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실에서 다시 만난 홍준표 의원은 그 당시의 감정을 '모멸감'이었다고 토로했다. '빅2 간의 잔치'로 흘러 간 선거구도 탓에 제 3의 후보가 많은 표를 끌어 올 수 없다는 것은 예상했던 부분이지만 그래도 1%의 득표율과 4명 중 4위라는 성적은 홍 의원의 자존심에 적잖은 생채기를 낸 듯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당원들에게는 유감이 없다"고 했다.
경선가도에서 자신의 역할을 '페이스 메이커'로 규정한 홍 의원은 "이제는 '피스 메이커'가 되고 싶다"고 했다. 경선 후 균열된 양대 진영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이번 대선의 알파와 오메가는 네거티브"라며 이명박 후보가 여권의 네거티브 공세를 뚫고 대통령이 되는 데 한 몫을 하고 싶다는 의중을 내비치기도 했다.
현재 이 후보가 가장 경계할 점을 묻자 한 마디로 '자만심'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측근들의 언행이 경선 승리에 도취돼 있는 것 같다"며 "측근들의 발호는 곧 후보를 망치게 되고 당 전체를 망치게 된다"고 강조했다. 최근 '점령군'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 이재오 최고위원 등을 겨냥한 것이었다.
홍 의원은 "어제(28일) 이 후보와 조찬을 하면서 1997년 얘기를 했다"고 밝혔다. 1997년 당시 이인제 의원의 탈당으로 이회창 후보가 낙선했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 홍 의원은 "그때 이회창 후보가 이인제를 좀 더 다독거렸으면 아무리 외환위기가 왔어도 선거에 질 리가 없는 형세였다"며 "선거에서 진 것은 결국 이회창 후보의 자만, 지지율만 믿은 자만 때문이었다"고 진단했다.
박근혜 전 대표와 이 후보가 쉽사리 손을 잡지 못하는 데 대해서도 홍 의원은 "이 후보의 측근들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치판에서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려 주는 격으로 그렇게 해석될 말을 하니깐 감정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러나 홍 의원은 "시간이 지나면 화해하리라고 본다"며 그 계기를 선대위 구성 시점을 잡았다. 결국 승자가 당직 안배에 얼마나 패자를 배려하느냐에 화합 여부가 달렸다는 것이다.
당내 화합에 실패할 경우 박 전 대표가 탈당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얘기로 대답을 대신하겠다"고 했다. 가능성을 '제로'로 두지는 않는다는 말로 들렸다.
다음은 29일 오후 국회 환노위원장실에서 1시간 여 동안 진행된 홍준표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기대하진 않았지만 모멸감 느꼈다"
프레시안 : 20일 경선 결과에 대한 소회에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홍준표 : 나는 경선장에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경선을 마치도록 하는 게 내 역할이라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선거운동을 하지 않았다. 한 일도 없고. 나는 정책 토론하고, 연설만 했다. 현실적으로 두 사람이 극렬히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려고 경선장에 들어갔다. 또 경선 후에는 '피스 메이커'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10년 만에 한나라당이 집권할 호기가 왔는데 두 사람이 격렬한 대립을 하다가는 깨질 경우도 생긴다고 봤다.
'페이스 메이커' 역할에 주력했기 때문에 득표 수에는 처음부터 관심 없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을 위한 12년 간 헌신한 대가가 1%라니…. 그것은 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멸감도 들었다. 현실적으로 홍준표의 지지 계층은 다 이명박이나 박근혜 쪽으로 진공청소기처럼 빨려 들어갔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선 유감이 없지만 그래도 결과를 놓고 보니 1%라는 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당원, 대의원들이 좀 심했다. 그 당시 누구도 나를 후보로 보지 않았다. 나는 그냥 분위기 띄우는 흥행사라고 생각하고 언제 그만두느냐에만 관심을 두더라. '페이스 메이커'가 완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그러지 않았겠느냐. 얼마나 지지 받을까에 대해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으려 했지만 막상 결과를 받고 보니 모멸감도 들고 분노도 치밀더라. 한 일주일 정도.
프레시안 : 지금도 분노하고 있는 상태인가.
홍준표: 아니다. 지금은 다 털어버렸다.
프레시안 : 경선 후 시간은 어떻게 지냈나.
홍준표 : 제주도 가서 가족들과 오랜만에 등산도 하고 골프도 치며 오랜만에 여유 있게 보냈다.
프레시안 : 예상했다고 하지만 4위라는 성적은 충격적이었을 것 같다. 유권자들이 왜 그렇게 표를 안 줬을까 하는 생각은 해 봤나.
홍준표 : 3위냐 4위냐는 같은 1%대이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고 본다. 사람들이 나를 후보로 보지 않아서 표를 안 준 거라고 본다.
프레시안 : 경선에서 내놓은 공약이 한나라당의 색채와 맞지 않았던 점도 유권자들이 '한나라당 후보'로 인정하지 않게 한 요인으로 꼽힌히는 데 동의할 수 있나.
홍준표 : 그럴 수도 있지만 내가 내놓은 서민 정책은 대선, 본선을 위한 용도다. 지금처럼 한나라당의 지지층만을 바라보고 가서는 이회창 후보가 얻었던 45%를 넘을 수가 없다. 한나라당이 지금 이명박 후보 지지율 갖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997년의 이회창 지지율도 지금 이명박 지지율과 비슷하다. 대선 지지율이 몇 번을 출렁거린다. 그 지지율은 그대로 안 간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됐을 때 지지율이 68%까지 갔다지만 당에서 흔들기 시작하면서 10% 대로 내려앉기도 했다.
지금 지지율을 유지하려면 수도권 서민을 공략해야 한다. 이들 마음을 잡아야 대선에서도 이긴다. 특히 지난 두 번의 대선을 보면 97년도에 우리가 수도권에서 39만 표를 지고 전체에서 37만 표를 졌다. 영남이다 호남이다 해도 결국 승부를 좌우하는 것은 수도권 서민층인 것이다.
"후보 측근들, 경선 승리에 도취돼 있는 듯"
프레시안 : 이명박 후보의 당선 후 행보를 보면서 이 후보가 지금 제일 경계해야할 점은 뭐라고 생각하나.
홍준표 : 자만심.
프레시안 : 현재 이 후보 진영이 자만하고 있다고 보나.
홍준표 : 그런 얘기들이 들린다. 측근들의 언행이 경선 승리에 도취돼 있는 것 같다.
프레시안 : 자만하는 태도가 계속 이어질 경우는 어떻게 될까.
홍준표 : 어제 아침에 이명박 후보와 함께 조찬을 했다. 모든 감정이나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대통령 되는 데에만 집중을 하라는 말씀들 드렸다. 거기서 1997년 얘기를 했다. 이회창 후보가 처음 후보가 됐을 때 56%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면서도 네거티브 전략에 넘어가서 결국 떨어졌다. 물론 네거티브 전략이 성공한 것도 있지만 결정적인 것은 이인제 탈당이었다. 그때 이 후보가 이인제를 좀 더 다독거렸으면 아무리 외환위기가 왔어도 선거에 질 리가 없는 형세였다. 선거에서 진 것은 결국 이회창 후보의 자만, 지지율만 믿은 자만이었다. 그래서 경선 과정에서 앙금이나 감정은 모두 잊고 오로지 대통령 되는 데에만 집중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프레시안 : 이 후보 진영 내에서도 당권을 꿈꾸는 세력과 대권을 꿈꾸는 세력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니 문제 아닌가.
홍준표 : 어느 정권 아래서도 발호하는 2인자가 있었다. 노태우 때 박철언, YS 때 김현철, DJ 때 권노갑. 묘하게 노무현 정권은 2인자가 없는 정권이기는 하지만…. 97년 이회창 총재 시절에도 소위 당내 7인방이라고 하는, 발호하는 2인자 그룹이 있었다. 측근들이 발호하면 그 후보들이 대통령 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대통령 된 뒤에도 국정 수행에 막중한 지장이 온다.
이 후보가 명심해야 할 점은 경선 때 참모나 사고방식으로는 본선은 안 된다는 것이다. 측근들의 발호는 곧 후보를 망치게 되고 당 전체를 망치게 된다. 그래서 후보가 명심해야 할 것은 소위 2인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측근 정치의 전횡이 생기고 자칫 정권 전체를 말아먹을 수가 있다. 측근들이 경선에서 열심히 뛰는 것은 정말 훌륭한 일이지만 본선에선 당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운영해 가는 것이 승리의 길이 된다. 본선에서 이기고 난 뒤에도 측근을 중심으로 당을 운영하려 달려들면 후보가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박 후보 쪽에도 연찬회 올 명분을 만들어줬어야"
프레시안 : 이명박, 박근혜 양대 진영 간의 감정을 악화시키는 데에도 측근들의 언행이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 측근들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기 때문에 자꾸 감정이 악화되는 것이다. 정치판에서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려 주는 격으로 그렇게 해석될 말을 하니까 감정이 악화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 시간이 지나면 화해하리라고 본다.
프레시안 : 화해하기 위해서는 이 후보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 아닌가.
홍준표 : 패자 측의 당직 안배 문제가 결국 관건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경선 직후에 원내대표에 김무성 의원이 갔으면 당이 화합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하는 희망을 가졌다. 개인적인 희망이었는데 김무성 의원이 경선 직후 미국을 가 버렸다. 아마 그렇게 됐으면 화합의 물꼬를 트는 데 도움이 됐을 텐데 그게 제대로 되지 않은 바람에 계속 앙금이 쌓인 상태다.
프레시안 : 1997년 예를 든 것을 보면 지금처럼 앙금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면 당이 깨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듯하다.
홍준표 : 그런 것은 아니다. 1997년과 지금은 정치적인 상황이 다르다. 이인제의 배후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있다고 봤는데, 지금과는 상황이 다르다.
프레시안 : 박 전 대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얘기들도 나온다.
홍준표 : 그건 알 수 없다.
프레시안 :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 건가.
홍준표 : 알 수 없다는 얘기로 대답을 대신하겠다.
프레시안 : 이명박 후보는 냉각기를 좀 가지려는 듯하다. 어제는 '자는 척 하는 사람은 깨우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홍준표 :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냉각기가 너무 오래되면, 앙금이 너무 쌓이면 힘들어 진다. 내일(30일) 연찬회도 박 전 대표 쪽에서 갈 수 있는 명분을 줬어야 했는데 그 측근들이 말 실수를 하는 바람에 박 전 대표 측에서 격앙이 된 것 같다. 박 전 대표 측이 참석을 안 하면 연찬회 모습이 아주 우습게 된다. 화합을 위한 자리라고 만들어 놓고 한 쪽만 오면 모양이 안 나지 않겠나.
프레시안 : 중반까지는 '이명박 대세론'이 먹혔지만 막상 결과는 박 전 대표의 추격세가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홍준표 : 선거를 일주일 후에 했다면 승부를 알 수 없는 게임이었다.
프레시안 : 박 전 대표의 고정지지층의 위력이 또 한 번 확인됐기 때문에 양대 진영 간 화합이 더더욱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데.
홍준표 : 승자가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통령 되는 데에만 집중하고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그런 뜻이다. 대통령이 되면 모든 것을 장악하는데 지금 와서 당권이 무슨 의미가 있나. 당권 아무 의미 없다.
"네거티브 방어 못하면 이명박 진다"
프레시안 : 경선 도중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해 냈다면 이제는 '피스 메이커'가 될 차례다. 곧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작업이 시작될 텐데 자리에 관한 제안이 온다면 응할 의향도 있나.
홍준표 :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알파와 오메가는 네거티브다. 이명박 대 반(反) 이명박의 싸움이라는 것이다. 네거티브 전에서 방어를 하면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거다. 이번 대선은 정책 선거가 아니다. 이명박에 대한 네거티브를 어떻게 방어하느냐가 이번 선거의 관전 포인트다.
프레시안 : 경선 과정의 네거티브 전에서 이 후보의 대응을 평가한다면?
홍준표 : 경선 과정에서 많이 걸러진 게 사실이다. 다만 박 전 대표 측에서 제기한 네거티브 중에서 해결이 되지 않은 것 두 가지가 BBK 문제와 도곡동 땅 문제인데, 그 두 가지에 관한 한 저 쪽(여권)에서 문제제기를 해도 돌파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것이 불거질지는 알 수 없다.
프레시안 : BBK 의혹의 핵심고리인 김경준 씨가 9월에 들어온다는데 그래도 별 영향 없을 것으로 보나.
홍준표 : 별 영향은 없을 것이다. BBK에 대해선 내가 기록을 봤다. 그건 기본적으로 이 시장이 김경준이라는 사람에게 얹힌 것 같더라. 법률적으로 말하면 사기를 당한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도곡동 땅과 관련해서도 이만하면 국민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또 다른 것이 있는지는 후보만이 알 일이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프레시안 : 본선에서 이 후보가 맞닥뜨릴 네거티브 전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말로 들린다.
홍준표 : 그거는 처음부터 이야기했던 거 아니냐. 나는 박 전 대표가 이 후보를 부패한 후보로 규정했을 때 이 후보는 부패한 게 아니라 부자 후보일 뿐이라고 했다. 부자가 대통령이 되면 오히려 청와대 가서 돈 먹을 걱정 없지 않느냐고 막아준 것도 나다. 이번 대선이 네거티브에 달려 있다는 것은 이 후보도 알 줄로 안다.
"대운하 재검토 한다면 국민들이 더 칭찬할 것"
프레시안 : 경선 이후에는 '한반도 대운하' 공약이 쟁점이 되고 있다. 보수 언론에서조차 재검토를 요구했을 정도인데, 홍 의원도 경선 와중에 "대통령이 되도 대운하만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홍준표 : 폐기를 하라고 했던 말은 아니고 국민적 동의를 얻어야 하고 환경 파괴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 조건 아래에서 대운하를 시행하라는 얘기였다. 두 가지가 충족되지 않으면 본선에서 엄청난 공격을 받을 것이니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그런 대공사를 하면서 환경파괴 없이 하라는 것 자체가 원론적인 재검토에 가까운 주장이 아닌가.
홍준표 : 그래서 내가 내 놓은 대안이 경부 고속도로 복층화다. 새 고속도로 만드는 것보다 복층화하면 환경 파괴도 없고 2층은 승용 고속도로, 1층은 화물 고속도로 식으로 하면 교통도 원활하고 물류도 부담 없이 수송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제안을 했는데 후보가 그 제안만은 꼭 받아줬으면 한다.
프레시안 : 이 후보 진영에서는 '이명박=대운하'란 인식이 있을 정도로 핵심공약이라서 재검토 자체가 신뢰를 깨뜨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홍준표 : 그렇지 않다. 대규모 국책 사업을 잘못 시행하면 국가적인 재앙이 온다. 전문가가 환경파괴 온다고 하면 안 한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도 훌륭한 자세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정밀 검사해 보니 안 되겠더라 하면 철회하는 것을 국민들이 더 훌륭하게 볼 것이다. 오히려 내가 하는 것 다 옳다고 밀어붙이는 것은 독재 시대의 발상이다. 재검토를 하겠다고 하면 더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일이 되고 후보도 국민적 동의를 얻고 환경파괴를 고려해 시행하겠다고 했다.
프레시안 : 후보는 대통령이 된 이후에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지만 당장 본선에서 공격 거리가 된다는 것이 홍 의원의 우려 아닌가.
홍준표 : 그렇다. 다른 좋은 공약 많은데 쓸데없이 왜 빌미를 주냐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긴 시간 동안 말씀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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