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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가 놓은 '이라크 덫'에서 허우적대는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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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가 놓은 '이라크 덫'에서 허우적대는 오바마

[주간 프레시안 뷰] 부시 정권의 무모한 군사주의가 초래한 참극, 이라크 내전

미군 철수 2년 반 만에 이라크가 내전 상황에 빠져들면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국내외적으로 정치적 곤경에 몰리고 있습니다. 공화당을 비롯한 강경파가 2011년 말의 미군 병력 전원 철수가 실책이었다며 오바마를 공격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주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미국 국민의 반대가 무려 58%로 2009년 집권 이후 지지도가 최저 수준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단 집권 시아파와 소수파인 수니파 및 쿠르드족을 아우르는 거국 정부 구성을 통한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수니파 반군 ISIS는 거침없는 기세로 남진하며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데다, 쿠르드족은 차제에 독립할 뜻을 내비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바마는 이라크 주둔 미군을 모두 철수시킬 즈음인 2011년 말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하며 미국의 외교 역량을 동아시아에 집중할 것이라고 천명했지만, 이라크 내전에 발목이 잡히면서 여기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 주 이라크 내전의 군사적 상황은 교착 국면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라크 북부 바이지에 있는 최대 정유 시설을 놓고 6월 19일 시작된 정부군과 ISIS의 전투가 계속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승자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현지 부족들은 양측 군대가 철수하고 자신들이 정유 시설을 운영하겠다고 제의했으나 받아들여지 않았고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ISIS 측은 25일(현지 시각) 영국 BBC 방송과 한 단독 인터뷰에서 "한 달 이내에" 수도 바그다드를 점령하겠다고 주장했지만, 군사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합니다. 이라크 정부군이 적어도 수도 바그다드만큼은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죠. 특히 바그다드 주민의 80%는 결사 항전의 의지를 다지고 있어 바그다드 함락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왼쪽)이 23일(현지 시각) 이라크를 깜짝 방문, 바그다드에서 누리 알 말리키 이라크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라크 내전 사태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은 공습 등 군사 개입의 가능성을 열어놓되 우선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려는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19일, 300명의 미국 육군 특수전 전문가들을 군사고문단 자격으로 이라크에 파견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케리 국무장관을 이라크에 급파해 정치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케리 장관은 23일 바그다드에서 누리 알 말리키 총리 등 이라크 지도자들을 만나 그동안 시아파 정권에서 소외되어 온 수니파 및 쿠르드족 대표들을 포함하는 거국 정부 구성을 촉구했습니다. 다음 날인 24일에는 쿠르드족 자치 지역의 수도 아르빌을 방문해 마수드 바르자니 대통령을 만나 거국 정부 구성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하지만 바르자니의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이제 새로운 이라크의 새로운 현실에 처해 있다"면서 그동안 시아파 위주의 배타적 정치를 펼쳐온 말리키 총리가 물러나지 않는 한, 이라크의 통합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앞서 바르자니는 미국 CNN과 한 인터뷰에서 이라크 북부의 중요 도시인 키르쿠크를 어느 쪽에 귀속시킬지에 대한 주민 투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키르쿠크는 원래 '쿠르드족의 예루살렘'으로 불리는 쿠르드족의 정신적 수도였으나 그동안 중앙정부가 관할하고 해 왔습니다. 그러다가 이번 내전 상황을 틈타 쿠르드족이 점령했습니다. 그는 "이라크는 무너지고 있다. 중앙정부는 통제력을 잃은 게 확실하다. 쿠르드인들이 스스로 미래를 결정할 때가 도래했다"고 말했는데, 이는 쿠르드 민족 독립의 기회가 왔다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됩니다.

하지만 쿠르드족의 완전 독립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쿠르드족은 이라크뿐만 아니라(650만 명) 이란, 터키 등에 걸쳐 퍼져 있다(전체 약 3000만 명)는 점에서 이들 이웃 나라들이 쿠르드족의 독립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구상은 쿠르드족과 함께 온건 수니파 대표까지 참여시켜 정치적 대표성을 갖춘 중앙정부를 꾸린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상대적으로 안정되고 단결된 쿠르드족의 중앙정부 참여가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쿠르드족은 이번 ISIS 공세를 격퇴할 만큼 자체 군사력도 탄탄합니다. 서방 언론은 이번에 케리 장관과 한 회담에서 바르자니가 말리키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강경 자세로 나온 것은 협상용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쿠르드족이 말리키 정부에 대해 다음 세 가지 큰 양보를 요구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석유 판매 등 외국 기업과 직접 거래를 허용할 것, 중앙정부 예산을 좀 더 많이 배정할 것, 쿠르드족 민병대 '페쉬메르가'의 예산을 중앙정부에서 지원할 것 등입니다.

물론 쿠르드족의 참여만으로 정치적 해법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경파와 온건파로 분열된 수니파를 정치협상에 끌어들이는 것은 더욱 어려운 과제입니다. 사담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를 비롯해 ISIS가 점령한 수니파 지역에서는 후세인의 잔존 세력들이 속속 이 무장 세력에 가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수니파 반군 지도자 중에는 후세인 정권 당시 부통령을 역임한 이자트 알 두리 장군도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케리 장관과 말리키 총리는 오는 7월 1일 거국 정부 구성을 시작한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거국 정부 구성을 통한 평화적 해결책이 성공할지는 두고 보아야 합니다.

한편 미국 군사고문단 1진 90명이 지난 24일 바그다드에 도착해 이라크군과 함께 합동작전본부를 설치했습니다. 이들은 반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이라크군에 대한 훈련과 지원 업무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케리 장관은 미군은 자문 역할만을 할 뿐, 미국 전투 병력이 이라크에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해결책이 실패하고 이라크의 내전이 격화될 경우 미국의 대응책이 어찌 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공습만으로 반군을 물리치기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난 23일 <뉴욕타임스>와 CBS 방송이 발표한 여론 조사 결과에는 이라크 내전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복잡한 속내가 드러났습니다. 미국 국민의 52%가 '이라크 내전에 대한 오바마 대통령의 처리 방식에 반대'를 표명했지만 군사고문단 300명 파견에는 51%가 찬성, 이라크 반군에 대한 무인기(드론) 공습에는 56%가 찬성했습니다. '(부시가 벌인) 이라크전쟁은 미국인들이 희생할 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응답이 4분의 3에 이르는 반면, 42%는 미국이 이라크 내 폭력에 대해 뭔가 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이라크 내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를 바라면서도 미군 병사의 인명 피해는 원치 않는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라크 내전과 관련해 오바마가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2011년 말 미군 병력 전원을 철수시켰기 때문입니다. 미군 병력이 남아 있었더라면 반군쯤은 거뜬히 물리칠 수 있었다는 것이죠. 오바마는 2009년 취임 당시 5만 명이었던 미군 병력을 대부분 철수시키고 2012년 이후에는 1만 명을 이라크에 주둔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주둔 미군에 대한 면책특권을 허용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이라크 정부가 거부하면서 전원 철수 쪽으로 결정이 난 것입니다.

현재 미국 등 서방 언론은 말리키 정부의 무능과 부패가 이라크 내전의 원인이라고 집중 부각하면서 오바마 정부의 유약한 대응에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유혈 사태의 근원은 2003년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에 있습니다. 부시 정부의 네오콘들은 2001년 9.11사태가 발생하자, 당시 후세인 정권이 9.11테러와 관련이 있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이유로 후세인 타도에 나섰습니다. 세속주의자인 후세인은 9.11테러의 주범인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과는 앙숙입니다. 후세인 정권 타도 이후 이라크의 핵무기 개발 증거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새빨간 거짓말로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것이죠. 당시 네오콘은 이라크에 친미 정부를 세운 뒤, 미국에 대립하고 있는 이란과 시리아 정권까지 무너뜨린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른바 '대중동지역' 전체를 미국의 패권 지배하에 두는 것은 물론, 이 지역의 막대한 석유 자원을 미국이 통제하게 된다면 중국 등 잠재적 경쟁국들도 모두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습니다.

11년이 지난 지금, 중동 지역의 상황은 이러한 네오콘의 계산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라크 최초의 시아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같은 시아파 정권이자 미국의 숙적이었던 이란의 영향력이 커졌고, 이라크와 시리아 등은 내전 상황에 빠져들었으며, 이집트와 사우디 등 미국의 동맹국들도 이젠 미국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이제 미국은 중동 지역의 혼란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숙적 이란과 협력해야만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결국 부시의 무모한 군사주의가 초래한 참화 속에 오바마는 그 뒤처리를 위해 진퇴양난의 궁지에 빠진 셈입니다.

* 용어에 대해 한마디

수니파 반군 '이라크·시리아 이슬람국가'는 이라크와 시리아에 걸쳐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국내 신문에서는 ISIL(Islam State in Iraq and Levant)로 표기하는 반면, 외국 언론에서는 ISIS(Islam State in Iraq and Greater Syria)로 쓰고 있습니다. Levant는 시리아 일대의 고대 지명이며 현재는 시리아로 불리고 있으므로 저희는 ISIS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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