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건강보험료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할 예정이었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안은 상당히 획기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복지부 장관이 발표 하루를 앞두고 갑자기 추진 중단을 선언했다. 연말정산에서 드러난 민심 이반이 또 발생할까 겁이 나 내린 결정이다.
이리도 국민 마음을 모를까? 정부의 정무적 판단 능력이 거의 정신을 잃은 듯하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직장과 지역별로 달라 다소 복잡하다. 이번 기회에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정리해 보자. 전체 국민을 다섯 집단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처음 세 집단은 직장가입자에 속하고, 후반 두 집단은 지역가입자이다.
첫째 집단 : '일반 직장가입자' - 근로소득만 있음
첫째 집단은 근로소득만 있는 직장가입자이다. 대다수 직장인으로, 현재 직장가입자 약 1450만 명(국민의 약 30%) 중 약 1200만 명이 여기에 해당된다. 자신의 소득에 보험료율 약 6%를 곱해 이 중 절반을 낸다(즉, 소득의 3%). 만약 월급이 300만 원이면 월 9만 원을 낸다. 이들은 개편안에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둘째 집단 : '특별 직장가입자' - 근로소득 외 종합소득 있음('특별'은 공식 용어가 아니고 필자가 붙인 것)
근로소득과 별도로 사업, 임대, 이자, 배당 등 종합소득을 가진 약 250만 명이 둘째 집단이다. 전체 직장가입자 1450만 명의 약 15%에 해당한다. 근로소득 외 추가소득을 가지고 있으므로 직장인 중에서는 상위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별도 종합소득에도 보험료가 부과된다.
그런데 종합소득이 연 7200만 원(월 600만 원)을 넘을 경우에만 추가로 보험료가 부과된다. 종합소득 7200만 원까진 추가 보험료가 면제된다는 이야기다. 근로소득 3600만 원인 직장 동료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이 추가로 임대소득을 7000만 원 벌더라도, 두 사람의 보험료는 근로소득에 부과되는 월 9만 원으로 동일하다.
올바른 개혁방향은? 명확하다. 근로소득, 종합소득 가리지 말고 모든 소득에 보험료를 부과하면 된다.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개편안은 연간 2000만 원 넘는 종합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할 예정이었다. 이러면 별도 종합소득 보유자 250만 명 중 해당자는 27만 명으로 줄어든다. 여전히 온건한 개혁안이다. 정부는 이것조차 포기하는 것이다.
셋째 집단 :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5000만 가입자 중 가장 많은 2000만 명(40%)이 직장가입자 피부양자다. 원칙적으로 피부양은 소득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직장가입자의 자녀가 피부양자로 건강보험을 이용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다. 무려 금융소득, 연금소득, 기타소득이 각각 4000만 원을 넘지 않으면 피부양자가 된다. 여기에 속하는 사람이 230만 명, 전체 피부양자의 11.5%다. 극단적 사례지만, 금융소득 3600만 원, 연금소득 3600만 원(공무원연금 월 300만 원), 임대소득 3600만 원 등 연소득이 총 1억 800만 원이라도 피부양자로 인정된다는 이야기다.
올바른 개혁방향은? 당연히 소득이 있으면 그만큼 보험료를 내고 정식 가입자로 등록하면 된다. 개편안은 피부양자 역시 종합소득이 2000만 원을 넘으면 가입자로 전환하는 방안이 유력했다. 이러면 19만 명만 피부양자에서 가입자로 전환된다. 역시 내가 보기엔 온건한 방안이었다.
일반 직장가입자, 특별 직장가입자, 피부양자 세 집단의 손익을 정리하자. 일반 근로자는 보험료 변동 없다. 2000만 원 초과 종합소득 있는 근로자 27만 명만 보험료가 오른다. 피부양자도 역시 2000만 원 초과 종합소득이 있는 19만 명만 보험료를 별도로 내게 된다. 개편안은 직장가입자와 피부양자 3500만 명 중 1.3%인 46만 명의 보험료가 느는 방안이었다(언론에서 45만 명으로 보도되는데 반올림 작업한 듯). 이들은 근로소득 외 2000만 원이 넘는 추가소득이 있는 사람들로 상위계층 혹은 고소득자이다. 그래 이들이 무서워서 건강보험료 개편을 포기한단 말인가!
지역가입자 보험료 체계 : 종합소득 500만 원 기준으로 부과체계 달라
이제 지역가입자에 속한 두 집단을 살펴볼 차례다. 두 집단을 나누어 보기 전에 지역가입자 보험료 부과체계를 전반적으로 점검해 보자.
지역가입자는 재산, 소득, 자동차, 사람(성/연령) 등에 보험료가 매겨진다. 소득에만 보험료가 부과되는 직장가입자와 비교해 재산, 자동차, 사람이 추가된다. 소득 파악이 미진한 한국 상황을 반영한 고육지책이다.
직장가입자는 가입단위가 개인이고, 지역은 가구이다. 그래서 지역가입자에선 피부양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에게도 점수를 부과해 보험료를 매긴다. 사실상 인두세다. 역시 미비한 소득 파악 상황에서 어떻게든 보험료를 산정하기 위해 마련된 항목이다.
지역가입자 부과체계는 종합소득 500만 원을 기준으로 구분된다. 소득, 재산, 자동차는 공통 항목이고, 500만 원 이하 가구는 소득이 작으므로 먼저 과세소득(없는 사람이 더 많다)에 사람, 재산, 자동차 항목을 종합해 평가소득을 산출한다. 그래서 500만 원 초과 소득자는 과세소득, 재산, 자동차로 보험료를 매기고, 500만 원 이하는 평가소득, 재산, 자동차로 매긴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500만 원 이하 소득자, 즉 가난한 지역가입자의 경우 재산, 자동차가 두 번 보험료 계산에 동원된다는 점이다.
2014년 1월 기준, 지역가입자 보험료 총액에서 소득이 차지하는 몫은 약 30%에 불과하다. 대신 재산이 차지하는 몫이 48%, 자동차 11%, 사람 11%이다. 재산이 보험료 산정에서 절반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다. 직장가입자의 보험료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재산이 지역가입자에게는 보험료 절반의 근거가 되고 있다.
지역 보험료, 서민 부담이 더 커 역진적
그런데 재산, 자동차, 소득 각 항목에 매겨지는 보험료가 지역가입자 내부에서도 형평하지 못하다. 오히려 역진적이다.
우선 재산 부과 보험료가 그렇다. 송파 세 모녀는 월세 50만 원을 내고 있었는데, 이를 전세금으로 환산해 3700만 원의 재산으로 간주된다. 이에 따른 재산 부과 보험료가 약 4만 원이다(3인 식구에 부과된 사람 몫 1만 원을 합쳐 월 5만 원을 내고 있었음). 실제 재산과 비교해 보험료가 과중하다. 이어 재산이 1억 원이면 해당 보험료가 약 8만 원이다. 10억이면 18만 원, 30억 원 초과면 26만 원이 부과된다. 재산 1억 원과 30억 원을 비교하면 재산가격은 30배이지만 보험료는 약 3배에 불과하다. 재산 부과 상한액이 30억 원으로 묶여 있으므로 100억 재산가도 26만 원만 낸다. 이 경우 재산은 100배이지만 보험료는 3배에 불과하다.
소득에 매겨지는 보험료도 역진적이다. 직장가입자는 근로소득의 경우 본인부담으로 3% 정률 보험료가 부과된다(상한 소득 월 7810만 원으로 상당히 높은 편). 그런데 지역가입자의 소득 적용 보험료는 정률이 아니다. 점수를 부여한 후 나중에 금액으로 환산하는데, 연소득 1200만 원이면 약 10만 원, 1억이면 약 30만 원이다. 보험료율로 계산하면 전자는 약 10%, 후자는 3.6%이다. 매우 역진적이고 가난한 사람의 경우 직장가입자 본인부담 보험료 3%에 비해서도 3배 높다.
자동차도 역진적이다. 소득이 500만 원 이하인 저소득 지역가입자는 실제소득 대신 평가소득을 산정하는데, 이때 자동차가 반영된다. 즉 자동차는 평가소득 항목으로 한 번 계산된 후, 다시 별도 자동차 항목으로 두 번 보험료 계산에 동원된다(재산도 그러함). 그 결과 아반떼(연식 7년 차)를 가진 사업소득 500만 원 이하 지역가입자는 자동차로 인해 2만2000원이 부과된다. 반면 그랜저(7년 차)를 가진 사업소득 500만 원 초과 지역가입자는 자동차 몫 보험료가 1만6000원에 불과하다. 더 좋고 비싼 자동차를 사용하는 지역가입자가 자동차 몫 보험료는 더 작은 황당한 부과체계이다.
이제 지역가입자를 계층별 두 집단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넷째 집단 : '재산이 별로 없는 지역가입자'
지역가입자 중 재산이 상대적으로 작은 가난한 사람이 넷째 집단이다. 지역가입자 보험료 산정에서 재산, 소득, 자동차 부과 보험료가 지닌 역진성 때문에 지역가입자는 가난할수록 불리하다. 현재 지역가입자 대다수는 영세자영자, 은퇴자, 노인, 일용노동자, 실업자 등 취약계층에 속한다. 과거엔 건강보험료 가입자 중 직장과 지역이 각각 절반을 차지했었다. 지금은 지역가입자 중 상대적으로 근로소득이 있는 사람들이 직장으로 옮겨갔고, 지역가입자가 전체 국민의 30%로 줄어들었다. 대부분 어려운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송파 세 모녀는 재산(월세), 사람에 보험료가 부과돼 어려운 살림에서 월 5만 원을 건강보험료 내야했다. 또한 직장에서 일하다가 실직해 지역으로 전환되면 그 중 약 절반의 사람들은 보험료 대폭 인상에 직면한다. 지역가입자 보험료가 과도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베이비부머가 직장에서 지역으로 옮겨올 예정이다. 이들 역시 지역가입자가 되는 순간 더 많은 보험료를 내게 될 것이다.
다섯째 집단 : 재산이 많은 지역가입자
마지막으로 다섯째 집단은 상대적으로 재산이 많은 지역가입자들이다. 이들은 재산, 소득, 자동차 몫 보험료 부과가 지닌 역진성으로 혜택을 본다. 지역가입자의 경제적 능력에서 재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어떻게 재산 1억 원과 30억 원의 보험료 차이가 3배에 불과할 수 있는가? 보험료 상한선에 의해 1억 원과 100억, 300억 원도 보험료 차이는 계속 3배에 머문다.
소득에 매기는 보험료 역시 정률도 아니고 거꾸로 소득이 많을수록 보험료율이 낮아진다. 자동차 역시 그랜저보다 아반떼가 더 보험료를 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긴다.
지역가입자 건강보험료 개혁 : 사람, 자동차 항목 폐지하고 재산은 공평하게
지역가입자 보험료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우선 재산은 현재의 역진성을 해소하기 위해 하후상박으로 보험료 부과방식을 개편해야 한다. 저가 재산의 보험료는 깎아주고 고액 재산의 보험료는 올려야 한다. 소득 부과 보험료도 비례성을 갖도록 해야 한다. 사람에 부과하는 보험료는 사실상 지역가입자 인두세에 해당한다. 폐지하는 게 마땅하다. 자동차 역시 필수 생활재가 된 현실에서 보험료 부과대상으로 삼는 건 적절치 않다.
정부가 준비해 온 개편안의 방향은 이러한 내용을 상당히 담고 있었다.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지 않지만, 서민 지역가입자 보험료는 낮아지고 고액재산가 보험료는 높아질 예정이었다. 기자단에게 배포된 개편안 설명 자료에 의하면, 지역가입자 전체 가구 759세대(인구수로는 약 1500만 명) 중 최소 70% 이상 보험료가 경감될 계획이었다. 그러면 최소 531만 가구(인구수로는 약 1000만 명) 보험료가 인하될 것이다. 괜찮은 방향이다.
개편안은 사람, 자동차에 부과되는 보험료를 폐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이것도 올바른 방향이다. 그런데 이러면 소득 자료가 없거나 소득이 매우 작은 저소득계층 보험료 산정에 어려움이 발생한다. 그래서 최저보험료를 도입한다. 예시로 제시된 금액은 현행 직장가입자 최소보험료 1만6000원이다. 그러면 송파 세 모녀의 보험료는 5만 원에서 1만6000원으로 줄어들 것이다.
여기서 우려가 생길 수 있다. 현재 지역가입자 가구 중 보험료가 1만6000원 이하가 무려 128만 세대, 17%에 달하기 때문이다. 1만 6000원으로 최저보험료가 도입되면 이들의 보험료가 오르게 된다. 개편안은 이들에 대해선 부담이 증가하지 않도록 경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요약하면, 지역가입자 개편안은 아직 구체적 수치가 제시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전향적이다. 서민 지역가입자 보험료는 낮아지고 고액 재산가 보험료는 오를 것이다.
시민 압박으로 건강보험료 개혁 재추진하자
개편안이 최선은 아니다. 직장가입자의 경우 종합소득 2000만 원까지는 보험료가 면제되는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여전히 온건한 방안이다. 또한 지역가입자의 경우 재산 보험료의 하후상박 변화를 구체적 수치로 확인해야 하고, 최저보험료 보완방안이 충분한지도 점검해야 한다.
그래도 이번 개편안은 현행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현실을 감안하면 전향적인 작품이다. 어찌 이런 개편안을 백지화할 수 있는가? 국민의 1%, 45만 명의 고소득자, 그리고 지역 고액재산가가 그리 무섭단 말인가? 복지부장관은 사회적 공감대를 더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유인데, 2013년에 구성된 기획단에 이미 전문가, 가입자 대표자 들이 포함돼 있고, 이들이 만든 방안이다. 이후 기본 방향을 국민에게 제시하고 논의를 심화시키면 된다.
30일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등 4개 복지단체가 청와대 앞에서 건강보험료 개혁 추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벌였다. 나는 개편안 추진 중단을 결정한 주체가 청와대라고 판단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국정과제를 과연 장관이 독자적으로 중단할 수 있을까? 대통령이 다시 결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시민의 압력이 필요하다. 건강보험료 개혁 추진 시민운동을 벌이자. 그러면 박근혜 정부도 계속 버티진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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