '말씀의 치유'라고 하는데, '난 살아야 한다. 내 가족을 만나기 위해 살아야겠다'라고 의지와 희망을 갖고 끝까지 버틴 사람은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근거로, 현 정권 5년을 '역사'라는 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는 50년, 100년, 또는 1000년 단위로 기록하지 않습니까? "희망이 없다"는 이 시대와 집권자에 대해 역사학자나 문학자가 기록할 때에는 '그때 그 사람 참 나쁜 여인이었다'고 평가할 것입니다.
그가 지난해 8월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불러 국장과 과장 이름을 거론하며 "참 나쁜 사람이더라"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신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 등에 비춰보건대) 그런 사람입니다.
거시적 안목으로 100년 이후를 생각하면서 현 정권을 평가하며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종북 몰이, 정의와 평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증거"
프레시안 : 지난 5일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정치적 의사 표출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돌발적으로 터져 나온 경우입니다.
함세웅 : AP통신과 <뉴욕타임스>가 지적하듯 한미연합훈련이 남북 관계의 걸림돌이 된다거나, 미국 보수 성향 매체 <워싱턴프리비컨>과 일본 <아사히>신문 말대로 미국 국무부 웬디 셔먼 정무차관의 발언(2월 말 워싱턴DC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한중일 3국의 과거사를 덮고 가자'는 취지의 말을 함)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는 행동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방식이 잘못됐습니다.
김기종 씨를 여러 회합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살아온 과정에서 상처가 많이 쌓여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균형 감각을 상실한 분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치료와 치유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객관적으로, 의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피습 사건을 김 씨 개인의 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시대적 책임이라는 연대 의식 속에서 성찰해야 합니다. 본인도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다고 했습니다. 또 이를 새누리당과 집권세력, 수구집단이 말하듯 '종북 몰이'로 가서는 더욱 안 됩니다. 특히 무슨 일만 생기면, 만능 통치 약인 양 '종북이다'라며 손가락질하는데, 객관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국제적으로 시선이 집중된 사건인데, 세계인들에게 한국 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줘야 합니다. '종북 몰이'는 비인간적·야만적 왕따 놀이, 정신병자와 같은 비정상적 행업입니다. 성숙한 문화인의 기본과 양식을 갖춘 정치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국가 공동체 구성원이자 종교인으로서 어떤 사안을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단, 즉 종북으로 몰아가는 폭언은 오히려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아무리 건강한 주장이라고 해도 폭언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여러 관점에서 공동체 전체가 대처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오늘(6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하느님 앞에 김기종 씨와 리퍼트 대사 두 분과 공동체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프레시안 : 일간베스트(일베)에서 활동하는 고등학생이 '신은미·황선 토크 콘서트'에서 사제 폭탄을 터뜨린 사건, 또 일베 게시판에 여성과 호남 출신을 비하하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어묵'에 빗댄 일 등 '종북'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혐오가 늘고 있습니다.
함세웅 : 경찰이 '사제 폭탄 사건' 같은 경우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사건만 보면, 참 못마땅합니다. 그런데 이를 보도하는 언론 또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미국의 <크리스턴 사이언스 모니터(Christian Science Monitor)>라는 언론은 '이 뉴스가 청소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해 그리스도적 관점에서 보도한다고 합니다. 언론인 스스로가 비도덕적 뉴스를 필요 이상으로 경쟁하듯 보도하는 태도를 조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일부 구성원의 일탈과 언론의 과열 경쟁은 사회 전반의 문화나 국민 수준이 올라가면 조절될 수 있다고 봅니다. 국민 자체가 그렇게 폭력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제 식민지 시대의 친일 세력과 박정희-전두환 시절 군부독재 세력 등에서 우리 사회의 폭력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 근원을 따져야 하는데, 일련의 사건을 너무 현상적으로만 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평화와 정의가 그만큼 이뤄지지 않았다는 반증입니다.
"세월호 참사, 분노를 넘어 연대로…"
프레시안 : 세월호 참사, 여전히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풀고 또 치유할 수 있을까요?
함세웅 : 법과 상식에 기초해 정직하게 접근하면 됩니다. 한 번 거짓말하면, 계속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가장 훌륭한 것은 잘못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4월 16일, 곧 1주년이 다가옵니다. 우리 학생과 시민들이 바다에 가라앉는 것을 전 국민이 몇 시간 동안 지켜봤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은 그 7시간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문제가 되자,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보도가 일제히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쪽으로 쏠렸습니다. 고도의 언론 공작, 정치 공작입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공안 통치와 비슷합니다. 그렇다 보니, 세월호 유가족 입장에서는 정권의 진상규명 의지를 믿기 어려운 것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 조사위원회 활동이 오늘(6일)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조사 시작도 하기 전에,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세월호 인양 문제와 관련해 "세금 도둑"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집권여당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규명을 위해서는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라는, 여야 간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억울함을 밝히고 사고의 원인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대화하면서 "분노만 가지고는 안 된다. 분노를 삭이면서 연대 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종교인이라고 해도 자식을 잃은 엄마의 아픔을 어떻게 다 이해하겠습니까? 다만, 저는 '종교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과 이를 지켜봤던 성모 마리아의 아픔을 되새겨줬으면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 역사적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관심을 가졌던 가를 생각하며, 자식을 잃은 아픔을 연대적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세월호 참사에서 역사적 교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개인의 모든 사건은 결국 이웃과 연계된 민족사적 사건입니다. 그래서 유가족들에게 "내 아들딸이 나에게 역사적 교훈을 일깨워줬다. 그 의식으로 정부를 늘 감시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우리 사회 모든 문제가 정치적(이념적) 이해관계로 흐르는 데는 친일·독재의 잔재, 분단 세력과 신자유주의를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4개의 가치를 중심으로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이를 중심으로 한 근원적인 종합 대책이 필요합니다.
"대통령 임기 5년, 숨 한 번 쉬면…"
프레시안 : 우리 사회가 친일·독재·분단·신자유주의 세력을 청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의 등장으로 상황이 더 어려워진 것 아닌가요?.
함세웅 : 이명박·박근혜 정권과 비교해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조금 더 민주주의에 가까운 시절이었지만, 고인이 된 두 대통령이 더 잘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에서 신자유주의가 뿌리를 내렸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자본의 노예가 됐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신선한 사회적 가치를 지녔지만, FTA와 해군 기지 건설 등 미국에 더욱 예속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를 거치면서 '이 정권도 아니다'라는 의식을 갖게 됐지만, 박근혜 정권 또한 불법 선거로 얼룩졌습니다. 김대중·노무현을 넘어서서 새로운 미래를 꿈꿔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3년은 더욱 단련되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레 미제라블>은 빅토르 위고가 벨기에에서 망명 생활 중 쓴 글입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지만, 자유는 100년 뒤에 실행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기도 했습니다. 빅토르 위고 역시 '이렇게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프랑스 시민이 나아갈 길을 제시한 게 <레 미제라블>입니다. 프랑스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길을 보여준 미래 시대의 좌표였습니다.
시대가 바뀌는데 100년이 걸린 셈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다큐멘터리 <백년전쟁>을 만들었는데, 1905년 을사늑약을 기준으로 100년이 지났고, 1945년 일제 식민지 해방을 기준으로 하면 이제 70년 지났습니다. 박정희 독재 정권에서 벗어난 지는 40년 가까이 됐습니다. 지금 '100년 전쟁' 중에 있습니다. 민주주의 실현과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해 더 고민하고, 연대의 틀을 키워야 합니다.
대통령 임기 5년, 역사적으로 숨 한 번 크게 쉬면 지나갑니다.
프레시안 : 지난해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세월호 유가족이나 국민 모두에게 큰 치유가 됐습니다. 우리 사회의 종교, 특히 천주교가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함세웅 :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평화활동가 등 현장에 투신해 있는 종교인도 많습니다. 교황 개인도 훌륭하지만, 국제적 지위와 사목적 신분 때문에 추앙받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교황보다 더 크게 헌신한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희망이고 길잡이입니다. 그런 분들의 헌신으로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청춘=힘, 개성 있는 인간이 되라"
프레시안 : 5년이란 시간이 금방 간다고 말씀하셨는데, 젊은이들에게는 힘겨운 일입니다. 2030대 젊은 층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함세웅 : 청년들의 현실을 다 알지는 못합니다. 시대는 다르지만, 로마에서 유학하던 20대 시절 인류복음화성 차관 피녜돌리(Pignedolli) 대주교가 훈화 시간에 나폴레옹 얘기를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교회사적으로 볼 때 로마 교황을 억압한 인물입니다. 그런 폭압자를 우리에게 제시했습니다. 그러면서 '개성 있는 인간이 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나의 가치와 신념, 인격을 하늘같이 지켜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폴레옹이 천하를 호령하다 유배되면서 이탈리아 엘바 섬에 잠시 머물게 됐는데, 감시인들에게 자유 시간을 달라고 하더니 항구에 가서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었다고 합니다. '어디서 오는 건가, 어디를 가나, 무슨 목적으로 왔나. 당신 인생관은, 신관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고 합니다. 죽음의 길로 가면서도 사람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나타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해, 우주에 대해, 역사에 대해 관심을 드러낸 것. 그것이 '나폴레옹의 개성'이었습니다.
당시 주교가 한 훈화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성경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의 교훈이 다 우리 성서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최근 대학가의 '안녕들하십니까'와 '최경환 F학점' 대자보 등이 어른들에게도 교훈이 됐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고난의 시간이자 모순적인 사회 현실이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내가 가져야 할 꿈을 늘 간직하면서 아름다운 미래를 이룩하는 젊은이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청춘' 자체가 바로 힘입니다. 선배 세대, 스승 세대를 넘어서고 거짓 무리들을 넘어서는 신선한 싹이기를 바라면서 늘 개성을 간직하길 바랍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남은 집권 3년 동안 어쨌든 깨달음을 얻어야 할 텐데, 마지막으로 큰 꾸짖음을 한다면?
함세웅 : (한참 있다가) 하긴 해야 하는데, 생물학자 등에 의하면 DNA는 안 바뀐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사제니까, 나라와 그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해 정권이 잘 마무리되게 기도할 것입니다.
* '단박 인터뷰'는 2015년 <프레시안>이 새롭게 연재하는 조합원과 독자 참여형 인터뷰입니다. 함세웅 신부님이 추천한 다음 주인공은 민족문제연구소 임헌영 소장입니다. 연구소 측에 인터뷰 요청을 한 상태입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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