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줄여서 녹색당이라고 부르지만, 독일 녹색당의 공식 명칭은 '연합 90/녹색당(Bündnis 90/Die Grünen)'이다. 이는 당명에서 보듯이 2개의 집단이 1993년에 합쳐진 것이다. '연합 90'은 독일통일의 변혁기인 1989년 가을부터 동독지역에서 결성된 '평화와 인권', '민주주의 지금', '신포럼' 등의 단체들이 연합하여 만든 결사체였다. 뒷부분의 '녹색당'은 반원전과 환경운동, 신사회운동, 70년대 신좌파 등의 그룹들이 서독지역에서 1980년에 결성한 정당이었다.
서독지역의 녹색당은 통일의 혼란기인 1990년 연방총선에서 4.8% 득표에 그쳐(최저기준 5%) 의회진입에 실패하였다. 하지만 통합 이후 1994년에 7.3%로 복귀하였고, 1998년과 2002년에는 6.7%와 8.6%를 받아 사민당과 함께 처음으로 연방정부에 참여하였다. 소위 말하는 적녹연정(1998-2005)이었다. 2005년에 8.1%, 2009년에는 10.7%(하원의원 622명 중 68명을 차지)로 최초로 두 자리 수 지지율을 기록하였다. 2013년 선거에서 8.4%로 다소 감소하였지만, 2014년 5월 유럽의회선거에서는 10.7%를 받아 나름대로 건재를 과시하였다. 또한 2011년 동독지역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선거에서 8.7%를 득표하여 거의 20년 만에 주 의회에 다시 진입함으로써 처음으로 독일 전역의 주 의회에 진입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의미 있는 녹색당의 성과는 2011년 5월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선거에서 나타났다. 24.2%를 득표하여 사민당(23.1%)과 녹적연정을 구성하고, 처음으로 녹색당 출신의 크레취만(W. Kretschmann) 주지사를 배출한 것이다. 이 성공은 한편으로 선거직전에 있었던 후쿠시마 원전사고(2011년 3월)에 따른 반사이익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정당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외에도 녹색당은 사민당과 함께 브레멘, 니더작센, 노드라인-베스트팔렌, 라인란트-팔츠 주 등에서, 또 기민당과는 헤센 주에서 각각 주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또한 약 40군데 도시에서 시장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들은 주로 독일의 남부지역에 속한 곳이다.
1980년에 시작된 녹색당은 그동안 여러 가지 부침을 겪어왔다. 창당과 동시에 당내 보수진영이 이탈하여 환경민주당(ÖDP)으로 옮겨갔으며, 90년대 초반에는 환경사회주의자들이 다수 탈당하였다. 1998년 연방정부에 참여 당시에는 당원 수가 5만 2000명에 달했으나, 적녹연정에서 여러 의제들을 사민당에 양보하면서, 특히 1999년 코소보,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참여에 동의하면서 2002년 당원 수는 4만 4000명으로 감소하였다. 이후 야당이 되면서 당원 수는 다시 증가하였고, 2013년 초 처음으로 6만 명을 돌파하였다.
원래 녹색당은 젊은 정당으로 불리었으나, 점차 그러한 이미지가 바뀌어 가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당원들의 평균연령이 48세로 가장 낮은 편이다. 당원 가입을 위한 연령제한이 아예 없고, 여성비 율은 약 38%로 좌파당과 비슷하다. 당원 가운데 고학력자(58%)와 공무원(37%)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구동독지역의 당원 숫자는 서독지역에 비해 적은 편이며, 선거에서의 지지율 또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녹색당은 2명의 남녀 당 대표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당의 노선은 녹색정책과 좌파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녹색당 지지층이 대체로 좌파적 성향을 띤다고 보았다. 그것은 70년대 사회운동 결과의 하나로 녹색당이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녹색당은 창당 초기 대안정당으로서 생태적, 사회적, 기초민주주의, 비폭력의 성격을 강조하였다. 그들의 사회경제적 요구는 마르크시즘에 가까웠는데, 그러한 노선투쟁을 위해 당내에서 근본주의자와 실용주의자 사이의 논쟁이 오랫동안 전개되었다.
1993년 동서독 녹색당이 서로 통합되면서 '사회적 시장경제'의 가능성을 지향한다는 기본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러자 다수의 좌파 당원들이 이탈하였고, 이에 따라 좌파성향의 지지자들을 잃게 되었다. 이후 적녹연정에 참여하면서 녹색당 지지자들의 절반 정도가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평균이상의 학력(62%가 대학입학자격)과 수입(순수입 월 2300유로)을 가진 것으로, 또 상대적으로 젊은 층인 것(평균 38세)으로 분석되었다.
2009년 연방총선에서 첫 유권자가 된 젊은 층의 15.4%(2013년 총선에서는 11%)가, 반면에 60세 이상은 5%만이 녹색당을 지지하였다. 또 여성유권자의 지지율이 13%인 반면에, 남성유권자는 9%에 그쳤다. 특히 서비스 관련 직업군의 지지율이 높았는데, 공무원의 비율이 18%로 가장 높았고, 그 뒤를 이어 자영업자의 비율이 14%를 차지하였다.
또 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 같은 도시 주와 대학도시들에서는 두 자리 수 이상의 지지를 받은 반면, 농촌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저조하였다. 서독지역에서는 11.4%를 득표한 반면, 구동독지역에서는 6%에 그쳤다. 약 87만 명의 기존 사민당 지지자들이 녹색당에 투표한 반면, 14만 명의 녹색당 지지자들이 좌파당으로 옮겨갔고, 추가적으로 3만 명은 무투표 층으로 남았다. 약 5만 명의 기민/기사당 지지자들이 옮겨온 반면, 3만 명은 자민당 지지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되었다.
녹색당은 비례대표제 명부, 대표부 구성, 발언권 등에서 철저하게 여성할당을 적용하고 있다. 즉 같은 공직이나 선거명부에서 최소한 절반의 자리를 여성에게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3명이 참여하는 위원회가 있을 경우, 최소한 2자리는 여성에게 배당된다. 혹시 그 2자리 중 1자리를 채우고 남은 1자리에 적절한 여성을 찾지 못할 경우, 그 자리를 공개해 남성도 지원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당 대표, 연방 및 주 위원회의 위원장, 대변인, 원내대표 등에 남녀가 각 1명씩 참여하는 공동대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 밖에도 '여성거부권'이라는 장치가 있어서 회합에 참석한 여성들이 다수의견으로 의결안건을 다음 회기로 연기하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다만 이 거부권은 각 사안에 대해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다.
창당 당시 녹색당은 "기존 정당들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뜻으로 '반정당 정당(Anti-Parteien-Partei)'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당내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실험들을 전개하였다. 고위당직자들의 관료주의를 방지하기 위해 그 자리를 명예직으로 한다든가, 위원회를 포함한 모든 자리에 대표나 위원장을 대신하여 대변인만을 두는 체제, 의회의 임기를 둘로 쪼개어 의원들을 교체하는 의원순환제, 당직과 선출직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겸직금지제 등이 그것이었다. 이러한 것들 가운데 살아남은 것이 공동대표제, 여성할당제, 완화된 겸직금지제 정도이다.
가장 최근의 녹색당 강령은 2002년 "미래는 녹색(환경)이다"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3년간의 논의를 거쳐 당원 90%의 찬성으로 개정된 것이다. 이를 통해 녹색당은 80년대 강조하였던 반자본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나게 되었고, 경제정책에서도 더 이상 사회주의적 요구들을 하지 않게 되었다.
당내 프로그램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네 가지 기본가치, 즉 생태, 자주, 정의(공정), 민주주의로부터 도출되었다. 1993년의 기본합의에서의 비폭력, 인권, 남녀평등의 가치도 이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먼저 지속성 원칙인데, 특히 환경정책, 사회보장, 경제/재정정책에서 그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회정의(공정)와 관련해서는 분배, 기회, 성(性), 세대, 국제적 공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비록 지속성의 개념을 중시하는 데에는 다소 보수적인 측면이 없지 않지만, 사회정치적으로는 철저하게 좌파-자유주의적 입장에 기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민자 통합, 성 소수자 정책, 동성부부 인정을 위한 활동 등 다문화사회를 중시하거나 시민권 및 정보보호의 강화 등의 입장들이 그것이다. 2013년 총선공약으로 부유층에 대한 세금인상(최고세율을 42%에서 49%로)을 주장한 것도 그러한 예이다. 이 밖에도 금융권 종사자들에 대한 보너스 제한, 화력발전 중단, 재생에너지 확대(2030년까지 전력공급 100%, 2040년까지 난방, 교통 연료 100%), 최저임금제 도입(시간당 8.50유로), 보장연금제 도입(30년 일한 사람에게 월 850유로 지급), 무기수출의 제한, 투표연령의 16세 인하 등의 공약을 제시했었다.
결론적으로 녹색당은 환경보호와 탈핵, 사회정의 등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하여 플라스틱 용기의 회수, 재생에너지 확대, 원전가동의 중단 등 독일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고, 또 하고 있다.(☞ 관련 기사 보기 : 독일에서는 페트병도 돈이 된다) 이와 같은 녹색당의 성공이 가능했던 까닭은 우리와는 다른 두 가지 정치적 제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비례대표제 선거제’와 ‘분권형 대통령제’이다.
녹색당은 2013년 총선에서 8.4%를 득표하여 연방하원 전체 631석 가운데 63석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비례대표제 선거제도가 아니었다면 그들은 연방하원에 진입하기 힘들 것이다. 이는 여전히 지역구 당선자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실제로 녹색당의 지역구 당선자는 1명에 불과하였다. 따라서 80년대 이후 독일 녹색당의 성공에는 이러한 비례대표제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바로 정치제도의 차이이다. 만일 독일이 하나의 집권당에 의한 대통령제 국가였다면, 녹색당은 자신들의 정책을 관철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독일의 정치체제가 총선 후 일반적으로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는 의원내각제(분권형 대통령제)가 아니었다면, 녹색당은 정권에 참여할 기회가 아예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거제도와 정치체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 하겠다.
현재 창당의 초기 단계에 있는 한국의 녹색당이 앞으로 자신의 비전을 달성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정치권에 진입하여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독일 녹색당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좋은 환경정책의 개발과 밀양 등 현장에서의 적극적 활동도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나라 선거제도의 개혁을 최우선의 과제로 내세우고 새로운 진보진영과의 통합도 지속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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