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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 목숨은 나이지리아인 목숨보다 소중한가?

[주간 프레시안 뷰] 시리아 내전의 불똥, 서유럽으로 튀다

모두 17명이 목숨을 잃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에 세계가 분노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지도자들은 이번 사건이 '프랑스판 9.11'이라며 '테러와의 전쟁' 강화를 다짐하고 있습니다. 1월 11일에는 40개 나라 지도자와 파리 시민 100만 명이 참여한 가운데 테러 및 폭력에 반대하는 '공화국 행진'이 열렸습니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나아가 이러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서방언론들은 이번 사건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며 집중 부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중요한 문제이긴 합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한 서방의 태도에는 이중잣대, 그리고 조건반사적이고 근시안적 대응의 모습이 보입니다.

▲ 프랑스 파리 '반이슬람' 극우정당 국민전선 지지자들은 지난 11일 파리에서 무슬림들에 의한 테러 규탄 집회를 별도로 가졌다. ⓒAP=연합뉴스

유럽인에 대한 테러가 특별히 주목받아야 할 이유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고한 시민에 대한 무차별 테러는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됩니다. 테러범은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 등에서는 벌써 10년 이상 무고한 시민에 대한 무차별 테러가 거의 매일 엄청난 규모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있기 하루 전인 6일 바그다드 서북부 안바르주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이라크 병사와 친정부 수니파 주민 등 2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5일에는 사우디-이라크 국경에서 자살 폭탄 공격으로 사우디 국경수비대 사령관을 비롯해 3명이 사망했고, 8일에는 예멘 수도 사나에서 미니버스에 의한 자살 폭탄 테러로 경찰 사관생도 33명이 죽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앞서 3일 나이지리아 북동부 국경의 바가에서는 보코하람의 무차별 테러로 무려 2000여 명의 민간인이 학살됐습니다.

그런데 서방언론은 <샤를리 에브도> 사건은 대서특필한 반면, 위 테러들에는 거의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프랑스인의 목숨이 이라크나 예멘, 사우디, 나이지리아인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아닐 텐데 말입니다. 이와 관련, <한겨레> 1월 15일 자에 다음과 같은 보도가 있더군요.

"테러 분석가인 맥스 에이브러햄스는 12일 자신의 트위터에 "2000명을 죽인 보코하람의 가장 큰 학살 사건이 거의 보도되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했다. 영국의 유명 뮤지션 니틴 소니는 “파리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은 매우 감동적이다.…세계 언론이 최근 (보코하람의 학살) 뉴스에도 똑같이 분노했으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글을 올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일간 <데일리 매버릭>의 사이먼 앨리슨은 "나는 샤를리다. 하지만 나는 바가이기도 하다"며 "21세기에도 아프리카인의 목숨이 서구인의 목숨에 비해 뉴스 가치가 떨어지는 것, 즉 덜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 정치권은 더 가관이었다. 굿럭 조너선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테러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애도의 뜻을 전했으나, 자국에서 일어난 보코하람의 바가 학살사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애도의 뜻을 전한 반면, 자국에서 일어난 보코하람의 바가 학살사건은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는 나이지리아 대통령의 행태는 우리 대부분이 자신도 모르게 '서구중심주의'에 빠져 있음을 말해줍니다. '서방은 중요하다, 그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서방 우월주의에 세뇌됐음을 말해줍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는 시리아 내전의 당연한 귀결

중요한 것은 이런 서구중심주의가 계속되는 한 야만적 테러를 멈출 길은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서방에 대한 테러 방지에만 노력을 기울이고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근거지인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테러는 마치 당연한 일이라는 듯 무관심하다면 테러는 오히려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국 <인디펜던트>의 중동 전문가 패트릭 콕번 기자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일어난 직후 "이미 4년째 계속되고 있는 이라크-시리아 내전의 극단적 폭력의 불똥이 서유럽으로 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유치한 환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즉 시리아 내전의 여파가 이제 서유럽에까지 미치게 됐다는 겁니다. 이슬람 테러가 전 세계로 퍼져가는 와중에서 서유럽만은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는 얘깁니다.

이미 시리아-이라크 내전에 참전했다 돌아온 유럽 출신 지하드 전사들이 서유럽 곳곳에서 테러를 자행해 왔습니다. 지난해 6월 이라크 제2도시 모술을 전격 장악하면서 혜성같이 등장한 이슬람국가(IS)는 8월에 시작된 미국 등의 공습에 맞서 9월, 미국 및 프랑스의 '비(非)신자'들을 처단하라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5월에는 시리아 내전에 참전했던 프랑스 국적의 메이 네무체가 벨기에 브뤼셀의 유대인 박물관을 공격해 4명이 사망했습니다. 12월에는 호주 시드니의 한 카페에서 이슬람 국가 동조자가 인질극을 벌여 자신과 함께 시민 2명이 사망했습니다. 따라서 <샤를리 에브도> 테러는 충분히 예견됐던 비극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번 테러의 주범인 세리프 쿠아시는 2005년 이라크내전 참전을 시도한 바 있으며 사이드 쿠아시는 2011년 예멘 아라비아반도알카에다(AQAP)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중동 내전 종식이 테러 근절의 근본 해법

이번 <샤를리 에브도> 테러처럼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대규모 학살을 저지르는 것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핵심 전략입니다. 무차별 테러를 통해 서방의 일반 시민에게 겁을 주고 자신들의 투쟁 의지를 과시하는 한편, 피해 당사국의 과잉 대응을 초래해 서방과의 전쟁을 확대시키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입니다. 미국, 프랑스 등 피해 국가의 무력 대응이 강화되면 될수록, 그 잔인함에 분노한 이슬람 성전 자원자들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11 테러가 바로 이러한 전략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슬람 국가 등이 시리아·이라크 등에서 언론인과 국제구호요원 등을 살해하고 그 동영상을 공개하는 것 등은 바로 이 같은 이유에서 시도되고 있는 것입니다.

패트릭 콕번은 조지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은 바로 이러한 지하드 세력의 전략에 놀아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드러난 아부그라이브 교도소 학대, 미 중앙정보국(CIA)의 잔인한 고문 등이 지하드 세력을 어마어마한 규모로 늘리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14년이 지난 지금 그 역작용(블로우백(blowback))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ISIS의 이슬람국가 건설 선포, 그리고 이번 <샤를리 에브도> 테러 등이 그 증거입니다.

이슬람 테러를 없앨 근원적 해법은 시리아 내전의 종식이라고 콕번은 말합니다. 지하드 세력 확산의 근원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 미국 프랑스 영국 등은 '아사드 정권 제거'라는 현재의 정책 목표를 포기해야 합니다, 한편 아사드는 시리아 전역 장악을 포기하고 극단주의가 아닌 비지하드 세력과 타협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슬람 국가, 알카에다와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고립, 패퇴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 갈무리.

미국 외교전문 싱크탱크인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FPIF)>의 존 페퍼 소장도 콕번 기자와 같은 의견입니다. 그는 <샤를리 에브도> 사건과 같은 이슬람 테러는 서방의 무력 대응, 문명의 충돌을 빙자해 무슬림에 대한 증오를 증폭시키는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서방의 온건파와 이슬람의 온건파 세력이 연대해야 한다는 겁니다.

지금처럼 서유럽 국가들이 이라크-시리아 내전에 참여했던 자국 출신 지하드 전사의 귀환을 막고, 또 귀환한 지하드 전사를 투옥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자발적으로 이슬람 극단세력과의 연계를 끊었다 해도 감옥으로 가게 되면 그곳에 있는 강경분자의 교육과 세뇌를 받아 다시 지하드 전선에 뛰어들게 된다는 것이죠. 즉 귀환한 지하드 전사의 투옥은 결과적으로 더욱 강경한 지하드 전사를 양성하게 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리아내전에 참여한 유럽 국적자는 약 3000명이며 이중 수백 명 정도가 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프랑스의 경우 120명 중 70명, 스웨덴은 110명 중 70명이 귀환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현재 감옥에 있습니다.

페퍼 소장은 덴마크 사례를 참조하라고 권합니다. 덴마크 정부는 귀환한 자국 출신 지하드 전사를 투옥하는 대신 사회로의 정상 복귀를 위한 상담과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신나치주의자들에게 적용했던 방법으로 상당한 효과를 거뒀다고 합니다. 시리아 참전 지하드 전사들이 많이 귀환한 아루스 지방의 경찰서장은 "상담과 지원은 효과가 있다"면서 무엇보다 지하드 핵심 간부와 일반 전사들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이것은 서유럽 개별 국가 차원의 해결책입니다. 궁극적 해결책은 시리아 내전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군사 개입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중동지역의 내전이 길어질수록 지하드 전사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중동 내전의 종식이 이슬람 테러 근절의 궁극적 해결책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15년째 계속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위와 같은 교훈을 얻지 못한 것 같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을 강화할 결의를 굳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프랑스 하원은 14일 이라크 내 이슬람 국가(IS)에 대한 공습작전 4개월 연장안을 '찬성 488 대 반대 1'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시켰습니다. 서방과 이슬람 극단세력 간의 폭력적 대결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입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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