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아시안게임 폐회식에 북한 실세 3인방이 참석하면서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비록 지난주에 서해와 경기도 연천 비무장지대 인근에서 총성이 울렸지만, 이제는 남북관계를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아마도 '잃어버린 7년' 동안 쌓인 숙제를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가운데에는 중단된 지 6년을 훌쩍 넘긴 금강산 관광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인천 아시안게임을 치르면서 또 하나의 숙제가 우리에게 던져졌다. 대회 유치 당시 안상수 전 인천시장은 "20조원의 경제효과를 유발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결과는 2조원이 넘는 빚 잔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묻는다. 3년 4개월 앞으로 다가온 평창 동계 올림픽은 다를 수 있을까?
인천 아시안게임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북한 응원단이 왔다면'이라는 탄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북측 응원단이 왔다면 국민적, 국제적 관심은 크게 고조되었을 것이고, 남북공동응원단 구성 움직임도 탄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남측 정부에서 북측 응원단의 규모와 국기의 크기 등 ‘국제관례’에도 없는 문제를 제기하고, 북한이 응원단 파견을 취소하면서 흥행 참패는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원도 전역에서 열리는 평창 올림픽은 바로 인천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대회 예산으로 모두 9조 원 가량이 투입될 예정인데, 이 가운데 인프라 예산이 7조 원 가까이나 된다. 인천시가 큰 빚을 자초한 이유가 바로 16개의 경기장 신축에 있었다는 점에서 평창 조직위는 인프라 예산을 대폭 조정하는 것부터 검토해야 한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남북관계와 지역적인 특수성이다. 인천과 마찬가지로 강원도도 북한과 접경 지역이다. 이는 올림픽의 성공 여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어떻게 푸느냐에 크게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금강산 관광 사업이 있다. 남북한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명산인 설악산과 금강산을 관광권으로 연결하면 그 시너지 효과는 대단히 클 것이다.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행사의 성패는 해당 지역의 관광 자원이 얼마나 풍부한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는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 및 설악산과의 연계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설악산-금강산 연계 관광 프로젝트는 박근혜 대통령이 야심차게 제안하고 있는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과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설악산 북쪽과 금강산 남쪽은 고성군에 걸쳐 있다. 남북을 잇는 도로도 이미 멋지게 닦여 있다. 또한 동해선 철도도 연결되면 남북한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유라시아 대륙까지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를 연결할 수 있다. 이것도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일환이다.
생각해보라. 남북한의 명산이 단일 관광권으로 묶이고 도로와 철도까지 DMZ를 관통할 수 있다면, 이게 DMZ 평화공원이 아니고 뭐겠는가? 평창 올림픽을 찾은 국내외 손님들이 경기를 관람하고 설악산을 구경하고 차량이나 기차를 타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내려서 DMZ 평화공원을 둘러보는 것이야말로 평창 올림픽의 대박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박근혜 정부는 이미 보이는 길 앞에서 계속 주저하고 있다. 10월 7일 통일부가 밝힌 입장이다. “금강산 관광 재개는 북한 핵문제에 대한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의 심각한 우려가 있다는 점 등에 유의해야 한다.” 쉽게 말해 금강산 관광 대금이 북한의 핵 개발에 전용될 수 있는 만큼 이러한 우려가 해소되어야 관광 재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데 몇 가지 짚어볼 대목들이 있다. 우선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및 이와 관련된 미국의 입장이다. 대북 제재를 책임지고 있는 미국 재무부의 고위 당국자는 8월 21일 이렇게 말했다. "금강산 관광이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관련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어떻게 끌고 가려는지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건 당연한 얘기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2094호는 '대량 현금(bulk cash)'의 북한 유입을 금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이 조항을 들어 금강산 관광 재개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안보리 제재는 정상적인 상업 거래까지 금지하지 않는다. 안보리 상임이사국들로 제재 결의에 찬성했던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근거로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조차도 독자적인 대북 제재 해제는 안보리와는 무관하다며 일부 제재를 해제했다. 금강산 관광 중단 역시 유엔이 요구한 것이 아니라 관광객 피격 사건에 대한 보복조치를 남한 정부가 독자적으로 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 제재 해제 여부는 남한 정부가 독자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두 번째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과의 관련성이다. 북한에 지급됐던 관광 대금은 연간 4천만 달러(약 440억 원) 수준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관광 대금은 정부가 주장하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비용에 '새 발의 피' 수준에 불과하다. 일례로 정부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는데 8억 달러 정도가 들어간다고 추정한 바 있다. 이 추정에 따르면 북한이 1년간 벌어들인 금강산 관광 대금 전액을 로켓 발사에 사용했다고 가정하더라도 5%에 지나지 않는다. 더 중요한 문제는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이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점이다. 관광 사업이 이뤄졌던 1998년 11월부터 2008년 7월까지 북한은 한 차례의 핵실험과 한 차례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했다. 반면 관광이 중단된 이후에는 두 차례의 핵실험과 세 차례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했다.
끝으로 '때린 주먹이 더 아픈 현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통일부에 따르면, 금강산 관광이 시작된 1998년부터 중단된 2008년까지 11년 동안 관광 대가로 북측에 약 5000억 원이 지급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관광 중단 이후 남측이 입은 피해는 이보다 훨씬 크다. 6년 동안 해당 기업의 매출손실과 시설투자금 손실, 그리고 고성의 피해를 모두 집계하면 1조 3천억 원 안팎에 달한다. 기간 대비 남측의 손실 규모가 북측의 3배에 달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대안으로 관광 대가를 현금이 아니라 현물로 지급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모양이다. MB 정부 때부터 간헐적으로 나왔던 얘기다. 그러나 이건 북한의 받을 가능성도 낮고 상거래 규칙에도 어긋난다. 지금이 물물교환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북핵을 없는 문제처럼 취급할 수는 없다. "북핵이 통일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거나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게 정부의 금강산 관광에 대한 태도까지 정당화시켜주지는 않는다. 남북관계에는 북핵 말고도 풀어야 할 숙제들이 너무나도 많다.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는 6자회담을 중심으로 다뤄야 할 사안이다. 북한도 조건 없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고 하지 않는가?
하여 박근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을 열어 평창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DMZ 평화공원의 초석을 놓으면서 6자회담의 문도 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 이 글은 경향신문 10월 9일자에 기고한 칼럼을 크게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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