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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노동'과 '마을지갑'을 함께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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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노동'과 '마을지갑'을 함께 꿈꾼다

[마을주의자]<19>장수 좋은마을 '마을인문운동가' 이남곡

문제가 심각하다. 대학마저 재벌의 손아귀에 속속 넘어가고 있다. 재벌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첨병이자 충복이다. 이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학교에서 참된 교육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요즘, 돈이 되지 않는 '문‧사‧철' 인문학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 인문학 강좌나 학과가 속출하고 있다. 어느새 인문학과 인문학자는 거리로 밀려나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홀대받고 천시받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인문학이 사라진 세상엔 차갑고 딱딱한 물질만 남는다. 인간의 온기가 사라진다. 이해득실만 따지는 셈법 기술만 발달한다. 어느덧 이 나라에서는 정신과 가치보다 물질과 돈이 숭상받고 있다. 심지어 철저한 이기주의로 무장한 출세욕, 권력욕이 국정의 최고목표처럼 여겨지고 있다. 국민들마저 물욕을 인생의 최우선가치이자 지상과제로 떠받들고 있다. 마침내 경제적, 물질적 이해득실 관계를 우선 따져 국가지도자를 선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망국병이 중증이다.

그러나 인문학은 아직 죽지 않았다. 학교와 사회에서 쫓겨난 인문학은 마을로 내려가 새 터전을 찾기도 한다. 마을공동체를 지키는 '마을주의자'들은 인문학을 대하는 관점이 남다르다. 그저 학습의 주제나 과목을 넘어서 생활의 방편이나 좌표로 삼기도 한다. 가령, 전남 영광 묘량면에서 여민동락 공동체를 이끄는 강위원 대표살림꾼도 그런 경우다. 인문학을 통해 살기 좋은 마을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마을인문학의 실천에 앞장서고 있다.

"인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궁극적 목적은 살기 좋은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나를 반듯하게 세워 마을공동체를 이롭게 하는 것, 나의 인성을 통해 공동체를 아름답게 하는 것, 이것이 마을인문학이다. 인문학 마을 만들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인문학을 통해 개인과 가족을 넘어 공동체의 최소 단위인 마을에서 사람 사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마을공동체 회복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지자체는 주민이 직접 마을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인문학적 자원을 발굴해 이를 공동체 활성화 사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돕는다. 그리고 지역의 사회단체, 학습동아리가 생활에 밀착된 풀뿌리형 인문학사업을 스스로 기획해 운영하게 한다."

▲ '좋은마을'의 꿈을 꾸고 그림을 그리기 위한 마을공동체 학습 연찬회. ⓒ정기석

'조직'과 '의식'이 마을 살이, 함께 살기의 열쇠

영광의 사례뿐 아니다. 이른바 마을공동체 사업을 열심히 실천하고 있는 전국 지역마다 '마을인문학' 교실이 성황을 이루고 있다. 농업경제학이나 토목학, 관광학이나 ICT융복합공학이 아닌 인문학이, 결국 마을과 세상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공감대가 확산되고 심화되고 있는 뚜렷한 징후다.

장수 유정리 좋은마을은 이같은 '마을인문학'의 거점이라 할 수 있다. '인문운동가', 이남곡 선생(69세)이 논실마을학교와 연찬문화연구소를 꾸리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통해 마을과 세상을 치유하려 동서고금의 인문학을 아우르며 동분서주 현장의 강단을 누비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 사는 일은 어려워요. 그것도 남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은 참 어렵지요. 지난 8년여의 화성 야마기시 무소유공동체, 10년여의 장수 좋은마을 공동체 생활을 통해 깊이 절감했어요. 그 세월을 거치면서 '마을 살이' 또는 '마을공동체'를 제대로 하려면 세 가지 덕목은 필요하다는 각성이 들었어요.

먼저 '조직'이 문제예요. 조직을 꾸려가는 시스템, 규범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혼자 할 수도 없고, 저마다 제멋대로 할 수는 없으니까요. 둘째는 '의식'인 것 같아요. 함께 사는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 거리라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바로 그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가령 도덕운동이 아닌 자각으로서의 인문운동이 생활현장에서는 더 절실하다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먹고 살아야 하니, 친환경농사나 농식품 가공 같은 사업도 잘 경영하고 관리해야겠죠."

그런데 이 모든 덕목이나 조건이 누가, 누구를 가르쳐서 될 일은 아니라는 게 이남곡 선생의 깨달음이다.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조화롭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이른바 마을공동체사업을 하는 마을마다 성문화된 자치규약이니 정관이니 만들어놓고 결의에 차서 일을 시작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게 아무런 소용이 없이 사문화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게 사실이다. 만일 지키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묘책을 구할 수 없는 것이다.

"장수 좋은마을만 해도 정해진 규칙이 없어요. 사실 '좋은마을'이라는 이름도 생산하는 된장, 고추장의 브랜드일 뿐 일정한 틀을 정해놓은 마을공동체를 가리키는 이름은 아니거든요. 마을에서는 누가, 누구를 가르치거나, 누가, 누구를 먹여 살리거나 하는 약속이나 지시는 없어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법이나 정관 같은 것에 속박될 수 있는 영농조합법인이나 협동조합도 좀 조심스러운 입장이지요. 그런데 그런 규칙이나 법인격이 없이 개인으로, 농가로 모여도 된장, 고추장 만들어서 3~4가구가 함께 일하고 먹고 사는 정도가 됐어요. 자연스럽게, 조화롭게 말이죠."

이른바 이 선생의 '운동 경력'은 서울대 법대생 시절 민주화 운동에서 시작된다. 이후 줄곧 사회변혁 운동판을 떠나지 않았다. 남민전 사건으로 4년여 투옥될 정도로 치열했다. 20~30대 8년여의 농촌 지역의 교사운동을 시작으로 30~40대의 불교사회연구소를 통한 신문명 대안사회 운동, 50대의 8년여 화성 야마시기 무소유공동체 생활, 60대 장수 좋은마을에서 10년여의 보편적 마을운동으로 줄기차게 이어졌다.

특히 장수 좋은마을과 인연은 운명적이었다. 이 마을과 개인적인 연고나 사연은 전무하다. 2003년 화성 야마기시 실현지에서 8년 공동체 생활을 접고 나오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마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도 고립감이 있고 소통이 안 되니 적당히 거리가 있으면서도 작고 독립적인 마을'을 찾다 만난 곳이 장수 좋은마을이다.

'좋은 마을'이란 소유와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운 곳

▲ 인문운동가 이남곡 선생. ⓒ정기석
"'좋은 마을'은 일단 자유로운 곳이죠. 집착이 없는 곳. 더욱이 공동체 생활은 무소유와 무아집이 중요하다고 봐요. 미처 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동체의 정신이나 관념만 내세우는 이들에게는 부지불식 간에 부자유, 허위의식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굴레에서 일단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사람 살기에 '좋은 마을'이라고 할 수 있죠. 무엇보다 좋은 마을은 '좋은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봐요. 좋은 욕구는 '행복해지기 위한 욕구'라 할 수 있어요. 그래야 '좋은 생산', '좋은 소비'도 가능할 테고요."

그는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논어, 공자 공부를 예순 넘어 시작했다. 젊은 시절엔 논어나 공자에 대한 반감이 깊었다. 보수적이고 완고한 틀의 상징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마을에서 더불어 살다보니 자꾸 얽히는 이해관계, 소통방식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방법으로 논어, 공자 공부를 택했다. 사람마다 다른 심층의 의식이나 가치관이 서로 소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2년 동안 '논어 읽기 연찬'을 한주도 거르지 않았다. 여기서 그가 정의하는 '연찬'이란 어떤 것에 대해서도 단정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진리인가, 어떤 것이 가장 옳은 것인가를 끝까지 함께 탐구하는 과정이다. 가장 중요한 연찬 태도는 상대의 말을 그대로 듣는 것이다. 범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수련의 과정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 선생은 스스로 '인문운동가'를 자처하고 있다. 이른바 '신 인문운동'을 주창하고 있다. 공동체보다는 단순 소박한 삶의 가치를 회복하는 생활혁명운동이 일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적어도 절대 빈곤과 독재에서는 벗어났지만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길인지, 어떤 게 진정한 자유인지,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해요. 인문학에서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려고 하는 거죠.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관념적 유희나, 지적 사치로 빠질 수 있어요. 결국 자기를 넘어서서 의식과 생활을 변화시키는 차원의 운동이어야만 해요. 전쟁, 환경, 빈곤 등의 문제는 제도와 물질만으로는 해결이 안 돼요. 그래서 신인문운동이 필요한 거죠."

협동조합과 마을공동체는 인문운동과 결합해야

그는 마을공동체운동, 협동조합, 사회적경제 같은 협동과 연대에 바탕을 둔 사회변혁 운동이 우리 사회에 잘 뿌리내리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걱정도 적지 않다. 실천현장에서 '구동존이(求同尊異)와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덕목을 지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구동존이’는 ‘먼저 서로 같은 것을 찾아 의견을 모으고, 다름에 대해서는 서로 존중한다’라는 뜻이죠. 다름에 대해서 적대적 마음이 아니라 관용과 받아들임(恕)의 마음이 되는 상태를 의미하지요. ‘실사구시’는 ‘알게 모르게 오래되어 굳어진 관념에서 벗어나 '사실이 무엇인가?'하고 물어가서 어디까지나 그 바탕에서 탐구하고 일을 처리하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말의, 뜻이 어려운 게 아니라 현실에서 실천하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그래서 "협동조합이나 마을운동은 인문운동과 결합할 때 그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단언한다. 협동조합을 동업에 비유한다. 사회통념상 동업은 권하고 싶지 않은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이라는 것이다. 또한 "관(官)의 성과주의와 민(民)의 지원 기대심리가 만나는 것은 협동조합으로 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라며 경고한다. 최근 협동조합 기본법, 사회적경제 기본법의 재‧개정 과정을 지켜보면서 괜한 걱정이 아니라는 공감이 있다.

"우리에게는 두레나 계와 같은 협동과 공동체의 전통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그런 협동조합의 가치는 남아있지 않아요. 협동조합이나 공동체의 기반이 매우 취약한 거죠. 그래서 협동조합이나 마을공동체를 사업적으로만 접근하는 정책이나 제도는 불안해보여요. 구체적 삶과 사회적 실천과 결부되는 ‘인문운동’과 결합해야 한다고 봐요."

이 선생은 그래야 "물신(物神)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자기중심성을 넘어서는 의식의 진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그게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증대시키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문학이라야 마을과 세상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고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장수 좋은마을의 '좋은 생산' 장독대. ⓒ이남곡

'자유노동'과 '마을지갑'을 함께 꿈꾸자

어쩌면 그가 그리는 마을의 설계도를 들여다보면 '가족 단위의 개별경영'이 적합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협동조합이나 마을공동체처럼 그보다 더 나아간 경영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은 말리고 싶은 것이 솔직한 그의 심정이다. 단, 그것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거기에 머물지 않고 보다 사람의 냄새가 나는 마을, 산업사회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산업사회 이후의 마을을 그려보는 것이다. 그는 이런 마을을 실현하려면 두 가지 방식을 실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역시 혁명적이다. 발상의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자유노동’을 실천하는 겁니다. 말 그대로 대가를 생각하지 않는 노동이 마을 생산력의 한 부분으로 되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그 행위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죠. 이때 자유노동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비난하거나 서로 비교하는 마음이 생긴다면 안 하는 게 낫죠."

그리고 그는 공동의 ‘마을지갑’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모든 가족은 각각의 지갑을 갖는데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제하고 남는 것을 ‘마을지갑’에 넣는 것이다.

"여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자유의사죠. 유형‧무형의 강제나 비교가 없는 것을 말해요. 사람들의 의식이 나아가는 만큼, 마을의 생산력이 나아가는 만큼 지갑은 커지겠죠."

그의 전망대로라면 자유노동과 마을지갑이 커지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마을의 시스템은 변화되어갈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보다 쉽게 그들의 의식을 고양시키게 될 것이다. 이 선생 자신도 고백하듯 아직은 꿈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이러한 마을들의 네트워크가 하나의 국가 단위, 더 나아가 세계 단위로까지 확대되는 것을 꿈꾼다. ‘자유노동’의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고도로 발전된 컴퓨터망의 유쾌한 움직임. 풍성한 ‘세계의 지갑’에서 물 흐르듯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는 물자의 흐름. 그리고 사랑과 평화가 강처럼 흐르는 마을과 세상을.

"오늘 문득 '인연'이 생각납니다. 예순이 될 때까지 한 번도 지나간 일조차 없던 장수 번암에 와서 10년째 살고 있습니다. 아내도 이곳에서 떠나보냈죠. 인연이 곧 운명입니다. 좋은 인연, 나쁜 인연, 협력할 인연, 싸워야 할 인연, 시절 인연, 이 땅에 함께 태어난 인연… 모두가 한 하늘을 이고 살아야 할 인연입니다. 운명입니다. 운명은 받아들이는 것만큼 자유로워집니다. 운명을 바꾼다는 말도 하지만, 출발은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변혁하고 때로는 사랑하고 때로는 헤어지고 때로는 미워도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것이 '대긍정'입니다. 그 바탕에서 앞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운명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이남곡 선생은 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집과 마을을 나서 길 위에 선다.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마을에 함께 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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