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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사고, 환풍구 올라선 사람들 탓만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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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판교 사고, 환풍구 올라선 사람들 탓만 할 건가?

[복지국가SOCIETY] 위험한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은 어디에?

요새 유행하고 있는 인터넷 댓글 중 '2014년 목표는 살아남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10명의 사망자를 낸 2월 17일의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 사망자 294명을 기록한 4월 16일의 세월호 침몰 사고, 2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5월 2일 상왕십리 2호선 지하철 추돌 사고, 5월 26일 고양종합터미널 화재 사고, 장성 노인요양원 화재 사고, 그리고 그저께 발생한 판교 테크노밸리 환풍구 사고까지. 유난히 올 한 해 동안 대형 사고들이 잇따라 발생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여기에서 나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 조심하자는 자조 섞인 표현인 것이다.

국가가 실종된 사회

이 표현이 인터넷 상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것은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음을 의미한다. 즉, 국민이 더 이상 국가를 믿지 못한다는 것으로서 국가가 국민의 안전 보장이라는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가의 가장 기본적 역할은 구성원의 생명과 안전 보장이다. 국가의 역할을 고민한 대표적인 사상가 홉스는 국가란 개인이 자연 상태에서의 죽음과 무질서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자신들의 권리를 위탁한 존재로 보았다. 즉, '안전'이란 개인의 생명과 신체의 보호라는 자유권의 핵심적 사항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라는 존재를 탄생시킨 근본적인 목적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국가의 이러한 역할이 취약하다. 그러다 보니, 경주리조트 붕괴 사고에 대해서는 건축물 설계 및 시공 과정에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건축 회사를 탓하고,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해서는 탑승자들을 방관하고 떠난 선장과 무리하게 오래된 선박을 증축하고 과적한 해운 회사를 비난한다. 또한 테크노밸리 환풍구 사고에서는 유명 가수를 보겠다고 환풍구에 올라섰던 희생자들의 안전 불감증을 탓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한 국가에 책임을 묻는 사람들에게는 왜 국가에 모든 것을 다 해달라고 하냐며 면박을 준다. 한국 사회에서 '안전'이란 해운 회사나 건설 회사 같은 민간 기업들이, 혹은 국민 개개인이 살기 위해 스스로 확보하는 것으로 전락했다. 그리고 어디에서도 국민의 안전을 지키려는 본질적 임무를 다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국가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늘 사후약방문이다.

물론 저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안전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하고 값싼 원자재를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사고를 초래했을 것이다. 희생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공연을 보려는 욕심 때문에 사회자가 내려오라고 경고했음에도 환풍구에 올라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처벌과 보상'이라는 제도적 틀을 통해 철저하게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오직 국가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자 국가의 본질적 책임이다.

▲ 19일 오후 환풍구 덮개 붕괴 사고로 16명이 숨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테크노밸리 야외광장의 환풍구 주변에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인근 상가에서 마련한 국화 화분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왜 국가가 실종되었나?

그렇다면, 대체 한국에서 국가는 왜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주고 있지 않을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이라는 기본적인 국가의 책임조차 방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도성장 과정에서 누적된 적폐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중요하게는 1990년대 이후 '작은 정부'를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담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국가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공동체의 이익보다 개개인의 사적 이익을 중시하는 시장만능의 사회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담론은 소위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는 국가가 특정한 가치나 공동선을 내세워 자의적으로 경제와 시장에 개입하면 그 사회는 망가지며, 개개인의 이익이 최대한 달성될 때 사회가 조화롭게 작동한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국가가 국민의 안전이라는 공익을 위해 만들어놓은 각종 규제 장치들은 시장의 기능을 저해하고 사회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불과하기에 축소 또는 폐지해야 한다고 여긴다.

신자유주의 담론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대한민국의 안전을 담보하던 각종 제도적 장치들의 나사가 하나 둘씩 풀려나갔다. 정부는 안전 관련 규제들을 완화했고, 기업들은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당장 이윤이 나지 않는 안전에 대한 비용을 줄여나갔다. 예컨대, 건조된 지 20년이나 지난 노후 선박인 세월호가 아무런 규제 없이 운행할 수 있었던 것은 선박 연령 제한이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되었기 때문이었다. 또 비용 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은 정비 인력의 감축으로 이어져 크고 작은 지하철 사고의 원인이 되었다.

결국 1990년대 이후 근 20년간 한국 사회를 지배한 신자유주의 담론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이라는 국가의 역할이 점차 약화된 결과, 오늘날의 크고 작은 사고들로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게 된 것이다.

국가의 역할을 되찾아오기 위한 방법 : 복지국가

이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보장이라는 국가의 역할을 되찾아 올 시점이다. 어느 때보다 더 절박한 시점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가 그렇게 여기고 있다. 특히,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줄을 잇는 대형 사고들로 너무나 많은 소중한 생명들이 희생되었고 남은 국민도 불안에 떨고 있다. 그래서 지금 당장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 다음의 통계는 우리 사회에 한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 국가별 안전사고 지표(단위 : 명). 자료 : 1) 노동부, <산업재해현황>, 2) 국제노동기구, http://laborsta.ilo.org/STP/guest, 3) OECD Health Statistics 2014, 4) IAAS, http://taas.koroad.or.kr/aUserSecStatsOecd.sv?pt=dft, 5) 통계청 홈페이지, WHO 2008 Mortality database

위의 표는 각종 안전사고에 대한 국가별 수치이다. 눈에 띄는 점은 한국이나 미국과 같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실시한 국가들보다 소위 복지국가로 알려진 독일이나 스웨덴 국민들이 훨씬 안전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인구 10만 명 당 산재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사망 10만인율의 경우, 한국은 무려 18.0, 미국도 4를 나타내는 데 비해 독일이나 스웨덴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자살률 역시 한국은 29.1 명으로 9년째 OECD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데 비해 독일이나 스웨덴은 그 절반이다. 교통사고 사망률, 아동사고 사망률 또한 독일이나 스웨덴이 현저히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한국이나 미국보다 독일이나 스웨덴이 훨씬 더 안전한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는 국민의 안전을 담보하는 데 시장만능보다 복지국가가 훨씬 더 효율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단지 우리 사회의 운영원리를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만 맡겨서는 결코 안전한 사회를 달성하긴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지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이유

복지국가의 '큰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데 우월한 이유는 재화 생산방식과 가치의 두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안전'과 같이 국민 전체에게 적용되는 재화는 공동체적 원리, 즉 연대에 기초하여 생산해야 가장 합리적이다. 여기서 연대란 공동의 목표를 위해 공동으로 책임지는 사회적 행위다. 안전과 같이 비용은 일부에서 부담하더라도 혜택이 국민 전체에 미치는 재화일 경우, 공동의 책임이 전제되어야 제대로 공급될 수 있다. 이에 정부가 '세금'이라는 공동의 책임을 바탕으로 한 각종 안전 규제정책과 제도들을 시행함으로써 국민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다.

반면, 신자유주의에서 주장하는 방식인 '보이지 않는 손'이 잘 작동할 수 있는 완전한 시장이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학적으로 시장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가정이 필요하다. 모든 정보가 완전히 공개되어 있어야 하고, 가격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어야 하며, 모든 행위자들은 객관적인 정보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보 접근 기회는 일부 지배 계층들에게만 주어져 비대칭적으로 분포하는 경우가 많고, 물리적으로 재화의 가격이 매일 변화하기란 어렵다. 또한 개인들의 행동 양식이 항상 합리적이지도 않다. 이처럼 '보이지 않은 손' 이 작동할 수 있는 시장 자체가 현실적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사회 작동 방식은 공유하는 가치에도 영향을 미친다. 연대에 기초하여 재화가 생산될 경우, 공통의 목표를 공유하는 구성원 사이에서 공동체 의식이 생기고 신뢰가 싹튼다. 아래의 표는 국가별 공직자 부패 정도에 대해 국민의 인식을 조사한 부패지수이다. 이 역시 북유럽 복지국가들이 1위~10위권 내에 포진해있고, 한국과 미국은 매우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부패지수는 국민이 정부에 갖는 신뢰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즉, 순위가 높을수록 우리 정부가 부패하지 않았다는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공통의 목표와 책임이 작동하고는 복지국가에서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 의식이 작용하고, 이 의식은 또다시 국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높으면, 정부가 추진력 있게 민간 기업 규제 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어 국민의 안전이 더욱더 확보될 수 있다.

▲ 국가별 안전사고 지표. 자료 : 국제투명성기구
그러나 한국과 미국에서는 다르다. 정부가 부패했다고 여겨지기에 내가 내는 세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의심되고, 정부의 정책들은 국민 대다수의 이익보다는 현 정권의 지지 세력을 위한 것으로 간주된다. 이에 국민의 안전을 위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신뢰받지 못하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뿐만 아니라 이미 사회에 팽배해있는 자기 중심주의는 사회적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회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보장되는 대한민국 만들기

올 한 해 동안 안타까운 생명들이 세상을 떠났다. 대부분의 사고가 인재였다. 제대로 된 안전 규정이 마련돼 철저히 실천되고, 감독되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사고들이었다. 희생자들 앞에서 우리는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우리는 똑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안전 규정을 강화하고 철저한 감독기구를 마련해야 한다. 국가가 제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공동체적 연대로 사회의 작동 원리를 재편해야 한다.

뉴스만 틀면 나오는 끔찍한 사고들로 2014년은 국민들 모두에게 안타까운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방법, 또 다른 2014년이 오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신자유주의라는 시장만능국가에서 신음하는 대한민국을 공동의 가치와 책임 하에 작동하는 보편주의 원리의 '역동적 복지국가'로 바꾸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제도 속에서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보장이라는 제 역할을 충실하게 잘 수행할 때 비로소 개개인의 '살아남기'라는 목표도 달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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