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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지우기' 10년, 박근혜식 '선군정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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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지우기' 10년, 박근혜식 '선군정치'로

[정욱식 칼럼] 전시작전권 대해부(2)

지구상에 자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타국에게 넘겨주고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올해로 작전권을 넘겨준 지 64년이 지났고, 이번 한미연례안보회의(SCM)에서는 사실상 무기한 연기했다.

더구나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북한 국방비의 약 30배, 북한 국민총생산의 2배가량을 국방비로 쓰고 있다. 주한미군 사령관들은 한국군이 작전권을 행사할 능력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시기상조'라고 한다. 미국은 가져가라고 하는데, 한국은 못 받겠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왜 보수 정권은 전시작전권 환수에 이토록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걸까? 그 결정적인 이유는 전작권을 노무현 정부의 유산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보수 진영은 노무현 정부가 한미동맹을 허물어뜨리고 있다고 맹비난했고, 그 대표적인 근거로 전작권 환수 시도를 들었다. 정권교체에 성공한 한나라당(현재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 때 무너진 한미동맹을 복원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도 했다.

▲ 전직 국방장관 등 역대 군 수뇌부들이 2007년 2월 전작권 환수 합의에 항의하는 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기류는 정권이 바뀐 지 7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친박계 핵심인 윤상현 의원이 전작권 환수 재연기는 "과거 정부의 안보실패를 이번에 바로 잡은 것"이라며 "잘못을 바로 잡는데 무려 10년이 걸렸다"고 주장한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임기 중에는 물론이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반미'로 공격받아온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워싱턴으로 가면 180도 달라진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백악관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으로 한미동맹과 대북정책을 총괄했던 마이클 그린은 "노무현 대통령의 한미동맹에 대한 기여는 전두환‧노태우 이상"이라고 했다. 노무현-부시 시기의 한미동맹 재조정 협상에서 미국 측 수석대표를 줄곧 맡았던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는 동맹 현안 해결에서 "노무현 정부는 인정받을 가치가 있다"고 했다.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서도 미국 정부는 "한미동맹의 안정적인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줄곧 견지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아무리 이러한 설명을 내놓아도, 국내 보수 진영에게는 '쇠귀에 경 읽기'였다. 왜? 국내 보수 진영에게 전작권 문제는 안보 이슈를 전면화시켜 정권을 되찾는 '정치 투쟁'의 도구였고,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정권 안보'를 위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전작권 환수→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군 철수?

한미간에 전작권 전환 협의가 본격화된 2006년, 한나라당은 이 문제를 삼단논법으로 정리해 맹공을 퍼부었다. '전작권 환수→평화협정 체결→주한미군 철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미국 대사는 한나라당과의 잇따른 면담을 통해 ‘오해’를 불식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에는 그 생생한 내용이 담겨 있다.

2006년 9월 6일 버시바우를 만난 김형오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노무현 정부의 '레임덕' 시기에 전작권 전환과 같은 중요한 안보 문제가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한국인 대다수는 노무현 정부를 신뢰하지 않으며 전작권 전환 시점에 대한 논의는 한국 국내에 큰 혼란을 야기하고 한국 국민을 분열시킬 것"이라고도 했다. 이 자리에 동석한 황진하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의 의도가 "전작권 전환을 통해 미국을 배제하고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는 데 있다"며, "노무현 정부의 궁극적인 목표는 주한미군 철수에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러자 버시바우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면서 "아무리 빨리 진행해도 전작권 전환은 노무현 다음 정부에서나 이뤄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전작권 전환은 한미동맹의 긍정적이고 자연스러운 발전이자 더 균형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는데 기여한다는 점이 미국의 입장"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색안경을 벗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 면담 이후에도 한나라당의 정치 공세가 계속되자, 버시바우 대사는 9월 26일 한나라당 의원들을 다시 만났다. 미국 외교 전문에 따르면, 박진 의원은 "전작권 전환과 연합사 해체 대신에 전작권을 과도적으로 유엔 사령부로 넘기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이건 황당한 주장이었다. 유엔사는 정전협정 준수를 관리‧감독하는 기구이지 전쟁을 수행하는 전투 사령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버시바우가 일축하자, 박진은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은 연합사나 전작권 이양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과 문제가 있다". 황진하 의원 역시 "노무현 정부의 의도를 신뢰할 수 없다"며 "노무현 정부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감"을 나타냈다고 한다. 버시바우는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강조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한나라당은 2007년 대선에서 전작권 문제를 핵심 쟁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11월 8일 국회 연설에 나선 강재섭 대표는 "전작권 이양 논의는 원천무효"라며 "차기 정부와 미국이 반드시 다시 협상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를 2007년 대선공약으로 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황한 버시바우 대사는 11월 16일 강재섭 대표를 만나 설득하려고 했다. 11월 20일 자 외교전문에 따르면, 버시바우는 한나라당의 태도에 강한 유감을 표하면서 "한나라당은 전작권 전환 자체와 그 시점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나라당이 전작권 전환 자체는 찬성하면서 그 시점은 늦춰야 한다는 입장이라면, 이를 한국 국민들에게 분명히 밝혀 혼선을 일으키지 말아 달라는 의미였다. 이에 대해 강재섭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전작권 전환 자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고 전제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전작권을 주권 문제로 말하면서 국민들을 오도하고 있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한나라당은 전작권 문제를 철저하게 '반(反) 노무현'의 관점에서 접근했다. 미국 대사를 만나 자국의 대통령을 험담하면서 전작권 전환 반대 논리를 펴려고 했다. 임기 1년 반을 남겨둔 대통령이 ‘레임덕’에 있다거나 국민 대대수가 불신한다거나 노무현의 의도가 남북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철수에 있다는 가당치도 않은 주장을 폈다.

전작권 환수 1차 연기가 천안함 때문?

흔히 이명박 정부가 전작권 환수 연기를 미국에게 요청한 이유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침몰해 안보 환경이 위태로워진 데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10년 2월 16일자 미국 대사관의 외교 전문을 보자. 이명박 정부 관료, 국회의원, 민간 전문가들을 두루 만난 미국 대사관은 이렇게 논평했다.

"강력한 친미 대통령인 이명박은 2007년 유세 때 전작권 전환 연기를 공약했고 만약 그가 이러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면 그의 핵심적 지지 세력과의 관계가 약화될 것이다". 그러면서 "전작권 연기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퇴역 군인들"이라며 "이들은 한나라당의 핵심적인 지지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미국 대사관은 이명박 정부가 세종시 이전 문제를 둘러싼 친박-친이 갈등의 무마책으로 전작권 환수 연기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혹자들은 이명박 대통령이 6월 지방선거를 위해 실망한 박근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당 분란을 수습하기 위해 전작권 전환 연기를 요청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MB 정부는 바로 이 시기에 미국에게 전작권 전환 연기를 타진하기 시작했다. 2010년 2월 22일 자 외교전문에 따르면, 김성환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2월 초에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만난 자리에서 "2012년 4월로 예정된 전작권 전환 문제를 미국 정부와 협의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는 천안함 침몰보다 50일 정도 빠른 시점이었다. 안보적 고려보다는 전작권 환수 연기라는 카드를 통해 세종시 이전을 둘러싼 친이-친박 갈등을 봉합하고 보수층을 결집해 6.2 지방선거를 치르겠다는 정치적 고려가 컸던 것이다.

전작권 무기한 연기가 북핵 때문?

그렇다면 대선 공약을 파기한 박근혜 정부는 어떨까? 10월 24일 청와대의 설명은 이렇다. "공약의 철저한 이행보다는 국가 안위라는 현실적 관점에서 냉철하게 바라봐야 할 사안이다. 공약 파기는 아니다". 설명은 이렇게 이어진다. "지난해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있었고, 이어 3~4월에도 북한의 의도적 안보위기 조성이 있어서 안보환경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설득력이 떨이진다. 전작권 환수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무기한 연기한 게 공약 파기가 아니라면,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고 우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간적인 인과관계를 보더라도 문제가 있다. 북한은 남한 대선 유세가 한참 벌어지고 있던 2012년 12월 12일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다. 그러나 박근혜 당시 후보는 전작권 환수 공약을 유지했다. 북한이 작년 2월 12일 3차 핵심험을 한 직후에 나온 박근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보고서에서도 이러한 방침은 거듭 확인되었다. 북한이 안보 의기를 조성했다는 작년 3-4월 이후에도 국방부는 업무보고를 통해 "2015년 12월을 목표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 그리고 3~4월 안보 위기가 전작권 환수 재연기를 타진할 만큼 근본적인 안보 환경의 변화였다면, 박근혜 정부는 이 시기에 이 문제를 공론화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미국에게 은밀히 이 사안을 타진한 시점은 작년 7월부터였다.

정확한 사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박근혜식 선군정치'가 위력을 발휘했을 공산이 크다. 당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육사 출신이 독식하던 때였다. 청와대 안보실장, 국방장관, 국정원장, 경호실장 모두 육사 선후배 출신으로 채워진 것이다. 특히 남재준 국정원장은 "전작권 환수 연기는 개인적인 소신"이라는 입장이었고 육사 선배로 외교안보라인의 실제로 군림하고 있었다.

결국 육사 출신들의 안보 권력 장악, 최고 선배인 남재준의 개인적 소신, 토론을 허하지 않는 집단적 사고, 예비역 장성들의 요구 등이 맞물리면서 전작권 재연기 방침이 정해졌을 공산이 크다. 이들에게는 작전권을 미국에게 계속 맡겨두는 것이 육사 이기주의를 유지하는 '안락한 소파'와도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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