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내홍' 시작…MB직계ㆍ강경파, 지도부 '맹공'

'연내 입법' 실패 후폭풍, 민주 '1차전 승리' 자축

2008년의 마지막날인 31일 밤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한나라당의 내홍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연내 처리'라는 1차목표 달성에 실패한 거대여당 내부의 예정된 행보다. 협상 실패→강경론 증폭→지도부 책임론으로 이어지는 수순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당분간 지속될 입법 전쟁의 향배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지지부진한 상황전개를 더 이상 참지 못한 친이직계 강경파 의원들이 이날 밤 의원총회장에서 홍준표 원내대표 등 지도부에 반기를 들었다. 고성이 오가던 중 홍 원내대표는 의총장을 뛰쳐나갔다가 1시간 여가 지나서 돌아오는 등 한나라당 분위기는 험악하게 돌아갔다.

이에 앞서 이날 저녁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회동으로 돌파구가 마련된 여야 교섭단체간 회동이 재개됐지만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여야 3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은 박-정 대표의 회동이 열리는 동안 따로 회동을 가졌지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햇다.

한나라당 쪽에선 "FTA 비준동의안 처리 등 여러 지점에 대해 진전이 있다"는 소식이 흘러나왔으나, 민주당은 "전형적인 선전선동에 불과하다"고 잘랐다.

MB직계 "도대체 시나리오가 뭐냐"

▲ ⓒ프레시안

이처럼 이날 하루동안 다각도의 여야 접촉이 모두 성과를 내지 못하고 해를 넘기게 되자 한나라당이 급해졌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의총을 소집해 "식사들 하셨나, 조별로 앉았나"라며 의원들의 '준비태세'를 점검하며 "오늘 협상이 결렬되면 어떤 일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조금 늦게라도 남아 있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그는 "오늘 밤 늦게 또 한 차례 (여야3교섭단체 원내대표가) 더 만나기로 했다"며 의원들을 해산시켰지만, 곧바로 민주당은 "오늘 원내대표 회동이 없다. 착오 없길 바란다"고 밝혀 홍 원내대표의 발언을 무색케 했다.

한나라당은 다시 의총을 소집했고 홍 원내대표가 "민주당 쪽에서 원내대표 회동이 없다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의원들에게 묻자 일부 강경파 의원이 "그걸 우리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하냐"고 거칠게 홍 원내대표를 몰기 시작했다.

이후 비공개로 전환된 의총에서 신지호, 진수희, 안상수 등 친이직계 의원들이 지도부에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고성이 오가던 중 홍 원내대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이후 의총은 임태희 정책위의장 등의 주도로 진행됐다.

속개된 의총에서도 "괜히 협상에 나서서 이 꼴이 됐다", "도대체 시나리오가 뭐냐"는 등 지도부에 대한 직격탄이 쏟아졌고 자리를 지키던 박희태 대표 등은 진땀을 흘렸다. "우리도 당장 드러눕자"는 등의 강경론도 터져나왔다.

이에 대해 이경재 의원은 "아마도 연초에 상황이 급진전될 것 같다"고 강경파의 실력행사론을 점친 반면, 김성태 의원은 "홍 원내대표가 나간 이후 서로 자제하는 분위기였다"고 상반된 분위기를 전달했다.

밤 11시 경 홍 원내대표가 의총장에 돌아온 뒤 의총은 정리됐다. 홍 원내대표는 의총 직후 "(민주당과 대화에) 모든 면에서 조금 진전이 있다"면서 "내일 또 의원 총회를 소집할 지도 모른다. 의원들에게 1시간 거리에서 대기해 달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도부의 지침은 그리 약발이 먹히지 않는 분위기. 밤 11시 30분이 채 안돼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사당을 빠져나갔다. 한 초선 의원은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내일(1일)은 물론이고 일요일(4일)까지 뭔 일이 벌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지역구로 갈 것이다"고 했다.

민주 'MB악법저지 자축' 송구영신 결의대회

한편 이날 자유선진당의 거중 조정에 의해 각 당 대표의 연쇄 회동 직후, 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협의냐 합의냐는 단어에 연연치 않겠다. 문제가 되는 법안은 연구와 토론을 거쳐 2월까지는 처리토록 하자'고 말하는 등 구체적 내용의 일치도 보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 최재성 대변인은 곧바로 "협의처리가 가능하다면 우리가 왜 서로를 사슬로 묶고 본회의장을 지키겠냐"고 분통을 터뜨리며 "허위사실을 말하는 것은 정당간의 도리가 아니다"고 박 대변인의 발언을 부인했다. 민주당은 "선진당 측이 그 발표를 취소한다고 알려왔다"고 전했다.

현재 민주당은 대화 지속 여부와 관계없이 농성 장기화에 대비 중이다. 한나라당의 의원총회가 열리던 시각, 민주당은 한나라당 의총장 바로 앞에서 당직자와 보좌진들에게 침낭과 수건을 분배하며 '각오'를 과시했다.

▲ ⓒ프레시안

이를 국회의사당 안으로 반입하는 과정에서 국회 방호원들이 제지해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송영길 최고위원이 박계동 국회 사무총장을 찾아가 거세게 항의해 반입에 성공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정세균-박희태 회동' 이후의 타결 전망에 대해 "우리 쪽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제안은 합의 가능한 민생법안 외에 언론·경제관련법 등은 2월에 논의하자 정도 아니겠느냐"며 "한나라당이 양보할 거면 벌써 했지 않았겠느냐"고 비관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우리는 우리 스케줄대로 준비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1일 0시 본회의장 앞 로텐더 홀에서 'MB악법 연내처리 저지 승리대회'라는 의미를 부여한 송구영신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서로 포옹하며 격려하는 등 1차전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민주당은 1일 오전 10시에는 단배식을 가질 예정이다.

현재 국회 안팎에서는 '김형오 의장이 8일 경 본회의장에서 민주당을 퇴거시킨 상태에서 최소한의 법안을 직권상정할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김 의장과 한나라당의 태도에는 청와대의 의중이 가장 중요하게 작동할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MB법안' 연내 처리가 불발돼 2일로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연설도 깔끔하게 진행되기는 어려울 전망. 해를 넘긴 국회 대치 상태에 청와대가 어떤 방침을 택하느냐가 사실상 최대의 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