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형숙 감독의 <경계도시2>는 대한민국 레드 콤플렉스의 실체를 확인한 '송두율 사건'을 담고 있다. 홍 감독은 사건 발생 이후 6년 만에 작품을 내놨다. '나를 경유한 진실'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무엇을 찍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조차 허용하지 않는 상황 속에서 카메라를 내리지 않고 찍어낸 본능에 가까운 행위가" 홍 감독에게 "깊은 회의와 고통, 인간에 대한 이해의 시간"을 요구했던 것이다.
재독 철학자인 송두율 뮌스턴대학 교수는 2003년 9월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37년 만에 귀국을 감행했고, 대한민국 사회는 일종의 허니문처럼 그를 포옹한다.(홍 감독이 말하는 첫 번째 시기) 그러나 귀국 열흘 만에 그는 양심적인 학자에서 '해방 이후 최대 거물 간첩'이 된다. "이 땅에 살기 위해 왔다"는 거듭된 반성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국가보안법상 반 국가단체 가입과 지도적 임무 수행, 잠입 탈출 및 회합 통신 등의 혐의로 그를 구속한다.(홍 감독이 말하는 두 번째 시기)
뒷날 송 교수가 "구속되고 나서야 비로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 틈이 생겼다. 역설 치고는 참으로 지독한 역설"이라고 회고했던 시기, 민주사회 진영은 "(우리 중) 일부도 속으로 송두율 교수를 간첩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게 확인됐다"며 송 교수 석방을 위한 공식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국보법 철폐 운동을 본격화한다.(홍 감독이 말하는 세 번째 시기) 송 교수가 집행유예로 석방된 2004년 7월 21일 그는 "국보법은 법이라고 할 수도 없는 법"이라며 "우리 스스로를 옥죈 관습"이라고 말했다.(홍 감독이 말하는 네 번째 시기)
'송두율 사건'송두율 교수는 해외민주인사들의 입국 규제 조처가 전면적으로 해제되는 분위기에서 2003년 9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귀국을 결심한다. 이에 국가정보원은 1997년 망명한 황장엽 전 김일성대 총장이 송 교수가 "북한 조선 로동당 정치국 후보인 '김철수'와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한 것을 밝히겠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는다. 그렇게 송 교수는 '거물 간첩'으로 국정권과 검찰의 대대적인 조사를 받으며, 한 달만에 구속된다. 이듬해 4월 검찰은 징역 15년을 구형한다.그러나 송 교수는 2004년 5월 항소심 첫 공판에서 정치국 후보위원 및 주체사상 홍보 활동 등에 완강하게 부인한다. 다만 "1973년 처음 방북 당시 노동당 입당 사실과 독일의 한국학술원을 운영하며 북한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한국의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을 인정한다". 2008년 대법원은 송 교수의 혐의 대부분에 대해 무죄로 판결한 항소심 결과를 확정한다. 독일 국적 취득 후 북한 방문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고하며, '송두율 사건'을 법률적으로 마무리 짓는다.
"2003년에 송두율은 스파이였고 2010년 송두율은 스파이가 아니다"
<경계도시2>는 2010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상영됐다. 그러나 관객의 반응은 대부분 "불편하다"였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 9일 홍 감독 인터뷰에 참여한 김다현, 정신영숙, 신태현, 황용운 조합원은 "<경계도시>를 보며 이 시대의 참담함이 느껴졌다"고 했다.
홍 감독은 "<경계도시2>의 애칭이 '술을 부르는 다큐'"라며 "<경계도시>는 무거운 터널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터널을 빠져나오는 데만 6년, 그는 "'어떤 것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그럴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 즉 사람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또 "세상이 복잡한 만큼 단선적인 판단이 선명해 보이고 선명함이 주는 명쾌함이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복잡한 사회에 대한 다층적인 해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당시 광기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상황이었다. 작품 속에서 발언하는 사람들 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 작품에 등장하지 않은 사람들의 몫이 더 크다. 등장한 이들은 어떤 평가가 따르든, 어떤 몫이라도 감당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등장하지 않은 사람들은 ('송두율 사건'을) 관망했다."
홍 감독이 말한 "어떤 몫이라도 감당하려고 애썼던" 이들이 등장한 장면은 <경계도시2>의 하이라이트다. 송 교수 개인의 신념을 존중하면서도 사실상 전향을 권하던 2003년 10월 11일 밤, 개인도 그의 곁에 있던 친구들도 모두 광기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사건 변호를 맡았던 김형태 변호사는 2012년 <한겨레>에 연재한 '송두율 사건' 비망록에서 그날의 기억을 이렇게 적었다.
"새벽 5시, 모임이 아무 결론 없이 깨지고 밤을 새운 우리 7~8명은 퀭한 눈으로 허탈하게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얼마 뒤 송 교수가 단독으로 그 네 가지 안(△노동당 탈당, △헌법 준수, △독일국적 포기, △처벌 감수)을 받아들이겠다는 어려운 결정을 했다.
나중에 여러 기회를 통해,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이 우리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를 정면 돌파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송 교수를 전향시킨 꼴이 되고 말았다는 비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건 좀 도식적이고 그저 듣기 좋은 '멋진 말'이라는 생각이다.
노동당 탈당과 헌법 준수는 '경계인'에 부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수동적 선택이었다면, 독일국적 포기와 처벌 감수는 능동적·공세적 선택이었다.
'보안법으로 처벌받음으로써 이 땅의 분단에 책임을 진다.' 이게 송 교수가 그 안을 받아들인 핵심 이유였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송 교수를 설득했다."
홍 감독은 이에 대해 "해석의 여지가 다양할 수밖에 없는 문제"라며 "<경계도시2>는 '완벽한 진실이라는 게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 교수뿐 아니라 당대에 같이 고민했던 사람들이 사회적 화두로 가져갈 때 진지한 고민이 가능하다"며 "당시에 침묵했던 상황과 이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의 이 같은 고민은 작품 속 내레이션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르는 동안 송 교수 스스로 자신의 책(<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2007년 후마니타스 펴냄))을 통해 당시 사건에 대해 얘기한 것 외에는 아직도 한국사회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상처는 깊고 선명한데 사건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경계인은 더 이상 이 망각의 땅에 살지 않는다. 2003년 송두율은 스파이였고, 2010년 송두율은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송두율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술자리 최고 안주, '한국 정치의 가능성'을 촬영하다
4월 16일 이후, 대한민국을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구분 짓는 이가 늘었다. 정치나 시스템에 대한, 그동안 안전하다고 믿어왔던 기존 질서에 대한 불안 의식이 증폭된 결과다. 여기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레드 콤플렉스'까지 더해져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마저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홍 감독은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 앞 폭식 행위나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 등과 같은 현상이 공산주의에 대한 과민 반응에서 나온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측면에 있어서 비상식,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다. 한편에서는 인상적이면서도 주목할 상황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돌출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하다. 개탄스럽다.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개탄을 넘어 분석하고 이해하고 싶다."
이어 그는 "SNS에서 개탄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숨이 막히는 위험성에 대한 고민, 이 역시도 뛰어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보다 더 큰 위험성은 "(이런 현상이) 문제라는 직시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감독 역시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란 무엇인가'에서 출발해 '한국 정치의 가능성은 실제로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다"고 말했다.
"세월호 국면을 넘어서면서 좌절과 오랜 침잠과 회의가 심각하다. 이 상황에서 항상 나오는 얘기가 '한국 정치의 가능성'이다. 술자리 최고 안줏감이다. 대한민국처럼 정치에 관심이 많은 나라가 없다. 동시에 이 정도로 빠르게 정치와 사회 전반에 실망하는 나라도 없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6.4 지방선거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선거 캠프 내 작전본부였다. "한국 정치의 가능성을 심장부에서부터 집약적으로 묻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 2주, 선거운동이 시작된 기간 동안 긴밀하게 찍었다. 홍 감독은 박원순 후보를 비롯한 모든 이들에게 "한국 정치의 가능성, 있을까?"를 물었다. 그리고 있다면, "도대체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 시민들은 좌절하고 있는데 어디에 있나. 당신들은 정치권 안, 여의도에 있는 사람 아닌가!"라며 직격탄을 날리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그는 내년을 목표로 후반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기획은 2016년과 2017년 총·대선까지 이어질 프로젝트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가능성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캠프 내 신참에 해당하는 수행비서가 있었다. 후보가 갈 곳을 둘러보고, 당일 후보의 동선을 미리 준비해주는 역할이다. 이 친구에게 '한국 정치의 가능성'을 물었더니, "정치가 출구가 없죠. 그렇죠?"라며 동문서답하더라. 이어 고민하는 듯하더니, "그래도 답은 정치인 것 같아요"라고 했다. "정치가 숙제이자 정치가 답 아닐까요?"라고 하는 생각의 흐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훌륭하다는 선배 정치인들보다 신선했다."
제도적 민주주의가 작동하고 있지만 의식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냉전체제에 머물러 있는 현실에서 송두율 교수가 귀국했던 2003년, "그래도 답은 정치"라고 말하는 청년 정치인이 있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송 교수 본인이 꿈꾸던 '경계인' 또는 '화해자'로 그는 독일이 아닌 남한에서 살고 있을까?
송두율 교수의 오랜 지인이자, 2003년 송 교수 귀국길에 동행했던 박호성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당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연구소장)는 최근 출간한 책 <지식인>(글항아리)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이렇게 역설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오늘날 귀도 그루지에로의 수사처럼, 그 "해악"이 "양(quntity)의 승리"가 아니라 "저질(bad quntity)의 승리"라는 식으로 손가락질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차원에서 민주주의는 대체로 '정부를 어떻게 선출할 것인가', 그리고 '그 정부는 누구에게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한정된 의미로만 이해되는 편협한 시각에 사로잡힐 때가 잦다. (중략)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시도는 "최초의 민주주의"를 고안해냈던 고대 아테네인들처럼, "가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위험성이 상당히 높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적"은 바로 두려움을 양육하는 "무지"와 또다시 무지로 이어지는 "두려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 <지식인>, 제2부 한국 지식인의 시대적 좌표 '공동체 민주주의' 중에서 -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전'에 소개된 다큐멘터리 감독을 매월 인터뷰합니다. 홍형숙 감독은 김태일, 태준식, 경순 감독에 이은 네 번째 주인공입니다. 27일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경계도시>(2002), <경계도시2>(2010)가 상영됩니다.
다큐 감독전은 '신나는다큐모임'과 독립 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기획했으며, 해당 감독의 작품은 오는 12월까지 매월 둘째·넷째 주 월요일 오후 6시와 8시에 상영됩니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http://indiespace.kr/1884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