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을미년 새해를 맞기에 앞서 미리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 모두의 평화와 건승을 기원합니다.
오늘 저는 충북 청주에 있는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이하 충북참여연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난 2년 동안 <프레시안> '시민정치시평' 코너는 박근혜 정부와 주요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무능한 야당에 대한 매서운 성토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풀뿌리 민주주의라 할 지방에 대한 관심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올해의 끝마무리에 다다른 이번 시평에 지방의 시민단체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진보와 개혁 세력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서의 내부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충북참여연대는 회원 수가 1400명에 이르며 올해로 창립 25주년을 맞습니다. 서울의 참여연대가 올해 20주년을 맞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북참여연대는 충청북도는 물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지역 시민단체라 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서울의 참여연대와 마찬가지로 정부 보조금을 한 푼도 받지 않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시민권리, 교육, 인권, 반부패 등 9개 상설 위원회가 활동하고 있으며, 6명의 상근 활동가가 헌신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제가 집행위원이자 정책위원으로서 몇 년 동안 지켜본 충북참여연대는 진보개혁 세력이 오늘 겪고 있는 어려움을 돌파할 중요한 열쇠를 갖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 땅의 정치적 양극화를 해결할 '소통'이라는 키워드입니다. 현재 3명의 공동대표 중 두 분이 성직자이신데, 한 분은 개신교회의 목사님이고 다른 한 분은 원로 신부님이십니다. 또한 상임위원 중 두 분이 이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의 주지 스님이십니다.
이분들은 중앙정치에서 흔한 '구색 갖추기'를 위한 각계각층의 유명인사가 아니라 충북참여연대의 활동과 사업을 실질적으로 결정 및 집행하는 명실상부한 집행부입니다. 한때는 공동대표 세 분 모두가 목사님-신부님-스님으로 구성된 적도 있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공동대표였던 신부님이 풍주사를 방문하여 축하 강론을 해 주었고, 성탄절에는 공동대표였던 범추 스님이 성당을 찾아 법문을 설파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종파를 넘어선 광폭 행보는 비단 시민단체의 활력뿐 아니라 지역통합과 주민화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례로 청주시의회는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상의 수급권자가 아닌 저소득계층을 지원할 목적으로 '저소득계층 국민건강보험료 지원조례안'을 지난 2007년 의결했는데, 당시 의장과 대표 발의 의원이 모두 한나라당 소속이었습니다. 적어도 지역 현안에 대해서는 충북참여연대를 매개로 여야가 소통하는 개방된 구조가 작동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최근 신설된 사회통합부지사에 새정치민주연합이 추천한 이기우 전 의원을 임명해 정가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처럼 연합정치는 어쩌면 중앙보다는 지역 차원에서 시도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충북참여연대의 실험에서 눈여겨볼 것은 지역 시민단체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는 '충북NGO센터'의 역할입니다. 도의 지원을 받되 간섭은 받지 않는 충북NGO센터는 도내 NGO 및 주민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및 사업의 발굴과 기획, 시민단체의 연대와 정보의 제공, 지방정부와의 협력 등등에서 충청지역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협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해 중앙정부는 물론 다른 시도 단체에서도 도입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충북참여연대 역시 장점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주에 열린 총회준비위원회에서는 현재의 백화점식 사업을 '집중과 선택'에 기초해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기관지에 실린 집행위원들의 글과 상근 활동가들의 보고서, 공식 회의에서의 말들이 보통 시민들과 동떨어진 어려운 내용과 계몽적 형식이라는 일반 회원들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이 밖에도 1년에 한 번씩 후원회를 열어 손을 벌리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재정 문제, 상근 활동가들의 과중한 업무와 박봉, 노동문제를 비롯한 사회경제 현안에 대한 관심 부족 등 모든 시민단체들이 겪는 어려운 문제들을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경에도 불구하고 충북참여연대는 2015년에도 더 많은 시민들의 참여와 보통 사람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래로부터 나아갈 것입니다. 새해는 온순함과 화합을 상징하는 양띠 해입니다. 갈등과 분열로 점철된 이 나라에 평화와 협력의 새 기운이 감돌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현대의 민주시민으로서 그러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세 가지의 활동을 지원하거나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인권이든 환경이든 공익활동에 주력하는 시민단체이고, 다른 하나는 지지 정당 또는 정치인이고, 마지막 하나는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한 자원(volunteer) 활동입니다. 그것이야말로 '행동하는 양심'이자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인 것입니다.
해방 70주년을 맞아 내년에는, 모든 시민들이 저마다 원하는 시민단체에 가입하여 참여하고, 정당들은 혁신하며 연대하고, 끝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아닌 화근으로 전락한 정부는 국민 및 야당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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