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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재인, 문제는 실력이다"

[주간 프레시안 뷰] "민주적 책임성은 실현 능력을 포함한다"

누워서 침 뱉기?

51.6%의 지지율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집권 2년차를 맞아 대통령 비서실장을 새로 임명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 소통과 거리가 먼 숨 막히는 회전문 인사"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불과 이틀 전인 25일, 45%의 지지율로 당선된 야당 대표는 공천실무를 책임질 수석사무부총장에 친노계인 김경협 의원을 임명했다. 1위로 당선된 주승용 최고위원은 계파 정치의 부활이라며 당무를 거부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사건으로 한국 정치에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생겼다.

불통 정치의 시대

민주당은 18대 대선에서 3%대의 근소한 차이로 졌다. 여기에 국정원의 선거개입으로 인해 야당이 대선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란 더욱 어려워졌다. 여야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 청와대는 초원복집 사건의 주역인 김기춘 비서실장 카드를 꺼내들었다. 야당과의 소통은 완전히 중단되었다.

세월호가 침몰했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유가족과 야당의 호소에 눈 하나 깜짝 않는 놀라운 뚝심으로 청와대를 지켜냈고, 국무총리로 발탁되었다. 김기춘의 후임으로는 총풍사건 연루 의혹이 있고, 정치자금을 배달해 법정 최고형인 벌금 천만원을 선고받은 현직 국정원장이 임명되었다. 동시에 여당 내 둘째가라면 서러울 독설가 3인이 정무특보를 꿰찼다. 앞으로도 소통 없는 정치가 이어질 것은 명약관화하다.

제도 개혁으로 상생의 정치를?

여야간 극한대립에서 기인하는 소통부재는 이번 정부만의 일은 아니다. 이러한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여야가 서로를 국정의 파트너로 존중하고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러나 적어도 조만간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금의 야당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선거제도의 개편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역대결을 완화하기 위해 총선에서 권역별 비례대표를, 대통령 선거에서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의 소선거구제 단순다수대표제 보다 민심과 의석 수의 비례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우선 지금의 정치권이 이를 받아들여야 할 사정이 없다. 설혹 그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는 경우에도 실제 결과는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제시된 선관위 안에서는 지역구 의원정수를 대폭 줄여야 하는데, 총선을 불과 1년 여 앞 둔 시점에 이것이 가능할까? 그렇다고 심상정 의원이 제기한 대로 비례대표를 대폭 늘리는 방안이 당장 현실화되기도 쉽지 않다. 대선 결선투표는 어떤가? 현재의 정치구도 상 유불리가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불리한 쪽에서 그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선거제도 개혁은 선거구 개편과 정치 후원금의 확대, 지구당 부활 등 제 잇속을 차리는 수준에서 용두사미로 끝날 공산이 크다. 그렇다면, 당분간 한국정치가 개선될 여지는 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여야의 협력과 소통, 상생의 정치가 부재한 상황에서도 현재보다 나아질 수 있다.

우리가 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자

무엇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민주주의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합의제 민주주의는 분명한 승자를 정하는 것을 꺼리고 다양한 세력의 균형과 타협 속에서 권력의 작동을 허용한다. 의원내각제와 다당제를 기반으로 하는 북유럽의 정치 체제다. 대결보다 포용이 정치의 원칙이 되고, 일단 정치적·사회적으로 합의된 정책은 오랫동안 일관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정치적 결정은 대단히 느리고, 연립정부의 임기는 불확실하다. 선거 후 정당 간 협상을 통해 연립정부가 수립되는 데만도 평균 3개월이 소요된다.

미국, 영국 등 정치적 균열이 크게 두 세력으로 나뉘어 있는 곳에서는 합의제적 전통보다 승자의 리더십과 패자의 팔로우십이 중요하다. 정치적 사안에 대한 결정은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내려지며, 번복의 여지는 별로 없다. 대통령과 수상의 개인 역량이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선거에 승리한 쪽에서 정책을 일방적으로 주도하게 된다. 대화와 협력이 정치과정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추진 능력과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중요한 것은 어느 체제가 나은가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어떤 민주주의가 필요한가 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선거 후 석 달 정도 차기 정부의 구성을 기다릴 수 있을까? 내각의 몇 자리와 정책을 맞바꾸는 비밀 협상은 합리적 거래일까, 정치적 협잡일까? 야당의 반대는 정당한 민주적 과정인가, 패자의 발목잡기인가? 사회적 쟁점에 대해 충분한 합의가 없다면 기한 없이 정치적 결정을 미루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정해진 기한을 두고 반드시 결정을 지어야 하는 것인가?

언젠가 우리도 합의제 민주주의의 장점을 수용하게 될 것이고, 어감도 불편한 '승자독식형' 민주주의의 단점을 교정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때까지 마냥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아마 그래서는 합의제 민주주의도 오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적이다

대중은 공약보다 이미지를 보고 투표한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사람들이 예상했던 나라와 지금의 대한민국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촌스러울 정도로 철저하게 보수적이며, 북한에는 강경하고, 나라는 10년 만에 (보수적인 의미에서) 품격을 갖추었고, 청와대는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았다. 이 점에서 이 정부는 민주적이다.

같은 상황을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친서민적 정책은 사라지고, 대북관계는 어려워졌으며, 외교에는 실리가 없고, 청와대는 소통이 안 된다. 그러나 비판만 하는 것으로는 수권 능력을 갖출 수 없다.

청와대와 여당이 마이웨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어떤 의미에서 민주적이다. 그래서 비판 받아야 하는 것은 마이웨이를 못하고 있는 야당이다. 야당이 만들어 갈 나라란 공약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 정당의 모습에서 나온다. 비전도 없고, 규율도 없고, 패거리의 이익을 챙기며, 다들 제 살 길만 도모한다. 그 정당이 무슨 말을 할 리도 없고, 한들 믿을 리 없다.

민주적 책임성은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이병기 실장을 임명해서 나라가 잘 되느냐이고, 김경협 의원을 임명해서 총선을 이길 수 있는가에 있다. 요컨대, 민주적 책임성을 높이고 결과로 평가받는 것이다. 민주적 책임성은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한다.

며칠 전, 문재인 대표는 현역의원을 정무특보로 임명한 것이 잘못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가 이해찬 의원을 정무특보로 임명했다면서 반박했다. 여당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다 보면 자기 길을 잃게 마련이다. 이런 정당에서는 수석사무부총장 임명이 소신이 아니라 계파 챙기기라고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다. 문제는 실력이다.

▲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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