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9일, 삼척 시민들은 자체적으로 주민 투표를 실시하여 핵발전소(원전) 부지 유치에 대한 찬반 의사를 표시하였다.
선거관리위원회의 지원 거부에도 삼척 시민들의 절반 가까이가 투표에 참여하였고, 그 중 85%의 주민들이 핵발전소 유치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2004년 주민 투표를 통해서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거부한 부안 군민들의 주민 투표에 이어, 지역 주민들이 주민 투표라는 수단을 통해 국가 핵 정책에 부동의를 표시한 두 번째 사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핵발전소 신규 건설에 명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오히려 한국 핵 정책이 파탄나기 시작했다는 전조로 읽어야 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핵발전 역사는 1977년 고리 원전부터 시작된다. 군사 정권 시절 조국 근대화를 위한 '전기 공장'을 세운다는 말에, 주민들은 찍소리도 못 내고 살던 땅에서 쫓겨났었다. 핵발전 위험의 무지와 함께 폭압적 정치가 핵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1980년대 민주화 경험은 삶의 터전을 빼앗고 생존권을 박탈하는 정부에 순응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1990년대 초 진압 경찰에 맞서 경찰지서를 불태우기까지 했던 안면도 주민들의 항거를 시작으로, 일방적인 핵시설 건설 계획은 격렬한 사회적 논쟁과 저항에 직면하게 되었다. 더 이상 군사 정권 때와 같을 수는 없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적 보상을 미끼로 지역 간 경쟁을 부추겨서 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 입지를 선정하였다. 때문에 주민 저항을 극복하는데 일시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엄청난 돈으로 써 건설한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에 하루 수백 톤의 지하수가 쏟아져 들어와서, 지금까지도 사용 여부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주민들의 저항만을 꺾는데 몰두해서 기초적 지질 조사조차 충분히 하지 않은 탓이었다. 게다가 경제적 보상만으로 지역 수용성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이 지속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단 한 푼도 필요 없다는 밀양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송전탑 반대 투쟁이나 핵발전소 유치의 경제적 효과 선전이 힘을 잃은 삼척 주민 투표가 이를 말해준다.
무엇보다도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가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눈앞에서 지켜본 핵 재앙은 한국 사회를 흔들어 깨었다. 한국 땅에도 30년 이상 가동한 고리와 월성의 노후 핵발전소를 포함하여 23기가 운영 중이지만, 결코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 불량 부품 납품 비리, 핵발전소 직원의 업무 중 대마초 흡입, 사고 은폐 등, 판도라의 상자라도 열린 듯 핵발전 위험과 관련된 수많은 고발과 폭로가 잇달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후 핵발전소 인근 주민뿐만 아니라, 멀리 사는 전국의 시민들까지도 핵발전 확대 정책을 반대한다는 여론이 증가하고 과반을 넘기 시작했다. 그 정점에 삼척 주민 투표가 있는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핵사고를 목격하면서 핵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는 세계 여러 국가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핵 위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면서 핵발전 지원 정책을 중단하고 폐쇄로 방향을 잡은 국가들이 있다. 스위스, 이탈리아, 독일이 대표적이다. 반면 핵발전소의 안전을 평가하고 이를 강화하겠다는 정책을 방패삼아 핵발전 지원 정책을 지속하는 국가들이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핵발전소의 안정성 평가를 강화하겠다는 대선 공약과 함께 핵발전소 확대 계획을 굳히지 않는 현 박근혜 정부의 입장이기도 하다.
이런 정책 노선은 후쿠시마 핵사고의 교훈을 핵발전소의 안전성 평가와 관리라는 기술 관료적인 방식으로 번역해낸 결과다. 즉, 정부와 전문가들이 핵발전소 안전 기준을 높이고 이를 엄격히 준수할 테니 믿고 맡기고, 국민들에게는 값싼 전기를 공급하고 지역 주민들에게는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는 핵발전 확대 정책에 이견을 달지 말라는 것이다. 정부가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설치·강화한 것은 이런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주요 야당들이 핵 안전성을 강조하면서 노후 핵발전소의 폐쇄 문제에 집중하는 것도, 크게 보면 이런 흐름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원자력 마피아(또는 핵 마피아)의 실체를 이해하면서, 핵발전 확대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와 관료들이 제대로 안전성 평가를 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또 값싼 전기료나 경제적 보상보다는 민주적 참여와 사회적 정의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핵사고의 각성은 단지 '안전한 핵발전' 요구로만 국한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설사 핵발전소의 안전이 100%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지역 주민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며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에너지 부정의' 현상이 지속되는 한 핵발전에 대한 저항은 계속 될 것이다. 핵발전소 건설 지역의 저항뿐만 아니라, 생산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세워져야 하는 초고압 송전탑 지역 주민들의 저항 가능성을 잊지 말라. 게다가 향후 세워져야 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의 갈등과 저항은 상상을 초월하게 될 것이다.
사실 이런 사회적 저항들은 단지 '원자력 안전'이라는 담론으로 모두 담아낼 수 없는 것이다. 안전 여부를 판단해온 전문가들은 신뢰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저항을 잠재울 수도 성격의 저항들도 아니다. 핵심 쟁점은 이런 건설 계획이 사회적으로 정의롭고 수용 가능한가라는 윤리적인 질문이다. 지금껏 한국의 핵정책 혹은 핵정치가 핵발전소가 안전하냐 아니냐에 머물러 왔다면, 이제는 핵발전소가 누구의 희생을 요구하는지 그리고 그 부정의가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것인지 하는 윤리적 질문까지 포괄하여 확대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한국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독일을 다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후쿠시마 핵사고 직후, 독일 메르켈 총리가 구성한 것은 핵발전소의 안전성을 평가하는 위원회만 아니었다. 더 주목을 받은 곳은 2022년까지 핵발전소를 모두 폐쇄한다는 메르켈 총리의 결정에 기초가 되는 권고안을 제출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였다. 삼척 주민 투표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한국 핵발전 정책이 한계에 도달한 이때 우리가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에너지윤리위원회"다.
핵발전은 누구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누구에게 희생을 강요하는가? 핵발전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토론하고 답해야 한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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