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한나라당을 분당 직전까지 몰고 갔던 '경선 룰' 논란이 여론조사 방식을 두고 재연됐다. 박근혜 후보 측은 '중대결심'을 거론하며 경선 파행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이명박 후보 측도 물러설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가운데 당 경선관리위원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면초가 상황에 처했다.
"경선이고 뭐고 다 치워라"
한나라당 경선관리위원회 산하 여론조사 전문가위원회는 2일 표결을 통해 '누가 대통령 후보가 되는 게 좋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으로 이뤄지는 '선호도 조사' 방식으로 여론조사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박 후보 측 대리인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된 표결에서는 '선호도'가 8표, '지지도'가 3표를 얻었다.
이 후보 측은 선호도 조사 방식을 주장해 온 반면, 박 후보 측은 '누구를 지지하느냐'로 묻는 지지도 조사 방식을 주장해왔다.
당연히 박근혜 후보 측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박 후보가 직접 여론조사 전문가위원회의 결정에 대해 "상식에 어긋난다. 선진국에서는 지지도 조사를 한다"고 말했다고 최경환 의원이 전했다.
홍사덕 공동 선대위원장은 "이명박 후보가 배짱을 부릴 때마다 물러서면 어떻게 경선을 치르느냐"며 "행패를 부릴 때마다 양보하고, 끌고 가는대로 박근혜가 다 끌려가는 사람이냐. 경선이고 뭐고 다 치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김재원 대변인은 논평에서 "당의 공정경선 관리의지가 이처럼 훼손된다면 우리는 중대한 결심을 할 수도 있음을 밝힌다"고 말했다. 그는 '중대결심'의 내용을 묻는 질문에 "결심은 후보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대변인은 "'오늘이 투표일이라면 누구에게 투표할 것이냐'라는 세계 정치학계에서 일반화된 질문을 해야지, 특정 후보의 이익을 대변해 '누가 좋습니까'라는 식의 선호도 조사를 강행하는 것은 여론조사의 근본취지를 의도적으로 묵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식의 여론조사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당이 이런 식으로 고비마다 특정후보 편에 서는 경선규칙을 마련해 간다면 어떻게 중립적이고 공정한 경선관리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고 항변했다.
허용범 특보도 NBC, ABC, LA타임스 등 미국 주요언론의 여론조사 방식을 언급하며 "모두가 '오늘이 투표일이라면 누구에게 투표할 것이냐'고 분명한 지지도 조사를 하지, 선호도 조사는 하지 않는다. 이런 설문은 세계 정치학계와 언론에서 일반화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명박측 "판 흔들어 동정표 얻으려는 것"
반면 이명박 후보 캠프의 박형준 대변인은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판을 깨겠다는 위협을 통해 실익도 챙기면서 동정표도 얻어 보겠다는 전략이 아니겠느냐"고 일축했다.
박 대변인은 "실제로 박 후보 측이 판을 깨고 나간다면 국민과 여론의 엄청난 질타를 받을 것"이라며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엄포용'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장광근 대변인은 논평에서 "여론조사 전문가위원회는 특정캠프에 치우치지 않은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면서 "(박근혜 캠프 대리인이) 마지막 항목을 남겨 놓고 회의장을 나간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장 대변인은 "'경선거부' 운운하며 반발하는 것은 무슨 의도냐"면서 "이런 식이라면 민주주의의 원칙이 지켜질 수 없다. 경선에서의 세가 불리하다는 점을 의식한 의도적인 행동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라고 받아쳤다.
논란이 거세지자 경선관리위원회는 3일 오전 회의를 다시 열어 관련된 문제를 논의했지만 뾰족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경선관리위는 이 문제를 박관용 경선관리위원장에게 일임키로하고, 박 위원장이 오는 6일까지 각 캠프 핵심 관계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절충을 시도키로 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은 총 23만1386표 중 대의원-당원-일반국민-여론조사를 각각 2:3:3:2의 비율로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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