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부터 부동산 투자이민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제주도는 2014년 연말 기준으로 여의도의 2배가 넘는 땅이 중국인 소유라고 한다.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스템을 통해 순기능으로 작용할 수있도록 조절한다면 아무 문제점도 생기지 않지만 지금의 제주도는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중국인 부동산 매입은 관광단지인 제주도 경관은 물론, 이곳에서 사는 지역주민에게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체 제주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지난 연말 프레시안에서는 2박3일간 제주도 현장 취재를 다녀왔다. 제주도의 상황이 어떤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제주도 제주시 연동에 위치한 ‘바오젠 거리’. 중국 다단계 건강용품업체의 이름과 같다. 3여 년 전만 해도 ‘로데오 거리’였다. 2011년 9월, 바오젠 그룹 직원 1만1000명이 이곳을 방문한 후, 우근민 당시 제주도지사가 감사의 뜻으로 거리 이름을 바오젠 거리로 바꿨다. 차없는 거리로도 지정했다. 더 많은 중국인을 유치하기 위한 일종의 ‘꼼수’였다.
이름을 바꾼 게 효과가 있었을까. 이후 많은 중국인이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 자연히 주변 상권도 들썩였다. 불과 100여미터의 길이. 대부분 음식점이던 거리가 점차 중국인 대상의 옷가게, 화장품가게 등으로 채워졌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김호산(35) 씨가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꿈에 부풀어 전 재산 털어 가게 냈지만…
제주도 토박이인 김 씨는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장사를 시작했다.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일했다. 10년 가까이 그렇게 장사를 했을까. '바오젠 거리'가 중국인들로 붐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 가게를 열면 지금보다 나은 조건에서 장사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동안 번 돈에, 부모님에게 빌린 돈을 합해 바오젠 거리에 옷가게를 냈다. 2012년 7월의 일이다. 권리금 6000만 원에 인테리어 비용과 보증금이 3000만 원 들었다.
이곳이 마지막 터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김 씨 가게 주인이 바뀌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새 건물주가 김 씨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했다. 임대료를 연체했다는 게 이유였다.
황당했다. 그동안 임대료를 내기 위해 새 건물주에게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수차례 요구했으나 정작 당사자가 알려주지 않아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김 씨의 입장일 뿐이었다. 새 건물주는 곧바로 김 씨를 강제퇴거하기 위해 명도소송을 진행했고 김 씨는 패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건물주는 김 씨를 내보내고 그 자리에 자신이 직접 중국인을 상대로 하는 화장품 가게를 차린다고 했다. 일설에는 건물주 배후에 중국인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작정하고 꼬투리를 잡은 셈이었다.
잠시라도 장사하게 해달라는 하소연에 '내 알바 아니다'라는 건물주
패소 이후에도 김 씨는 가게를 계속 운영했다.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건물주는 김 씨가 퇴거하지 않는다며 퇴거 강제집행을 통보했다. 당장 가게에서 쫓겨날 판이었다. 태어난 지 100일 된 갓난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업은 뒤, 건물주를 찾아갔다. 하소연이라도 하기 위해서였다.
반응은 차가웠다. 건물주는 '그쪽 상황은 내 알바 아니다'라는 식이었다.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급한 일이 있다'며 앞으로는 자기 대리인과 이야기하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이후 건물주는 김 씨 옷가게를 강제로 철거했다. 2014년 4월 3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가게 앞 노상에서 옷을 꺼내놓고 팔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다. 반값으로 팔았다. 본전이라도 건지자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장사가 제대로 되기는 어려웠다. 결국, 일주일 만에 접어야 했다.
낮에는 아기 돌보고 밤에는 세차장에서 일하고
억울하고 분했다. 항소했다. 하지만 항소했다고 먹고 살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니었다. 항소심 결과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당장 먹고 사는 것을 고민해야 했다. 생후 4개월 된 아기도 돌봐야 했다. 남편이 없어 김 씨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했다. 고민 끝에 밤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 세차장에서 일했다.
세차장으로 일하러 가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불 꺼진 자기 가게를 보면서 울기도 했다. '다른 가게는 모두 불빛을 밝히며 장사를 하는데 왜 나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걸까'. 원망 섞인 눈물을 흘렸다.
이를 악물고 하루하루 버텼다. 항소심에서는 김 씨가 이겼다. 계약 1년 만에 건물주가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위반한다는 게 이유였다. 임대차보호법 4조에는 계약기간을 2년으로 정하고 있다. 다시 옷가게를 열었다. 길거리로 쫓겨난 지 6개월 만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다시 가게를 열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밤 12시까지 가게 문을 열었지만 벌이가 시원찮았다. 아이 돌볼 사람이 없어 돌도 안 된 아기를 가게에서 돌보아야만 했다. 이중고였다.
건물주는 여전히 어떻게 하면 김 씨를 쫓아낼지 고민하고 있었다. 대법원에 상고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김 씨에게 월세와 보증금을 높이겠다고 통보했다. 공공연히 김 씨 가게 건물을 재건축하겠다고 말하고 다닌다. 재건축할 경우, 김 씨는 임대차보호법에 보호받지 못한다. 빈손으로 가게를 비워줄 수밖에 없다. 김 씨 옆집인 화장품가게는 압박을 견디다 못해 나간 지 오래다.
제주 속 중국, 바오젠 거리의 눈물
현재 제주도는 '지역 경제개발 활성화'라는 이름 아래 도청 차원에서 국내외 자본의 유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자본 유입에 대한 규제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중국 국적의 자본, 일명 '차이나머니'가 짧은 시간에 제주도 지역 상권에 대규모로 유입되고 있다. 그 결과, 제주도 도민이 자체적으로 오랫동안 다져온 지역 상인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바오젠 거리도 그 중 하나다. 중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아 '제주 속의 작은 중국'으로 불리는 곳이라 중국인들이 상당한 땅과 건물을 매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부동산 가치가 급상승하고 있다. 이에 따른 부작용도 있다.
제주참여환경연대 발표내용을 보면 중국자본이 기존 상인들을 내몰기 위해 과다한 임대료로 입주하겠다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직접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상가건물을 매입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게 아니면 한국인이나 한국 국적의 조선족을 내세워 건물을 매입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 때문에 이곳에서 장사하는 영세상인들이 거리로 쫓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바오젠 거리에서 호프가게를 운영하는 A씨(46)는 “건물주가 중국인으로 바뀌면서 임대료가 40%나 올랐다"며 “하지만 인테리어비용, 권리금 등이 아까워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비싼 임대료를 내면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동산정보업체 FR인베스트먼트에 따르면 바오젠 거리의 1층 45㎡ 상가를 기준으로 권리금은 2012년 12월 4000만~9000만 원에서 2014년 6000만~2억1000만 원 선까지 올랐다. 같은 기간 월 임대료도 85만~195만 원에서 140만~360만 원으로 뛰었다.
김호산 씨는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람을 괴롭힌다"며 “하지만 여기서 무일푼으로 쫓겨나면 생계가 막막해진다. 아기 분윳값도 감당 못하는 상황이 올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자신이 고립된 섬에 있다고 생각하는 김 씨다. 그가 마음 편히 장사하는 날이 올수 있을까.
* 이 기사는 미디어 다음과 공동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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