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끌어온 세월호 특별법이 여야 절충으로 연장전에 돌입했다. 철도-의료 민영화도 일방적으로 강행되고 있다. 복지와 경제민주화 공약도 신자유주의 처방으로 녹아나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무기 연기에 사드 배치, 미군기지 평택 이전 취소를 얹어주고 있다. 종편 양산과 방송 장악, '일베'에 이어 카톡 사찰, 서북청년단 재건 준비위까지 등장하고 있다.
'통일대박’론, 통일준비위 구성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는 거꾸로 가고 있다. 북 최고위급의 방문으로 어렵게 돌파구를 마련했으나 북 핵-미사일을 들먹이고 인권문제를 정치도구화하는 미국의 간섭, 서해와 휴전선 근방의 총격전, 삐라냐 대화냐로 2차 남북고위급회담이 무산됐다.
여기에 정체성의 혼란, 계파의 갈등을 거듭하는 제1야당의 모습은 국민들의 낙담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정치세력의 형편은 어떠한가? 존재감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 과거 상처로 인한 상호 불신으로 통합은커녕 연대 연합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조직적으로 지지 지원했었던 민주노총, 전농, 전여농 등의 조직 대중에게도 새로운 믿음과 기대를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진보당, 정의당, 노동당이 혁신 단결이나 재편 통합을 논의하고, 11~12월 민주노총 직선제 공간에서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방안이 공론화될 전망이다. 이런 시점에 혁신노동 혁신자주, 노동중심 진보통합을 주창하는 전국정치단체 <새로하나>가 진보정치를 아끼는 각계 인사들, 진보정치에 몸담아온 정치인들과의 연속 인터뷰를 통해 [진보정치, 성찰과 모색]에 대한 고견을 들어보았다.
다음은 그 일곱 번째로 전교조 위원장을 역임했고 19대 국회에 비례의원으로 진출해 활동하고 있는 정의당 소속 정진후 국회의원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11월 17일 새로하나 집행위원(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이 진행했다. 편집자.
정성희 소장 : 경실련이 우수 국회의원으로 뽑았는데, 그간의 의정활동을 소개해주시지요. 원내 소수 정당, 특히 분열된 진보정당 의원으로서 의정활동에 어떤 한계가 있습니까?
정진후 의원 : 의정활동이야 열심히 하는 거 말고는 특별한 답이 없는 것 같아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자료도 찾고 작은 사안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이 게 제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교육 경험을 살려 특권화 서열화 교육구조 완화 노력
교육 경험을 살려 특권화 되고 서열화 된 교육구조를 완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국제중 입학 비리, 자사고 비정상화,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등 이른바 특권층을 위한 국제학교 이익금 외국 송금까지 참 많은 문제에 매달렸고 어떻게든 구조를 바꿔보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교육문제는 산 넘어 산입니다. 때로는 무력감을 느낄 정도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것만이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으니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거지요?
거기서 부딪히는 게 소수정당, 비교섭단체가 겪는 한계입니다. 의원 한 명 한 명이 헌법기관이기에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면 큰 정당 의원 몇 명의 몫은 힘들지만 해 볼 수도 있는 생각으로 해보지만, 교섭단체만이 갖고 있는 완강한 독점구조는 넘을 수 없는 벽입니다.
최근에 통과된 세월호 특별법만 해도 그렇죠.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가장 먼저 발의하고 공개적으로 법적 절차를 거쳐 논의할 수 있기만을 바랐는데, 교섭단체 양당끼리만 합의하고 바로 본회의로 직행하는 코스를 밟았죠. 법에 정해진 입법 절차조차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저 교섭단체끼리 합의하면 끝나는 형식인 것이죠. 세월호 특별법 뿐 아니라, 국회 운영의 작은 부분부터 법 개정까지 이런 일들이 다반사로 일어납니다.
원내 소수정당, 집요하게 찾고 밝히고 지키지 않으면 눈 뜬 장님
집요하게 찾고 밝혀내고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눈 뜬 장님이 되는 수밖에 없는 것이 소수정당의 현실이죠. 국회의 교섭단체의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런 일은 수없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정성희 소장 : 그래서 의정활동만으로는 한계가 많아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 이후 의정활동과 대중운동을 결합하는 이른바 ‘거대한 소수’전략을 구사하려 했는데, 현실은 어떻습니까?
정진후 의원 : 부분적으로는 가능한데 일관성과 통일성은 없죠.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는 당연하지만. 약간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문제에 있어서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의 의정활동 형식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대변하고자 하는 국민의 요구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전문분야에서 최대의 자원을 모으고 최대의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니까, 그것이 법 제·개정이 될 수도 있고 정책이나 예산으로 반영될 수는 문제이고 보면, 근본적인 차이는 거의 없다고 봅니다.
보수정당은 자신들이 대변하려는 자본가와 중산층에 대한 확실한 대안 마련, 정책적 성과를 가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진보정당은 아직 그 수와 실력의 부족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원 1대 1로 놓고 보면 훨씬 많은 일을 해내고 있지만,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과 언론환경의 열악함 등 이런 조건들이 사회적 의제를 생산해 내고 실현하기 위한 활동으로 이어지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진보 의정활동, 이해집단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의제화해야
실현하고자 하는 문제를 환기시키기 위해 이해집단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그것을 의제화하기 위해 정치적, 정책적, 실무적 노력들을 남김없이 쏟아 부어야, 그나마 작은 성과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진보정당이 처한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마저 진보의 분열이라는 조건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물론 진보통합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대중운동에서 모아진 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반영하고, 법적 제도적 절차에 맞게 구현시키느냐, 하는 문제는 별도의 고민이 있어야겠지요.
정성희 소장 : 정세나 서민대중의 요구에 비추어 지금의 정치상황은 어떠한지요? 최근 정치개혁,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 대한 진보정당의 올바른 입장은 무엇입니까?
정진후 의원 : 진보와 개혁세력 전반이 어려운 게 주지의 사실이죠. 보수의 결집이 생각보다 굳건하고 진보와 개혁세력은 사분오열로 흩어져 있습니다. 보수정권 7년차의 대한민국은 자본을 위한 시장경제를 공고히 하고, 감세 정책으로 복지재원은 심각한 위축상태에 있습니다. 거기다 규제완화 정책으로 자본의 힘은 오히려 탄력을 받는 셈입니다. 언론과 SNS까지 장악한 보수의 노골화는 일베나 서북청년단 같은 극단적 보수주의 흐름까지 등장하는 등 역사를 거스르는 상황입니다.
진정한 정치개혁도 난망합니다. 청와대의 개헌에 대한 재갈물리기를 보십시오. 그러니 정치개혁이라는 국민적 사회적 요구는 늘 보여주기용 아이템 개발에 그칠 뿐입니다. 국회의원 세비 삭감, 출판기념회 금지 등 실질적인 조치라기보다 포퓰리즘에 기반한 이벤트성 내용만 거론되고 있지 않습니까?
선거구 재획정 아니라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해야
최근 선거구제 위헌결정으로 선거제도 개편은 현실적 요구가 되는 듯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선거구 재 획정 정도에 그칠 공산이 매우 큽니다. 정치권이 국민의 정치적 신뢰도를 계속 떨어뜨리고 그 결과 정치는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 정치권은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합니다. 정치의 몰락인 듯 보이지만 결과는 보수의 ‘성 쌓기’로 이어집니다. 이대로라면 보수는 더욱 견고해지고 진보는 발붙일 땅 한 뙈기 차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선 광범위한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기서 현실적으로 우선할 목표가 있습니다. 국회에서 원내 교섭 단체 구성이 가능하도록 하는 진보정치의 돌파구 마련입니다. 그 과정에서 진보의 분열을 극복하기 위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통합 논의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기회는 늘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헌재의 판결이 반드시 그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조건이고 기회라면, 우리가 그것을 인정한다면, 그 조건을 가차 없이 받아들여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결과로 만들어 내야 합니다.
진보진영이 가진 힘을 어떻게 정치적 힘으로 연결시키느냐, 생활정치도 중요하고 대중운동 속의 정치적 토대 구축도 중요하지만, 선거제도 개혁의 결과에 따라서는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을 수 십 배 절감할 수도 있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진보정치세력 내부에서 서로의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를 인정하되 이 암담한 현실정치를 바꿔내기 위해 정치개혁에서 단결함으로써 희망의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이 핵심이지요. 정당 지지율이 의석에 그대로 반영될 수 있는 제도 아닙니까?
정성희 소장 : 진보정치세력이 분열 갈등하고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원인이 무엇입니까?
정진후 의원 : 분명한 것은, 우리 정치현실은 진보정치가 발전할 기회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다려 주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방해하거나 보수적 논리로 대체하고 개혁으로 위장해 보수의 폭과 깊이를 넓힙니다. 진보가 국민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지난 대선 때의 경제민주화 논리가 그렇고, 최근에는 무상급식의 이름 위에 무상보육을 덧쓰기 해서 복지를 자신들의 성과로 만들려는 궤변이 그렇습니다. 그 결과는 교육감 직선제 폐지로까지 이어질지 모릅니다. 보수의 논리는 이렇게 거침이 없습니다.
선연한 구호로만 일관하면 현실정치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는 길은 여러 경로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 어떤 경로도 경기도나 충청도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 부산까지 가는 길에 경기도에서 함께 탈 사람이 있고 충청도에서 함께 할 사람이 있습니다. 더 많은 이들과 함께 가야 합니다. 진보정치는 몇 사람만 갈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경계할 것이 있다면 경기도든 충청도든 어떤 경로를 택하더라도, 부산까지 가는 방향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보정치가 길을 가되 그 경로를 잃거나 그 자리에 멈추어 있지 않도록, 대중조직의 끊임없는 채찍질이 필요하다 하겠지요.
그런데, 우리는 국민들 눈에 어떤 모습일까요? 출발하기도 전에 어느 경로를 택할 것인가, 왜 단박에 부산에 도착하지 못 하는가 하는 논쟁, 아니면 비현실적 주장만 하는 세력으로 보이고 있지는 않은가요? 맞닥뜨린 현실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 목표에 집착하는 것은 그럴 수 있습니다. 또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채찍질도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그 과정에서 현실 상황을 무시한다면, 그 자체가 붕당의 정쟁이고 신념만을 고집하는 몰 정치에 다름 아닙니다.
현실성을 인정하되 운동성을 잃지 않는 조화야말로 진보정치를 국민 속에 뿌리내리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는데, 방법론에서 막혀 있어요. 조직된 대중들이 있고 이를 상징하는 인물들이 대중의 기대와 결합되었던 민주노동당 초기의 조건들은 지금 모두 소멸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대신 오래된 요구와 기대만 선연한 구호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선연한 구호로만 일관한다면 현실정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래서 고작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대중적 토대를 다시 구축하자, 그 위에서 민주적 리더십을 새롭게 세우자, 그 과정에서 진보정치의 방법론을 재정립하자, 그 외에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들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배심원단’ 구성해 각 정파 진단하면 어떨까?
정성희 소장 : 새정치민주연합은 계파, 진보정당은 정파가 문제시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다수와 소수의 당내 민주주의 문제가 아니라 계파와 다른 정파가 대중정당, 대중조직의 단결과 발전을 위해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요?
정진후 의원 : 문제는 집단적 공유, 조직적 실천입니다. 그러려면, 이미 말씀드렸듯이 진보정치의 토대가 중요합니다. 민주노총, 전농, 전여농, 노점상연합회 등 대중조직의 참여와 검증 체계가 좀 더 발전적으로 고민되어야 하겠지요. 그러나 정당 자체적으로는 투명하고 공정한 민주적 의사결정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해답도 없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반영하기 위한 권력 장악은 정치에서 보수든 진보든 다를 바가 없는 문제이지요. 그러나 어떤 자세,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른 정파에게도, 평범한 당원에게도 수긍과 동의를 얻을 수 있지 않겠어요?
사회진보를 목적으로 하는 정파가 단지 파벌로 이어지고, 각 진영의 다툼으로만 나타난다면 해소할 방안을 찾아야지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당장 내부에서 해소할 수 없다면 당원을 제외한 국민을 대상으로 사법부가 시도하는 ‘배심원단’ 같은 것을 구성해 정책적 여과를 해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이를테면 정치적 세탁과정이 되겠지요. 진보정치의 대중적 접근에도 의미가 있고 당내 패권주의도 일정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아직 완결된 생각은 아니고 답답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정성희 소장 : 진보정치, 진보운동 내부에서 패권주의와 분파주의, 그리고 소위 ‘종북’ 논쟁이 계속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진후 의원 :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입니다. 서로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공존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 아닌가요? 일부 정파에서 북을 보는 입장이 다르다는 점도 사실 다양성의 시각에서 본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다만,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이 그것이 조직을 편 가르기 하는 식, 더 정확히 말해 패권주의와 분파주의 비밀주의로 이어지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적을 위해 불법이나 편법쯤은 해도 된다는 행동논리로 변질될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패권주의은 비판해도 ‘종북’ 부메랑은 안 된다
저는 일부 정파가 패권주의에 근거해 조직을 비민주적 방식으로 운영해 온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 이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종북’이라는 말로 진보 내부에서 이른바 ‘총질’ 해 대는 것도 못지않게 큰 문제라 여깁니다. 통합진보당 사태 당시 정치적 책임을 제기했지만 묵살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정치적 책임은 훨씬 빠른 신속성, 과단성, 분명함, 이런 것들을 요구하는데, 철학적 명제와도 같은 ‘참’과 ‘거짓’의 논리로만 일관하니 그 틈바구니에서 제 자신의 존재감에 많은 회의를 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총질’문제는 제대로 제기조차 되지 않고 말았지요.
요즘은 ‘종북’이라는 꼬리표를 보수 집단이 진보개혁세력 전체에게 낙인찍는 이데올로기로 악용하고 있습니다. 낙인효과에 풍선효과까지 더해져 마치 부메랑과도 같이 돌아오는 것을 보면 가슴이 저립니다. 오죽하면 아직 생각이 성숙하기 전인 어린아이들마저 ‘일베’활동을 취미생활처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스스로가 제한 조건을 만들어 버렸으니, 이제 누가 일어서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스스로 면구한 일이 돼 버린 것이지요. 안타까운 일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정파적 논리를 녹여낼 수 있는 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정성희 소장 :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조직적 결의에 기초해 건설되고 이후 전농민회총연맹,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국노점상연합회 등이 조직적으로 결합했는데, 진보정당과 대중조직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것입니까?
정진후 의원 : 민주노동당의 탄생은 노동자, 농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가능했습니다. 그 결과 진보정당 원내 활동 10년차를 맞이하고 있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평가 속에는 조직화된 대중의 힘만으로 대중정당을 이끌 수 있다고 보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정당의 궁극적 목표가 정권의 획득에 있고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최대 다수 득표활동 말고는 불가능하다는 원리 때문이지요.
민주노총 직선 계기로 정치방침 재정비해야
대중조직운동도 정말 최악의 상태에 몰려있는데, 진보정당이 대중조직의 요구를 사회 전체의 문제로 만들어가지 못하고 다수 국민은 선거를 통해 외면하다보니 진보정당은 목소리만, 그것도 부분적으로 대변하다 말아버리는 형국입니다. 악순환이죠.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대중조직의 목소리조차 응당 한 번쯤 있는 것, 늘 그러는 것, 그래 봐야 소용없는 짓으로 치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현실에 대한 당연한 지적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중조직운동의 역량이 지나치게 과소평가 받거나 홀대 당하는 것 같아 분하고 원통하기도 합니다.
이 대목에서 제가 속한 정당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네요.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우리나라 진보정당의 역사와 현실적 조건에 비춰 보더라도 정의당은 대중조직과의 결합력이 대단히 미흡합니다. 조직대중과 일반대중의 균형을 맞추기는커녕 조직대중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대중조직과의 차별성은 강조하고 대중조직과의 결합은 기다린다는 식인데, 한국 진보정당이 어디에 기반하여 어디로 확장해야 하는지 과학적으로 진단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운동과 정치를 연결하는 중간 과정, 이를테면 앞서 말씀드린 ‘배심원단’같은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면 진보정당의 의제를 정파주의를 넘어 훨씬 대중화시킬 수 있을 것 같고요. 또 하나는, 무엇보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운동적 각성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민주노총은 지금 선거 중입니다. 처음 도입한 직선제로 치루고 있지요. 저는 노동조합활동 당시 이 직선제를 다른 측면에서 반대했지만 장점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직선제는 민주적 틀인데, 그 틀을 통해 정파적 요소들을 일정부분 해소할 수 있어야 하고, 정치방침에 대한 결정도 재정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보정당을 강제해가야 되겠지요.
지금보다 더 소수로 남아도 진보정당의 역사적 책무 중요
정성희 소장 : 진보정치가 어려우니 '새정연 좌측으로 들어가자’, ‘각개약진 후 장기적으로 통합하자’, ‘대중조직 강화에 매진하자’는 여러 편향이 생기는데, 새로운 진보통합당이 필요하며 가능한지요?
정진후 의원 : 정의당, 진보당, 노동당 등 실존하는 진보정당의 통합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논의가 아닙니다. 지난 6.4 지방선거를 전후해 정의당 내부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2011년~2012년 진보통합당을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균열을 통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몸소 체감한 바도 있습니다.
몇몇 상층 지도부가 밀실에서 논의하고 합의해 목표를 성급하게 이루는 그런 방식은 실패로 귀결된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더딜 수 있겠지만 공론의 장에서 진보정치의 필요성을 논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해 국민들도 신뢰할 수 있는 진보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아니 그 사명감을 전제하지 않으면, 또 다른 실패를 예고하는 것이라 봅니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는 진보의 통 큰 결합에 대해서도 우려는 있습니다. 그리고 유력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원내진입이라는 단기목표 달성에 걸림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미 대중성을 확보한 의원이나 일부 정치인들에게는 1년 반밖에 남지 않은 2016년 총선이라는 구체적 목표가 새정치민주연합의 왼쪽 방을 기웃거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단기목표만을 보고 가는 길은 국회의원 배지를 가져다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보 블록의 소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개별 정치인의 원내진입이라는 단기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해도, 작지만 강력한 진보정당 없는 거대 보수양당 체제로는 우리사회가 개혁과 진보로 나아가는데 한계가 분명할 것입니다. 설령 지금보다 더 소수로 남고 새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진보의 가치를 지키고 키워나가는 진보정당의 역사적 책무는 그 누가 부인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지요.
정성희 소장 : 성찰과 혁신과 통합을 위해 현재 진보정당들의 태도가 어떠해야 합니까?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새로운 기대를 모으는 진보정치의 재구성 방안이 무엇일까요?
진보정치 혁신통합, 기다린다고 해결될 문제 아냐
정진후 의원 : 먼저 스스로를 비우는 자세, 스스로 밀알이 되겠다고 나서는 의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들 눈치만 살펴서는 안 되는데, 관망하는 형국이어서 안타깝죠. 다시 상기하지만, 정파의 지분나누기나 상층의 과감한 결단에 의한 통합,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진보정당이든 새정치민주연합이든 마찬가지였지요. 실패를 답습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아래서부터의 통합, 당원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통합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만들려면 자신을 던지는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자신이 지금 가진 것을 내려놓을 때,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힘도, 지혜도 생긴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진보의 새로운 리더십도 창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이야기하는 ‘반성’과 ‘성찰’의 자세는 특정 리더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도 필요하고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2012년 통합진보당사태에서 이른바 ‘셀프 탈당’에 대해 사과합니다. 정치적 책임 부재, 예측되는 파급, 이런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함께 했던 분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정치인이 되고 첫 번째 선택이 그랬으므로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대로 남아 변화시키려는 노력도, 그럴만한 정치적 능력도 없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그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부끄러운 과거는 지금도 여전히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는 빚입니다.
정파면 정파, 정당이면 정당, 개인이면 개인, 책임 있게 스스로를 내려놓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그냥 기다린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닙니다. 올해 안에 진보통합의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으면 고작해야 정치연합 정도의 수준에 머물지 않을까요? 정치적 신념, 운동의 신념을 존중하는 통합이 없이, 차이의 극복 없이 어찌 나라 정치를 말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중앙단위 논의만 지켜봐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생활정치 이야기를 하는데, 사실 지역에서야 현실적 요구를 결집시킨 진보적 운동, 그 활동방식이면 되었지, 정파적 다름이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그래서 결합 가능한 지역, 많지 않은 지역에서라도 그런 기운을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그래야 논의에도 탄력이 붙을 게 아닙니까. 다행인 것은 모두들 그런 문제를 인식하고 그런 마음을 갖고는 있다는 점입니다.
서민과 함께 호흡하고 진정성을 보이자
정성희 소장 : 국민들이 신뢰하는 노동운동으로 혁신 발전시키고 진보정치를 부활시키기 위해 민주노조와 진보정당이 각각 무엇을 해야 합니까?
정진후 의원 :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정치구조를 완전히 개혁해야 합니다. 노동운동은 상층의 정파 조직을 극복하고 현장조직을 복구해 작은 요구로부터 민감한 감수성을 지녀야 현장과 호흡하고 제대로 된 방향도 설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보정당도 마찬가지로 현안에 대한 언론플레이 중심의 정치풍토로는 보수정당과 어느 것 하나 다르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신뢰는 유명정치인 한 사람의 발언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지역구민의 표심을 공략하는 보수정당도 자신의 지지기반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물며 진보정당인데요. 노동자, 농민, 서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진정성을 보여 줄 때만이 진보정당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회복할 수 있겠지요. 혼신의 노력을 다 해도 그 길은 분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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