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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역주행, 한반도 나비효과

[정욱식 칼럼] 미국, 1조 달러 규모의 핵무기 현대화 착수

오는 9월 26일은 유엔이 정한 ‘핵무기 폐기를 위한 국제 행동의 날’이다. 작년 12월 유엔 총회는 9월 26일 ‘핵군축에 관한 유엔 고위급 회담’의 결과를 받아들여 이 날을 국제 행동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올해는 그 첫 번째에 해당된다.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핵보유국이 조속하고도 구체적인 핵무기 폐기에 착수하라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그런데 이 날이 다가오면서 접한 소식 가운데 하나는 눈과 귀를 의심케 한다. 9월 22일자 <뉴욕타임즈>가 “미국이 앞으로 30년에 걸쳐 약 1조 달러를 투입해” 핵무기 현대화에 착수키로 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특히 이러한 계획은 2009년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하면서 노벨 평화상을 선불(?)로 받았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승인에 따른 것이어서 더욱 씁쓸함을 자아낸다. 임기 첫 해에 ‘핵무기 없는 세계’를 주창해 지구촌을 열광케 했던 오바마가 임기 말이 다가오면서 오히려 핵 군비경쟁의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이러한 방향 전환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면서 악화된 미러 관계, 중국의 부상, 파키스탄의 핵전력 강화, 북한의 핵무장, 이란 핵문제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특히 미·러관계의 악화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오바마 행정부 1기 때 백악관 핵비확산 참모를 지낸 개리 사모어는 “가장 근본적인 게임 체인저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며 “이는 미국이 핵무기를 일방적으로 감축하는 것을 정치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미국이 핵무기 산업의 기반을 되살려 러시아와 군비경쟁이 재점화되더라도 충분히 앞서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게 미국 내의 분위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핵무기 현대화는 대외 관계 못지않게 국내 정치적 타협의 결과이다. 아니 이게 더 본질적인 요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화당과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2009년 미·러간의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비준 논란 때, 오바마 행정부로부터 핵무기 현대화 예산을 배정하겠다는 약속을 받고서야 이 협정 비준에 동의한 바 있다.

그 배경은 당시 민주당 소속으로 핵무기 현대화를 강력히 주장했던 라마르 알렉산더 상원의원이 “수천개의 일자리를 만들게 되어 기쁘다”고 말한 것에서 잘 드러난다. 다른 무기 산업과 마찬가지로 핵무기 산업 역시 지역구의 일자리 창출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인 것이다.

최근 오바마 행정부가 의회에 제시한 액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다. NYT가 입수한 의회예산국 자료에 따르면, 10년간 핵무기 현대화에 모두 3550억 달러를 투입키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도 시작에 불과하다. 10년이 지나면 탄도미사일, 전략폭격기, 잠수함 등 미국의 핵무기 운반체계의 노후화가 본격화돼, 이들 무기를 신형으로 대체하는 데에 또 다시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용은 대부분 핵폭탄과 운반수단 공장과 연구 시설에 들어갈 전망이다. NYT에 따르면, 재가동이 들어갈 8개의 핵관련 시설 종사자만도 4만 명에 달한다. 그러자 이미 폐쇄되었거나 폐쇄될 예정이었던 다른 핵 시설들 관계자들도 부활을 향해 몸부림치고 있다. 로비가 로비를 낳으면서 제2의 핵무기 르네상스를 꿈꾸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 이처럼 1조 달러짜리 거대한 핵무기 프로젝트에 착수하면, 그 파장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우선 산업, 특히 군수산업의 특성상 일단 공장이 가동되면 그걸 멈춰 세우기는 대단히 어렵다. 일자리 및 지역 경제 논리와 함께 국가안보 논리까지 가세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풍선 효과도 걱정거리이다. 막대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이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핵무기 현대화에 투입하면, 한국과 같은 만만한, 그리고 미국의 핵우산 아래에 있는 동맹국들에게 다른 안보 비용의 부담을 더욱 강하게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전지구적인 핵 군비경쟁의 위험성이다. 미국이 핵무기 감축에는 소극적이면서 성능 개량과 수명 연장에만 몰두한다면, 그 파장은 전지구적으로 미칠 것이다. 서방 세계와 신냉전의 문턱에서 서성이고 있는 러시아나, 미국과 전략적 경쟁에 돌입한 중국은 보다 공세적인 핵 전략을 취할 공산이 높다. 북한도 1조 달러짜리 미국의 핵무기 프로젝트를 맹비난하면서 ‘핵포기 불가’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내년 4-5월 뉴욕에서 열릴 핵확산금지조약(NPT)도 핵보유국과 비핵국가들 사이의 이견만 재확인하면서 이렇다 할 성과 없이 끝날 우려도 커질 것이다.

오바마는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 연설에서 핵무기를 유일하게 사용한 국가이자 최대 핵보유국인 미국이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드는데 앞장서야 할 “도덕적 책무”가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순진하지 않다”며 “내 생애에 핵무기 없는 세계가 완성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그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핵무기 없는 세계로 가는 길이 지난한 과정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래서 필요한 게 핵보유국, 특히 미국 지도자의 우공이산(愚公移山) 정신이다. 자신의 임기 동안 핵군축의 모멘텀을 만들고 이를 후임자가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바마는 역주행을 선택하려 한다. 미국 핵 산업을 대대적으로 부활시키면 후임자는 이를 되돌리기가 더욱 힘들어진다. 그래서 거듭 오바마 행정부에게 촉구한다. 초심으로 돌아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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