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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사회운동가가 '꾸러미' 예찬론자가 된 이유는?

[마을주의자]<14>청양 가파마을 '마을조합원' 박영숙

요즘 '꾸러미'가 유행이다. 시민지원농업(CSA :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을 정겹게 일컫는 말이다. 농민은 매주 제철에 난 '농산물 꾸러미'를 꾸려 도시민 회원에게 택배로 부친다. 도시민 회원은 매월 일정한 회비를 낸다. 일종의 1대1 도농직거래 방식이다.

'꾸러미'의 효용과 가치는 꾸리는 농산물의 양과 질, 회비의 화폐단위로 따질 수 없다. 농민은 좋은 농산물을 공급함으로써 도시민의 생명을 지킨다. 도시민은 그 대가로 농민의 적정한 생활을 보살핀다. 이로써 상부상조, 도농상생의 호혜적 사회적 교환경제가 온전히 실현되는 셈이다.
"지난 4년 동안 마을주민과 함께 꾸러미 사업을 했어요. 작지만 일종의 마을공동체사업이라고 할 수 있죠. 소득도 소득이지만 배우고 느낀 게 많았어요. 일단 저같은 귀농인부터, 가족농 규모의 소농단위로도 농촌을 떠나지 않고 생활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무엇보다 우리 가족과 마을 농민들을 믿고 농산물을 선뜻 사주는 도시 소비자들이 무척 고마워요. 큰 힘이 돼요. 일하는데 새로운 활력소가 됐어요. 마치 든든하게 기댈 언덕이 생긴 기분이랄까."

청양 대치면 상갑리의 작은 마을기업, 나눔영농조합법인 박영숙 대표(58)는 '꾸러미' 예찬론자가 다 됐다. 상갑리를 비롯한 청양군 농민들과 '시골맛보따리' 꾸러미 사업단을 꾸린지 4년 차다. 애초 청양군 우리음식연구회가 발단이 됐다. 꾸러미에는 청양에서 생산되는 안전한 제철 농산물이 10여 품목 꾸려진다. 단돈 3만 원에, 매주 마다 60여 도시 소비자의 밥상에 오르고 있다.

▲ 박영숙 씨(오른쪽). ⓒ정기석

'꾸러미' 예찬론자가 된 마을기업가

박 씨는 꾸러미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무엇보다 꾸러미 사업을 통해 소량의 김치, 장아찌, 차 등을 가공해 잉여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었던 게 좋았다"는 것이다. 신선한 친환경 재료로 첨가물도 넣지 않은 가공식품이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건 물론이다. 꾸러미를 꾸리는 게 재미있고 흥이 났다.

하지만 최근 난데없는 걱정거리가 생겼다. 군청에서 한 장의 공문이 날라왔다. '농산물을 가공하다 소위 식파라치들에게 걸리면 벌금 등 법적 처벌을 감수해야 한다'는 경고장이다. 그는 걱정하고 낙담했다.

"여기는 고추, 쌀 말고는 나지 않는 오지 산골마을이에요. 마을 어르신들이 텃밭에 조금 기른 채소나 들에서 채취한 산야초를 김치, 장아찌 등으로 가공해 팔아드렸어요. 그러면 어르신들은 '이런 것도 돈이 되네'라면서 좋아하시죠. 그런 쏠쏠한 재미에 한참 빠져있었는데… .김치 20kg 정도를 만드는데 가공시설 따로 만들고, 장부 정리하고, 검사받고, 서류작업을 하려면 그 시간과 비용을 누가,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그는 정부의 행정 태도가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농민이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가공을 해야 한다고, 6차 산업을 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부르짖는 게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런 구호는 공허한 말 잔치라는 사실만 거듭 깨닫는다.

하지만 20년 차 귀농인 박 씨는 꾸러미사업에 대해서는 입장이 다르다. 농정의 현실은 자꾸 엇박자를 치고 있지만 스스로 각오를 다시 다져본다. '작지만 알찬 꾸러미'를 통해 마침내 귀농인, 소농도 농촌에 지속 가능하게 정주할 가능성을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꾸러미 방식은 중간 유통과정을 생략하는 거예요. 농촌 생산자와 도시 소비자가 멀리서나마 1대1 직거래를 하는 거죠. 그러면 그동안 중간유통업자에게 넘어갔던 중간 마진은 아낄 수 있어요. 그만큼 농민은 더 높은 값에 팔 수 있고, 도시민은 더 싼 가격에 사 먹을 수 있어요. 그것도 누가 생산했는지 알 수 있는, 안전하고 믿을만한 유기농산물을 말이죠. 이게 바로 도농상생인거죠."

▲ 청양 상갑리 마을공동체. ⓒ정기석

행복을 삶의 중심에 두는 생협 조합원

농촌에 사는 주민으로서 박 씨는 굳은 지론이 있다. "돌아오는 농촌을 만드는 게 아니라 농촌에 사는 사람이 농촌을 떠나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최근 독일 농촌공동체 연수를 다녀와서 그 믿음을 더 굳혔다. 독일의 농정목표는 돈 버는 농업이나 부자농민이 아니었다. 사람 사는 농촌, 공동체 조합원으로서의 사회적 농민을 지향하고 있다.

"서울에 살 때는 알만한 협동조합 활동가였어요. 농촌에 내려와서는 다른 외부활동은 다 그만뒀어요. 오로지 농사에만 집중했어요. 좋은 농민이 되려고 내려온 거니까. 그런데 이번에 독일 농촌을 둘러보면서 과연 그 결정이 잘한 것인지, 옳은 것인지 자꾸 의문이 들었어요. 그동안 혼자, 나와 내 가족 안에 틀어박혀 조용히 지내는 게 마음이나마 편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밖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아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다시 활동을 시작하려고요."

그는 한때 선도적인 사회혁신 운동가였다. 대학 때부터 이른바 학생운동권이었고 남편도 학생운동을 하다 만났다. 생협활동가를 거쳐 여성민우회생협 이사장까지 지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농어촌발전특별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청와대에서 가서 대통령과 농정을 토론하기도 했다.

“결국 밥이에요. 밥을 많이 먹는 게 최선의 실천이라고 봐요. 도시민이 밥을 많이 먹어야 농민들이 농사를 잘 지을 수 있어요. 먹고 살 수 있어요. 수도 많고, 힘도 더 큰 도시민이 먼저 실천할 필요가 있어요. 밥을 더 많이 먹어야 해요. 그래서 쌀 소비가 늘어나면 농민과 농업을 지킬 수 있어요. 농촌에서 농민들이 떠나지 않을 수 있어요. 농촌의 현실에, 도시의 운명, 아이들의 미래까지 달려 있잖아요.”

당시 박 씨는 생협 이사장으로서 무엇보다 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도시의 생협 회원에게, 소비자에게 쌀과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농민의 고마움과 소중함을 깨닫자고 호소했다. 그래서 그런지 정부가 일방적으로 쌀 관세화 개방을 선언한 요즈음 소회가 남다르다.

"쌀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죠. 쌀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에요. 쌀은 농민 혼자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봐요. 오히려 도시 소비자가 앞장서야죠. 쌀은 단순한 경제지표 몇 가지로 값어치를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쌀이 가지고 있는 정서적 기능, 논이 가지는 환경적 기능 등을 고려해야 해요. 쌀을 통해 생성된 모든 부가적 기능이 바로 소비자와 농민이 쌀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이유 아닌가요. 그런데 쌀농사를 직접 지어보니 사실 대책이 별로 없어요. 소농들은 좀처럼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요. 최저생계비조차 보장되지 않아요. 이런 비현실적인 농업정책으로는 쌀도. 식량주권도, 농업도 지킬 수 없어요."

박 씨가 행복중심생협(당시 여성민우회생협)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배 일을 잠시 도와주러 갔다 눌러앉은 셈이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이사장까지 맡았다. 처음에는 대부분 조합원이 그렇듯 아이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이었다. 그러다 먹는 것의 소중함을 점차 깨닫게 되면서 생협운동에 헌신하게 되었다.

"누구나 먹지 않으면 죽어요. 먹을거리는 생존의 기본인 거죠. 그런데 우리는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잘 모르고 살아요. 지갑 들고 동네마트만 나가면 먹을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으니까요. 돈만 있으면 다 살 수 있으니까. 그래서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 모른 채 신원미상, 정체불명의 농산물을 사 먹어요. 아무 거리낌없이. 어서 ‘부엌에서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많이 늘어나야 해요. '쌀 한 톨에서 우주를 발견할 줄 하는 현명한 사람'도요.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행복해지려면 그런 사람들이 자꾸 모여서 힘을 합쳐야죠. 그게 생협 같은 협동조합, 마을공동체의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먹을거리의 중요함, 농민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깊이 깨닫고 있는 박 씨. 그래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친환경 인증제도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친환경농업의 확산을 촉진한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실수나 한계도 있다는 냉정한 비판이다. 너무 ‘인증’이라는 형식, 상품성에 치우쳐, 정작 중요한 친환경 농업의 가치를 소홀히 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전한 식품이란, 좋은 먹을거리란 친환경 인증 딱지를 붙인 상품이 아니에요. 단지 인증심사를 통과하고, 여러 가지 검사를 받는 등 관리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가치'를 얻을 수 없어요. 인증과 검사는 그저 안전하다는 결과만을 확인하는 불완전한 요식행위에 불과하잖아요. 누가 생산하는지, 어떻게 만드는지, 과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도시민의 농장현장체험 도농교류 프로그램같이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얼굴을 맞댈 기회가 필요해요."

이렇게 "소비자가 주체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농산물을 이용하자"는 게 그가 생협 소비자 조합원이 된 이유였다고 술회한다. 이제 그는 '정직하게 생산하겠다는 자기 삶의 방향과 철학이 있는' 생산자의 입장이 됐다. 어떤 생산자보다 소비자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다. 생협이야말로 생산자와 조합원의 마음과 마음을 잇는 역동적인 공동체네트워크라고 믿는다. 생협 운동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행복하게 만드는 생태적인 에너지라고 믿는다.

▲ 박영숙, 성욱 귀농부부의 삶터. ⓒ정기석

20년 차 귀농부부, 박영숙과 성욱

박 씨의 귀농여정에는 늘 남편 성욱 씨가 동행하고 있다. 귀농하게 된 직접적 이유도 암에 걸린 남편이었다. 귀농을 결심하고 청양 상갑리 상갑분교 폐교를 구입, 1996년 당시 초등학생이던 두 딸과 귀농을 결행했다.

명색이 친환경 농산물을 거래하는 생협 이사장이었으니 친환경농사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농사경험이 없던 부부는 사서 하는 고생을 피할 수 없었다. 귀농인에게 으레 찾아오는 여러 가지 유형의 시행착오는 그들 또한 비껴가지 않았다. 돈, 사람, 생계, 공동체, 미래비전 등. 각오했던 일이라 힘들었지만 버티고 이겨냈다.

부부는 주로 고추, 구기자 농사를 농약을 치지 않고 짓고 있다. 특히 구기자는 청양군에서 최초로 무농약 재배에 성공했다. 고추나, 구기자나 높은 가격에 생협에 고정납품하면서 판로는 걱정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생산량이다. 노동력, 자잿값도 관행농사에 비해 많이 든다. 수지타산을 맞추기 쉽지 않다.

그래서 부가가치를 높이려고 가공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생산조직의 법인화도 추진했다. 농민은 생산에만 집중하고 법인은 가공과 판매에 주력하자는 전략이다. 구기자 와인 개발, 농촌테마마을사업 참여 등도 그 복합적 전략의 일환이다.

"충남에서는 지금 농업의 6차산업화를 적극 추진하고 있어요. 안희정 도지사의 정책브랜드인 3농 혁신 농정의 핵심사업이라고 할 수 있죠.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요. 독일, 오스트리아 농촌에 가보니 우리처럼 대규모로, 기업 중심으로 6차산업화를 벌이지는 않더라고요. 개별 소농 차원의 오랜 경험과 고유 노하우가 경쟁력의 원천인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박 씨는 '꾸러미'에 이어 '농식품 가공' 예찬론을 편다. 우리 소농의 활로를 찾으려는 난제를 그 지점에서 풀어보고 싶다. 다만, 35년 차 생협 조합원으로서 운동의 초심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작고 낮고 느리게' 나아갈 것이다.

※ '[마을주의자] <13> 청도 마을정치인 변홍철'의 일부 내용은 대구경북지역민중언론 <뉴스민>의 지난 인터뷰 기사를 일부 인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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