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KBS) 길환영 사장이 해임됐다. 청와대의 보도 통제 외압 당사자인 길 사장의 퇴진을 주장하며 양대 노조가 파업을 벌인 지 8일 만에 이사회가 해임제청안을 통과시켰다. KBS의 두 노조를 비롯해 간부진까지 한 목소리를 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세월호 사건을 기점으로 젊은 기자들의 반성과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다시 점검하고, 방송 독립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에 뜻을 같이한 것이다. 하지만 길 사장의 퇴진이 KBS 구성원들의 노력의 결과인지, 이사회의 또 다른 선택인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1987년과 '오버랩'되는 2014년의 자기반성
역사는 반복된다. 28년 전에도 공영방송 KBS 기자들은 청와대의 방송 통제에 대해 자기반성과 양심선언을 선택했다. 1987년 11월 9일 기자협회 KBS 분회 수습기자들이 낸 성명서의 일부분이다.
"지난 6월 이후 사회 전반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민주화의 열기를 취재 현장에서 절실하게 체험한 우리 KBS 수습기자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 불편부당한 공정보도임을 깊이 인식한다. 12월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공영방송의 막중한 사명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 KBS의 보도 태도가 특정 정치집단의 선전도구화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국민들의 우려와 비난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중략) 그러나 보도 책임 간부들과 기자 정신을 망각한 일부 기회주의적 기자들이 왜곡·편파 보도에 앞장서는 한편, 부당한 압력과 기만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작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후략)"
30년 가까이 지난 기록이지만 낯설지 않다. 지난달 7일에 있었던 KBS 내 젊은 기자들의 양심선언, 팽목항에서 KBS 잠바를 입는 것이 두렵다고 했던, 현장에 있으면서 현장을 취재 안 해서 미안하다고 했던, '개병신 소리'를 더 이상 듣기 싫다고 했던 반성문과 오버랩된다.
1987년과 '오버랩'되는 2014년의 자기반성
역사는 반복된다. 28년 전에도 공영방송 KBS 기자들은 청와대의 방송 통제에 대해 자기반성과 양심선언을 선택했다. 1987년 11월 9일 기자협회 KBS 분회 수습기자들이 낸 성명서의 일부분이다.
"지난 6월 이후 사회 전반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민주화의 열기를 취재 현장에서 절실하게 체험한 우리 KBS 수습기자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이 불편부당한 공정보도임을 깊이 인식한다. 12월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공영방송의 막중한 사명에도 불구하고 최근 우리 KBS의 보도 태도가 특정 정치집단의 선전도구화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국민들의 우려와 비난의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중략) 그러나 보도 책임 간부들과 기자 정신을 망각한 일부 기회주의적 기자들이 왜곡·편파 보도에 앞장서는 한편, 부당한 압력과 기만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작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후략)"
30년 가까이 지난 기록이지만 낯설지 않다. 지난달 7일에 있었던 KBS 내 젊은 기자들의 양심선언, 팽목항에서 KBS 잠바를 입는 것이 두렵다고 했던, 현장에 있으면서 현장을 취재 안 해서 미안하다고 했던, '개병신 소리'를 더 이상 듣기 싫다고 했던 반성문과 오버랩된다.
자기반성에서부터 시작된 언론노조의 활동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 지배되던 편성권의 독립을 목표로 언론민주화 실현에 기여했다. 이후 방송사 내에 공정보도 협의기구를 설치해 왜곡·편파보도를 감시해왔다. 그러나 언론노조 운동은 정치세력화라는 비난 속에서 공정방송을 위한 감시조정기능이 상실되었다. 1980년대 말의 언론노조 운동은 언론인들 스스로의 철저한 반성과 이에 따른 구체적 실천 결의의 산물로 등장했다기보다는 사회 전체의 민주화 분위기에 편승했다는 한계가 이유일 수 있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지금 공영방송 KBS에 가장 절실한 것은 편집·편성권 독립과 공정보도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든, 방송사 내부에서의 제도개선이든 양대노조를 비롯한 구성원 모두가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또한 국민이 느낄 수 있는 방송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더 이상 보도통제 낙하산 사장이라는 핑곗거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지금 공영방송 KBS에 가장 절실한 것은 편집·편성권 독립과 공정보도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이든, 방송사 내부에서의 제도개선이든 양대노조를 비롯한 구성원 모두가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또한 국민이 느낄 수 있는 방송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더 이상 보도통제 낙하산 사장이라는 핑곗거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달라진 뉴스… 최선을 다하는 노력 필요
길환영 사장의 해임 이후 KBS의 뉴스는 분명히 달라지고 있다. 밀양 송전탑 관련 보도에서 밀양의 주민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 그중 하나다. 지난 11일 뉴스에서는 9년간 계속된 송전탑 건설 갈등의 쟁점을 그 어느 때보다 비교적 상세히 짚었다. 특히 한전이 제대로 문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해 갈등이 계속되는 동안 사회적 갈등 비용과 행정력 낭비가 컸다는 점을 지적했고, 밀양 주민들이 건강과 재산권을 맞바꿔야 하는 보상금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문제도 언급했다. 다음날에는 지상파 방송 중 유일하게 후속보도를 통해 경찰의 행정대집행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주민들의 반발과 인권침해에 대한 법적 대응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민이 부담하는 수신료가 주요 재원이 되는 공영방송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은 분명한 책무인 것이다. 지금까지 제대로 수행되지 못한 책무를 KBS 구성원 스스로가 실천하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영화 <역린>의 마지막 대사이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영방송을 이끄는 KBS 구성원들에게 무엇보다 요구되는 모습이다. 파업으로 이루어진 길환영 사장의 퇴진과 뉴스의 변화는 방송독립과 공정방송을 실현하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이제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엄중한 책임을 느끼고, 권력에 대한 날 선 비판으로 국민의 싸늘한 정서를 감동으로 변화시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KBS가 '방송독립'으로 진정한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고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길 바란다. 30년 뒤에 또다시 젊은 후배 기자들이 반성문을 쓰지 않도록 말이다.
※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웹진 'e-시민과 언론'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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