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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모병제' 주장이 불편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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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모병제' 주장이 불편한 이유

[기자의 눈] 보수언론의 앞뒤 안 맞는 주장

뜬금없이 ‘모병제’ 주장이 불거졌다. 병영 내 사고가 잇따르자,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모병제 도입 목소리가 나온다. 모병제, 물론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논의되는 방식은 크게 잘못됐다.

병영 내 인권 실태가 열악하다. 그래서 자식을 군대에 보내기가 불안하다. 그러니까 합법적으로 군대에 안 갈 수 있는 길을 열자. 이런 식인데, 몹시 허술한 주장이다.

군 의문사에 침묵하던 그들, 왜 이제 와서?

군대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여전히 진실이 은폐된 숱한 의문사가 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엔 이른바 ‘녹화사업’이 악명을 떨쳤다. 군에 입대한 운동권 대학생들에게 조직적으로 육체적, 정신적 폭력을 가하는 일이다. 이들을 협박해서 프락치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들이 다니던 대학에 찾아가 정보를 수집하게끔 했다. 녹화사업 피해자들 중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자살하거나 타살당한 사람들이 꽤 있다.

병영 내 인권 실태가 더 열악하던 시절엔, 병역은 온 국민의 신성한 의무라고 추어올리던 보수 언론이 이제 와서 모병제 주장을 하는 이유를 알기 힘들다.

▲1982~83년 '녹화사업' 기간 중 군대에서 의문사한 6명의 대학생들. 왼쪽 상단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두황(고려대), 이윤성(성균관대), 최온순(동국대), 한희철(서울대), 정성희(연세대), 한영현(한양대).ⓒ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군 복무가 '가난한 소수'의 일이 돼도 병영 인권 문제가 주목받을 수 있을까?

병영이 인권사각지대가 된 현실은 복잡한 역사적 맥락에서 잉태됐다. 근본적인 체질 변화 없이는 인권 수준을 높이기가 쉽지 않다.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실시된 '전군특별인권교육'에서 한 육군 대령이 했다는 발언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윤 일병 사건에 대한 국민 여론을 가리켜 그는 “마녀사냥”이라고 했다. 모병제를 도입하면, 군 간부들의 인식이 달라질까. 가능성은 낮다. 인권 감수성을 키우기 힘든 조건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다.

병영 내 인권 실태가 그나마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이유는, 그게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이다. 나, 내 친구, 내 형제, 내 애인, 내 자식이 겪을 수 있는 문제라서다. 그런데 모병제가 도입돼서, 군 복무가 소수의 문제가 된 뒤에도 병영 내 인권 실태가 지금처럼 뜨거운 관심을 끌 수 있을까.

'전쟁 결정자'와 '피 흘리는 자'가 다른 나라…전쟁을 쉽게 여긴다

더구나 상당수 젊은이들에게 군인은 썩 매력적인 직업이 아니다. 장교나 부사관도 아니고, 병사라면 더욱 그렇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고학력자가 모병제 도입 이후에 병사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소외된 계층 출신만 모인 병영에서 생긴 문제에 주류 언론이 큰 관심을 가질까. 역시 가능성은 낮다. 병영 내 부조리는 더욱 곪아갈 게다.

미국이 모병제 전환 이후 더 호전적이 됐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이들, 군 복무 중인 가족이 없는 이들이 전쟁과 관련한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전쟁을 더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게다. 한국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굳이 전쟁을 도발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몸이 아니라 관념으로 군대를 이해한 이들은 군사 문제에 대해 경솔한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모병제 주장하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는 반대?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이들이 있다. 이들에 대한 입장은,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한 지표이기도 하다. 보수언론은 그간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해 왔다. 겉으로는 ‘양심’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병역 기피에 다름 아니라는 식이다. 젊은이는 군대에서 제대로 단련된다는 주장이 종종 곁들여졌다.

이랬던 보수언론이 ‘모병제’를 주장한다? 납득하기 어렵다. 모병제 주장의 핵심은 군 복무를 거부할 권리를 주자는 것이다. 모병제를 주장한다면, 양심적 병역 거부도 함께 찬성하는 게 자연스럽다.

모병제는 병력 축소…'군축'의 가이드라인부터 논의해야

모병제 주장이 무조건 잘못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모병제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려면, 군 병력 감축 논의와 맞물려야 한다. 65만 대군을 전부 직업군인으로 채우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 그렇다면, 한국이 유지해야 하는 적정 병력에 대한 토론과 합의가 필요하다.

이 문제에 대해선 극우논객 지만원 박사가 명료한 기준을 제시한 적이 있다. 지 박사가 극우로 돌아서기 전이다. 1990년대, 지 박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던 아태평화재단 창립행사에 기조연설자로 참가했었고, 진보 월간지인 <말>에도 종종 기고를 했었다.

당시 지 박사는 한국군이 ‘파격적인 군비 축소’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력을 어느 수준으로 줄여야 하는지에 대해 지 박사는 ‘남한이 공격하기엔 명백히 부족하고, 남한이 방어하기엔 명백히 충분한 규모’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군축의 방법에 대해서도 그는 ‘파격적이고 선제적인 방식’을 제안했다. 점진적인 방식은 오히려 비효율적이라는 게다. 병력 규모에 따라 군사 교리가 달라지는데, 점진적으로 병력을 줄이면, 그때마다 군사 교리를 바꿔야 한다는 것.

지 박사의 이런 주장이 나온 지 20년 가까이 지났다. 지금 모병제 논의를 한다면, 병력 축소에 대해 적어도 이보다는 진전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 대목은 빠져 있다. 보수 언론이 주도하는 모병제 논의가 불순해 보이는 이유다.

<조선일보>, 솔직해지라

차라리 솔직하게 이야기했으면 싶다. 자식 군대 보내는 게 너무 불안하다고. 돈 있고 인맥 좋으면 자식을 군 면제자로 만들 방법이 많았던 시절이 그립다고. 공직자에 대한 심사가 엄격해지면서 병역에 대한 검증이 까다로워지는 현실이 싫다고. 가난한 아이들의 세계에서 격리된 부잣집 아이들의 세계에 밀어 넣으려 발버둥 치며 키운 아이가 가난한 아이들과 한 내무실에서 생활하는 게 싫다고. 군대에서 겪는 위험하고 지저분한 일은, 가난하고 못 배운 아이들이 도맡았으면 좋겠다고. 이렇게 말이다.

한 가지 더.
언론 보도를 보면 “자식을 군대에 보낼 수 없다”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몹시 당혹스럽다. 군대에 갈 나이의 젊은이는 이미 성인이다.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다. 따라서 부모가 그를 군대에 보내는 게 아니다. 그가 군대에 가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군대에 보낼 수 없다” 대신 “청년들이 군대에 가지 않으려 한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곳이 더 건강한 사회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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