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속선이 뜨면서 뱃길이 가까워졌지요. 추자도는 요새 영광의 칠산 바다와 연평도 바다에서 사라진 참조기의 최대 산란장이기도 합니다. 영광굴비도 추자도 조기를 가져다 말립니다. 이제는 해풍 건조한 추자굴비가 영광굴비만큼이나 유명하지요.
망망대해의 작은 섬 추자도의 풍광은 제주도와는 또 다른 다도해의 수려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제주올레 18-1코스인 추자도 올레길은 산과 바다와 내륙이 어우러진 절경의 연속입니다. 추자도 뱃길은 거칠지만 가을, 특히 10월만은 더 없이 잔잔합니다. 10월은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는 추자도에 편안히 갈 수 있는 계절입니다. 가을엔 추자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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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가을특집> 망망대해의 작은 섬 추자도에 대해서 들어봅니다.
진정한 땅끝은 추자군도의 섬들
바다는 이 행성의 피다. 우리가 어디에 살고 있든지 간에 바다는 우리 모두의 기에 영향을 끼친다. 바닷물은 이 해안에서 저 해안으로 물리적 정보뿐만 아니라 천상의 정보까지 운반하기 때문이다.(찰리 라이리 <물의 치유력>)
어떤 문화권의 사람들은 바다가 사람의 생사에 직접 관여한다고 믿는다. 조수(潮水)가 사람의 혼을 옮기고 썰물이 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한 통계는 이를 뒷받침한다. “만조 때 태어나는 아이가 많고 간조 때 숨을 거두는 사람이 많다.” 달의 인력이 바닷물을 끌어당기면 사람 몸 속의 액체는 바다의 인력에 끌려간다. 달이 뜬 바다를 보면 사람의 심장도 뛰는 것은 그 때문이다.
비구름이 제주의 하늘을 덮고 있다. 오늘 제주 바다는 깊고 푸르고 어둡다. 바다의 표면적은 지구 표면의 4분의 3에 달한다. 나그네는 여객선을 타고 큰 바다에 나와서야 비로소 바다의 크기를 가늠한다. 사람은 물의 행성에 떠 있는 한 점 티끌이다. 추자군도(楸子群島)는 제주 본섬의 북쪽에 있다. 상추자도, 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가 추자군도를 이룬다.
추자군도의 횡간도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최북단 유인도다. 보길도와 소안도가 지척이다. 그 너머는 해남 땅끝마을이다. 하지만 땅끝은 땅 끝이 아니다. 대지를 가로질러와 해남 땅끝 마을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던 산줄기는 바다 속으로 이어진다. 산줄기는 흑일도, 백일도, 넙도, 노화도, 보길도, 소안도를 지나 횡간도, 추자도까지 뻗어 있다. 섬도 육지다. 한반도와 한 몸으로 연결된 진정한 땅 끝은 추자군도의 섬들이다.
“조기가 마술을 부리나 보죠.”
상추자도 대서리. 추자도는 영광 법성포와 연평도 어장에서 사라진 조기잡이의 새로운 메카다. 추자항 주변 물량장에서는 조기 따는 작업이 한창이다. 연안유자망 어선 해창호(7.03톤)도 부두에 정박, 작업 중이다. 오늘 해창호는 추자와 제주 사이의 바다에서 조업했다. 해창호는 조기가 걸린 그물을 그대로 싣고 입항했다. 품팔이를 나온 마을 여자들과 선원들 12명이 일렬로 서서 배에 실린 그물을 뭍으로 끌어당기며 조기를 딴다. 조기들이 과일처럼 주렁주렁 매달렸다. 추자도 역시 올해 조기는 잘다. 오늘 해창호의 어획량은 200여 상자. 잡어는 추려내고 조기만 한 곳으로 모은다. 모든 작업을 마치려면 7~8시간은 족히 걸린다. 그물에서 따낸 조기는 깨끗이 세척한 뒤 얼음물에 한 시간 남짓 재워둔다.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 후에는 다시 꺼내 나무 상자에 넣고 얼음을 채운다. 하루 정도 지나면 조기의 몸이 더욱 노란 빛깔로 변한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해창호 선주 부인의 대답이 걸작이다.
"조기가 마술을 부리나 보죠."
낚싯줄 재료인 경심 줄로 만든 그물은 그 자체로 바늘 없는 낚시다. 조기들은 낚시가 아니라 그물에 낚인다. 그물코에 머리가 걸린 조기들은 오도 가도 못하고 발버둥 치다 생을 마감한다. 조기 따는 작업장 옆에서 선주 부인이 저녁상을 차린다. 삼치와 조기찜, 김치찌개, 방어전, 고등어회까지 한상 가득 푸짐하다. 선주 부인이 나그네에게도 저녁을 권한다. 허기진 나그네는 염치없이 합석한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인도네시아 출신 무슬림 어부를 위해 선주 부인은 해물된장찌개를 따로 끓였다.
인간의 욕망을 위해서는 세상은 늘 부족한 곳
수산전문가들은 흑산도와 제주 근해 참조기 풍어는 참조기의 자원량 증가와는 무관한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고 진단한다. 1974년까지만 해도 전국 조기 어획량은 9만4천 톤이었지만 해마다 줄어들어 1984년부터는 1만 톤 미만으로 떨어졌다. 2007년에는 7천여 톤에 불과했다. 올해는 조기 어획고가 다시 1만5천 톤까지 늘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러한 추세가 언제까지나 계속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흑산도나 제주 근해에서 잡히는 조기의 90% 이상이 2살 미만이며 평균 길이는 14~16cm에 불과하다. 과거에 비해 시기가 당겨졌다 해도 조기들이 산란하기 위해서는 최소 2년(몸길이 21.7cm) 이상은 성장해야 한다. 지금처럼 어린 조기들에 대한 남획이 계속 된다면 연평도나 칠산어장처럼 흑산도나 추자도어장에서 조기가 사라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조기를 따는 작업장의 불빛으로 추자도의 가을밤은 환하다. 추자 어화가 부둣가에 피었다. 기관 돌아가는 소리, 수천 촉 백열등 아래 어부들은 그물을 당겨 조기를 딴다. 밤 10시, 이제 추자도의 조기 따는 일도 끝이 났다. 일꾼들은 돌아가고 선주와 선원들이 남아 그물을 세척하고 다시 배안으로 끌어 올린다. 내일의 출어 준비를 마친 다음에야 선원들의 고단한 하루도 마감될 것이다. 이 조기잡이 풍경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연평도와 칠산어장에서 조기가 멸족한 길을 흑산도와 추자도가 그대로 밟아갈 것을 지켜보는 마음은 불편하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미래에 눈 감는 선주들의 욕심이 줄지 않는 한 희망은 없다. 세상은 인간의 필요를 위해서는 충분히 풍족한 곳이지만 인간의 욕망을 위해서는 언제나 모자란 곳이다.
추자의 신 최영 장군
한국의 섬들에는 저마다의 신들이 있었다. 연평도의 신은 임경업 장군이고 어청도와 외연도의 신은 중국 제나라의 망명객 전횡 장군이다. 변산 바다의 신은 계양할미고 진도의 신은 영등할미다. 완도의 신은 송징 장군이고 청산도의 신은 한내구 장군이다. 제주 본섬에는 1만8천의 신들이 있지만 추자도의 신은 최영 장군이다. 추자도는 상하 추자 두 개의 섬이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중 하추자에 최영 장군 신을 모신 사당이 있다. 고려 공민왕 때 제주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군에 의해 제주목사도 죽임을 당했다. 이른바 군사용 말을 기르던 몽골 출신 목자들이 중심이 된 목호의 난이다.
고려 조정에서는 최영 장군에게 전함 300여 척과 2만5000여 명의 군사를 주어 목호들의 반란을 진압하게 했다. 최영의 군사들이 제주도로 가는 도중에 거센 바람이 불어 잠시 추자도에 대피했다. 그때 최영이 주민들에게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쳤다고 전한다. 그 은덕을 기리기 위해 추자도 사람들은 사당을 세우고 매년 백중날과 음력 섣달그믐에 풍어제를 지내왔다 한다. 최영이 정말 어로법을 가르쳤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하지만 추자도 사람들에게 대군을 이끌고 온 노장군 최영은 두렵고도 두려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가 신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하추자가 상추자보다 면적은 세배 이상 크지만 인구는 상추자가 두 배 이상 많다. 상추자가 고깃배들이 정박할 수 있는 항만이 발달하고 상업시설이 많은 까닭이다. 섬이나 뭍이나 사람은 이익을 따라 모이고 흩어진다. 하추자도에는 신양1리, 신양 2리, 예초리, 묵리마을이 있고 상추자도에는 대서리와 영흥리 두 개의 마을이 있다. 추자섬 주변은 크고 작은 무인도와 여들이 자주 뱃길을 막는다. 섬과 여는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하다. 물 밖으로 나오면 섬이 되고 물 속으로 들어가면 암초다.
여는 섬과 섬 아닌 것 사이에서 존재와 부재를 거듭한다. 큰 미역섬, 작은 미역섬, 밖 미역섬은 미역이 많이 자라 붙여진 이름일 터다. 개린여, 납덕이, 두령여, 상섬, 구멍섬, 덜섬, 쇠머리, 검은가리, 노린여, 문여, 오동여, 검등여, 열섬, 예도, 공여, 악생이, 염섬, 수려섬, 직구도, 관탈도, 푸랭이, 병풍도, 수덕도, 쇠코. 추자의 무인도와 여들. 그 무인도와 여들로 인해 추자 섬은 풍족한 어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추자 섬에 살지만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는 것은 모두 무인도와 암초들이다.
추자도 공중전화, 이주민들의 소식 창고
상추자 영흥리 입구부터 해안가를 따라 상가들이 시작된다. 미원일반음식점, 신안종합건설주식회사, 멸치액젓, 대영듸젤, 여로소주방, 왕족발, 별천지단란주점, 대림게임장, 스카이 단란주점, 해피다방, 에덴헤어샵, 추광약방, 제일식당, 오동여식당...어선들이 많이 드나드는 포구답게 유흥업소도 많다.
밤 10시, 추자수협 옆 추자도여객터미널 공중전화 두 대는 이주노동자들의 소식 창고다. 영흥리와 대서리 버스정류소 공중전화도 같다. 총 4대의 상추자 공중전화는 이주노동자들과 모국 사이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다. 전화회사, KT링커스에서는 점차 수익성 없는 공중전화들을 없애버릴 계획이라 한다. 이제 저 몇 대 남지 않은 전화들마저 철거되고 나면 이주노동자들은 더 이상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추자면 소재지 부근 영흥리와 대서리의 집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 마치 거대한 성의 일부분 같다. 옆집과 떨어져 있으면 태풍이나 파도에 휩쓸려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한 치의 틈도 없이 양 옆으로 혹은 앞뒤로 밀착되어 있다. 오래된 습속. 땅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사람은, 섬은 군집생활에 길들여져 있다. 섬에서는 모여 살수록 살아남을 확률이 높았다. 과거 바다일은 협업이었다. 또 왜구나 해적들의 노략질과 살육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모여 살아야만 했다. 삶을 이어가고 죽음에 맞서기 위해서는 모여 살 수밖에 없었다. 추자도의 주거 양식은 확실히 생존의 확률을 높이는 구조다.
두 개의 마을은 추자항을 따라 몰려 있다. 마을의 반대편 해안은 비탈지고 옹색하다. 상추자 북서쪽의 무인도 직구도가 안개의 흐름에 따라 시시각각 그 풍경을 달리한다. 안개의 날에는 섬의 본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사물은 객관적이지만 풍경은 주관적이다. 풍경은 속도에 종속된다. 걷는 속도, 탈 것의 속도, 바람과 안개와 구름의 속도, 마음의 속도에 지배된다. 동일한 풍경을 보고 와서도 그려내는 풍경이 사람마다 제 각각인 것은 사물을 관찰할 때의 속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자동차의 속도가 놓치는 풍경을 걷기의 속도는 포획해낸다.
성수대교는 섬에도 있다!
추자대교를 지나 상추자에서 하추자로 건넌다. 대교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추자대교는 하추자도 묵리와 상추자도 영흥리 사이 바닷길을 이어주는 212m의 작고 아담한 다리다. 1966년 착공되어 1972년에 완공된 다리가 있었으나 10년도 지나지 않아 교각과 슬래브 곳곳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1988년 무렵부터 붕괴 위험에 빠졌다. 부실 공사 탓이었다. 다리는 결국 1993년 4월 새로운 다리 공사를 위해 모래를 싣고 가던 트럭의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아주 붕괴됐다. 그 사고로 두 사람이 죽었다. 토목공화국의 부실공사는 외딴 섬이라고 비켜가지 않았다. 감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오지 낙도일수록 더욱 심했다. 성수대교는 섬에도 있었다.
신양항에는 마을회관과 경로당, 보건진료소, 하추자우체국이 있다. 마을 곳곳에는 공동우물이 여러 곳 남아 있다. 다리로 연결된 상·하추자 두 개의 섬은 저수지와 해수담수화 시설을 통해 물을 공급받는다. 하지만 오랜 세월 섬의 생명수였던 우물도 폐쇄되지 않고 남아 있다. 물 부족의 고통을 겪어본 추자섬 사람들이 상수도가 생긴 뒤에도 우물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바다가 이 행성의 피라면 우물은 이 마을의 피다. 우물에서 뻗어나간 혈관들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저 우물의 심장에서 배분된 피가 수도 파이프를 타고 마을의 집들로 배달된다. 비 피할 양동이 하나씩을 뒤집어쓴 펌프는 심장의 피를 옮겨주는 엔진이다.
남으로부터 안개가 밀려온다. 기습전의 명수, 안개는 소리 없이 섬을 점령해 들어온다. 안개의 남쪽은 제주도, 안개의 북쪽은 보길도다. 나그네가 보길도에 살던 때 해변에서 자주 바라보던 추자도는 가깝고도 먼 섬이었다. 빤히 보이는 두 섬 사이에는 연락선이 없다. 건널 수 없는 섬들 사이의 거리란 대체 어떻게 가늠할 수 있는 것일까. 오늘 추자도에서 보길도는 흔적도 없다. 안개가 모든 섬들을 지워버렸다. 건널 수 없었던 추자도처럼 나그네가 살았던 보길도 또한 환영(幻影)인 것일까.
"가물어도 홍수가 나도 치수대책은 오직 댐 건설!"
하추자 산길을 넘는다. 신양리에서 묵리로 가는 길. 추자섬의 산은 높지 않고 길은 멀지 않다. 묵리 하산길의 저수지가 추자도 제3수원지다. 저수지는 단 한 방울의 물도 흘려버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이다. 저수지의 모든 바닥을 비닐 천으로 방수했다. 물 부족으로 고심했던 섬의 흔적이 눈물겹다. 수원지 밑에는 해수담수화 시설이 들어서 있다. 빗물을 받아쓰는 저수지의 물이 부족하면 해수를 담수처리한 뒤 함께 섞어서 공급한다. 추자도에는 모두 4개의 수원지가 있는데 저수량은 총 1,720톤, 해수담수화센터는 1일 1천 톤의 담수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물 문제는 인류만의 일이 아니다. 지구 행성에 기대 사는 생명체들의 생존의 문제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4분의 3이 물로 덮여 있지만 그 물의 97%는 바다에 있다. 담수는 지구상 물의 3%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2%는 빙산이나 빙하의 상태로 있다. 결국 우리는 지구 전체 물의 1%만을 사용할 수 있을 뿐이다. 그 1%의 물을 사람과 수많은 생물종들이 고루 나눠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지구에서 식수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만 한 해에 340만 명이 넘는다.
다행히도 이 나라에서는 마실 물이 없어 죽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조금 가물기라도 하면 이 땅의 모든 방송언론매체는 당장 목말라 죽어가는 사람이라도 생긴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그 다음 수순은 이 나라가 물부족국가라고 난리를 치는 일이다. 그러면 토목, 수자원 관련 부처는 기다렸다는 듯이 당장 댐을 더 만들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마치 댐 건설 외에는 치수정책이 전혀 없는 것처럼 생떼를 쓴다. 그때 가장 많이 '애용'되는 것이 섬의 물 부족이다. 마실 물이 없어서 뭍에서 탱크로 물을 실어다 급수하는 섬마을 자료 화면을 수시로 보여주며 위기의식을 부추긴다.
하지만 가뭄이 들어도 뭍에서 물을 실어다 먹어야 하는 섬은 몇 되지 않는다. 물이 부족한 섬들도 밥을 못해 먹을 정도는 아니다. 그저 펑펑 쓰던 물을 자유롭게 쓰지 못해 불편할 뿐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마치 모든 섬들이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말라 죽어가는 것처럼 사태를 과장한다. 물론 그 배후에는 댐 건설로 이득을 보게 될 토목마피아들이 버티고 있다. 이들이 댐 건설을 추진하는 목적은 수자원이나 홍수 조절, 에너지 확보 등이 아니다. 오로지 토목공사를 통한 이윤 창출과 정치자금 확보 따위다. 이들은 또 홍수가 나도 댐을 만들자고 한다. 어느 산천이든 계곡만 있으면 댐을 만들 궁리에 몰두한다. 섬이라고 다르지 않다. 작은 섬에도 댐을 만들기 위해 혈안이다. 이 나라는 물이 넘쳐도 부족해도 치수대책은 오직 하나, 댐 건설뿐이다!
토목공화국 정부와 언론, 토목업체들은 진짜 물 부족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 사람들은 먹는 물을 구하기 위해 종일 걸어가 흙탕물 한 동이를 구해온다. 그마저 없어서 목말라 죽어가기도 한다. 그런 나라가 진짜 물부족국가다! 수도만 틀면 물이 콸콸 쏟아지는 나라. 수돗물을 변기에도 쓰고, 자동차 세차에도 펑펑 쓰는 나라. 이런 나라에 물부족국가라는 말이 가당키나 한가. 이 나라는 물부족국가가 아니라 물낭비국가다!
이 나라는 물낭비국가다!
갈수기 때면 섬들이 물 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섬들마다 인구는 몇 배가 줄었고 상수도 보급률은 높아졌는데도 늘 물이 부족한 것은 왜일까. 섬들 또한 도시처럼 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함부로 쓰게 된 까닭이다. 섬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집집마다 식수로 화장실 물을 쓰고 샤워, 세차를 하고 양식장이나 수산물 가공공장 등에서도 물을 마구 쓴다. 물을 아껴 쓰고, 노후 관로의 누수를 잡고, 중수도나 우수 시설을 설치하는 등 물 관리를 효율적으로 한다면 물이 부족할 이유가 없다. 섬에서는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해도 물동이와 물지게로 물을 날라다 아끼고 귀하게 썼다. 그때는 지하수 관정을 파기도 어려워 지표수만을 썼지만 물 부족으로 고통받지 않았다. 온 나라가 그렇듯이 지금 섬에서 물이 부족하다는 것은 그만큼 물 낭비가 심하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정부나 자치단체는 조금 가물기만 하면 어떻게든 섬에마저 댐을 하나 더 지을까 궁리할 뿐 다른 물 대책은 고민하지도 않는다.
그동안 댐이 물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갈수록 심각해지는 전 지구적 물 부족 사태가 댐 건설만으로 해결되지 못한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나라들이 댐 이외에 다양한 물 대책을 찾고 있다. 하지만 이 나라는 여전히 댐건설만을 최상의 물 대책으로 신봉하고 있다. 추자도의 담수시설 같은 해수담수화는 사막 나라들뿐만 아니라 미국, 호주, 일본 등 댐 건설을 주로 하던 나라들까지도 중요한 대안으로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는 작은 섬들 일부에만 마지못해 시설할 뿐이다. 물론 그런 섬들에는 댐을 만들 장소가 더 이상 없거나 아주 없기 때문이다.
가뭄이 들면 바짝바짝 말라버리는 댐들을 두고 또 댐을 만들자는 것은 희극이다. 아무리 많은 댐을 만든다 한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는다면 그 댐의 물을 어디서 가져다 채울 것인가. 추자도가 그랬다. 처음 하나의 상수원 저수지를 만들었으나 가뭄이 들자 역시 물이 부족했다. 물 공급이 증가한 만큼 물의 사용량도 늘어난 까닭이다. 그렇게 모두 4개의 저수지를 건설했으나 여전히 물은 부족했다. 결국 해수담수화 시설을 도입했다. 그 다음부터는 가뭄 때 물문제가 해결됐다. 하지만 지금처럼 물을 낭비하는 구조가 지속된다면 담수화 또한 궁극적 해결책이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물 부족 사태를 완전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물을 풍족하게 쓸 방법보다는 물을 아껴 쓸 방법을 찾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하다.
"지가 거북이가 됐건 뭐가 됐건 올 테지라."
하추자 신양항 대합실은 섬을 빠져나가려는 여객들로 혼잡하다. 난바다의 섬에는 큰 바람이 불지 않아도 배가 다니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바람이 아니라도 바다는 자주 안개의 군단에 포위당한다. 완도에서 오는 여객선은 안개의 포획에 걸려 출항이 두 시간이나 늦어졌다. 도착 시간은 그보다 더 늦어질 것이다. 안개. 바람이나 거센 풍랑을 피해갈 수 있는 노련한 선장도 안개를 피해갈 도리란 없다. 안개에는 틈이 없다. 세상의 어떠한 지식도 안개의 세상에서는 무용하다. 여객선은 그저 안개의 눈치를 봐가며 느릿느릿 나아갈 뿐이다. 대합실의 노인들은 배시간이 늦어져도 느긋하다. 조급해봐야 달리 방법이 없음을 잘 아는 것이다.
"지가 거북이가 됐건 뭐가 됐건 올 테지라."
노인의 말은 제주도보다 전라도 방언에 가깝다. 추자도는 오랜 세월 전라도 문화권이었다. 배는 예정보다 늦었지만 끝내 추자도까지 도달했다. 이제 나그네도 추자섬을 떠날 때가 왔다. 나그네의 무게를 추자섬의 땅과 바다가 받아준 것일까. 추자섬으로 오기 전에 무거웠던 마음이 섬을 걸으며 가벼워졌다. 사람의 마음이 늘 무겁거나 가볍기만 하겠는가. 무겁기만 하다면 가라앉아버릴 것이고 가볍기만 하다면 날아가버릴 것이다. 사람이 세상에 발붙이고 살 수 있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추가 있기 때문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가며 균형을 잡아주는 균형추. 마냥 마음의 오고감에 끄달리며 살 이유가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섬학교 제32강, 10월 3(금)∼5(일)일, <추자도 2박3일 걷기>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0월 3일(금)>
08:00 서울 출발(뱃시각에 대야 하니 출발시각 엄수 바랍니다. 07시 50분까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섬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32강 여는 모임
12:00 목포 도착
12:00-13:00 점심식사(목포의 맛 서대탕정식)
14:00 목포항 출항
16:10 추자 도착
16:30-18:30 상추자 걷기(약 6.5km)
추자면사무소-최영장군사당-봉골레산-순효각-박씨처사각-등대전망대-추자대교-추자면사무소
19:00-21:00 저녁식사 겸 뒤풀이(추자 유명횟집에서 생선회와 매운탕정식)
21:30 취침(추자항 <태흥모텔>, 다인실)
<10월 4일(토)>
07:00 기상
08:00-09:00 아침식사(조기탕백반)
09:00-12:30 추자올레 오전 걷기(약 9.2km)
추자면사무소-추자대교-묵리고개-묵리-신양2리-신양항-모진이해안-황경한의묘-신대산전망대-예초리기정길-예초포구
13:00-14:00 점심식사(야외도시락)
14:00-17:00 추자올레 오후 걷기(약 6.6km)
예초포구-엄바위장승-돈대산입구-돈대산-묵리교차로-담수장-추자교삼거리-추자항
18:00-20:00 저녁식사 겸 뒤풀이(생선회와 매운탕정식)
20:30 취침(추자항 <태흥모텔>, 다인실)
<10월 5일(일)>
07:00기상
08:00-09:00 아침식사(조기구이백반)
09:00-09:30 등대산공원 산책
09:30-10:20 장보기(추자굴비와 멸치, 액젓, 건어물 등)
10:40 추자 출항
12:40 목포항 도착
13:00 점심식사(남도식 장어탕정식)
14:00 서울 향발. 제32강 마무리모임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가벼운 등산복/배낭/등산화/모자, 풀숲에선 반드시 긴 바지), 스틱, 무릎보호대, 식수, 윈드재킷, 우비, 따뜻한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또는 손전등), 세면도구, 세수수건, 멀미약,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승선용 신분증을 꼭 지참하세요.
섬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강제윤 교장선생님이 쓴, <섬을 걷다>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어머니전> 등 섬 답사기를 참고하면 섬 여행의 의미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섬학교 제32강 답사 참가비는 33만원입니다(왕복교통비, 2일 숙박비, 8회 식사비 겸 뒤풀이, 강의비, 운영비 등 포함). 이 답사는 현지 사정에 의해 일부 변경될 수 있으며, 기상 악화로 섬 체류가 연장되는 경우 추가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참가 신청과 문의는 인문학습원 섬학교 www.huschool.com 전화 050-5609-5609 이메일 master@huschool.com으로 해주세요(회원 아니신 분은 회원 가입을 먼저 해주십시오. ☞회원가입 바로가기 ). 섬학교 카페 http://cafe.naver.com/islandschool 에도 꼭 놀러오세요. 섬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강제윤 교장선생님은 1988년 계간 <문학과 비평> 겨울호로 등단했습니다. 서남해의 아름다운 섬 보길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뭍으로 이주해 살다 성인이 된 뒤 다시 고향 섬으로 돌아가 10여 년을 살았습니다. 보길도 시절에는 하천 정비를 명목으로 보길도의 숲과 하천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막아냈고, 고산 윤선도 유적지를 파괴하고 대형 댐을 건설하려는 토목세력에 맞서 33일간 단식으로 섬을 지켜내기도 했습니다.
2005년 보길도를 떠난 뒤에는 한국의 모든 유인도(500여 개)를 걸어서 순례하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8년째 섬들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300여 개의 섬을 걸었고 여전히 섬을 걷고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섬을 걷다> <통영은 맛있다>, 한겨레에 <섬에서 만나다>를 연재했습니다. <걷고 싶은 우리 섬> <통영은 맛있다> <어머니전> <섬을 걷다> <그 별이 나에게 길을 물었다> <보길도에서 온 편지> <숨어사는 즐거움> <올레, 사랑을 만나다>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 <자발적 가난의 행복>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학습자료>
[추자도] 제주항에서 북쪽으로 약 45㎞ 떨어진 섬. 상·하추자도, 추포도,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면적은 상추자도가 1.5㎢, 하추자도가 3.5㎢다. 거의 모든 어종이 풍부한 지역이라 일본까지 소문난 바다 낚시터다. 겨울에는 주로 감성돔과 학꽁치, 봄에서 가을까지는 황돔, 흑돔, 농어 등이 잘 잡힌다. 조선시대에는 전남 영암군에 속했었기 때문에 지금 행정구역은 제주도지만 전라도 풍속이 많이 남아 있다. 주민의 생활상이나 전통 민가의 구조 등이 제주보다는 전라도에 가깝다.
[엄바위장승] 옛날 추자도 예초리 엄바위에 억발장사가 있었다. 엄바위 아래 바닷가에 ‘장사공돌’이라는 바위 다섯 개가 있었는데, 이 바윗돌로 공기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횡간도로 건너뛰다가 미끄러져 죽었다. 그래서 예초리와 횡간도 사람들은 서로 결혼하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하면 여자가 청상과부가 된다는 속설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마을 누군가가 억발장사를 상징하는 목장승을 깎아 세웠으며, 예초리에서는 해마다 엄바위 앞에 와서 소원을 빌기도 한다.
[황경한묘] 황경한은 다산 정약용의 조카인 정난주 마리아의 아들이다. 정난주는 정약용의 맏형인 약현의 딸이며 황사영의 아내다. 남편 황사영이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뒤 두살배기 아들 경한과 제주 유배길에 올랐다. 배가 추자도 예초리에 머물자 몰래 아들의 이름과 출생일을 적어 저고리에 싸서 바위 틈에 두고 떠났다. 아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노비로 살 것을 염려해서였다. 지나던 한 주민이 아기 울음소리를 듣고서는 데려다가 잘 키웠고, 오늘날까지 후손이 이어져 추자도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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