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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가 '노숙인'으로 대치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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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홈리스'가 '노숙인'으로 대치될 수 없는 이유

[기고]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의 주장에 반박한다

지난 19일, ‘내가 만드는 복지 국가’의 뉴스레터와 <프레시안>에 게재된 이건범 한글문화연대 대표의 글(관련 기사 바로 가기 : '실버? 홈리스? 그룹홈? 우리말로 쓰면 안 되나요?)에 실린 ‘홈리스’ 개념에 대한 반박글을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가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편집자

이런 말들에는 어떤 복지 철학이 담겨 있을까? 급여라는 말에는 국가가 어려운 사람에게 시혜를 베푼다는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다. 노인을 실버로, 노숙인을 홈리스로 부르는 것 역시 사회의 아픔을 직시하며 정면으로 대응하려는 태도보다는, 뭔가 숨기고 불편한 것을 피해가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복지를 공동체 성원 모두의 문제로 국민 마음속에 심으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 ‘실버? 홈리스? 그룹홈? 우리말로 쓰면 안 되나요?’ 중

‘홈리스’는 은폐의 용어가 아니다

이건범 대표는 노숙인을 홈리스로 부르는 것이 사회의 아픔을 정면으로 대응하기보다 뭔가 숨기고 피해가려는 의도가 있다 주장한다. 이는 사실과 반대다.

2010~2011년 ‘노숙인등의복지및자립지원법’을 제정할 때 정부와 여당은 ‘노숙인’이란 개념을, 야당과 시민사회진영은 ‘홈리스’란 용어를 주장했다. 물론, 당시에도 한글문화연대는 법제처, 문화체육관광부, 법무부 등과 함께 법제명을 ‘노숙인’으로 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법제명은 ‘노숙인 등’으로 정책대상을 정의했는데, 결국 지원 대상으로 언급된 다양한 주거취약계층은 개념정의 없이 ‘등’으로 표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은 주거취약계층이 ‘기타’로 치부되는 언어적 배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 ‘노숙인등 복지’ 정책상 일부 쪽방 주민을 제외하고 고시원, 만화방, 다방 등 다양한 주거취약계층이 받을 수 있는 복지 지원은 아무것도 없다. 2005년부터 시행된 개정 사회복지사업법 시행규칙에 명명된 ‘노숙인’이란 용어가 지칭하는 ‘거리생활자’, ‘시설생활자’란 범주가 제정 법률에서도 그대로 영향력을 발휘하며, 그 범주를 벗어난 주거취약계층을 무권리 상태로 만든 것이다.

당시, 여당과 여러 정부부처가 ‘홈리스’란 용어를 거부한 이유는 ‘외래어’란 이유였다. 당시의 법안 심사, 검토보고서에서도 나와 있듯 한글문화연대의 ‘홈리스’ 용어 사용 반대 입장은 정부와 여당 입장을 관철하는 도구로 충실히 사용되었다. 그러나 정부, 여당이 홈리스란 용어 사용을 반대한 이유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 즉, 정책 대상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와 여당은 "뭔가 숨기고 피해가려는" 의도로 ‘노숙인’이란 용어를 선택한 것이다.

이건범 대표는 빈곤사회연대의 <프레시안> 칼럼 정정요청에 대한 답변으로 "언어의 폭은 사용자가 어찌 사용하느냐에 따라 더 넓어질 수 있으니 ‘노숙인’ 개념을 확장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라"고 충고했다. 이 대표의 주장처럼 언어는 실체를 재규정하는 힘이 있다. 따라서 다양한 주거취약계층을 ‘노숙인’이라 부르더라도 그런 명명의 세월이 쌓이면 노숙인이란 개념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정책 용어는 정치적이란 점에서 확장성보다는 하향평준화 기질이 있다. 현재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삶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노숙인’은 과연 적합한가?

그렇다면 다양한 주거취약계층을 ‘노숙인’이라 부르는 것은 적합할까. 언어는 실체를 재규정하는 힘이 있으나 이는 비단 언어만의 특징은 아니다. 모든 문화적 산물은 세월의 더께를 입으며 변한다.

나는 오히려 언어의 고유 특질은 적합성에 있다 본다. 언어는 지칭하는 대상을 오해 없이 표상하기 위한 약속 기호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노숙인등 복지법’ 상 지원 대상은 1) 거리노숙, 2) 노숙인 시설 생활자, 3) 부적절 주거 거주자 등이다. 그런데 '이슬을 맞고 자는 사람'이란 뜻의 ‘노숙인’이란 용어가 이 세 주거형태를 표상하기에 과연 적절한가?

노숙인이란 용어는 ‘거리노숙’ 상태에 처한 이들 중 일시보호시설이나 응급잠자리, 지하도나 처마, 대합실 통로 등을 이용하지 않는, 오로지 연속적으로 한뎃잠을 자는 사람만을 지칭할 뿐이다. 물론 여기에도 언어의 재규정력을 대입할 수 있다. 허나, 그런 논리라면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 질서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용인해야 할 것이다. 언어 사용에 일부러 왜곡을 전제할 필요는 없다. 해당 언어의 뜻이 지칭하는 대상과 괴리가 있다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이 대표는 ‘노숙인’이란 말을 줄곧 주장하면서도 ‘거리민’이나 ‘한데인’이란 용어를 작명하자고도 한다. 그러나 그가 새로 제시한 언어 역시 ‘노숙인’이 표상하는 실체와 한 치도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정책 대상에 대한 지원의 축소, 정책 대상에 대한 왜곡된 이해, 새롭게 확대될 다양한 취약거처 생활자에 대한 포섭의 문제 등을 낳는다.

‘홈리스’는 단지 외래어에 불과한 단어가 아니다

'홈리스'란 용어는 단지 외래어에 불과하다는 풀이는 잘못된 해석이다. 이 대표는 이메일을 통해 “홈리스가 집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어떠한 대단한 이론이 그 말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각국마다 홈리스가 표상하는 생활 형태는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의 ‘홈리스 자립지원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홈리스’에 대한 정의로 거주 형태 뿐 아니라 '무연고'라는 관계의 측면을 다룬다. 미국은 '일정소득 이하'라는 경제 상태를 반영한다. 또한 유럽 각국의 홈리스생활자 지원조직연합체인 FEANTSA는 '과밀주택이나 질이 나쁜 주택', '곧 사적인 주거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들 또는 세대'를 홈리스라는 용어로 표상하고 있다. 이 대표의 이해와 달리 홈리스란 용어에는 ‘집 있는’ 사람도 포함되며, 단순히 ‘집 없는’이란 현상 뿐 아니라 그들이 처한 경제, 관계의 측면이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 대표는 홈리스란 용어가 “운동의 뜻을 전하는 데에도 저는 그리 좋은 용어라고 보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노숙인’이라는 지극히 일부 홈리스 집단에 대한 묘사 언어는 어떻게 운동에 이점을 제공할 수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홈리스란 용어는 홈의 박탈을 의미한다. 그리고 홈은 물리적 거처 뿐 아닌, 그 안에서 이뤄지는 재생산 기능을 포함한다.

우리가 홈리스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은 당사자들로 하여금 이러한 홈 기능을 박탈당한 사람들로 스스로 인식할 것을 의도하고 있다. 단순히 피해자로서의 자기규정이 아닌 가해자를 명확히 하자는 의도에서다. 그리고 이런 용어가 왜곡된 묘사에 불과한 ‘노숙인’이란 용어보다 더 현실적이며 객관적이라 믿는다.

‘한글’, ‘사람’과 함께 소중하다

한글문화연대 홈페이지에 이 대표는 “국어는 곧 인권이라는 평소의 믿음”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노숙인복지법 제정과정에서의 한글문화연대의 행보나 이번 이 대표의 글을 볼 때 그가 사람을 생각했을지언정 '홈리스'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안중에 뒀다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노숙인이든 홈리스든, 언어와 사람이 분리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상태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교감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대표는 ‘노숙인’이란 용어의 주장을 하기에 앞서 그 상태를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얼마만한 접점을 가졌으며, 그들의 현실을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물론 한글문화연대가 홈리스 운동단체는 아니다. 그러나 홈리스에게 영향을 미칠 무언가의 활동을 하기로 했다면 그 파장에 속한 사람들을 만나고, ‘노숙인’이란 용어, 그것이 지칭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규정력을 행사하는 지 탐구했어야 했다. 왜 1531명이나 되는 홈리스 당사자들이 일일이 연명해 ‘홈리스 복지법’ 입법청원안을 제출했으며, 노숙인 내지 홈리스복지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을 쪽방촌 내 공원으로 불러 방사능비를 맞으며 현장설명회를 통해 노숙인이란 용어를 폐기하도록 요구했을까를 물었어야 했다.

이러한 노력을 생략한 이 대표의 노숙인 내지 홈리스에 대한 용어 주장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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