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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의 대안은 '다시,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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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의 대안은 '다시, 마을이다'"

[마을주의자]<12> 무주 구름샘마을 마을학자 조한혜정

"어서 세월호 사고 같은 재난 이후를 준비해야 해요. 비정상적인 세상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사회모델을 개발해야죠. 우리에게는 지금, 일상적으로 처해있는 위험사회를 극복할 대안이 절실해요.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마을이에요. 그 마을에 사람들이 자꾸 들어가 살아야 해요. 서로 돕고 돌보는 생활공동체를 이루어야 해요. 요즘은 구획되고 설계된 부지나 단지 같은 공간에 굳이 서로를 가두거나 붙잡아둘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을살이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는 것보다 실천가능하고 구체적인 접근방법들을 현실적 해법으로 고민하고 있는 셈이죠."

조한혜정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논문, 저서 등 집중적으로 집필하거나 연구를 할 때면 짐을 싸들고 무주 구름샘마을로 내려온다. 십수 년 전 일찍이 '또 하나의 삶 터전‘으로 잡아둔 그의 마을에서 한동안 고요하게 칩거한다. 익숙한 공간이나 사람에게서 벗어나, 바람소리라든가, 소나무 향, 음악, 커피 등과 온전히 동거하는 시간이다. 요즘, 그 마을에서 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네트워크로 엮일 수 있는 공동체, 얼마든지 긴밀히, 유기적으로 서로 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는 마을공동체'를 화두로 연구하고 개발한다.

마을축제도 구경할 겸 모처럼 산골마을에서 벗어나 읍으로 마실 나온 조한 교수를 ‘마을에서, 마을사람으로’ 만났다. 언젠가 <다시, 마을이다>(또하나의문화 펴냄)를 읽고 깊이 공감한 적이 있다. 그 책을 지은 저자와 '마을 밖에서 정처를 찾지 못하고 서성대는' 사람들을 이야깃거리로 삼아 함께 염려했다.

▲ 조한혜정 교수가 그리는 마을공동체의 한 풍경, 함양 마을카페 ‘빈둥’. ⓒ정기석

재난 이후를 대비할 곳, 역시, 마을이다

"마을이 없는 사람들, 신뢰하는 준거 집단이 없는 사람들은 파편화된 조각으로 불안하게 서성이다 거대한 고도 관리 체제에 포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를 헤쳐나갈 방법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것이 아니고 누구에게나 보이지 않을 겁니다. 사실 해법은 마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나 보일 겁니다."
조한 교수는 책에서나 현장에서나 단호히 '다시, 마을이다'를 외친다. '다시, 마을이다'는 '위험사회에서 살아남기'를 부제로 달고 있다. 위험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마을 밖'에서 주저하지 말고, 괜히 서성대지 말고, 미련을 남겨두지 말고, 안전한 '마을 안'으로 들어가라고 당부한다. 특히 가족을 포함해 온갖 종류의 공동체적 기반이 허물어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돌봄 사회'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마을, 다양함이 존중되는 마을,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가 휴식하고 치유할 수 있는 마을 등 사람과 생명에 대한 존중이 있는 곳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간곡하게 제안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88만 원 세대, 농촌 붕괴, 식량주권 상실, 산업재해와 인재, 노동운동 탄압 등 위험한 재난사회의 표본을 방불케 한다. 조한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자본만이 자유를 얻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막장으로 치닫는 폭주기관차를 타고 있는듯하다. 일상이 평온하거나 안락한 건 고사하고 늘 불편하고 불안하고 불쾌하고 불길하다. 일개 시민이나 국민으로서 그 구조악에서, 악순환에서 벗어날 길이 막막하다. 혁명은 점점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조한 교수는 이런 암울한 미래의 전망을, 해법을 ‘마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찾으려 부단히 애쓴다. "파편화된 조각으로 불안하게 서성이다 거대한 고도 관리 체제에 포획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늘 이웃들에게 부르짖는다. 비로소 마을로 가야 돌파구를, 활로를 찾을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이 있다.

파편화된 조각이 되지 않으려 무주 구름샘마을로

이는 조한 교수 자기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먼저, 파편화된 조각으로 불안하게 서성이다 거대한 고도 관리 체제에 포획되지 않으려고 마을로 하방을 결행했다. 최소한 안정성을 확보하는 상황을 만들어보려고 마을 안으로 깃들었다. 정기용 건축가가 무주 덕유산 자락의 산골마을로 이끌었다.

"도시에서 잃어버린 마을, 잊힌 별과 바람과 태양을 다시 만납니다. 자연 그리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공유하면서 도시가 아니어도 문화예술 생산기지가 될 수 있음을 실험할 거예요."

▲ 무주 반딧불마을축제를 참관하는 조한 교수. ‘빈둥’. ⓒ정기석
2001년, 정기용 건축가의 ‘생태를 테마로 한 흙건축 마을’이라는 아름다운 호객행위(?)에 매혹된 서울의 문화예술인 11가구는 무주 안성면 죽천리 신무마을에 모여들었다. 부지 선정부터 3년여 공을 들여 2001년 9월, 이른바 문화예술인촌 ‘구름샘마을’이라는 마을공동체를 이룬 것이다. 왜곡된 이 땅의 공간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구성된 ‘공간 정의 실천 협의회’(공정협) 준비 모임의 첫 작품이라는 의미가 크다. 전 문화관광부장관 김명곤 씨, 소설가 최윤 씨, 문화기획가 장의균 씨 등이 조한 교수의 마을 이웃이다.

정기용 건축가가 이끈 ‘생태마을’답게 모든 집은 흙과 돌, 나무로 주로 지었다. 부지는 200평 안팎, 건평 30평 안팎의 생태주택들이 덕유산 자연의 일부인 듯 자리 잡았다. 3만 평이 넘는 마을 안에는 문화예술행사를 치르기 위한 회의·전시공간, 3000평 규모의 야외 공연장도 갖추었다. 마음 이름 '구름샘'은 마을의 무게중심을 잡고 있는 700평 크기의 저수지에서 따온 것이다. 계곡 물을 담지 않고 스스로 샘을 가진 이 '구름샘' 저수지를 생태 및 문화예술 기지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샘에서 솟아나온 물처럼, 신무마을을, 안성면을, 무주군을, 전라도를, 그리고 세상을 문화예술 공동체의 상서로운 기운으로 스며들겠다는 각오를 마을 이름에, 마을주민 저마다의 가슴에 새긴 것이다.

하지만 '구름샘마을'의 현재 모습은 애초 정기용 건축가가 설계했던 청사진의 원형과는 다르다. 애초 계획대로, 각오대로 마을이 진화하지는 못했다. 일단 상주하는 주민이 많지 않다. 40가구 정도를 염두에 두었지만 11가구에 그쳤다. '도시와 농촌,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모듬살이의 원칙을 재점검하는 곳'으로서 마을의 모습도 아직 아니다. 어쩌면 5도2촌형 마을, 세컨드하우스형 주택에 가깝다. 이제 일을 벌인 정기용 건축가도 세상에 없다. 더불어 공생하고 상생해야 할 농촌마을도 점점 망해가고 있다. 농민이나 귀농인이나 각자, 또는 더불어 살아가기 어려운 '위험사회' 증상이 '마을 안'에서도 목격되기도 한다.
다시, 대안공동체를 위하여

"모든 만남은 일시적이다. 그러나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불현듯 어디선가 다시 우리를 만나게 해 주기도 한다. 나는 한 살 반이 된 손자 ‘장자’가 ‘책 읽는 목수’, ‘음악하는 농부’로 자라나길 기도하며 그가 자랄 창조적 공동체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그가 ‘기도’와 ‘노동’의 즐거움을 아는 어른으로 자라면 좋겠다. 내 외할아버지처럼 뒷짐을 지고 마을을 둘러보는, 마을에 도움이 되는 지혜로운 어른으로 자라면 좋겠다. 나는 동네 부엌에서 친구들과 함께 만들어 먹고 영화를 같이 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동네 싸움에 가 말리기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얽혀 사는 소리를 노랫소리처럼 들으며 지내고 싶다. 미처 짝을 만나지 못한 청년들이 짝을 만날 수 있도록 파티도 열어 볼 생각이다. 그렇게 몸에 힘을 빼고 시간의 향기를 맡으며 따뜻한 만남을 계속 이어 가 볼 생각이다."

▲ 조한 교수. ⓒ정기석
지난해 늦가을 저녁, 구름샘마을의 ‘자기만의 방’에 앉아 조한 교수는 이렇게 다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마을이라고, 그래서 다시, 대안공동체를 위해 묵묵히 정진해야 하겠다고. 더 마을 속으로 들어가야겠다고. 가서 마을카페나 마을학교를 꾸리며 마을사람으로 살아가는 제자나 후배들의 생활도 좀 지켜보고, 밀양 송전탑 농성장 농민들이나 안산 세월호 사고 유가족 등 ‘재난사회, 위험사회의 피해자’들이 슬퍼하고 아파하는 현장에 더 많이 함께 있으려고 한다. 마침 대학도 정년퇴직했으니 더 자유롭게, 더 사회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고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 사회는 '토건 국가'에서 '돌봄 사회'로 적극적 선회를 해야 한다. 거대하고 거창한 구호의 시대를 지나, '관계의 소중함'과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알아갈 때가 온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노는 것이 곧 많은 창의적 활동으로 이어지는 창조적 공유 지대가 있는 사회 만들기. 나는 그 방법론으로 '작은 마을 학교'와 공동 식탁이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 주거를 제안한다."

"마을은 돈이 아니라 사람 간의 관계와 시간의 축적 없이 만들어 질 수 없다. 미래의 주거 논의가 더는 집과 건축에 대한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마을이다>를 다시 한 번 읽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정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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