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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매춘부·비정규직 모두 '레드 마리아'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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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매춘부·비정규직 모두 '레드 마리아'가 되다

[조합원, 다큐에 빠지다] <민들레><쇼킹 패밀리><레드마리아> 경순 감독

어떤 이는 엄마로, 어떤 이는 창녀로, 어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어떤 이는 이주 여성으로, 어떤 이는 위안부 할머니로 불린다. 이들 모두는 '배'(자궁)를 가진 마리아다. 이들 중 몇몇은 자신에게 부여된 호칭에 저항하며 '불온한 마리아'(레드 마리아)가 된다.

감독이자 엄마인 경순은 성 노동자 희영·클롯, 비정규직 노동자 종희·사토, 이주 여성 제나린·순자, 위안부 할머니 리타, 극빈층 여성 그레이스, 이주 여성 차별직 노동자 모니카, 여성 노숙인 이치무라 등 한국·일본·필리핀 여성 10명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여성 차별의 시작은 여성의 몸, 특히 '배'에서 시작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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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마리아>에는 애니메이션과 함께 다음과 같은 자막이 나온다. "여자들의 노동은 배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생리를 시작하고, 섹스를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 제약이 많은 여자의 몸과 노동은 절망이고 스트레스였다." ⓒ<레드마리아>

다큐멘터리 <레드마리아>는 자본주의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여성의 몸과 노동을 '배'라는 상징물로 집약했다. 경순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무엇보다도 여성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바뀌지 않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고 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 김다현, 김신아, 신태현, 오지은 씨 역시 같은 궁금증으로 지난 5일 경순 감독의 작업실을 찾았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있어 박민미, 이은재, 정신영숙, 황용운 조합원은 참석하지 못했다.

"여성의 노동, 가마솥에서 인공지능솥으로만 바뀌었을 뿐"

경순 감독은 <레드마리아>를 찍으며 답을 찾았을까? 그는 "여성은 계속 일해 왔지만 남성에 비해 차별받고 있다"며 남녀 노동의 차별은 몸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노동도 엄밀히 따지면, 섹슈얼리티(sexuality) 문제다. 남과 여는 몸의 구조가 다르다. 대표적인 게 '배'다. '여성의 배'가 하는 역할이 있다. 그러나 사회는 이에 대해 얘기하지 않고, 노동을 임금노동으로만 계산해 말한다."

여성과 남성의 생물적·기능적 차이를 바탕으로 노동을 얘기해야 하는데, 사회가 이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순 감독은 "여성의 몸은 자연과 친화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며 "여성의 노동을 대하는 시선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 경순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굳이 '여성 감독' 혹은 '여성 문제'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여성이라면 대부분 느끼는 이야기인데도 '이 작품은 여성 문제를 다룬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영화제에서 여성주의 다큐멘터리로 보지 않는다"며 "이런 상황이야 말로 쇼킹한 일"이라고 말했다. ⓒ프레시안(이명선)

특히 유교 문화를 가진 한국은 여성의 노동을 가사노동에 국한해 얘기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전업주부 임금 계산 프로그램에 따르면, 하루 평균 12시간 일하는 40대 주부의 월급은 약 380만 원으로 연봉은 4500만 원 수준이다. 여성이 '가족을 위한 헌신'을 바탕으로 사실상 24시간 노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가사노동을 임금노동으로 환산하는 단순 접근이 얼마나 편협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경순 감독은 "노동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 자체가 굉장히 보수적"이라며 "남성 중심적(가부장적)·자원 중심적(자본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여성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가 깔려 있다. 여성 문제를 계속 얘기하는데 눈에 띄게 달라지는 건 없다"고 탄식했다.

"가마솥이 전기솥으로 바뀌고 전기솥이 인공지능솥으로 바뀌었고, '과연 무엇이 바뀌었느냐'는 다른 문제일 수 있다."

"4인 가족 판타지, 스트레스다"

▲ '안티 가족' 다큐멘터리라고 불리는 <쇼킹 패밀리> 포스터. ⓒ빨간눈사람
경순 감독은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도 경계하고 있다. 가족주의를 유쾌하게 비판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든 <쇼킹 패밀리>는 가족 해체 시대 여성의 삶을 다뤘다. 작품은 같은 해 개봉한 상업영화 <가족의 탄생>(김태용 감독)과 비교되며 "더 사실적"이라는 평(영화 평론가 강유정)을 들었다.

<쇼킹 패밀리>는 이혼 후 딸과 사는 경순 감독과 삶이 영화의 중심인 경순 감독의 스텝들이 결혼, 이혼, 성생활 등을 솔직하게 발설한다. 영상 또한 딸과 스텝의 셀프 카메라 영상을 그대로 보여주며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경순 감독은 작품에서 일반적으로 '건강하다'고 생각되는 가족의 형태를 걷어찬 채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아니라, 영화 밖에 있는 사람들이 '쇼킹 패밀리'"라고 외친다.

"4인 가족의 판타지가 일상화되어 있다. 실제 그런 가족은 없다. 집안에 문제없는 집이 어디 있나. 문제가 있는 게 당연한데, '건강한 가족'이라는 전형적인 틀을 바꾸지 못해 사회 구성원 중 일부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그는 2008년 개봉 당시 영화평론가 하재봉 씨와의 인터뷰에서 가족주의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개인주의'를 꼽았다. "가족은 늘 '개인'의 존재를 망각하고, 국가는 자주 그 '가족'을 이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이기적인 가족주의가 갖는 폐해를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족 혹은 어느 집단의 구성원으로만 존재한다. 소통은 하지만 막상 일대일로 만나면 상대를 존중하는 방식에서는 너무나 서툴다."(다음 카페 '하재봉의 영화사냥' 중 <쇼킹 패밀리>편)

"다큐란, 미지의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

경순 감독은 <레드마리아>와 <쇼킹 패밀리>에서 호흡을 맞췄던 동료 한경은 씨에게 보내는 편지(5월 13일 자 <씨네21>)에서 게으른 자신이 품이 많이 드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 "미지의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호기심에 그의 작품은 꼬리에 꼬리를 물듯 이어진다. <민들레>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로, <쇼킹 패밀리>는 <레드마리아>로.

<민들레>는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이 419일을 투쟁한 끝에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과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얻어내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특별법 제정 후 대통령 소속으로 만들어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을 그렸다.

그는 두 개의 작품을 연달아 촬영하는 과정에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며 "유가협이나 진상위에서 벌어진 사건보다는 민주화에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동시에 "도대체 우리가 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가 촬영 내내 화두였다"고 전했다. 의문사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작업이지만, 사실은 더 높은 가치를 위한 진상규명이 됐어야 한다는 비판인 셈이다. 이는 '태풍의 핵'이 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논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경순 감독은 현재 <레드마리아2>를 촬영하고 있다. 앞서 진행한 <레드마리아>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낙인을 보다 구체화한 작품이다. 그는 다큐멘터리 작업이 그다지 고되지 않다고 했다. "그저 삶이 고되듯 작품 제작에 고된 과정이 있을 뿐."

"새로운 질문이 새로운 이야기가 되고 새로운 형식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는 건 정말 짜릿한 즐거움이다. 매번 영화를 만들 때마다 새롭게 느끼고 발견되는 이 과정이 지루하지 않아 영화를 계속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경순 감독과의 대화는 드라마에서 연애로 또 정치와 종교를 넘나들며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프레시안(이명선)

*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전'에 소개된 다큐멘터리 감독을 매월 인터뷰합니다. 경순 감독은 김태일, 태준식 감독에 이은 세 번째 주인공입니다. 15일에는 <민들레>(1999)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2003), 29일에는 <쇼킹패밀리>(2006)와 <레드마리아>(2011)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상영됩니다.

다큐 감독전은 '신나는다큐모임'과 독립 영화 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기획했으며, 해당 감독의 작품은 오는 12월까지 매월 둘째·넷째 주 월요일 오후 6시와 8시에 상영됩니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http://indiespace.kr/1884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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