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제의 흐름을 짚어 드리는 프레시안 도우미 정태인입니다. 10월 29일 열여덟 번째 생일을 맞은 단원고 2학년 황지현 양이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군요. 싸늘한 시신입니다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겠죠.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의 진실, 못 밝히나요? 안 밝히나요?"라고 절규하는 부모들을 말 그대로 외면했고 국회 '새해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세월호'를 단 한 번도 직접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경제'를 59차례나 반복해서 외쳤습니다.
경제가 목숨보다 소중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우리 경제는 여전히 위기"라며 '저성장, 저물가, 엔저'라는 신3저의 도전을 맞아 "지금이야말로 우리 경제가 도약하느냐, 정체하느냐의 갈림길에서 경제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대통령이 작년 초에도, 그리고 금년 초에도 4퍼센트(%)의 경제 성장을 자신하던 데 비춰 보면, 그리고 최경환 부총리가 아직도 낙관론을 고수하는 데 견줘 보면, 대통령의 이런 위기의식은 다행스럽기까지 합니다. 문제는 구체적인 정책이 무엇인가겠죠.
대통령은 금년 46조 원 규모의 확대 정책 패키지(재정 보강 12조, 공기업 투자 확대 5조, 정책금융 지원 29조)에 내년 추가 예산 20조 원을 더하면 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낙관하면서 안전 예산(14조6000억 원, 17.9% 증액), 공무원연금 개혁, 공기업 혁신, 복지 예산을 차례로 언급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야말로 "저성장의 계곡을 뛰어넘어, 역동적인 혁신 경제"로 탈바꿈시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신설 법인 수의 증가(4만 개), 엔젤 투자자 수의 증가(150% 증가), 세계은행 기업환경평가 5위가 창조경제의 성과라는 겁니다.
하지만 17개 시도의 창조경제혁신센터, 세종 지역의 창조마을, 대구 지역의 첨단 섬유, 자동차 부품, 창조경제밸리 사업 등은 참여정부 국가균형사업의 지역 혁신 클러스터 정책과 무엇이 다른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참여정부의 국가균형전략은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하향식으로, 그것도 조속한 시일 내에 클러스터를 만들겠다는 사고는 언제나 실패합니다. 신뢰의 네트워크는 아래서부터 대단히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사람의 땀으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 봐도 실리콘밸리형 첨단지구가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습니다(제 박사과정 논문 주제가 실리콘밸리입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실리콘밸리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참여정부의 혁신도시, 기업도시처럼 건설 투자로 땅값을 올리고 지역의 토호들 배만 채우는 걸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조업 3.0 전략'은 구체적 내용이 없고, FTA에 관해서는 아예 대통령이 직접 나서겠다고 선언했군요. 호주 의회도 한·호주 FTA를 비준하면서 ISD 재협상을 조건으로 내걸었는데 말입니다.
시정연설의 방점은 사실상 서비스산업 육성 계획, 즉 서비스업 규제 완화에 찍혀 있습니다. 보건의료, 관광, 금융, 콘텐츠 등 5+2 유망 서비스업에 대한 투자인 거죠. 한마디로 복합 리조트, 테마파크 건설과 '병원 안 호텔'이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평가는 8월 14일 자 <주간 프레시안 뷰> "규제 없는 자본주의는 독재"를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혹시 연설 안에 최경환 부총리가 말한 '소득 주도 성장 정책'(예컨대 최저임금 인상, 최고임금 설정, 노동조합 권한 강화, 중소기업 하청대금 인상 등)이 있는지 샅샅이 훑어봤습니다만 흔적조차 없습니다. 다만 일자리 예산을 늘렸다는 얘기만 나옵니다. 즉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민주화'와 마찬가지로 최경환의 '소득 주도 성장'도 말뿐인 거죠.
대통령은 아이들의 목숨(과 관련해 절규하는 부모들)까지 외면하면서 '경제 활성화'에 목숨을 걸었지만 정책은 그저 각종 규제 완화와 예산 투입으로 건설 붐을 일으키겠다는 것뿐입니다. 정확히 일본의 1990년대 정책을 뒤따르는 것이고 이런 정책이라면 내년에도 경제가 나쁠 것이 불을 보듯 뻔합니다. 경제 활성화에 목을 매달았지만 경제는 부메랑이 되어서 박 대통령의 목을 찌를 겁니다. 3년차 조기 레임덕이 눈앞에 어른거리는군요.
본격적 침체?
박 대통령도 시정연설에서 언급했지만, 10월 24일 한국은행의 '3분기 국내총생산' 속보는 한국 경제가 심각한 상황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래 표에서 보듯이 3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3분기에 비해 3.2% 증가했는데 이는 성장 속도가 1분기의 3.9%, 2분기의 3.5%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소비는 2분기에 비해 1.1% 증가했고 수출은 2.6% 감소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할 리 만무합니다. 정부가 아무리 규제 완화를 해도 설비투자 역시 2분기에 비해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최 부총리는 여전히 낙관적입니다.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까지 나서 정부·가계 부채 급증, 전셋값 폭등, 미국의 금리 인상 시 외국인 자금 이탈 가능성 등에 우려를 쏟아냈지만 최 부총리는 "감내할 수준", "제한적"이라는 말만 반복했죠.
물론 경제 수장이 위기를 강조하면 자산 시장에서 동요가 일 테니 신중한 모습을 보일 필요는 있습니다만, 서민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정책마저 과거와 동일하다면, 아니 오히려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거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컨대 최 부총리는 10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국감에서 전셋값 폭등에 대해 "아주 저소득층은 복지 측면에서 접근하고 나머지는 전세든 월세든 시장의 균형, 수요 공급에 의해 중장기적으로 가야 한다. (중략) 개입을 많이 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이 시장주의자임을 천명했습니다. 전월세 상한제는 절대 안 되니 빚내서 집 사고, 빚내서 전세금 올려주라는 얘기죠.
국제통화기금(IMF) 등 해외 기관까지 우려를 표시한 가계·정부 부채도 최 부총리는 큰 문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최 부총리는 "현 경제 상황에서 가계 부채는 감내할 수준"이라며 "시스템 리스크로 갈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다"고 말했죠. 물론 집값이 오르면 그럴 수 있습니다만 만일 억지로 불을 지핀 부동산 시장이 싸늘하게 식어버린다면 가계 부채는 위기의 도화선이 될 소지가 충분합니다.
최 부총리는 내수를 늘려야 한다면서 오로지 부동산 경기에 목을 매고, 대통령은 '창조경제'라는 이름 아래 지방의 건설 붐에 돈을 쏟아붓는 나라에서 경제는 정말 위험해집니다.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킨다며 의료, 교육마저 시장에 맡기면 아이들의 목숨은 바람 앞에 등불 신세가 됩니다. 경제가 서서히 침몰하는 세월호 꼴이 되고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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