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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준비위원회, ‘고장난 내비게이션’ 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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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준비위원회, ‘고장난 내비게이션’ 될라

[정욱식 칼럼] '통일' 구호만 외치고 있는 박근혜 정부

"통일을 위한 낯선 여정에 스마트하고 정확한 내비게이션이 돼 달라."

박근혜 대통령이 8월 7일 출범한 통일준비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면서 당부한 말이다. 필자 역시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오히려 통일과는 반대 방향으로 안내하는 '고장난 내비게이션'이 될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 그럴까? 우선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집착이다. 박 대통령은 3월 독일 드레스덴 연설에서 북한에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밀었다.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 간 동질성 회복 등 3가지 구상을 북측에 제안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손을 내밀기 전에 손가락질부터 먼저 하고 말았다. "경제난 속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거리에 방치되어 있었고", "자유와 행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탈북자들이 있다"면서 말이다. 또한 북한에 악수를 하려면 손에서 핵부터 내려놓으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북한은 일언지하에 이 제안을 거절했다. 이로 인해 2월 남북 고위급 접촉과 이산가족 상봉 행사로 손을 잡았던 남북관계는 또다시 서로 욕하며 삿대질하는 관계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통일준비위원회 회의 ⓒ청와대

물론 박 대통령이 북한의 기아 및 인권 상황에 대해 언급할 수는 있다. 그러나 상대방을 자극하는 표현보다는 '우리는 어려움에 처한 북한 동포를 돕고 싶다'는 식으로 말했어야 했다. 또한 북한의 핵 포기와 관련해서도 일방적으로 포기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남북대화와 6자회담 등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나서자’는 식으로 접근했어야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준위가 드레스덴 선언 추진에 핵심 방점을 찍으면 드레스덴 선언이 북한의 반발을 야기하며 남북관계 악화에 일조했던 전철을 따라갈 공산이 크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모처럼 찾아온 기회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 문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첫 실무접촉부터 북한 대표단의 체류 비용 및 인공기와 한반도 통일기의 크기 문제를 들어 북한의 자존심을 잔뜩 긁어놨다. 그리고 한 달 가까이 실무접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올테면 오고 말테면 말라'는 식이다. (☞ 관련기사 : 박근혜 정부, 대형 인공기가 무섭나)

남북관계와 '구호성 통일'이 멀어질수록

통준위를 비롯한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남북관계는 정체 내지 후진하고 있는데, '구호성 통일'은 멀리 앞서가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남북관계가 통일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거리가 멀어지고 만다. 오히려 보다 현명한 방법은 남북관계가 앞서 가게 하고 통일이 자연스럽게 뒤따라오게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부러워한다는 독일 통일이 이랬다.

남북관계 개선 없는 통일 구호는 통일을 위해 필요한 남북관계 발전, 국민적 관심과 참여,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모두 어렵게 한다. 북한은 박근혜 정부가 흡수통일에 집착하고 있다고 더더욱 의심하게 될 것이다. 국민들의 허탈감과 공허함도 시간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국제사회에선 '뭐 하는 거냐'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박근혜 정부가 11일 북측에 8월 19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제2차 고위급 접촉을 갖자고 제의한 것이다. 북한이 이 제의를 수용하면 남북한은 6개월 만에 고위급 접촉을 재개하게 된다.

이 제의는 두 가지 점에서 주목을 끈다. 하나는 예전과는 달리 박근혜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 앞서 나왔다는 점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8월 7일 통준위 발족→8월 11일 고위급 접촉 제의→8.15 경축사에서 대북 제의→2차 고위급 접촉 성사'로 이어지는 남북관계 로드맵을 짜서 움직이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정부가 남북관계의 포괄적인 개선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이러한 움직임은 환영할 만하다.

또 하나는 회담 날짜로 제안한 8월 19일이 이보다 하루 전부터 시작되는 한미합동군사훈련'을지프리덤가디언'(UFG) 과 겹친다는 점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 훈련을 강력히 비난하면서 4차 핵실험을 포함한 "핵 억제력 강화"로 맞서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이 고위급 접촉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남측 제안 수용이 한미군사훈련을 인정해주는 것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박근혜 정부는 군사훈련을 하더라도 북한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핵'이 붙어 있는 전략무기 투입을 제외해야 한다. 핵추진 항공모함, 핵잠수함, B-52와 B-2 등 전략폭격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는 언론에 공개하면서 무력시위 형태로 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로우키(low-key)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세월호 참사로 그 필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 재난 대비를 훈련의 주된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방침을 선제적으로 밝히면서 북한의 고위급 접촉에 나서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번 기회마저 놓친다면, 침몰 직전의 남북관계를 구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을 기약하기란 더욱 난망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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