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색 소형 버스에 희생자들의 사진이 빼곡하게 걸렸다. 사진 속 학생들의 얼굴이 너무 앳되고 밝아, 부모들이나 지켜보는 시민들이나 차마 '영정 사진'이라고 믿기 힘들다.
세월호 참사 99일을 맞은 23일 오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먼저 떠난 자식의 영정 사진을 앞세우고 100리 행진을 시작했다. 경기 안산의 합동분향소에서 시작해 참사 100일인 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도착하는, 꼬박 40km에 달하는 길이다.
자식들은 제대로 구조조차 받지 못한 채 찬 바닷물 속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내 자식 죽은 이유라도 알게 해 달라"는 이유에서다.
출발 전 쏟아졌던 장맛비는 그쳤지만, 하늘은 잔뜩 흐렸다. 안산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 180여 명이 세월호 합동 분향소 앞에 모였다.
2학년 1반부터 10반까지. 반별로 깃발 아래 선 유족들은 저마다 노란 우산을 하나씩 손에 들었다. 비가 내릴 때마다 펼쳐든 우산 위엔 먼저 떠난 자식에 대한 편지가 쓰여있었다.
전명선 가족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은 행진 시작 전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둔 지금, 아이 없는 집도 이 현실도 낯설기만 하고 아직도 팽목항에 있는 실종자 가족들에게는 그저 미안하다"면서 "그러나 정작 미안해야 할 대통령과 정치권은 특별법 제정을 미루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유병언 잡는다고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왜 그런 배를 바다에 띄웠는지, 왜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지 않았는지 알고 싶을 뿐"이라며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성역없는 진상 규명이 가능한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정치권을 향해서도 "새누리당은 (그런 특별법이) 전례가 없다고 하지만, 세월호 참사도 전례가 없는 사고였다"며 "사고 100일을 맞는 내일 꼭 특별법이 통과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시민들의 참여도 당부했다. 전 부위원장은 "시민 여러분이 함께 걸어 달라. 이제 우리가 기댈 곳은 시민 여러분 밖에 없다"면서 "사고 100일 되는 내일엔 '4.16 특별법 제정'이란 약속을 받고 싶다. 100일엔 덜 아픈 부모, 덜 미안한 부모가 되고 싶다"고 했다.
9시30분께 분향소를 출발한 유족들 뒤로 시민들과 야당 의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선 박영선 원내대표와 문재인 의원 등 의원 13명이 행진에 참여했다. 박 원내대표는 "더는 기다릴 수 없다"면서 새누리당을 향해 "세월호 참사 100일이 이제 단 하루 남았다. 오늘 안에 국민이 바라는 특별법 제정을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상정 원내대표 등 정의당 의원들과 통합진보당 의원들도 유족들의 행렬에 동참했다.
30여 분을 걷자, 100여 일 전 학생들로 북적였던 단원고등학교 앞에 도착했다. 이 학교에서만 교사 10여 명과 학생 250여 명이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 학생 5명과 교사 2명은 여전히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생존 학생 학부모들과 교직원, 교사 20여 명이 '잊지 않을게. 끝까지 밝혀줄게'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행렬을 맞았다.
자식들이 다니던 학교 앞을 지나자, 일부 유족들은 눈물을 쏟았다. 한 희생자 학생 어머니는 "우리 OO 어떡해…"라며 울음을 터뜨렸고, 이 모습을 지켜본 생존 학생 어머니 역시 눈시울이 빨개졌다. 유족들은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교정 안에 들어가지 않고 단원고를 지나쳤다.
불과 99일 전에는 학생들로 북적였던 편의점과 분식집, 희생 학생 어머니가 운영하는 굳게 잠긴 세탁소를 지나, 유족들은 희생자 103명이 안치돼 있는 하늘공원으로 향했다. 흐리기만 했던 하늘이 다시 약한 빗줄기를 뿌렸다. 유족들 중 누군가 "아이들이 엄마 아빠 너무 덥지 말라고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이날 광명시민체육관까지 행진한 뒤, 다음날 오전 9시부터 다시 행진을 시작해 오후 3시께 국회의사당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후 마포대교-서울역-남대문을 거쳐 오후 7시30분 서울광장에 도착해 촛불문화제를연 뒤, 10시께 단식농성이 진행 중인 광화문광장으로 이동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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