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을 심심찮게 겪는다. 지난해 4월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대낮에 침몰한 세월호 선실에 있던 그 많은 승객 가운데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일이 최근 국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세수 확장과 흡연율 감소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꾀한 담뱃값 대폭 인상을 뒷받침하는 관련법이 지난해 말 국회에서 개정됐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이루어졌어야 할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은 해가 바뀐 2015년에 들어서도 여전히 나 몰라라 하고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는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존재하는 정부 부처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런 보건복지부를 감독하고 국민 건강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입법 활동과 정부 지원과 견제, 감시를 하는 담당 상임위원회다. 정부가 국민 건강을 위해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복지부동하면, 이를 질타하고 제 길을 가도록 채근하며 이끌어주는 길잡이 노릇을 해야 하는 곳이 바로 보건복지위원회다.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흡연율을 낮추기 위해 경고그림 도입을 하겠다고 하는데도 보건복지위원회가 그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한다.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 않은 일이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흡연율을 낮추기 위한 금연 정책의 3대 축은 가격 인상, 금연구역 확대,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이다. 이 가운데 올해부터 담뱃값은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라, 가격 인상 정책은 그런대로 방향을 잡아 이루어지고 있다. 선진국에 견주어서는 여전히 담뱃값이 낮지만, 가격 인상 폭이 흡연자들은 물론이고 비흡연자들도 놀랄 정도다. 담배가 국내에서 시판된 이후 가장 많이 올랐다.
경고그림 도입 관한 한 최고 후진국 전락한 부끄러운 대한민국
금연구역도 올해부터 면적에 관계없이 모든 음식점과 술집, 커피점 등으로 확대됐다. 여기에 앞으로 거리 금연구역을 좀 더 대폭 늘린다면, 금연구역 확대 정책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이른다. 하지만 정말 중요하고 흡연자의 저항 없이 손쉽게 할 수 있는 담뱃갑 경고그림 도입과 담배 광고 전면 금지 등은 웬일인지 국회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가 미적거리는 것도 아니고 담뱃갑 경고그림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하며 보건복지위원회에 관련 법 개정 요청을 했음에도, 보건복지위원회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진짜 누가 준 꿀을 많이 먹어 벙어리가 된 것인지, 아니면 꿀이 먹고 싶어 벙어리 행세를 하는지는 몰라도 금연운동가와 보건인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은 보건복지위원들의 처신에 어처구니없어 하고 있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의원들이 담뱃갑 경고 그림 도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들 의원들 가운데 경고그림 도입에 가장 앞장 서야 할 의사 출신도 있고 보건학 박사도 있다고 하니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보건복지위원들이 담배회사 로비 대상 됐다는 의혹 확산
그래서인지 국회의원들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소송을 벌이고 있는 담배회사나, 이들의 변호를 맡고 있는 로펌의 로비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이 지난해 말부터 점점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위원들이 경고그림 도입 여부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아 생긴 일이라 할 수도 있다.
만약 세간의 이런 의혹이 오해라면 보건복지위원들은 우리나라에서 경고그림 도입을 해서는 안 되는 합리적 이유를 즉각 밝히든가, 아니면 관련 법안을 언제까지 처리해 경고그림 도입을 하겠다고 천명하는 것이 순리다. 그래야 이런 오해들이 쌓이고 퍼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담뱃갑에 건강 경고문구만이 아니라 경고그림을 함께 넣는 것이 흡연율을 낮추는데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이를 모를 리 없다.
2013년 레바논에서 이루어진 연구 하나만 소개하면, 경고그림은 청소년들의 흡연에 대한 호기심을 억제하고, 금연 동기를 부여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바논은 우리나라처럼 여전히 작은 경고문구만 담뱃갑에 표시하고 있는데, 레바논 13~18세 학생 1412명과 18~25세 대학생 1217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청소년과 젊은이들에게 경고그림이 새로 흡연자가 되지 않도록 하거나 금연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다시 확인됐다. 특히, 이 연구에서는 건강을 위해 관련 경고그림 외에도 흡연의 부정적인 경제적 효과를 담은 경고그림을 포함하였고, 이 역시 특정 사회인구계층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고그림 도입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이미 89개 국가가 경고문구를 사진 또는 그림의 형태로 넣고 있다. 이들 중 30여 국가는 경고문구에 사용되는 사진과 그림의 저작권을 국가가 관리하여 다른 국가에 무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근 들어 경고문구보다는 사진이나 그림을 사용하는 사례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10~2013년에만 모두 11개 국가가 추가로 담뱃갑에 경고그림 삽입을 의무화했다. 현재 전 세계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약 10억 명가량이 경고그림이 포함된 효과적인 경고문구 정책의 영향을 받고 있다.
불행하게도 대한민국 국민은 여기에 끼지 못하고 있다. 경고그림 도입만 보자면 대한민국은 후진국 중에서도 후진국인 셈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회의원, 특히 보건복지위원도 시대에 뒤떨어진, 후진 정치인이 되는 셈이다.
태국, 자메이카 등 많은 개도국도 경고그림 잇따라 도입
경고그림 도입은 호주나 영국 등 선진국뿐만 아니라, 태국 등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경고그림의 면적이 담뱃갑에서 가장 많이 차지하는 국가는 태국으로 앞면과 뒷면 모두 85%다. 호주는 앞면 75%, 뒷면 90%이며, 우루과이가 앞뒷면 모두 80%, 브루나이·캐나다·네팔·자메이카 4개국이 앞뒷면 모두 75%, 토고·트루크메니스탄이 앞뒷면 모두 65% 등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KT&G가 이들 경고그림 도입 국가에는 혐오스런 사진을 큼지막하게 담뱃갑에 부착해 수출하고 있다. 아마 KT&G도 많은 후진국에 경고그림이 부착된 담배를 팔면서 우리나라에는 이것이 전혀 없는 담배를 시판하고 있는 것을 부끄러워할지도 모르겠다.
선인들은 이런 격언을 우리에게 남겼다.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마라. 오해받을 짓은 부디 하지 말라는 지혜의 말씀이다. 누구보다도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이 말씀을 새겨들어야 한다. 자신이 국회의원이긴 하지만 결코 사회지도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오해받을 짓, 즉 경고그림 도입을 깔아뭉개는 처신만큼은 새해 들어 바로 바로잡기를 바란다.
여기에 사족처럼 하나 더 덧붙인다면 적어도 보건복지부 장관을 하려는 인사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을 하려는 사람은 금연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보건복지위원 가운데 골초가 있어 경고그림 도입에 미온적인 게 아니냐는 어느 금연운동가의 칼럼을 보고 떠오른 생각이다. 혹 자신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치는) 위해 행위, 즉 흡연을 조금이라도 자위하기 위해 경고그림 도입을 미루는 것이 아니냐는 매우 불편한 지적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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