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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중 아들 자폐증 진단…"이겨야 새끼들 보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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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중 아들 자폐증 진단…"이겨야 새끼들 보살핀다"

[인터뷰] 삼성에 맞선 파업 37일째, 신현우 조합원

"파업 그만두고, 돈 벌러 가야 하나 고민 많이 했어요."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노동자 신현우(35) 씨에게 지난주는 '고비'였다. 생활임금 보장과 노동조합 인정을 내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 지회의 파업이 한 달을 넘어가던 때. 노조의 간부(성남분회 총무)이자 파업에 앞서 "단단히 각오를 다졌었다"는 그였지만 흔들렸다.

파업이 길어져서만은 아니었다. 지난 17일, 신 씨는 30개월 된 막내아들 유찬이에게 '자폐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병원 진단 결과를 받아 들고 힘겨워하는 부인이 안 돼 보였고, 30분 교육에 4만 원에 달하는 치료비가 압박으로 다가왔다.

"병원에서 돌아와 사흘 동안 울면서 애만 쳐다봤어요. 볼 때마다 기가 막히고, 참…. 둘째는 예전부터 큰 애랑 달리 혼자 노는 걸 좋아해서, '엄마 아빠가 힘든 걸 알고 기특하게 혼자 크는구나' 생각했었거든요. 갈수록 불러도 뒤도 안 돌아보고 말수도 줄기에 중이염인가 했는데….

파업 도중 찾아온 비극에 그는 "어쩔 줄을 몰랐다." "노동조합을 하기 전엔 가정에 충실해야 한단 생각으로 술자리도 안 갔었다"는 신 씨. 재작년엔 그런 그의 장인이 급성 백혈병으로 진단 두 달 만에 세상을 등졌다. 지난해엔 그의 부모가 복잡한 사연 속에 헤어지는 일도 있었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파업 36일째였던 23일 오후, 한 조합원이 지친 모습을 하고 농성장에 서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우리도 사는 게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

"왜 자꾸 나한테는 이런 비극적인 일만 생길까"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고 했다. 그러다 신 씨는 문득 깨달았다. 근래 몇 년 사이 그에게 "생겼던 일 중에 유일하게 좋은 것이 노동조합"이었다는 점이다.

사실 처음 노조를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몰랐고 무서웠다." 지난해 5월 영남권 수리 기사들이 처음 노조 설립 움직임을 보일 때만 해도, 그는 관련 "언론 보도를 보며 이 사람들이 잘해서 우리도 사는 게 좀 나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곤 했다.

그러다 6월을 넘어서며 신 씨가 있는 경기 지역에서도 수리 기사들이 '노조 가입' 분위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앞장서 노조 설립을 주도해나가는 이들이 만든 단체 카카오톡 대화창에서 그는 "새벽 2시까지 평소 궁금했던 걸 계속 물어봤다"고 했다.

"삼성이 우리를 불법적으로 사용(불법 파견)하고 있다는 거예요. 생각이 나더라고요. 며칠 전에 본사 SV(각 하청업체, 즉 센터에서 일하는 삼성전자서비스 소속 관리자)가 '5월에 미결이 많으니 스케줄(근로시간) 한 시간 더 연장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게 있었거든요."

그는 문제의 문자 메시지를 수리 기사들이 집단 가입한 네이버 밴드에 공개했다. 그러고 나서도 "나 혼자 돌출 행동해서 큰일 나면 어쩌지"란 불안감에 시달렸지만, 다행히 동료들이 호응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신 씨가 속한 지역 수리 기사 17명이 만나, 한꺼번에 노조 가입서를 쓰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 준비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원고로 이름을 올렸다.

▲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 앞 농성장 주변 여기저기에 부착된 스티커. '아버지, 21세기잖아요. 우리 이제 그만...노동조합 인정하기로 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노조가 만들어준 '숨구멍'…"의지할 덴 노조뿐"

노조에 가입하며 신 씨는 "비로소 의지할 곳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은 아버지로 집안 환경이 굉장히 안 좋았었다"며 "의지할 곳이 없던 차에 직장 동료와는 또 다른 차원의 '동료'들이 생기자 정말 좋았다"고 했다.

이와 함께 그를 노조로 잡아끈 또 하나의 이유는 '생계'였다. 장인의 급성 백혈병 투병 이후 무너진 생계가 회복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1년, 2년 일하면 할수록 기술력은 더 좋아지는데 사는 건 왜 점점 더 힘들어질까"란 생각이 커져만 갔다.

월 180만 원. 여기서 차량유지비, 주유비, 식대 등을 제해야 하니 실제 손에 쥐는 돈은 이보다 훨씬 작았다. 일 년 중 두세 달 정도뿐인 성수기에야 간신히 월 400만 원 이상을 벌어 네 식구는 항상 "턱없이 부족하게 살았다"고 했다.

"사장(하청업체 사장)도 '저기(영남권)에서 잘하면(노조를 만들면) 너희도 좋아지겠다'는 얘기를 할 정도였어요. 우리가 이렇게는 못 먹고 산다는 걸 당연히 사장들도 알지요. 그래도 우리가 '못 살겠다'고 하면 사장은 늘 '내년엔 삼성 (수리 수수료) 정책이 바뀔 수 있으니 기다려 보라'고만 했어요."

그는 노조에 가입하고 이튿날 사장과 면담을 하며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했다. "시스템 자체가 정말 많이 바뀌어야 한다"며 "노조가 잘 되기를 응원한다"고 말한 후 면담 장소를 뛰쳐나왔다고도 했다. 이후 신 씨는 "앞뒤 안 보고 (노조 일을)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비를 피해 비닐로 만든 간이 천막 안에 들어가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들이 싸우는 이유…"승리해야 새끼들 보살필 수 있다"

막내아들이 자폐 진단을 받은 후에도 그는 다른 곳이 아닌 노조에 의지했다. 장기화한 파업으로 힘들어하는 동료들에게 미안했지만, 막상 동료들에게 사정을 털어놓고 나니 "속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밴드랑 페이스북에 (19일) 새벽에 글을 남겼어요. 내 인생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노동조합이 나한테 어떤 존재였는지를 하나하나 적었어요. 그런데 우리 조합원들이 막 힘을 내라고 댓글을 달고, 또 누군가는 '자기 아들도 자폐'라는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정말 고맙고, 또 '나만 힘든 게 아니지'란 생각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도 들었어요."

"승리해야 우리 새끼들 보살필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그의 글과 동료들의 응원은 신 씨의 부인에게도 감동을 줬다.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은 서초동 (농성장)이라고 얼른 가라고 그러더라고요. 당장 파업을 관두고 새 일을 찾는다고 유찬이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니 서초동에 가서 동료들 끌어안고 한바탕 울어버리라고요. 목요일(19일) 오후에 결국 '털래털래' 농성장으로 돌아왔어요. 이틀 정도는 집중이 안 돼서 헤맸다 오늘은 노조에 '집회 사회를 보게 해달라'고 말을 넣어놨습니다."

비가 간간이 쏟아지던 23일 오후, 신 씨는 정말로 마이크를 들고 전 조합원 맨 앞에 서서 집회를 진행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집회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그의 목소리에는 패기가 넘쳐 흘렀다.

"여기까지 왔는데 물러설 수는 없어요. 우리 조합원들이 모두 '아 좋다. 승리했다'고 느낄 때 파업 마무리하고 (지난달 1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염호석 양산분회장이 승리한 후 자신의 유해를 뿌려달라고 한) 정동진으로 다같이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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