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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핵 독일에도 고압 송전탑은 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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脫핵 독일에도 고압 송전탑은 있다. 하지만…

[초록發光] 송전망도 주민이 결정한다

송전망도 주민이 결정한다

송전탑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17일 '밀양 765킬로볼트 송전탑 반대 대책위'에서는 "밀양 송전탑 행정 대집행 경찰의 폭력 진압에 대한 헌법소원 청구"를 할 것을 밝힌바 있다. 공사 강행을 위해 경찰이 폭력을 위법하게 행사하고 인권을 유린함으로써 헌법상 자유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청구 이유이다.

그런데 경찰을 동원하여 송전 설비 공사를 강행하는 일이 밀양에만 한정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경상북도 청도 각북면 삼평리 주민 할머니들도 송전선로 지중화와 철탑 공사 중지를 요구하며 18일부터 농성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와 같은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을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전자파 위험 과장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 주변 지역 보상 강화 정도로 해결하고자 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이런 송전탑 반대 운동을 보상을 더 받고자 하는 지역 주민 이기주의로 보게 하고 이들 반대 운동으로 전력난이 초래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일반 시민들로부터 운동을 고립시키고자 했다. 그리고 공사 저지와 같은 주민들의 직접적인 행위는 경찰력 등 물리력을 동원하여 해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후 보상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는 공권력 동원 방식으로는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은 해소되기는커녕 더 악화될 뿐이다. 위험 사회학 연구들은 사람들의 위험 인식은 과학적 입증에 의해 쉽게 변하지 않으며 강제된 위험을 더 위험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전 정보라고는 없는 채로 갑자기 들어선 거대한 철탑이 내뿜는 전자파 위험은 무해하다는 과학 정보를 넘어서는 것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 해결을 위해서는 그동안 시민 단체들에서 주장해왔고 지난 2010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권고했던 '전원개발촉진법' 개정 작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촉진법'은 2009년에 송전 설비 계획 승인이나 변경 시 주민 의견 청취를 도입하기는 하였으나 이의 실행에 관한 규정이나 의견 반영 강제 규정도 마련되지 않았다.

즉, 어느 날 갑자기 내 집 앞에 765킬로볼트 철탑이 세워져도 이를 사전에 알 수 있는 방안도 이 계획 변경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사실상 주어져 있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이 계획된 송전로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과도 계획된 것인지도 판단할 수 있는 기회는 더더구나 마련되어 있지 않다.

법률적 근거도 없는 한국전력의 '입지선정자문위원회'가 확정한 계획에 의해 언제든지 송전로 위험에 노출될 수 있고 다만 사후적으로 보상만을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주민 참여를 보장하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입지 선정과 경로 설정 과정은 공개되지 않았고 이는 예정된 지역 주민들의 정책 불신을 결과하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와 다른 배경에서이기는 하지만 고압 송전망 구축과 관련하여 시민 단체 및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한 독일 정부는 최근 새로운 실험을 하고 있다. 핵발전소 전기가 아니라 재생 가능 에너지 특히 풍력 전기 송전을 위해 380킬로볼트 송전망을 구축해야 하는데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조직적인 운동이 강화되자 이를 새롭게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실험은 지난 2013년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에서 진행되었다. 즉, 홀슈타인 주 에너지전환부는 2012년 11월부터 12월까지 10여 차례에 걸친 '시민 대화', 5차례 '전문가 대화'와 4차례 컨퍼런스에 고압 송전망 설비 회사, 지역 주민들과 주 행정 관계자 및 전문가들 1800여 명이 참석하도록 하여 홀슈타인 주의 고압 송전망 계획을 수립하였던 것이다.

에너지전환부에서는 2011년 고압 송전망을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자면 송전로 계획 초기 단계에서부터 시민들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2012년 11월에 송전망 설비 회사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컨퍼런스를 시작으로 1년이 넘는 '380킬로볼트 서해안 전력망을 위한 대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설비 회사의 초기 송전로 경로 계획을 공지하고 10곳의 지역에서 '시민 대화'의 장을 마련하여 시민들 저마다 입지 경로에 대한 대안, 특정 지역의 지중화 요청, 철새 도래지 문제 등에 관한 의견들을 피력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들 의견들은 송전 설비 회사의 초기 계획과 다른 대안들을 고려할 수 있도록 하였고 회사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한 환경 문제들을 고려할 수 있게 하였다.

즉, 380킬로볼트 경로를 새로 설정하는 대신 기존 110킬로볼트 경로 활용 방안 등의 대안이 시민들에 의해 제안된 것이었다. '시민 대화'와 병렬해서 진행된 '전문가 대화'에서는 송전 계획에서 고려해야 하는 주제들에 대한 해당 전문가 발표와 시민들과의 질의 응답과 '시민 대화'에 참석한 시민들의 질문 주제를 별도로 다루는 전문가 집담회도 진행하였다.

'전문가 대화' 프로그램에는 시민들이 참석하여 자유롭게 질의 응답을 할 수 있었다. 자기장 한계 수치는 누가 정하는가 하는 질문에서부터 외국의 대책, 간단한 법조문 질문까지 다양한 주제들이 전문가 대화에서 다루어지고 있었다. 이런 1년여가 넘는 과정을 거쳐 홀슈타인 주는 시민 참여로 '주민 친화적이면서 환경 친화적인 송전 계획'을 세울 수 있게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밝히고 있다.

홀슈타인 주의 실험은 주민 참여가 고압 송전망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실제 계획의 개선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 계획을 수용하고 따르는 정책 대상자로서의 시민이 아니라 정책 파트너로서 시민을 정의하는 것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송전망 계획과 같은 고도의 기술 정책에도 시민 참여는 가능하며, 이런 계획 과정에서 시민 참여 보장이 사후적인 사회적 갈등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자신의 건강권에 영향을 주는 설비들에 대한 정책 결정에의 참여는 또한 현대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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