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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전환'시키는 장흥의 슈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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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전환'시키는 장흥의 슈마허

[마을주의자]<21> 장흥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 '마을기술자' 김성원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E.F. 슈마허가 지은 책 이름을 얼른 떠올린다면 아름다운 사람이다. 부제인 ‘인간 중심의 경제를 위하여’까지 기억해낸다면 생태주의자에 가깝다. 한마디로 이 명저는 현대산업문명에 대한 경제적 비판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학 정도는 뛰어넘는다. 경제학이란 학문은 홀로 존재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파생된 사유체계의 일부인 ‘메타 경제학’이 되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즉 학문이라면 물질이나 화폐같은 경제적 가치만 따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인간과 자연같은 비경제적 가치, 사회적 가치를 함께 연구해야 진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슈마허는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한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만큼 값싸고 노동집약적인 기술이다. 소규모 이용에 적합하고 인간의 창조적 욕구에 부합하는 기술이다. 1966년 개발도상국에 적합한 소규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중간기술개발그룹을 영국에 설립한 게 출발점이다. 중간기술은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 대안기술(alternative technology)로도 불린다. 혹자는 ‘민주적 기술’, ‘민중의 기술’이라고 한다. 이 새로운 기술은 인간을 기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킨다. 인간의 본성과 자연과의 공존에 초점을 맞추도록 ‘전환하는 기술’이다. 슈마허는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마음, 민중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적정기술이 있다면 첨단기술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슈마허의 주장과 제안에 동조하는 이들이 오늘날 한국에도 많다. 완주 옛 잠업시험장 자리에 사무실, 교육장을 두고 있는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에도 40여 명의 중간기술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 여기에 행정도 협동과 연대의 힘을 보탰다. 부설 적당연구소를 맡고 있는 김성원 소장(47)이 협동조합의 산파 역할을 했다. 삶터인 장흥에서 일터인 완주를 2년이 넘게 오가며 중책과 고역을 기꺼이 감당하고 있다. 아무래도 국내에서는 적정기술에 관한한 CTO(최고기술책임자) 역할을 맡을만한 최적임자라는 게, 죄 아닌 죄다.

▲ 김성원 연구소장. ⓒ정기석

마을과 지역을 전환하는데 ‘적당한’ 적정기술의 전도사

"'지속 가능한 발전'이란 말은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able development)’에서 나왔다고 해요. 환경적, 생태적인 요소가 지속가능성의 기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죠. 바로 적정기술이 환경적, 생태적인 지속가능성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자 방법이잖아요. 땔감을 구하기 어려운 사막의 태양열조리기,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간오지마을에서 자전거를 돌려 생산한 전기로 돌리는 세탁기, 농수공급용 수동펌프 등 실천사례는 다양해요. 우리나라도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제3세계 구호지원활동에 적정기술을 많이 활용하고 있는 추세예요. 물론 우리의 생활현장에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이죠. 그래서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중간기술을 보다 널리 공유하고 개발하는 일에 힘을 보태고 싶어서요."

적정기술 전문가 김 소장은 특히 에너지를 전환하는 적정기술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전환기술사회적 협동조합’이라고 이름 지었다. 지금 지구촌은 기후변화, 에너지 위기, 자원고갈, 식량부족 등 문제가 심각하다. 지속가능한 생태사회로 전환, 지역의 자립적 순환 경제 구축이 시급한 과제다. 김 소장은 에너지전환 적정기술을 확산시키는 게 해법이라고 판단했다. 협동조합의 사업목적은 적정기술의 설계·생산·디자인·시공이다, 그러자면 관련 교육을 통해 전문인력도 양성해야 하고 대중교육을 통해 사회적 인식도 전환시켜야 한다.

적당기술 연구소에서는 다양한 적정기술도 발굴하고 생활기술의 실용화도 연구하고 개발해야한다. 지역 현실에 적합한 실용적 에너지 기술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적당’이라는 이름은 ‘적절하고 당당하게 연구하겠다는 뜻이라고 한다. 과학이나 기술이나 어려워서는 안 되고 지나친 전문가주의를 배격하기 위해서라도 적당연구소로 이름 지었다는 것이다. 또 이렇게 연구‧개발된 기술은 손발기술학교를 통해 기술이론과 인문교육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전문인력(장인)을 양성하게 된다. 연구소와 학교 이름이 재미있다. 참신하다. 그래서 더욱 기대된다.

"수년 전 부안으로 이전하면서 유휴시설이 된 전북 잠업시험장을 완주군에서 150억 원인가에 매입했어요. 영국의 대안기술센터(CAT) 같은 혁신적 공간으로 리노베이션하려 했어요.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전북도에 제안했었지요. 그런데 지자체장이 바뀌면서 없었던 일처럼 됐어요. 안타까워요. 지금은 일부 공간을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 흙건축연구회 등이 사용하고 있어요. 서울의 하자센터 등과 청년들의 도농 제휴프로그램도 진행해야하고 할 일이 많은데 일이 이렇게 됐으니 제대로 계획을 추진하기가 어려워요. 심지어 지역에서는 아파트나 지어 팔자는 얘기도 튀어나온다고 하고…."

영국의 대안기술센터(CAT)는 1975년 산 중턱의 폐광을 이용해 만들었다. 풍력, 수력, 태양열 에너지, 친생태건축, 유기농업, 대안하수처리시스템 등의 대안기술로 대규모 센터를 가동하고 있다. 한국판 CAT가 완주에 들어설 뻔했다. 아쉽다.

"지금 우리나라도 적정기술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어요. 기술자들도 늘어나고 있고. 가령 구들만 해도 회오리 구들, 구들장 밑에 약재 항아리를 놓는 황제구들, 전통구들, 3단 축열식 구들 등으로 계속 개량, 현대화되고 있어요. 자꾸 발전하고 있는 거죠. 다만, 기술자들의 특성이랄까, 대부분 아전인수격으로 자신의 구들시공법만 최고라고 내세우는 경향이 좀 있어요. 최근 귀농‧귀촌인이 급증하면서 구들의 수요와 시장도 커지고 경쟁이 발생하기 시작한거죠. 객관적 검증이나 토론의 장이 없는 게 문제죠. 거의 주먹구구식, 우격다짐식으로 ”내 기술이 최고다, 정석이다“는 식이죠. 구들장은 전체적으로 보아 단지 함실의 열기흐름에 의해서만 가열되는 것이 아니라 구들장끼리의 열전도에 의해서 가열되거나 축열됩니다. 그러니 사실 후자가 더 큰 역할을 한다고 봐요. 자칫 복층 구조의 구들시공법에서는 간과될 수 있어요."

김 소장은 구들도 과학이라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이다. 이제 방법론이 다양해지고 있는 적정기술 시장도 합리적인 표준과 공정한 질서를 세워야 할 시점이 온 게 아닌지. 그렇다면, 그것도 역시 김 소장이 연구해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

▲ 최초의 어스백하우스(흙부대집), 장흥 용산리 김성원 소장 자택. ⓒ김성원

빈민운동에서 에너지운동, 그리고 적정기술 운동으로 삶을 전환

김 소장은 귀농인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에서 철학도 출신으로 현장 노동운동가, 빈민운동가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약자들과 함께 했다. 그러다 1997년부터는 정보통신 벤처에서 비즈니스 컨설턴트로, 광고회사에서 전략분야 이사로 일했다. 한동안 전략, 기획 등 주로 머리를 쓰고 살았다. 그러다 40대 초반에 운명적으로 에너지를 만났다. 에너지전환이라는 NGO의 간사로 일했다.

2007년 아무 연고도 없는 장흥 관지리로 홀연히 귀농했다. 국내 최초로 흙부대집(earthbag house)를 직접 지었다. 고효율 화덕, 축열식 벽난로, 친환경페인트 등도 실험, 개발해 집을 짓는 데 요긴하게 활용했다. 건축, 에너지 등 모두 독학이었다. 농사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2008년 말에 개설한 흙부대생활기술네트워크 블로그(http://cafe.naver.com/earthbaghouse)는 네이버 대표블로그에 선정될 정도로 알차게 운영하고 있다. 그 학습과 교육의 콘텐츠가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 ‘점화본능을 일깨우는 화덕의 귀환’이라는 책으로 남았다. 스테디셀러가 되어 인세, 강의료는 생활비의 중요한 수입원으로 꽤 보탬이 된다.

"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도 경제적이면서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교육하면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게 내가 할 일"이라는 김 소장. ‘호미와 트랙터의 중간에 해당하며 인간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기술, 작은 규모로 생산 가능하며 지역의 상황에 적합한 기술’이 중간기술이라는 슈마허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적정기술은 돈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저항의 기술’”이라는 책의 가르침 때문에 발명특허도 굳이 출원하지 않는 듯하다.

김 소장은 쉴 틈을 만들지 않는다. 마음은 쉬고 싶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요즘은 새로 장흥의 적정기술 동호인들과 함께 직조기술 공방, 생활기술학교 등 새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아울러 봉화, 곡성, 홍성 등 전국 각지에 흩어진 적정기술 연구자들의 협업과 연대의 네트워크도 엮고 있다. 하지만 향후 계획이 불투명하거나 과도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날 그가 걸어온 이력의 궤적만큼 선명하다. 법적으로는 아마추어 기술자지만 프로보다 더 믿음직하다. 그는 중간기술 전문가다. 장흥의 슈마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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