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노 대통령은 "민주주의의 정통은 노사모에 있었다"며 "노사모 안 하신 분들은 섭섭할지 모르니 현재는 참평포럼에 있다"며 참평포럼을 자신의 '적자'로 공인했다.
또한 노 대통령은 "대통합 전략과 후보단일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대통합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대통합은 막판에 외통수로 작용할 수도 있다. 총선에나 어울리는 대통합 전략을 대선에 적용하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해 막판 후보단일화에 대한 선호를 분명히 했다.
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나라당만큼이나 '반노의 기치'를 높이 세우는 민주당 박상천 대표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지지부진한 여권의 대통합 작업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지난 4월 말 <프레시안>인터뷰에서 정대철 열린우리당 고문은 "노무현과 박상천을 화나게 하면 안 된다"면서 "특히 노 대통령은 안 되게 하자고 마음 먹으면 큰 힘이 있는 사람"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제 정신 가진 사람이 대운하에 투자하겠냐"
2일 오후 3시 연설을 시작하면서 노 대통령은 "나한테 세 시간이 주어진 것으로 아는데 시간 모자라면 저녁 먹고 계속합시다"라고 말해 초장기 연설을 예고했다. 당초 청와대와 참평포럼 측은 노 대통령의 연설은 두 시간 동안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었다.
노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대운하 공약 비판, 기자실 통폐합 방안에 반발하는 언론 비판, 최근 급등하고 있는 주식시장과 자신의 경제정책에 대한 긍정적 평가, 칸트를 인용한 민주주의 철학 설파, 여권의 대선 전략 제시 등 종횡무진으로 진행됐다.
물론 노 대통령의 이날 연설 중 상당 부분은 한나라당에 대한 직설적 비판에 할애됐다. 노 대통령은 "지금 7% 경제성장률 외치는 사람들, 멀쩡하게 살아있는 경제 살리겠다고 하는데 무리한 부양책이라도 써서 경제위기라도 초래하지 않을까 불안하다"고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을 싸잡아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사실을 오해하고 있으니까 멀쩡한 사람에게 무슨 주사를 놓을지 무슨 약을 먹일지 불안하지 않느냐"며 "잘 감시하자"고 참석자들에게 당부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이 전 시장을 겨냥해 "대운하도 민자로 한다고 하는데 제 정신 가진 사람이 대운하에 투자 하겠느냐"면서 "앞으로 토론이 본격화 되면 밑천이 드러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자리에 참석해 있는 조기숙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토론 한번 하고 싶죠. 나도 하고 싶다. 그런데 그놈의 헌법이 못하게 하니까 단념해야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대운하 사업까지 엎어 놓으면 틀림없이 자재파동이 난다"면서도 균형발전 사업에 대해선 "우리 건설경기 그리고 경제성장에 좋은 기여를 하지 않겠느냐"고 자찬했다.
또한 박 전 대표를 향해선 "세금 내리자는 것 말고 아무런 새로운 전략 없이 참여정부 성과를 파탄이니 실패니 공격하는 것만으로 우리 경제를 세계 일류로 만들 수 없다는 건 너무나 명백한 진실"이라고 말했다.
경제분야에 대한 노 대통령의 이중적 인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성장률이 전부는 아니며 높은 성장률은 사고의 원인일 수 있다"면서도 "정부의 정책성과는 주가를 보는 게 훨씬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주식가격은 정책 자체를 평가해서 미리 예측해서 투자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차 발생할 성과를 앞당겨 표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장률은 못 믿지만 주가지수는 믿을 수 있단 말이다.
"차떼기하고 공천헌금한 정당도 문 닫지 않는데 국정홍보처가 왜?"
노 대통령은 공무원 취재제한, 기자실 통폐합을 골자로 한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을 둘러싼 갈등을 언급하며 한나라당과 언론을 한 덩어리로 묶어 공세를 펼쳤다.
그는 "국정홍보처 폐지를 공약으로 들고 나오는 것은 너무 심하다"며 "이렇게 하는 건 추파냐, 영합이냐, 굴복이냐"며 이명박, 박근혜 두 사람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이들은 최근 제주에서 열린 편집·보도국장 세미나에 참석해 기자실 통폐합 조치를 '반민주적 행위'로 규정하고 집권하면서 기자실 원상복구와 국정홍보처 폐지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은 "영합도 정도가 있다. 국정홍보처가 불법을 했느냐. 설사 불법을 했더라도 폐지해야 하느냐"며 "차떼기하고 공천헌금한 정당도 문을 닫지는 않았다"고 이번 6월 임시국회에서 국정홍보처 폐지법안을 제출키로 한 한나라당을 정면 겨냥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어떻게 될지 눈에 선하다"며 "기자실이 살아나고, 돈봉투가 살아나고, 가판신문이 살아나고, 자전거 신문, 비데신문이 살아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대통령은 언론을 향해서도 "왜 걸핏하면 내놓는 입맛에 맞는 여론조사도 안하느냐. 설문조작이 어려워서냐, 일말의 양심이 있기 때문이냐"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 측이 주된 근거로 삼는 온라인 폴과 동일한 문항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반대 여론이 훨씬 높은 여론조사 결과가 이미 보도된 바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 기자의 위신, 자존심을 그런대로 유지하게 해 준 것은 유신시절 해직기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금 이 시기에도 기자실 폐지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언론인이 있어야 뒷날 우리 언론 전체가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대통합보다 막판 단일화 선호…DJ와 반대, 박상천과 일맥상통
연설 후반부는 여권의 현 상황 비판, 지지자들에 대한 고무 등에 집중됐다. 노 대통령은 "대통합 전략과 후보단일화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면서도 "대통합에만 매달리면 막판에 (다른 수단이 없는) 외통수에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대통합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지역당으로 되돌아갈까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노 대통령은 "합당은 총선에나 어울리는 전략인데 대선에서 합당전략을 사용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이같이 말했다. '후보단일화도 받아들일 수 있지만 대통합이 우선'이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반대의 인식을 보여준 셈이다.
또한 그는 여권 주자들을 향해서 "마음을 비우라고까지는 안하겠지만 원칙을 지켜라"며 "나하고 각을 세우는 대신 한나라당하고 각을 좀 세우라"고 질타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범여권이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라며 "특히 다른 사람이야 그렇다고 쳐도 손학규 씨가 어떻게 범여권이 되냐"고 거듭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참석자들을 향해 "여러분을 '친노세력'이라고 부르는 것은 악의적 호칭이고 상징조작"이라며 "참평포럼은 부당한 중상모략에 대응하고 스스로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규정했다.
또한 민주주의 철학에 대해 다소 장황하게 설명한 이후 "민주주의의 정통은 노사모에 있는데 노사모 안 하신 분들이 섭섭할지 모르겠다"며 "현재는 민주주의의 정통이 참평포럼에 있다"고 말해 참석자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무려 4시간 15분의 연설이 끝난 후에는 노 대통령이나 참석자들도 다소 지친 표정이었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노무현'은 연호하면서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라는 민중가요를 제창하며 기세를 올렸다.
노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후 사회를 맡았던 김만수 참평포럼 집행위원은 "정책교실과 지역조직 모임에 반드시 한 사람을 같이 데리고 나오라"고 참석자들에게 주문했다.
노 대통령 연설로 인한 손익계산
노 대통령의 이날 모습은 대통령의 그것이라기보다는 5년 전 후보 시절의 그것과 유사했다. 특히 한나라당 주자들의 공약을 직설적으로 비판한 것은 물론이고, 한나라당이 집권한 미래를 '디스토피아' 수준으로 묘사한 것은 결국 선거 중립 시비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 대통령이 이같은 중립시비를 예측하지 못했을 리 만무하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논란은 점점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이날 연설에 대해 이명박 전 시장 측이 "대통령이 대운하를 칭찬해줄까봐 오히려 걱정했다"고 반응한 점에서도 알 수 있듯, 한나라당 입장에서도 노 대통령과 끝까지 전선을 형성하는 것은 그리 손해볼 일이 아니다.
또한 노 대통령의 이날 연설로 "친노세력과는 함께 못한다"는 자신의 주장이 증명됐을 뿐 아니라 '막판 단일화' 의견 일치라는 보너스까지 얻은 박상천 민주당 대표 측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게 됐다.
반면 이들처럼 노 대통령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형성하기 힘든 열린우리당 잔류세력, 김대중 전 대통령 측의 대응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여권을 공격하며 참평포럼을 '민주주의의 정통'으로 규정한 이상, 이들에게는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느냐, 완전히 갈라서느냐'는 양자택일의 선택지만 남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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