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을 거듭하던 국회가 세월호 참사 167일 만에 ‘정상화’되었다.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한 구조마련이라는 유족들과 시민사회의 염원과 외침을 뒤로 한 채 90개 법안이 처리되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시선을 끄는 두 개의 결의안이 있었다. 하나는 ‘외교 통일위원회’가 여야 합의로 채택한 ‘일본 정부의 고노담화 검증 결과 발표 규탄 결의안’이고, 다른 하나는 ‘동북아 역사 왜곡대책 특별위원회’가 채택한 ‘아베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결정에 대한 규탄 결의안’이었다. 때 늦은 감이 있으나 대한민국의 민의를 대표해야 할 국회가 아베정권의 집단적 행사결정을 규탄한 것은 의미가 깊다.
조롱받는 평화
왜냐하면 아베정권의 막장외교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정권은 ‘무기수출 3원칙’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수상이 중의원에서 공산권, 국제연합 결의 등에서 무기수출이 금지되어 있는 국가, 국제분쟁의 당사국 또는 그 우려가 있는 국가로의 무기수출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데서 비롯한 무기수출 금지 원칙을 ‘방위장비 이전 3원칙’ 국제평화와 안전유지에 명백히 지장을 줄 경우 방위장비 수출 안 함, 평화공헌과 국제협력의 적극적 추진이나 일본의 안전보장에 관련되면 수출인정, 방위장비나 물건 등의 제3국 이전의 사전동의로 바꾸어 그간 금지했던 무기수출을 사실상 허용하려 하고 있고, 평화헌법하에서 당연히 행사할 수 없다던 집단적 자위권금지 입장을 바꾸어 이를 제한적이지만 허용하는 쪽으로 방향전환하고 있다.
이런 막장외교는 어떻게 보면 그렇게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지난 2012년 재등장한 아베 신조 일본총리가 새로이 취임한 후 짧은 기간에 보여준 수많은 예고편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인 2013년 5월 12일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인 미야기현 히가시마쓰시마(東松島)시의 항공자위대 기지를 방문하면서 아베총리는 ‘731’이라는 편명이 적힌 훈련기의 조종석에 앉아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린 환한 포즈로 사진을 촬영했다. ‘731’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인간 생체실험을 했던 일본 관동군 산하 세균전 부대 731의 그 731이 아니었던가. 올 2월 12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나카야마 나리아키라는 국회의원으로부터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담은 기획전이 전시되고 한국 여성가족부가 일본군 위안부 추모 기념일을 제정하는 데 대한 견해를 묻자, "잘못된 사실을 열거해 일본을 비방·중상하는 것에는 사실을 가지고 냉정하게 반론하겠다"고 답변했지 않았던가.
원래 평화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 하의 일본외교의 근간은 평화와 선린외교이다. 이는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의 논리로 삼국동맹을 맺고 급기야 이를 행사하여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무대에 복귀할 수 있었던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급기야 이를 내팽개치고 오히려 마음껏 조롱하고 있다.
자위력론의 구조와 기능- 집단적 자위권의 부정
1946년 제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일본 헌법은 평화와 선린외교의 약속문서이다. 전범인 일왕을 처벌하지 않는 대신 평화창조를 위한 선린외교에 전념하도록 군사력을 포기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약속을 지킬 것을 헌법이라는 문서로 약속하고 국제사회에 복귀한 것이다. 주권자인 일본 국민들도 지난 68년간 그 약속을 지키는 일에 고군분투하여 그간 글자 한 자의 수정도 허락지 아니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아시아의 국가와 시민사회도 이에 일조하여 엄한 눈으로 이를 견제했다.
그래서인지 일본 정부는 재무장을 하면서도 이를 군대라 하지 못하고 자위대라고 하였으며, ‘자위를 위한 필요최소한의 실력’(1954년 일본정부 통일견해)은 일본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군사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여 왔다. 그 결과, 개별적 자위권을 논리적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군사력을 포기한 헌법하에서 행사할 수 없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집단적 자위권은 당연히 인정되지 않았다(1980년 이나바 의원의 질의에 대한 정부답변). 그리고 필요최소한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해외파병이나 교전권의 행사도 인정되지 않았다. 자위대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동시에 자위대의 군사화를 제약하는 측면을 가지고 있었으며, 백보양보하여 자위대를 군사력이 아니라 ‘자위를 위한 필요최소한의 실력’이라는 정당화의 논리를 인정하더라도 바로 그 자위대 정당화논리의 핵심은 개별적 자위권행사의 용인과 집단적 자위권행사의 부인이었다.
일본정부는 1960년 미국과의 새로운 안보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도 안보조약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없음을 확인하였다. 그 결과, 한미상호방위조약과는 달리, 미일안보조약에는 편무적인 형태의 공동방위가 규정되었다. 미국은 일본에 대한 공격에 대하여 공동대처하지만, 미국에 대한 공격에 대해 일본은 공동대처하지 않도록 하였다. 대신에 일본은 미국에 기지를 제공하였다. 다만, 일본영역에 있어서의 미국에 대한 공격에 대하여 대처할 수 있을 것인데 이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가 아니라 일본에 대한 침략에 해당하므로 개별적 자위권의 행사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막장외교의 꽃놀이패 집단적 자위권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아베정부가 줄달음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 찬성파 일색인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를 구성하여 이들로 하여금 2014년 4월까지 집단적 자위권보장 최종보고서를 제출하게 하고 정기국회가 끝나는 6월까지 우리나라의 국무회의에 해당하는 ‘각의’에서 이제까지의 일본정부의 공식견해를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만일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가 가능하다고 헌법해석을 변경하면 절차적으로도 실체적으로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체적으로는 일본 헌법 9조를 삭제를 의미하게 된다. 현행 헌법은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교전권을 부인하는 한편, 이를 위해 군사력을 포기할 것을 규정하고 있는데,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게 되면, 자국이 침략 받지 않은 경우에도 교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어 헌법 9조가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9조를 삭제하는 개헌이 되는 셈인데, 개헌을 위해서는 특별한 의결정족수(중참의원 2/3의 찬성, 국민투표 과반수 찬성)가 필요하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해금을 위한 해석변경은 절차적으로도 탈법행위인 것이다.
일본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분명한 고의사고를 치고 있는 셈이다. 그 이유의 하나는 개헌절차를 강행하는 데 대한 부담일 것이다. 현재 일본 국회는 중참의원 모두 2/3 이상이 자민당 또는 자민당과 연립한 정치세력이다. 다만, 명문개헌을 추진하려고 하다 보면 정치적 이탈자가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과반수도 개헌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개헌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간 미일안보조약에 대해 대체로 현상 긍정적이었던 여론이 20%이상 빠지고 있는 것도 큰 부담일 것이다.
그럼에도 집단적 자위권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은 우선은 자위대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내놓을 수밖에 없었던 자기족쇄를 풀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이러한 정치적 논란구도(프레임)가 가져올 부수적 이익이 정치적 부담에 비해 훨씬 더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까지의 평화헌법논란이 자위대가 위헌이냐 합헌이냐 즉 자위대가 군대냐 ‘필요최소한의 실력’이냐를 가지고 전개되었다. 그러나 집단적 자위권 논란에 휘말리다보면, 개별적 자위권 행사를 전제로 다른 나라와 동맹하여 이를 행사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국면전환이 되기 때문이다. 집단적 자위권 논란의 중간역은 아마도 제한적 집단적 자위권론이 될 것이다. 집단적자위권은 행사할 수 있되, 헌법의 정신에 비추어 제한적으로 행사하도록 할 것이고, 만일에 국민적 저항에 부닺혀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자위대에 의한 개별적 자위권은 이미 기정사실화될 것이다. 그리고 자위대의 행동반경은 더욱 넓혀질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는 것 같다.
집단적 자위권은 주권국의 권리 아냐
이에 대한 주변국의 태도는 한심한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가장 가까운 주변국의 모 국방장관께서는 남의 일이라고 쿨 하게 말씀하셨단다. 2012년 2월 10일 “집단적 자위권 추진은 일본의 자체적인 문제”이며 추진의 문제는 일본이 결정할 문제라고 하였다고 한다.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집단적 광란을 벌써 잊었던 말인가. 하긴 일본 자위대와 함께 이런저런 집단적 자위훈련(레드플래그 알래스카 등)에 참여한 마당에 쿨하지 않은 척 말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언론의 태도도 문제이다. 모 언론에서는 집단적 자위권이 “주권국가가 보유한 권리”라고 하면서 “의심만으로 반대하기 어려워”라고 한다. 그러나 집단적 자위권은 전쟁위법화시대에 있어서는 더 이상 주권국가의 권리이지도 않다. 무력사용을 위법한 전쟁으로 보지 않겠다는 위법성 조각사유에 불과하다. 물론 유엔헌장 51조에서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문제가 많은 유엔헌장조차도 집단적 자위권과는 의미내용이 완전히 다른 안전보장체제 즉 집단안전보장체제의 구축을 염두에 두고 있다. 외부의 적에게 동맹을 맺어 무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집단적 자위권 구상과도 원리적으로 다른 것이다. 집단안전보장체에서도 무력 사용의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닌데 이때의 무력의 사용도 외부의 적이 아닌, 체제내부의 약속 위반자에 대한 제재이며, 비군사적 조치를 우선으로 하되 보충적으로 군사적 제재를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체제 외부의 약속위반자에 대한 제재를 내용으로 하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도 원론적으로는 과도기적이며 잠정조치에 불과하다.
막장외교의 끝은 조롱과 저항일 것이다. 자민당의 무라카미 세이이치라는 9선의원 조차도 집단적 자위권행사를 ‘각의결정’을 통해 변경하는 것을 합법적으로 나치가 들어서는 것이라고 비유했다고 한다.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의 시대정신이 위협받고 있어 시민들이 시위운동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고 한다. 일본의 여성단체인 ‘전일본 아줌마당’에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아베 신조 정권의 질주가 징병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각성을 촉구하여 큰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
집단적 자위권과 사드(THAAD)
우리의 시민사회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지난 9월 12일에는 한국 진보연대, 평통사 등 53개 단체 공동으로 ‘일본 재무장 반대 시민평화행동’이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사)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이하 겨레하나, 이사장 성유보)는 그보다 앞선 지난 6월 24일(화) 오전 10시 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 즉각 중단하라’는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의 역사왜곡과 재무장에 반대하는 100만 시민행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미사일방어체제(MD)를 추진하면서 일본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군사력 강화를 요구해왔다는 점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동북아시아의 미사일방어체제(MD) 전면화, 군비 경쟁 체제로 이어지게” (기자회견문 중)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데, “동북아시아에 군사적 갈등과 영토분쟁을 고조시키며 한반도와 아시아의 평화와 신뢰를 뒤흔드는 집단적 자위권 추진은 즉각 중단돼야한다”(같은 기자 회견문 중)는 주장에 공감이 실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월 21일자지지(時事)통신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도 탄도미사일을 정확히 추적하고 요격하기 위해 사드(THAAD: 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고고도 미사일방어)와 지상 기반 '스탠더드 미사일(SM-3)' 시스템인 '이지스 어쇼어(Aegis Ashore System)'에 대해 미 당국과 협의를 시작했다고 한다. 대륙간 탄도미사일과 같이 고고도로 날아가는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강화된 미사일방어체제(MD)의 구축을 명분으로 사드가 일본에 도입된다면, 일본과 미국이 물고를 트고자 하는 집단적 자위권논의가 동북아의 긴장고조와 군비경쟁의 새로운 도화선이 될 것임은 묻지 않아도 명확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널리 알려지고 있지 않지만, 지난 6월 3일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도 사드의 한반도 배치 검토사실을 공개한 바도 있다. 한미일 군사협력이 사드를 서로 손에 쥐어 들고 한미일 군사동맹이라는 집단적 자위권의 밑그림을 강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또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과 동시에 추진되고 있는 한미일간의 군사정보 교류협정 체결 도 심각한 문제다. 한미일 군사정보 교류협정 체결은 그간 말도 많았던 미사일방어체제(MD)를 뒷받침하는 도구가 될 수 있으며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과 재무장에 힘을 실어주는 꼴이 될 것인데, 우리 정부의 대응은 무엇인지 갑갑하기만 하다.
사상가 아베, 정치인 아베
아베 정권이 꽃놀이패 삼아 조롱하는 동북아 평화, 과거사에 대한 막장외교에 대해 판독불가 평판이 자자하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달리하여 최소한 판독은 가능 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아베정권의 행보를 타협과 여지를 두고 자기주장을 펼치는 정치인, 정치집단의 행보라 보았기 때문에 혹시 판독불가 판정이 내려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베정권의 행보를 극우적인 사상가 집단의 행보라고 보면, 진실과 역사에 대한 외면은 물론 타협과 여지도 두지 않는 행보가 나름대로 판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책임과 평화주의라는 시대정신을 담아 성립한 일본의 평화헌법은 극우적인 사상과 집단과 어울리지 않는다. 평화헌법은 역사적 진실 앞에 겸허하고 타협과 이런저런 여지를 둔 정치인과 부합한다. 열린 정치인까지를 기대하지 않더라도.
아베식 정치에 의해 일본의 시대정신만 위협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의 시대정신 특히 전후의 평화주의적 시대정신이 위협받고 있다. 남의 일이라고 무관심으로 가만 내버려 둘 것인가. 평화적 상상력의 출발은 우선 관심이다. 평화를 조롱하고 있는 일본 정부가 참으로 지겹고 한심하더라도.
일본 정치에도 당면한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2015년 4월, 일본 정치는 통일 지방선거를 맞고 있다. 선거의 계절을 앞두고 일본 정부도 몸을 사리고 있는 듯하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에 대한 각의결정 후 거듭된 국내의 저항 등을 고려하여서인지, 집단적 행사 계획을 반영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인드라인) 개정시기로 연기하였다는 방침도 들려온다.(9월26일 교도통신).
동아시아 시민의 각성과 협동이 필요한 때 아닌가 생각해 본다.
* 이 글은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의 ‘2014년 평화상상’에 실린 글(2014년 4월17일)을 수정가필한 것임을 미리 밝힙니다..
(1) 1967년 사토 에이사쿠 수상이 중의원에서 공산권, 국제연합 결의 등에서 무기수출이 금지되어 있는 국가, 국제분쟁의 당사국 또는 그 우려가 있는 국가로의 무기수출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답변한데서 비롯한 무기수출 금지 원칙.
(2) 국제평화와 안전유지에 명백히 지장을 줄 경우 방위장비 수출 안함, 평화공헌과 국제협력의 적극적 추진이나 일본의 안전보장에 관련되면 수출인정, 방위장비나 물건 등의 제3국 이전의 사전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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