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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석유전쟁, 4차 석유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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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석유전쟁, 4차 석유위기?

[주간 프레시안 뷰] 앞으로 석유 가격은?

지난 6월 이후 국제 유가가 30퍼센트(%) 이상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 산유국이자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이 아닌 증산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미국을 등에 업은) 사우디가 러시아 및 이란을 상대로 석유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나아가 이번 석유전쟁이 4차 석유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석유 증산으로 유가를 더욱 떨어뜨려 시리아 및 핵문제 등에서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러시아와 이란을 경제적 궁지로 몰아넣겠다는 것이죠. 러시아와 이란은 국가 예산의 절반 이상을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에 의존하고 있어 유가 100달러 이하로 내려갈 경우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과연 사우디의 속셈은 무엇이며 유가 하락은 어디까지 계속될까요?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로 한때 떨어졌던 국제 유가는 2011년부터 4년간 배럴당 110달러 선에서 안정세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여름부터 하락세가 시작되면서 북해산 브렌트유의 경우 지난 6월 최고 115달러에서 10월 16일에는 83달러까지 내려갔습니다. 30% 이상 떨어진 셈이죠(두바이유를 주로 수입하는 한국의 경우 올해 초 100달러에서 14일에는 87달러로 20%가량 하락).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는 감산은커녕 지난 9월 하루 생산량을 10만 배럴(8월 960만 배럴에서 970만 배럴로) 늘렸습니다. 이달 초에는 일본 등 아시아 고객에 대한 판매가격을 배럴당 1.2달러, 북미에 대해서는 0.4달러 깎아줬습니다. 그리고 감산 계획이 없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1980년대 초반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대규모 감산을 했다가 시장점유율을 빼앗겼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 사우디 측의 입장입니다. 사우디가 증산을 계속하는 한 유가는 더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내년에는 70달러 선으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사우디의 최근 행태에 대해 미국 <뉴욕타임스>의 논설위원 토마스 프리드먼은 미국과 사우디의 러시아 및 이란에 대한 석유전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14일 자 칼럼 '석유전쟁?(A Pump War?)'을 통해 "나 혼자만의 상상인지 또는 미국·사우디 대 러시아·이란의 세계적 석유전쟁이 실제 진행되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분명한 것은 미국과 사우디가 30년 전 소련에 대해 했던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석유 증산 공세로 러시아와 이란을 죽이는 것, 즉 모스크바와 테헤란으로 하여금 국가 예산을 충당할 수 없을 정도로 유가를 낮춤으로써 이들을 파산시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신문 <프라우다>의 4월 3일 자 톱기사 '오바마는 사우디가 러시아 경제를 파괴하기를 원한다'를 예로 들면서 러시아도 미국과 사우디의 의도를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1985년 가을 사우디가 석유 생산량을 무려 5배나(하루 200만 배럴에서 1000만 배럴로) 늘리면서 유가를 32달러에서 10달러로 끌어내려 소련 경제를 붕괴시킨 전례가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1991~94년 러시아 총리 대행을 지낸 예고르 가이다르는 2006년 11월 13일의 한 연설에서 "소련 붕괴의 시작은 야마니 사우디 석유장관이 석유 증산을 발표한 1985년 9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날을 기점으로 사우디는 유가 지지를 포기했고 (중략) 6개월간 생산량을 4배 늘렸으며 (중략) 소련은 연간 2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으면서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 이라크 인근 송유관 개수작업 현장. ⓒ연합뉴스

사우디의 석유 증산 공세로 소련 경제를 목 조른 것이 소련 붕괴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겁니다. 특히 프리드먼은 최근 셰일 혁명으로 미국의 석유 생산이 크게 늘어난 만큼(미국의 석유생산은 최근 6년간 70%가 증가해 사우디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으며 조만간 사우디를 추월할 가능성도 있음) 미국과 사우디가 힘을 합치면 에너지 수출로 경제를 지탱하는 러시아 및 이란의 '석유 독재자(petro-dictator)'를 쳐부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프리드먼의 주장이 미국·사우디 대 러시아·이란 간 석유전쟁론에 불을 지핀 것입니다.


그러나 프리드먼의 주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역사와 현실을 왜곡한 것입니다. 첫째, 1985년의 석유전쟁은 소련을 겨냥한 미국과 사우디의 합작이 아니라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붕괴시키려는 미국과 영국의 공격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소련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은 것을 사실이지만 전쟁의 실상은 영국·미국 대 사우디였다는 것입니다. 둘째, 현재 사우디와 미국의 경제적, 지정학적 이해관계는 당시보다도 훨씬 복잡합니다. 특히 이집트, 시리아, 이란 문제 등에서 사우디는 미국과 생각을 달리하는 만큼 사우디가 미국의 정책목표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3차 석유위기의 진실

프리드먼이 말한 1985년의 석유전쟁은 3차 석유위기로 불립니다. 1,2차 석유위기는 잘 알려져 있는 반면 3차 석유위기의 실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유가 하락에 의한 위기였기 때문입니다. 1974년의 1차 석유위기는 4차 중동전쟁의 와중에 OPEC가 (이스라엘 편을 든) 미국과 네덜란드에 대한 석유수출 금지 조치를 취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유가가 배럴당 3달러에서 12달러로 4배가량 폭등했습니다. 2차 석유위기는 1979년 이란혁명에 따른 석유 수출 중단으로 일어났습니다. 유가가 12달러에서 최고 40달러까지 올랐습니다.

3차 석유위기는 1985년 9월 영국의 원유 가격 자유화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석유 카르텔'인 OPEC를 붕괴시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합니다. 1차 석유위기의 중요성은 유가 폭등뿐만이 아닙니다. 국제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주체가 이른바 '세븐 시스터즈'로 알려진 서방의 석유대기업에서 OPEC로 바뀐 것입니다. 1974년 이후 국제 유가는 OPEC의 합의에 의해 결정됐고, 자유 시장론자인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 대처 총리는 이를 매우 못마땅해 했습니다. 당시 레이건은 OPEC를 죽이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도 했습니다.

1970년대 초 북해 유전을 개발하면서 나름의 석유무기를 갖게 된 대처 총리는 1985년 9월 원유 가격 자유화 방침을 밝힙니다. OPEC에 정면 도전한 것이죠. 레이건은 내심 대처를 응원했고요. 이에 대해 사우디는 그렇다면 가격전쟁을 해보자며 무자비한 증산에 돌입합니다. 앞에 말한 9월 13일이 그날입니다. 1980년대 초까지 하루 8900만 배럴을 생산하던 사우디는 1981년 이후 유가 하락세를 막기 위해 200만 배럴까지 생산을 크게 줄였던 터였습니다. 그러니까 1000만 배럴로 늘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죠. 그 효과는 두 달쯤 후부터 나타났습니다. 11월 32달러였던 유가는 한 달 후, 10달러로 떨어졌고 이후에도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당시 러시아와 일부 걸프 국가들은 6달러에 판매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유가 하락은 한국 같은 에너지 수입국에게는 희소식입니다(80년대 후반 우리가 누렸던 이른바 3저 호황, 즉 저유가 저금리 저환율에 의한 호황이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죠). 하지만 미국 같은 석유 생산국에게는 반드시 좋지만은 않습니다. 우선 미국의 석유생산을 비롯한 관련 업체들이 도산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유가가 생산비에도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2월부터 도산 위기가 현실화됐습니다. 또한 유가가 낮아지면서 수입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집니다. 핵심 전쟁 물자인 석유의 자립도가 낮아지는 것은 전략적으로 미국에 유리하지 않습니다. 당시 미국의 수입 석유 의존도는 50%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또한 심해 유전으로 채굴 비용이 비싼 영국도 사우디와의 가격전쟁을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당시 부통령이던 조지 H. W. 부시가 1986년 4월 사우디를 방문해 파드 국왕과 무려 나흘간 비밀 회담을 한 끝에 석유전쟁은 막을 내립니다. 1986년 초 9달러까지 내려갔던 유가는 그때부터 오름세로 돌아섰고 그해 9월, 18달러 선에서 안정됐습니다.

결국 3차 석유위기는 소련의 붕괴를 겨냥한 미국과 사우디의 합작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라 OPEC 붕괴를 위한 영국과 미국의 공모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초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대신 소련경제에 타격을 가하는 결과를 낳은 것입니다.

사우디와 미국의 이해관계는 일치하나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사우디는 미국의 중동정책에 불만이 많습니다. 우선 미국이 30년 동지였던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퇴진을 방관한 것에 사우디는 크게 놀라고 분노했다고 합니다. 수니파의 수장을 자처하는 사우디의 최대 숙적인 시아파의 맹주 이란과 핵협상을 진행하는 것도 불만입니다. 시리아의 (시아파) 아사드 정권 제거에 소극적인 반면 최근에는 (수니파) 이슬람국가(IS) 공격에 적극 나선 것도 내심 불안합니다. 지정학적 목표만 서로 다른 것이 아닙니다. 경제적 이해관계도 엇갈립니다. 바로 셰일혁명에 의한 미국의 석유 증산입니다. 내년이면 미국의 산유량이 사우디를 추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향후 10년간 미국의 주요 석유 수출국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사우디 아메리카'를 자처하는 미국이 사우디의 석유 패권에 도전하는 형국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안보를 절대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사우디가 미국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 형편은 못 됩니다. 그래서 사우디의 최근 행보는 미국의 심기를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면밀한 계산에 나온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의 분석입니다. 유가를 낮춤으로써 러시아와 이란에 일정한 압력을 가하고 미국 소비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한편, 미국산 석유의 국제시장 진입을 제한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에너지 수출이 국가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러시아와 이란은 유가가 최소한 100달러는 넘어야 재정적자를 피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유가 하락이 이들 나라에 압력 수단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한편 유가가 80달러가 되면 미국 소비자 한 가구당 연간 6백 달러의 감세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반면 유가 80달러 이하로 내려가면 미국의 셰일 석유는 수지를 맞추기 어렵습니다. 미국은 올해 1986년 이래 최대 석유생산을 기록했으며 이에 따라 대외 수출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수출시장을 잠식하는 셈이죠. 그러니까 사우디는 유가 하락으로 미국의 지정학적 목표와 소비자들에 대한 경제적 혜택을 주는 대신 국내 석유산업의 피해는 감수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얘깁니다.


앞으로 석유 가격은?

그렇다면, 앞으로 석유 가격은 어떻게 움직일까요? 최근 유가 하락의 원인은 경기 침체에 따른 유럽 및 중국 등의 수요 감소, 그리고 미국의 비약적인 증산(최근 6년간 70%) 때문이라는 데에는 모든 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우디의 증산이라는 변수가 개입한 것인데, 사우디의 증산이 장기간 계속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유가가 80달러 이하로 내려가면 사우디의 재정수지 역시 위험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우디 내부에서도 증산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고 합니다.

일단 사우디는 11월 26~27일에 있을 OPEC 회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우디의 시장점유율 확보 의지를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다른 회원국들을 자국의 뜻대로 끌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현재 OPEC의 하루 생산량은 3000만 배럴로 세계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어느 정도 줄일지, 특히 각국의 할당량(쿼타)가 어떻게 정해질지가 관건입니다. 회원국 간에도 쿼타 확보를 위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카타르는 9월 인도분 원유 가격을 8월 대비 6.25~6.75달러 인하했다고 합니다. 고객(쿼타) 확보를 위한 인하 경쟁으로 이달초 사우디의 1.2달러에 비하면 훨씬 인하 폭이 큽니다. 따라서 향후 유가 전망은 11월 OPEC 회의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 10월 15일 자 <러시아투데이> 기사 갈무리. ⓒrt.com

11월 24일에는 이란 핵협상을 위한 P5+1회의가 열립니다. 이란은 2012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석유수출 제재 조치로 이전보다 하루 1백만 배럴 생산이 감소했는데 과연 사우디의 석유 증산이 핵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입니다. 이 두 회의가 사우디의 향후 행보에 주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러시아의 한 분석가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해 유가가 76~77달러 선에서 안정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의 원유 생산 단가가 대략 그 수준이기 때문에 더 큰 대립과 희생을 피하려면 이 선에서 멈출 것이라는 얘기죠.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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