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떼를 쓰고 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시민 네트워크(세월호 기록넷)'를 이끌고 있는 김익한 명지대 교수는 지난 15일 박인규 프레시안 협동조합 이사장과의 인터뷰에서 '4.16 특별법 제정'과 관련한 일련의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새누리당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가족대책위)가 마련한 특별법(가족안)에 대해 억지를 부리며, 정치적 협의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김 교수는 가족안 핵심인 수사권·기소권 부여 문제와 관련해 "특검 방식, 검찰 지휘 하의 경찰 수사 방식 등과 똑같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와 검찰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미치지 않는 별도 위원회가 관련 위법 행위에 대해 기소권(공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는 새누리당이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며 진상조사위원회에 기소권을 줄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논리가 서지 않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가족대책위는 진상조사위원회가 새로운 위법 사실을 발견해도 기소단계에서 검찰이 불기소 처리하면, 조사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없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조사위원회 내부 진실규명소위 위원장에게 특별 검사와 같은 지위와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4.16 특별법'에 따라 만들어질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는 정부 기관이 아닌 상설위원회다. 따라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언뜻 무리해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세월호 참사로 민낯을 보인 한국의 현실과 정부의 무능을 제대로 통찰한 결론이다. 어떤 지식인보다도 정확하게 상황 파악을 한 것이다."
"조사위, 박근혜 정부처럼 하면 안 된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한 모습을 본 가족대책위는 "최소한 정부처럼 움직이면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진상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김 교수는 "지금 가족들은 '4.16 특별법이 제정돼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진상규명이 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은 정체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세월호 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김 교수는 첫 번째로, 조사위원회 위원 구성에 가족대책위 추천 인사가 들어가야 한다며 "조사위원회가 무능한 정부처럼 움직일지 말지를 결정하는 제1변수"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나 새누리당과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로 구성될 경우, 정부가 꾸린 사고대책본부와 같은 행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두 번째, 김 교수는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고 있지만 꼭 관철해야 할 사안"이라며 "사무처장을 위원장이 임명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상설위원회 실무 담당자를 기존처럼 공무원이 맡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사무처는 기획, 예산, 인사 등 실질적인 권한을 모두 갖고 있다. 참여정부 당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를 겪으면서 뼈아프게 경험한 일이다. 위원장이 사무처장을 임명하고, 그 밑에 공무원을 임명하자는 게 가족안에 명시되어 있다."
김 교수는 "그동안 정부와 각종 위원회를 통한 정책 활동을 한 경험을 가진 입장에서 볼 때 '4.16 특별법' 가족안에는 한국 사회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 침몰이 '천박한 자본' 때문이며, 돈만 아는 자본의 작동 원리에 그대로 당한 결과"라며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때문"이라는 점을 가족대책위가 잘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대책위 구성원들은 세월호 사고 첫날과 이튿날 '아이들이 살아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강하던 그때, 정부가 아무 손도 쓰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 불신을 넘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직시했다."
가족대책위는 일정 부분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믿었다. 그러나 현재 집권 여당 의원들은 유가족을 비난하면서, 대통령의 약속을 거짓으로 돌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19일 특별담화에서 "이번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최종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며 사과했다. 이번에 드러난 구조적 비리와 부패의 척결을 위해 "필요하다면 특검을 해서 모든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엄정하게 처벌할 것"이라며, "여야와 민간이 참여하는 진상조사위원회를 포함한 특별법을 만들 것도 제안"했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국정조 현장에서 유가족에게 퇴정 명령을 하고, 세월호 참사를 AI(조류독감)에 비교해 논란을 자초했다. 김 교수는 특히 지난 3일 조원진 새누리당 의원이 유가족을 향해 "가만히 있으라"라고 한 것은 "정말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며 유가족에게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은 정말 처절한 언어"라고 주장했다. 4월 16일 '가만히 있으라'라는 말을 듣고 기다린 300여 명의 목숨이 사실상 수장됐다.
"가족대책위는 '무능한 정부, 거대한 벽처럼 먹통인 박근혜 정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 배경에는 정치적 이해나 자기 보신적인 관피아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왜곡된 구조의 덩어리가 벽의 실체다. 그래서 그들에게 진상규명을 맡길 수 없다는 결론은 대단히 중요하다."
"세월호 싸움은 기득권과의 한 판 승부"
유가족들도 '협상'의 여지는 뒀다. 최대 쟁점인 기소권 부여 문제에 대해 유경근 가족대책위 대변인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실제로 (진상조사위원회가) 기소권 행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의논해보자는 입장"이라며,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김 교수는 세월호 특별법 350만 서명 용지를 국회에 전달하는 과정을 상기시킨 후, "앞서 가족대책위가 세월호 국정조사를 요구할 때는 국회 본청에 들어갔었지만, 이번에는 막았다"며 "다음은 국회 정문을 원천봉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만큼 현 정권이 가족대책위를 위협적인 존재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4.16 특별법 제정' 요구는) 기득권의 왜곡된 구조와 그것을 고치려는 세력과의 한 판 승부다. 단식 농성이라는 퇴로 없는 싸움을 시작한 세월호 가족대책위가 볼모가 되어 있는 셈이다. 이들은 자식을 잃은 자들이기 때문에 볼모를 자처했다. 우리는 퇴로를 생각하고 다음 싸움을 준비하지만,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이들이 볼모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이어 김 교수는 "그나마 새누리당이 원하는대로 하지 않는 것은 국민의 힘 때문"이라며 "국민의 힘은 기억의 힘이다"라고 강조했다.
* 보다 자세한 인터뷰 기사, '세월호 기록넷' 김익한 교수 下가 곧 이어집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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