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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퇴근 바라나요? 그럼 탈핵을 지지하세요

[프레시안 books] 김현우 <정의로운 전환>

적록 동맹, 적록 연대라는 말은 사실 내게는 조금 불편한 단어다. 누군가는 적색은 적색의 길을 가면 되고, 녹색은 녹색의 길을 가면 되는 것이지, 왜 섞이지 않는 것을 섞느냐고도 하는데, 나는 그와는 다른 이유에서다. 나는 스스로 적색과 녹색의 어느 한쪽에 속해 있다거나, 적색과 녹색을 구별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적록 동맹 프로젝트로서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책 제목이 조금 불편했는데, 뒤표지를 보니 이런 소개의 말이 적혀 있다. "적색과 녹색, 녹색과 적색의 씨앗들에게 보내는 말 걸기."

어떠한 세심한 의도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저 부드러운 표현을 위한 것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말에 왠지 안도가 되었다.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듯이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 노동 유연화, 기후변화, 화석연료 고갈, 핵 방사능의 위협은 한 몸뚱이의 다른 얼굴들"이다. 그리고 이에 저항하는 씨앗들이 자라났는데, 어느 것은 적색의 씨앗으로 어느 것은 녹색의 씨앗으로 싹을 틔웠을 뿐이다. 이들이 자라 이루게 될 대안의 숲에서 더 이상 적색과 녹색의 구분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애석하게도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녹색의 씨앗에서 녹색의 열매를, 적색의 씨앗에서 적색의 열매를 맺는 데 몰두해왔기 때문에, 즉 너무 오랫동안 각자 지금 이 순간의 이해관계, 지금의 화두에만 붙들려 서로 바라봐 왔기 때문에, 이를 동맹과 연대라는 이름으로 묶어야만 이해가 될 뿐이다.

다소 추상적인 표현들을 동원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책의 저자인 김현우는 언젠가 한번쯤 가져봄직한 이런 생각들을 부지런하게 이론적, 실천적으로 정리해왔고,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 <정의로운 전환>(나름북스, 2014년 10월 펴냄)이기 때문이다. 대개 "작업장의 레이첼 카슨"이라 불렸던 토니 마조치에서 출발하더라도 "정의로운 전환"의 역사는 길지 않지만 책에서는 그 역사의 흐름과 중요한 장면들, 그리고 사람들을 국외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그리고 가장 최근의 사례까지 꼼꼼하게 찾아내고 기록했다.

공장을 점거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나름북스
마조치의 노동운동과 환경운동 동맹이라는 생각은 매우 획기적이면서도 당연한 결론에서 시작했다. 그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읽고, 독성 화학 물질이 토양에 해를 입힌다면 작업장에서 이 유독 물질을 다루는 노동자 역시 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얻은 것이다. 작업장의 공정과 생산 원료, 생산 제품이 모두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유해하다면 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은 이후 전설적인 루카스 플랜의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 아이디어로 이어진다. 루카스항공의 노동자들은 회사가 내세운 경영 합리화라는 이름의 구조조정에 단지 파업이라는 방식을 넘어, 공장을 점거하고 그곳의 설비와 노동자들의 능력으로 제작할 수 있으면서 군수 물품과 같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생산물이 아닌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는 대안적 생산을 계획했다. 처음 이 루카스 플랜을 접했을 때 막힌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민주노총의 상근 활동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내가 처음 접한 이들은 철도와 도로, 항만, 상하수도와 같은 각종 토목공사와 도시계획, 교통계획을 만들어내는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때 나는 한편으로 개발 천국 강남에서 살며 토건국가 한국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활동을 시작하자마자 시작된 소산별 노조 구성과 새로운 임단협 체결을 둘러싼 파업이 지나가고, 나는 비로소 우리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하는 일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그들이 하는 일이 바로 그 토건국가 한국을 설계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만난 대부분의 선량한 노동자들은 철야를 밥 먹듯이 하고 박봉을 받으면서 매일매일 어마어마한 개발과 파괴를 설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책 읽기를 게을리하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충격과 불편함이 문득 "소외"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였다. 노동의 결과물이 노동자와 사회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 해로운 생산물을 만들어내고 노동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소외되는 것, 바로 그것이 노동운동이 극복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본질 아니었나. 그러나 누구보다 공장을 점거하고 전투적으로 싸우며 성장해 온 한국의 노동운동은 싸우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고 힘든 나머지 싸우는 목적을 잊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을 점거하고, 자본으로부터 결정권을 되찾는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답을 찾는 이는 물론이고, 그 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당시로선 볼 수 없었다.

갑자기 색깔론을 꺼내들자면, 그러니 루카스 플랜은 얼마나 녹색이며 동시에 얼마나 적색이었던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이 책에서는 스웨덴 볼보자동차에서 일한 노동자이자 좌파 정당 활동가인 라르스 헨릭슨의 이야기로 등장한다. 헨릭슨은 스스로 자동차 산업의 노동자였으나 기울어가는 산업에 대해 단호하게 그리고 급진적으로 판단했다.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에 기반을 둔 교통 시스템은 이제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그린카나 연료 효율성 향상, 재생 가능한 연료 등도 환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단지 차종을 바꾸는 정도가 아니라 화석 에너지 경제로부터 탈출하는 더 큰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를 보며 한국의 자동차 산업에도 이러한 전환의 요구가 언제 닥칠지 모르며, 그때 우리가 자동차 자본의 선택에 의존하며 내부에서 전개하는 투쟁에만 주력하는 것은 답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탈핵과 만난 노동자

사실 한국에서 노동운동과 환경운동은 점점 더 사이가 멀어지고 있었다. 전력산업 개편과 발전노조의 파업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논쟁과 그 속에서 접점을 찾고자 만들어졌던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등이 있었고, 2009년 코펜하겐에서 기후 정의를 외쳤던 경험은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그러나 기회는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는 연대에서 찾아왔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듯이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을 두고 충돌이 예상되던 2013년 7월에 영남권의 건설 노동자들은 밀양 송전탑 공사 협조를 거부하며 연대에 나섰고, 송전탑에 올라 고공 농성을 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때 찾아와 준 송전탑 반대 할매들을 아파하며 최초로 노동 외 현안으로 희망버스를 제안한 것이다. 밀양 희망버스를 제안한 노동자들은 단지 현장을 방문하는 것뿐만 아니라, 밀양 송전탑으로 전기를 보내는 핵발전소가 위치한 지역들에서 노동조합이 밀양 송전탑 반대와 노후 핵발전소 폐쇄나 탈핵을 선언하도록 조직하기도 했다. 언론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부 노동조합에서는 해당 시기 노조 선거 후보들이 그와 같은 내용의 공동 공약을 채택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만나 1차 밀양 희망버스를 함께 준비한 쌍용자동차 해고자 동지에게 아주 짧게나마 자동차 산업의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건넨 적이 있다. 공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루어지면, 그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함께 토론하고, 함께 만들어보자고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무엇보다 그 나온 시기가 반갑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기후 정의와 정의로운 전환 전략에 대한 이야기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탈핵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주제와 다시 만나고, 또 현장에서 직접적인 연대로 노동과 환경이 만나게 된 시점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살뜰하게 모아 놓은 연대의 고리들이 지금이야말로 다시 연결되어야 할 때이다.

저자는 핵발전소 10기가 멈춘 시기에 작업 시간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전력 대란을 피해갈 수 있음을 목도한 이때, 세계 최장 노동이 강요되는 한국 노동자들의 여유로운 식사, 심야 노동 철폐, 그리고 칼퇴근이 탈핵과 만날 수 있다는 상상을 던진다. 핵과 화석 에너지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중앙 집중식 에너지 체제를 벗어나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에너지 설비가 소규모로 분산되는 과정에서 "녹색 일자리"가 더 많이 창출될 수 있다는 것도 빠질 수 없다. 자동차 산업의 쇠락이 가져올 수 있는 파국에 앞서 대중교통 중심의 녹색 교통 체계로 전환할 것을 먼저 제안함으로써, 준비되지 않은 산업 구조조정이 대안 마련의 노력을 무력화하며 얼마나 지역과 사람을 파괴하는지 보여준 태백의 아픔을 비껴가자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대안들을 적색의 씨앗과 녹색의 씨앗이 함께 상상하고 따라가다 보면 결국 우리가 이룰 대안은 적색과 녹색의 구분이 필요 없는 커다란 숲이라는 것도 다가올 것이다. 저자가 말한 대로 "녹색의 노동계급과 적색의 소비자 집단으로서 우리는 작업장과 지역사회 경계를 넘어 자연스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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