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한 후 화장해 뿌려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동료 시신을 지키다 연행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간부를 상대로 구속 영장이 발부됐다. 검찰이 내세운 혐의는 '장례 방해'와 '공무집행 방해'다. 고인의 유지를 이행하려 한 노조의 처사가 '장례 방해' 행위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법원은 21일 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라두식 수석부지회장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서울의료원에 안치돼 있던 고(故) 염호석 지회 양산분회장의 시신을 두고 경찰과 충돌을 빚은 라 수석부지회장에게 검찰이 장례 방해(형법 158조) 혐의를 적용하며 영장을 청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라 수석 측 법률 대리인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비록 노동조합장이 아닌 가족장을 원한 부친의 요청으로 경찰이 투입되었다고는 하나, 노조로서는 고인의 유지를 이행해야 할 의무와 권한이 있다"며 "외려 경찰이 망자 유언에 따른 장례를 방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18일 공개된 유서에서 고인은 "저 하나로 인해 지회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저의 시신을 찾게 되면 우리 지회가 승리할 때까지 안치해 주십시오. 지회가 승리하는 그 날 화장하여 이곳에 뿌려주세요"라는 뜻을 남겼다.
이에 따라 고인의 양친은 최초에는 장례 절차 일체를 노조에 위임한다는 위임장을 썼었다. 그러다 18일 오후 양친 중 부친이 돌연 '가족장을 지내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노조는 "부친이 삼성 측과 보상금 합의를 마친 후 입장이 선회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경찰은 부친의 112 신고로 이날 6시 15분께 250여 명이 장례식장에 투입, 라 수석부지회장 등을 연행했다. (☞ 관련 기사 : 경찰,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간부 시신 강제 탈취)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노조만 부친의 의견과 달랐던 것이 아니란 점이다. 고인의 모친 또한 '유서 내용을 지켜야 한다'며 20일 경남 밀양 공설 화장장에서 부친 주도로 진행된 소산 절차와 이를 도운 경찰을 상대로 거세게 항의했다. 모친은 또한 라 수석부지회장 등의 석방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다. (☞ 관련 기사 :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경찰이 유골함도 탈취")
종합하면, 부친과 모친의 의견이 달랐고, 부친과 노조의 의견(유지)이 달라 갈등이 빚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은 망자에 대한 부친의 권한만을 인정하고 이를 반대한 노조에는 '장례 방해'라는 범죄 혐의를 씌웠다.
송영섭 금속노조 법률원 소속 변호사는 이에 대해 "유서와 유가족의 의견이 다를 때, 유가족 안에서 장례 절차에 대한 의견이 다를 때 법이 어느 쪽을 우선 보호해야 할 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라며 "가족상과 생활상이 이전과 매우 달라졌음에도 경찰은 유교적 생활 풍습이 뿌리내렸던 다가족 시대에나 어울렸던 판단을 내렸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에서도 이러한 논쟁이 진행된 바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8년 11월 "공동 상속인들 사이에서 제사 주재자를 정할 때 우선 협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며,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망인의 장남(장남이 이미 사망한 경우에는 장손자)이 제사 주재자가 된다"고 판결했다. 유체(유골)의 승계권자 또한 이렇게 정해진 제사 주재자에 있다는 게 당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결론이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류하경 변호사는 "이 판례에 따라 고인의 부친과 모친이 장례 절차에 대한 충분한 협의를 거쳤어야 한다"며 "이 과정이 굉장히 부족했음에도 경찰은 일방적으로 부친의 편을 들고 라 수석부지회장에겐 '장례 방해' 혐의를 씌었다. 경찰의 직권 남용"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전원합의체의 반대 의견 및 소수 의견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판결문을 보면 "제사 주재자의 결정은 공동 상속인들의 협의에 의하고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다수결로 정해야 한다",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개별 사건에서 법원이 결정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이 포함됐다. 또한 유체(유골)의 승계권과 관련해서도 "피상속인이 자신의 유체 처리와 관하여 의사를 표명한 경우에는 법률상 구속력이 발생한다"는 소수 의견도 나왔다.
송 변호사는 "미국에선 절반 이상의 주가 유족의 입장보다 망자의 유언을 우선시해 유체를 처분하는 법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며 "한국 또한 핵가족화가 많이 진행되었고 남성 중심의 대가족 제도에서도 많이 탈피한 상황으로, 망자의 사전 의사를 지금보다는 적극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인이 된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 분회장은 지난 17일 오후 1시 30분께 강원도 정동진 인근 해안도로에 세워진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지회는 19일부터 전면 파업을 선언하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노숙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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