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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가 '민족의 보검'? 역지사지 없는 북한의 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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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가 '민족의 보검'? 역지사지 없는 북한의 오판

[정욱식 칼럼] 한반도의 '다모클레스의 핵검'

"오늘날, 지구상의 모든 거주자들은 이 행성이 더 이상 살 수 없는 땅이 되는 날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모든 남성과 여성, 그리고 어린이의 생명은 '다모클레스의 핵검(核劒)'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우연이든 오산이든, 아니면 광기에 의해서든 언제든 끊어질 수 있는 가장 가느다란 실에 매달린 채 말입니다. 그 무기가 우리를 절멸시키기 전에 우리가 그 무기를 없애야 합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1961년 9월 25일 유엔 총회 연설해서 한 말이다. '다모클레스의 칼'은 시칠리아 시라쿠스의 참주(僭主) 디오니시오스 2세에서 유래된 말이다. 디오니시오스는 자신의 측근인 다모클레스를 연회에 초대하여 한 올의 말총에 매달린 칼 아래에 앉혔다. 참주의 자리가 얼마나 불안한 것인지 깨달아 보라는 의미였다. 이 일화는 로마의 키케로가 인용하면서 유명해졌고, 케네디의 연설에서도 언급됨으로써 핵과 인류의 불안한 동거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다모클레스의 칼'을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말을 여러 차례 해왔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는 없다'고. 그런데 북한은 핵무기를 '만능의 보검'이라고 말한다. 최근 국방위원회의 '특별제안'에서도, '공화국 정부성명'에서도 "우리의 핵은 통일의 장애도, 북남관계개선의 걸림돌도 아니며", "외세의 침략야망을 억제하고 자주통일과 민족만대의 평화와 안전·번영을 위한 확고한 담보"라고 주장한다.

참으로 얼토당토않은 궤변이다.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자는 '공화국 정부성명'은 고(故) 김일성 주석이 1994년 7월 7일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서명한 지 20주년을 맞이해 나왔다. 그런데 김 주석은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했었다. 그리고 김정일-김정은 위원장은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고 대를 이어 강조해왔다.

북한의 모순적인 언행은 또 있다. 북한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나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문제삼으며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킬 때에는 '핵불바다', '핵선제타격' 등을 운운하면서 절멸의 말폭탄을 던지곤 한다. 그런데 남북관계를 풀자고 할 때에는 자신의 핵이 '우리민족 전체의 안위를 지키는 보검'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이러한 지적이 북한 핵무장의 복잡한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주장하는 선(先)핵폐기론을 북한 정권에게 권고하기 위함도 아니다. 핵문제를 남북대화로 풀자는 의미도 아니다. 이건 '막연한 바람(wishful thinking)'이라는 걸 필자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고 있으니,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제의를 일축한 것을 잘했다고 평가하기 위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발언과 제의를 취사선택하고 이산가족 상봉 등 당면 과제를 역제의하면서 남북관계를 풀고자 했어야 한다. 이건 지금도,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북한의 역지사지 태도의 결핍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라. 미국이 핵전폭기를 동원해 군사훈련을 하면서도 '대북 억제용이니 북한은 문제 삼지 말라'고 하면 북한은 수용할 수 있는가? 오히려 북한은 '워싱턴 불바다'까지 운운하면서 미국에도 말폭탄을 던지지 않았던가? 미핵(美核)과 북핵 사이에 놓인 한반도 주민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북한은 '서울 불바다'뿐만 아니라 핵이 '자주·평화·통일의 무기'라는 말도 삼가야 한다.

북한이 핵이라는 가공할 힘을 가졌다고 오만해진다면, 어떤 문제도 풀기 힘든 것이 한반도의 현실이다. 북한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뿐만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북핵 불용' 입장을 고수했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비록 핵문제를 풀고자 하는 의지와 능력의 차이, 남북관계와 북핵 연계에서의 유연성의 차이는 있었지만, 북핵 불용은 대한민국 모든 정부와 국민의 사활적인 입장이라는 말이다.

북핵이든, 미핵이든, 한반도에 핵검이 떨어져 대참사를 막는 것은 남북한 위정자의 의무이다. 다시 '다모클레스의 칼'에 비유한다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는 가느다란 말총이고, 갈수록 강화되는 북한의 핵능력은 말총에 매달린 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여 핵검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한반도 관계의 총체적인 개선과 북핵 동결 및 궁극적인 해결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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