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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지자체에 살아도 왜 불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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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지자체에 살아도 왜 불행할까?

[복지국가SOCIETY] 복지국가와 지방자치, 그 상생의 관계

"생활 불편 없는 송파구", "모두가 행복한 희망 복지도시", "군민이 안전하고 행복한 보배섬 진도". 각 지자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이런 문구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러나 생활 불편이 없다던 송파구에서는 지난해 2월 세 모녀가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했고, 모두가 행복한 희망 복지도시라는 동대문구에서는 지난해 12월 50대 남성이 긴급복지 지원 신청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자 구청 건물에서 투신 자살했다. 또한 군민이 안전하고 행복하다는 진도에서는 지난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침몰 참사에서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는 근저에는 중앙집권적 행정체계에서 오는 비효율성이 자리를 잡고 있다. 현재 지자체 차원에서는 복지지원에 대한 위탁업무만을 수행할 뿐 결정권한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자체적인 복지사업에 투자할 재정도 부족하다. 게다가 사회복지공무원들은 각종 지침이나 규정으로 긴급한 상황에서도 재량을 발휘하기 어렵다. 재난대응 지휘체계 역시 중앙 중심으로 짜여 있어 지자체 차원에서는 현장 중심으로 신속하게 대응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부족한 예산으로 전문적인 재난관리 능력을 갖추고 있지도 못하다.

이로 인해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한 직후, 해당 지역의 관할 지자체인 진도군청은 신속한 구조에 전력을 투입하기보다는 중앙에 보고를 하느라 귀중한 시간을 다 허비했다. 이처럼 지자체에 재정과 권한이 부족함으로 지역의 실정에 맞는 행정을 통해 주민들의 복지를 증진시킨다는 지방자치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

복지국가에서 잘 발달하는 지방자치

"국가는 삶의 큰 문제를 다루기에는 너무 작고, 작은 문제를 다루기에는 너무 크다." 미래학자 다니엘 벨의 이 말은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각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 특히 주민 생활에 밀접한 문제들을 모두 다루기란 어려우므로 지방자치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미 20세기 후반부터 선진 복지국가들은 국가운영의 효율화를 위해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기 시작했다.

특히 오늘날은 과거에 비해 가족의 해체, 여성 노동의 증가, 고령화 사회의 도래 등으로 육아, 노인 부양, 고용, 양극화 등의 문제가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새로운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다. 이런 문제들은 현금의 지급뿐만 아니라 보육, 요양, 교육 훈련, 취업 알선과 같은 직접적인 서비스들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서비스들은 수요자가 처해있는 구체적인 상황과 제공자에 따라 질적 차이가 발생한다. 따라서 멀리 있는 중앙정부가 획일적으로 제공하기 보다는 가까이에 있는 지방정부가 신축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 유모차를 끌고 가는 스웨덴 남성. ⓒ프레시안
이런 관점에서 선진 복지국가들은 1970년대 이후 복지서비스를 지방정부에 이양했다. 보편적 복지와 높은 수준의 지방자치로 잘 알려져 있는 스웨덴의 경우, 기초지방자치단체의 기본단위인 코뮨이 교육, 노인 및 장애인 복지서비스, 보육 및 탁아소 운영 등 사회보험을 제외한 대부분의 복지서비스를 책임진다. 그리고 그 예산의 68%는 자체적인 주민소득세로, 16%는 중앙정부의 지방교부금으로 충당한다. 지역 간 경제력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격차를 조정하기 위해 중앙에서는 균형분배기금을 조성하여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스웨덴은 복지서비스의 이양과 동시에 재정의 분권을 이루었다. 지방세의 사용 여부에 대해서도 기초 지자체의 의회 및 지방정부의 권한이 상당히 크고, 자체적인 조세결정권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가 결정한 복지정책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중앙정부가 재원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정책예산의 52%를 중앙정부가 결정한 복지사업에 쏟아야 하는 한국의 지방자치 현실과 대비되는 측면이 많다.

또한 한편으로는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 대해 사회서비스 법, 건강 및 의료서비스 법, 학교 법 등 분야별로 중앙정부가 정한 법령이나 규정을 준수할 의무를 지우고 있다. 이는 지방정부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서 중앙과 지방 간 분권과 통제의 적절한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스웨덴의 사례는 복지국가 안에서 발전하고 있는 '효과적인 지방자치'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지방자치의 토대 위에서 발전하는 복지국가

한편, 지방자치의 강화는 동시에 복지국가의 확대 및 발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방정부는 직접 주민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시행하고자 하는 복지정책의 성공 여부가 지방정부의 행정력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비록 지방정부 예산의 상당부분이 중앙정부에 종속되어 있지만, 총 지출의 38%는 자체적인 사업을 하는 데 사용 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예산을 복지서비스 제공에 투입한다면 지역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국가의 모습이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일 수 있어서 지역 내에 복지국가지지 세력이 성장할 발판이 될 수 있다.

이런 점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오랫동안 축적된 지역의 민주주의와 자치정부의 역사적 전통 하에서 보편적 복지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특히 이들 국가의 지방정부들은 지방분권이 이루어지기 이전인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강력한 중앙정부의 통제 하에서 광범위한 사회복지서비스를 전달하는 전달체계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웨이의 노동당은 복지국가의 확대를 위한 중요한 매개 수단으로 지방정부를 활용했다. 즉, 지방정부에게 책임성과 업무상 고도의 재량권을 주는 법률을 제정했으며, 새로운 서비스 담당을 촉진시키기 위해 재정적 유인책을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복지서비스의 제공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그 결과, 다양한 복지정책들이 지방정부를 통해 시행되어 복지국가에 우호적인 지역 세력들을 양성하였고, 결국 보편적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다.

복지국가와 지방자치의 공생관계

이처럼 복지국가와 지방자치는 서로 긍정적 영향을 주고받는 상보적 관계에 있다. 복지국가의 주요 과제인 고령화 및 저출산, 일자리 감소, 부의 양극화 등 개인이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데 지방정부는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지방정부의 능력과 의지를 바탕으로 제공한 복지서비스의 수요자들은 복지국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지지 세력이 된다.

이처럼 복지국가와 지방자치가 공생할 수 있는 것은 양자의 목표가 모두 지역 주민, 혹은 국민 모두의 이익 증진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지방자치를 통해 지역 주민들의 의사와 욕구가 그들 스스로의 참여 하에 자체적인 복지 활동으로 연결되고, 이런 지역 복지가 잘 발전해야 국민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역동적 복지국가'로 나아갈 수 있다.

▲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이라는 메모와 함께 남긴 현금 봉투. ⓒ서울지방경찰청

한국의 지방자치가 나아갈 길

그러나 한국의 지방자치는 재정, 행정, 정치적 측면에서 불완전한 상태이다. 보육 예산을 둘러싼 다툼에서 알 수 있다시피 지방정부의 재정적 독립성이 약한 상황에서 이를 고려하지 않는 중앙정부의 정책들은 중앙과 지방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세세한 규정 및 지침에 얽매여 행정적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은 당장 긴급하게 도움이 필요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또한 지역 주민에 의해 선출되었음에도 실제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에 대해 직접적인 권한 행사가 제약된 지방의회의 약한 역할은 주민 참여라는 지방자치의 본질을 무력화시킨다. 이로 인해 중앙과 지방은 협력이 아닌 수직적인 관계에 놓여 있고, 복지서비스들은 지역 주민들의 수요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각 지자체의 홈페이지에서 내걸고 있는 목표와 모순되는 사건들에서 보는 것처럼 지역 주민들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지방자치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구체적으로는 지방정부의 재정, 행정,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지방자치의 목표이다. 이런 목표 하에서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중앙과 지방 간 적절한 역할 분담을 유지하면서, 실제 수요자인 지역 주민들의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참여를 근간으로 지방자치 서비스를 시행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전례 없이 낮은 출산율과 급속한 고령화, 자산과 소득의 심각한 양극화라는 큰 문제에 직면해있다. 게다가 이러한 사회적 위험에 대해 국가나 지자체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의 역할은 무엇인지, 국민들 혹은 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복지국가와 지방자치의 상생관계 속에서 한국의 지방자치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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