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대학
"기분 너무 좋아요 하하하하하. 주식 샀는데 계속 상한가 치는 느낌."
"까짓것 우리가 넘어서야 할 또는 경쟁하는 대학보다 (평가) 좋게 나오면 그건 땡큐."
B대학
"오오 C대랑 A대가 B대보다 높다니", "A대 가야겠네 이제."
"A 쩔지. 일단 역사부터가 ㅎㄷㄷ(후덜덜) 하잖슴. C대는 또 마스코트가 호랑이 아님? 사람이 호랑이랑 맞짱뜨면 어케 이김; B대는 기껏해야 학생들 입결(입시결과) 좋고 머리 좋은 거밖에 없는데."
C대학
"A대가 우리 학교 위인 것도 웃긴데 우리 학교가 B대 위인 것도 웃기지. 일단 입결부터가…."
"축 오버 더 스카이(SKY)."
<중앙일보> 대학평가가 발표된 지난 6일. 상위 5위권에 든 서울 소재 대학 세 곳의 온라인 게시판 반응이다. 기뻐하기도, 불쾌해하기도 하지만 글마다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은 '조롱'이다. 대체로 <중앙> 평가 결과를 믿지 않는다는 분위기다. '상한가', '높다'는 표현을 통해, 학생들에게는 그들만의 평가 기준이 따로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배치표 상 '입결'이다.
<중앙> 평가 결과 이들 세 대학 순위는 A>C>B였다. 그러나 행간을 살펴보건대, 세 대학의 '입결'은 B>C>A로 추정된다.
조롱은 <중앙>만을 향하지 않는다. '입결'과 달리 <중앙> 평가에서 자신이 속한 대학을 제쳤다는 이유로 B대는 A대와 C대를, C대는 A대를 향해 비아냥거린다. B대학 게시판에 올라온 어떤 글에선 "죄 없는 A대만 불쌍하다"고 하지만, A대 게시판에선 다시 기존 경쟁 상대였던 또 다른 D,E,F 대학을 낮추어본다.
대학 서열 싸움에서 '학내 카스트'로… 더 강력해진 학력 위계 사회
"멸시의 피해자들은 또 어떤 지점에선 멸시의 가해자로 존재한다. 서울대생은 연고대생을, 연고대생은 서강대생을. 그래서 멸시를 받는 쪽이라고 과연 누군가를 멸시하지 않는다는 말이냐는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대학생 집단은 없다.
지금 대학생들은 수능점수의 차이를 모든 능력의 차이로 확장하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다. 십대 시절 단 하루 동안의 학습능력 평가 하나로 평생의 능력이 단정되는 어이없고 불합리한 시스템을 문제시할 눈조차 없는 것이다."
사회학자 오찬호 연구원은 지난해 출간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개마고원)>에서 지금의 20대에 대해 "무한경쟁 시대 희생양이 되어 피해자의 모습을 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경쟁 패자들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차별하고 멸시하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심층 면접을 통해 이들을 지배하는 것은 '학력 위계주의'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학력 위계주의 사회 속에서 20대가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모습을 보였던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연세대 카스트' 논란이다. 연세대학교 독립언론 '연세통'이 지난 7월 <한겨레21>을 통해 '학내 카스트 제도'가 있다며, 대학 서열화가 학교에서 학과 소속 단위, 입시 전형 등으로 다양하게 넓혀져 단계의 차이를 과장하고 학생 간 벽을 쌓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대학생 간 위계 서열은 이처럼 더욱 공고하고, 더욱 광범하게 확대되어가고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중앙> 평가는 나쁜 서열, <동아> 평가는 착한 서열?"
현재 서울 소재 8개 대학을 중심으로 <중앙> 대학평가 거부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지난달 처음 거부 선언을 한 고려대 총학생회를 향해 "용기 있는 행동"이라며 박수가 쏟아졌지만, 호응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거부 운동이 좀처럼 폭발력을 갖지 못한 데에는 대학 서열화 문제의 본질에 다가서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따른다. 언론사인 <중앙> 하나만 건드려서야 되겠느냐는 물음이다.
고려대 총학은 규탄 대상을 <중앙>에 국한한 이유에 대해 △'그 어떤 대학평가와도 비교되지 않는 영향력을 구가하는 대학순위평가'인데다,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대학을 서열화하고, 학벌주의를 구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중앙>을 제외한 <조선>·<동아> 등 다른 언론사 평가, 해외 언론사 평가에서도 순위를 공개한다는 점에서 크게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고려대 같은 경우는 학교 홈페이지 혹은 교내 현수막에 '동아일보 청년드림 대학평가 2년 연속 최우수 대학 선정', '2014 전국 종합대학 취업률 1위' 같은 자극적이고 서열화를 조장하는 문구들이 걸려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중앙일보 종합평가'만' 거부하겠답니다. 그렇다면 동아일보나 취업률 같은 서열은 소위 말하는 착한 서열이라는 의미일까요?"(A대학 게시판)
가장 영향력 있는 <중앙> 대학평가에서 SKY의 위상이 흔들리다 보니, 오히려 기존 서열을 지키기 위해 고려대 학생들이 평가 거부를 외친 게 아니냐는 삐딱한 시선도 있다.
"취지는 좋은데 과거에 고대가 성대를 앞섰을 때는 아무 말 없다가 지금 뒤지니까 이제 와 평가 거부한다고 하는 건가? 고려대를 떨어뜨린 <중앙>에 대한 불만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E대학 게시판)
심지어 <중앙> 평가가 기존 대학 위계 질서를 깨뜨린 점을 높게 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어제 (고려대) 기자회견을 보니 'SKY'와 기타 대학으로 이루어진 기존의 서열을 공고화하는 게 대학평가'라고 하는데, 오히려 대학평가를 함으로 인해서 그 서열이 파괴된다는 혹은 경쟁을 통해 실질적 측면을 바꾸어 사람들의 인식적인 측면의 변화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하나 보네요."(A대학 게시판)
다른 대학 총학은 '침묵', 이유 들어보니…
고려대 총학의 거부 선언 사흘 뒤 나온 '대학·입시거부로 삶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성명은 대학평가 거부 운동의 이같은 맹점을 건드렸다.
투명가방끈모임은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는 본질적 요소인 획일적 입시제도, 기득권 학생들의 특권의식, 그리고 사교육업체의 대학순위 매기기(배치표)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며 "대학순위평가 거부운동은 대학 서열화를 조장하는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청소년 인권 운동가 공현 씨는 "대학평가 거부 운동은 대학 내 문제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다"면서도 "이미 대학 사회 내 서열화 의식이 뿌리 깊은 상황에서 언론사 한 곳의 평가를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큰 호응을 얻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평가 거부 선언이 하나의 큰 흐름으로 거듭나기 위해선 무엇보다 참여 대학 수가 늘어나는 일이 관건이다. 그러나 현재 거부 선언에 동참한 8개 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 총학생회는 요지부동이다. 6일 중앙일보사 앞에서 열린 <중앙> 규탄 기자회견 후 만난 고려대 최종운 총학생회장은 "다른 몇몇 대학에 연락을 취했으나 생각보다 호응이 높지 않다"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실제로 대학평가 거부 선언에 참여하지 않는 일부 대학 총학에서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서울 소재 사립 G대학 박승희(가명) 총학생회장은 "우리는 고려대학교 정도의 상위권 급이 아니기 때문에 어차피 큰 호응을 불러일으키기 힘들다"며 "공식적으로 의견을 모아보진 않았지만 일반 학생들도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이라 총학 차원에서는 나서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했다.
지방 국립대학인 H대학 총학생회 임원 김승훈(가명) 학생도 "대학평가 반대 운동에 참여한 한 친구를 통해 제의 비슷한 걸 받았지만 선뜻 나설 마음은 없다"고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지방대 학생들이 나서면 열등감 때문에 그런다고 오히려 욕먹을 가능성이 있다"며 "대학평가 반대 운동도 결국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라고 했다.
입장 차이가 조금씩 있었지만 결론은 같았다. 대학평가를 거부할 '급'이 안 되기 때문에 '못'한다는 것이다. 대학 간 위계 질서를 깨뜨릴 자격 역시 대학 사다리 꼭대기에 있는 대학에만 주어진다는 서열 의식을 다시금 확인한 셈이다.
거부 선언에 참여한 8개 대학 중 대학평가에서 비교적 낮은 평가를 받는 성공회대의 곽호준 총학생회장 또한 비슷한 발언을 했다. 그는 "학내에서 대학평가 거부 서명을 받았는데, 어떤 학생이 '우리 학교는 대학평가랑 상관 없는데 왜 해야 하느냐'고 묻더라"고 말했다.
"우리 안의 서열 의식을 확인하자"
모든 서열에 반대하지 않는 한, 지금의 대학평가 거부 운동은 한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이 운동을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이들은 "거부 선언을 계기로 학벌 사회에 대해 성찰할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공현 씨는 "대학생 문제 안에서 정면으로 배치표 문제를 다룬 적 없는 것 같다"며 "학벌주의에 대한 경험을 털어놓으면서 학생들이 스스로 우월감을 느끼든, 아니면 문제점을 드러내든 자각하는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지난 11일 경희·동국·성공회·한양대 총학이 '누구를 위하여, 대학은 줄 서는가'를 주제로 연 교육 포럼은 그러한 기회의 장이었다. 80여 명의 대학생은 이날 토론을 통해 서울대를 가기 위해 '삼수'를 한 이야기, '지방캠'(제2캠퍼스) 친구를 무시한 이야기 등을 하며 '우리 안의 서열 의식'을 확인한 경험을 공유했다.
대학 총학 임원진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학생회만들기모임'을 구성해 활동하고 있는 동국대학교 이희정 학생은 "작은 모임에서부터 대학 서열화를 반성하고, 이런 모임을 계속 확장해나가 전 사회적으로 대학 서열 문제를 공론화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대학평가, '등수 놀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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