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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그룹홈? 우리말로 쓰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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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그룹홈? 우리말로 쓰면 안 되나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어려운 말이 복지의 문턱을 높인다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여러 방송에 출연했다. 진행자들의 질문은 한결같이 '한글 파괴'를 염려하는 쪽에 맞춰졌는데, 따져보면 매우 이상한 말이다. 한글은 세종대왕께서 만든 문자 체계를 가리키는 이름이건만, 한글 파괴란 이 문자 체계가 파괴된다는 뜻이니 그럴 수밖에. 누군가 모음을 먼저 적고 그 다음에 자음을 적기라도 한단 말인가? '우리말' 또는 '한국어'가 엉망이 되어간다는 사정을 흔히 한글 파괴라고 잘못 부른다.

공공분야, 어려운 말 많아

방송 진행자들이 문제 삼은 건 대부분 청소년이나 젊은 세대가 무분별하게 신조어를 마구 만들어 의사소통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었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신조어가 일으키는 문제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국민의 생활을 규정하는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정부 정책이나 공공분야에서 사용하는 말 가운데 어려운 말이 많은 게 정말 큰 문제다.

국어 발전과 이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규정해놓은 국어기본법에는 공문서를 적을 때 한글로 적어야 한다는 원칙이 담겨 있다. 국어 발전의 측면에서 생각하기도 했겠지만, 공문서에 로마자나 한자가 그득하면 일반 국민이 이를 읽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정도 감안한 규정이다.

하지만 이 규정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올 4월부터 6월까지 중앙 정부에서 발표한 보도자료 3000여 건을 분석해보니 보도자료 한 건마다 평균 3.3회 정도로 이 규정을 위반하고 있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영어 낱말 남용이다. 비록 국어기본법의 한글 표기 규정을 지키고는 있지만 '리스크'처럼 영어 낱말을 글자만 한글로 적은 경우가 보도자료 한 건에 평균 7.7회나 나타났다. 작년보다 40% 늘었다.

▲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SBS

땅꺼짐을 왜 싱크 홀로 부르나

개인들 사이의 언어생활이 아닌 공적 영역에서 외국어, 특히 영어 낱말을 남용하는 일은 국민의 생활에 결정적인 위험이나 피해를 부를 수 있다. 얼마 전 송파구에서 땅이 꺼지는 바람에 생긴 구덩이, 즉 '땅꺼짐'을 언론은 굳이 '싱크 홀'이라고 부른다. 세월호 사건 때 방송기자나 뉴스 진행자들은 가이드라인, 에어 포켓, 라이프 자켓, 브이티에스와 같은 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 이렇게 영어를 남용하는 정보 전달 방식은 국민의 알 권리를 차단하고 영어 능력에 따라 국민을 차별할 위험이 크다. 다른 무엇보다도 생명과 안전에 관한 말은 모든 국민이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이어야 한다.

그 다음으로 또 언어 문제가 심각하게 다가오는 쪽이 복지 분야다. 어려운 말은 어려운 이의 어려움을 더 키우기에 그렇다.

나는 시각장애 1급인지라 얼마 전부터 활동보조를 받고 있다. 활동보조를 신청한 뒤 장애인복지관의 사회복지사가 이용 방법을 설명해줄 때 '바우처 카드'라는 말이 나왔다. 순간 '어, 이거 좀 복잡한 뭔가가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위축되는 느낌이었다. '바우처'라는 말이 너무 낯설어서였다. 사용하다보니 바우처라는 게 별 것 아니었다. 회사에서 나눠준 식권을 식당에 내고 밥을 먹는 것처럼 내게 주어지는 복지제도를 사용할 때 쓰는 이용권이었다. '복지 이용권'이라고 해도 될 말을 '복지 바우처'라고 부르는 것이다.

물론 복지 언어는 다른 분야에 비해 아직 외국어 남용이 적은 편이다. 복지 제도의 골간을 규정하는 말들은 대개 한자어다. 그런데 이 한자어 낱말이 이해하기에 만만치 않다.

예를 들어 2013년 7월부터 시행된 '포괄수가제'만 해도 그 말의 어감만으로는 우리 국민 가운데에서 말뜻을 짐작할 사람이 거의 없다. 나 역시 다른 일 때문에 바빠서 제대로 이 용어의 뜻도 모른 채 기자회견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포괄수가제에 반대하는 의사협회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이었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옆 사람에게 포괄수가제가 뭐냐고 나지막이 물어보니 질환별 '의료비 정찰제'라고 이해하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질병의 검진이나 수술 등 진료 행위마다 받던 병원비를 질환별로 묶어 통일한 제도였다. 같은 병을 앓으면 어느 병원을 가도 의료비가 같아진다. 두 용어 가운데 어느 것이 분명하게 다가오는지 두말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한자어가 판치는 복지 용어들

또 하나, 복지 언어에서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로는 '급여'라는 말을 빼놓을 수 없다. 공무원이나 회사 직원들이 일하고 받는 돈을 급여라고 부르는데,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같은 말을 다른 뜻으로 널리 쓰고 있다. 재가 급여, 장기요양 급여, 시설 급여, 의료 급여, 시설생계 급여, 생계 급여 등이 그 예인데, 여기에 다시 각각의 급여를 받는 수급자, 또는 수급권자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흔히 '수급자'라고 줄여 부를 때는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기초생활 수급자를 뜻하는데, 이와는 또 다른 의미다. 일한 대가에 해당하는 급여(pay)와 사회의 손길에 해당하는 급여(benefits) 사이에는 큰 거리가 있음에도 이를 무색하게 만드는 말이다.

이렇듯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로는 적정 보수권, 송영 서비스, 시간/장소 지남력, 노유자 시설, 자동제세동기, 촉탁 의사 등 사회복지의 여러 분야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말이 있다. 문제는 이런 말들이 복지의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는 점이다. 게다가 복지가 국민 전체의 관심사가 되기 전에 정부가 주도해 만든 말이 많아서 그런지, 일방적이고 갑을 관계가 연상되는 고압적인 말이 너무 많다. 격리 조치, 보호 처분, 관리 대상자, 생활 지도원, 입소 희망 장애인, 사회 복귀와 같은 말들이 대표적이다.

이런 어려운 말은 복지가 사회에서 맡은 적극적인 면을 내세우기보다는, 오히려 복지로 불필요한 낭비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복지를 정정당당한 국민의 권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셈이다. 올 7월부터 정부가 시행한 기초연금만 해도 그 성격을 정확하게 밝히려 든다면 '노인 연금'이라는 표현이 더 좋다. 그런데 정부는 뜻이 바로 닿지 않는 말을 선택했다. 마땅한 말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노인'이라는 말을 피하고 싶어서 그렇게 정한 것 같다.

이렇게 어렵거나 모호한 말로 기존 관행에 비추어 민감하거나 불편하게 여기는 사업을 포장하는 역할은 최근 들어 한자어에서 영어로 옮아간다. 노인은 대개 '실버'라고 부르고 있다. 실버 타운, 실버 인력 뱅크, 실버 보듬이 같은 말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인들의 일자리를 찾아주는 전담기관은 시니어 클럽이다. 하지만 시니어 클럽이 어떤 곳인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보살피고 돌본다는 말은 '케어'라는 영어 낱말을 사용하여 데이케어센터, 노노케어 같은 말을 만들었다.

시혜적 복지 철학이 용어에 남아 있다

이런 말들에는 어떤 복지 철학이 담겨 있을까? 급여라는 말에는 국가가 어려운 사람에게 시혜를 베푼다는 분위기가 짙게 배어 있다. 노인을 실버로 부르는 것 역시 사회의 아픔을 직시하며 정면으로 대응하려는 태도보다는, 뭔가 숨기고 불편한 것을 피해가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복지를 공동체 성원 모두의 문제로 국민 마음 속에 심으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이다.

복지는 국민 누구든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의 품으로 끌어안는 제도다. 언어생활의 측면에서도 우리는 국민 누구든 어려운 말 때문에 자신의 공부가 짧음을 한탄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인간의 존엄을 거론할 자격을 얻는다. 대다수 국민이 어려워하는 복지 용어는 점차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려 할 때에는 그 용어가 사람들의 알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지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며 모두가 함께 살아가자는 복지 철학을 제대로 담고 있는지 요모조모 뜯어보고 정해야 한다.

나는 특히 영어 남용 문제에 가장 신경을 곤두세우는 편이다. 우리 사회가 막말이나 신조어에 대해서는 윤리의 잣대를 들이대는 반면 영어 남용에는 꽤나 너그럽다. 심지어는 부러워하거나 앞다투어 사용하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영어 남용은 우리말이 설 자리를 빼앗음으로써 우리 국민의 국어 감수성을 밑바닥부터 뒤흔든다. 국어 감수성이 흔들리면 언어 윤리도 당연히 희미해진다.

따지고 보면 1990년대 이후 세계화와 자유화라는 사조 아래서 언어문화에서도 자유만능의 풍조가 굳어졌다. 영어를 마음대로 쓰면 어떠냐는 생각은 남에게 말을 막하면 어떠냐, 편한 대로 말하면 어떠냐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런 사조가 이제는 공공언어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복지 제도가 발달하면서 영어로 만든 복지 언어가 더욱 많아질까 봐 걱정이다. 장애인이나 부모 없는 청소년들을 모아 함께 사는 공동 생활 가정을 '그룹홈'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우리말, 쉬운 말이 공동체 성원 존중한다

우리말과 한글은 그것이 우리 민족의 것이라서 중요한 것만은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를 세우고 다져오는 데에는 다른 나라와 우리를 구별하기 위해 우리 민족의 자산을 제대로 찾고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그런 틀이 잡힌 지금, 언어는 민족 정체성을 넘어서서 생활의 질을 규정하는 문제로 변하고 있다. 같은 공동체 성원 가운데 어떤 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지위와 신분이 다르게 보이는 착시 현상이 일어나고, 그런 착시 현상 속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나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과거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어려운 한자어가 이런 착시를 일으켰고, 지금은 영어가 그런 구실을 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는 없다. 존엄한 인간으로 삶을 지켜가려면 언어에서도 공동체 성원으로서 한 인간을 대접하려는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

* 내만복 칼럼은 필자가 참여하는 팟캐스트 <만복라디오>에서 상세히 논의됩니다. 지난번 칼럼을 들으세요. (☞바로 가기 : http://mywelfare.or.kr/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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