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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 굿판'으론 '김기춘 책임론' 못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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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병언 굿판'으론 '김기춘 책임론' 못 가린다

[주간 프레시안 뷰] 분노한 당신, '종이 짱돌'을 던져라

누구나 대통령이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정확하게는 대통령의 리더십이 문제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는 만기친람(萬機親覽)은 만화에 나오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고선, 제아무리 뛰어난 리더일지라도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과업입니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은 보통 고집 센 사람이 아닙니다. '협치'의 개념이 없는 독선으로 드러났습니다. 박근혜→김기춘→청와대→내각으로 이어지는 수직 구조에서 청와대 참모회의와 각료회의는 토론도 없고 '아니오'도 없는 대통령 말씀 받아쓰기 경연장입니다. 전근대적 통치 방식입니다.

4.16 세월호 참사 이전까지 이런 지적에 들은 척도 안했습니다. 수단과 방법, 과정은 부차적인 문제라는 듯이 반응했습니다. 성과주의의 함정에 빠진 겁니다. 오로지 통일대박, 경제대박을 위해 총화단결을 다그쳤습니다. 판검사와 군인들이 상명하복 구조에 끼워 맞추기 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말 잘 듣는 관료들도 중용했습니다. 하지만 구호만큼 성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혼자 움직일 수 있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정상의 정상화, 국가개조 같은 하향식 국정을 몰아치는 사이, 타협과 배려가 긴요한 의제들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노동과 복지, 경제민주화가 유실됐습니다. 입으로는 민생 제일을 외치는 대통령이 정작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의외의 둔감함을 보인 겁니다. 그래도 대중들은 착하고 너그러웠습니다. 견뎠습니다. 이제 갓 임기 1년을 거친 정권인지라, 좀 더 두고 보자며 책임추궁을 미뤄뒀습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안대희 카드'를 꺼내 들었다. 부정부패의 온상인 '관피아'를 처단하고 '안전국가'를 만들겠다는 의지 표명이었다. 그러나 눈물 뒤 속셈이 드러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기춘을 꼭짓점으로 안대희는 그저 발바닥이었을 뿐. 화살은 이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겨냥하고 있다. 5월 21일(왼쪽), 29일(오른쪽) 자 손문상 화백 만평. ⓒ프레시안

4.16 참사가 이 모든 '적폐(積弊)'를 드러냈습니다. 짐작했던 것보다 정부는 더 한심했습니다. 허둥대기만 한 게 아니라, 책임도 회피했습니다. 리더십이 무너진 대통령의 눈물에는 감동이 없습니다. 33일 만에 대책이라는 걸 뚝딱 만들어 내놓았지만, 그 졸속성이 드러나는 데에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해경 해체가 답이 아니었습니다. 안전행정부는 행정자치부로 이름을 또 바꾸게 생겼습니다. 국무총리 아래에 교육부총리와 경제부총리를 둬 내각의 책임성을 더하겠다지만, 정부 조직을 리모델링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며칠 만에 자기들끼리 만들어낸 방안으로 정부 조직을 뗐다 붙였다 한다고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인내는 분노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인사 개편도 먹구름이 잔뜩 끼었습니다.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엿새 만에 자진 사퇴하기까지의 과정은 세월호 구조의 부실함을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청렴하고 강직한 '국민 검사' 안대희는 8년 전 얘기였습니다. 한나라당을 '차떼기당'으로 바닥에 떨어뜨린 검사를 중용하는 파격으로 대중들을 현혹하려 했지만, 두 번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5개월에 16억 원, 하루에 1000만 원을 지갑에 채워 넣던 '황제 전관'으로 변신해 있었습니다. 없는 사람들 복장 터지는 얘깁니다. 그런 사람에게 공직 개혁을 맡기고 '관피아' 척결의 사명을 맡기겠다고 한 겁니다. 일당 1000만 원짜리 총리를 두고 100만 원만 받아도 무조건 공무원을 형사처벌토록 하는 '김영란법'을 도입하겠다고 한 겁니다. 역시 머리 좋은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른가 봅니다. 총리 교체가 현실화될 즈음, 3억 원을 세월호 참사 관련한 기부금으로 내놓는 용의주도함도 보였습니다. 재산이 문제가 되니 이번엔 통째로 11억 원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되레 이 나라 총리 값이 11억 원이냐는 원성만 샀습니다.


안대희 파동은 단지 개인 안대희의 문제에 그칠 일이 아닙니다. 공직사회 전반의 비정상적인 관행을 돌아보자는 두루뭉술한 비판으로 넘길 일도 아닙니다. 누가 이런 안대희를 발탁했느냐의 문제로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게 본질입니다. 특히 재산 검증은 인사 검증의 가장 기본이 되는 사항입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의 검증을 거쳐 인사위원장인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최종 박근혜 대통령이 오케이 사인을 냈습니다.

그런데, 홍경식 민정수석과 김기춘 비서실장은 모두가 아는 '법조계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들입니다. 법 만능주의의 사고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란 거죠. 이 사람들이 하루 1000만 원의 전관예우도 법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문제 될 것 없다고 본 겁니다. 그 정도는 관행이라고 생각했겠죠. '우리가 남이가' 하는 '법피아(법조계 마피아)' 정신의 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본적인 검증도 건너뛰고 '안대희'라는 이름값에 기대 위기를 모면하려 한 겁니다. 대중들의 눈높이와 정서에 대한 공감능력이 한참 떨어지는 청와대가 이렇게 국민들 마음에 또 한 번 염장을 지른 셈입니다.


여권은 청와대 책임론, 혹은 김기춘 책임론을 정치공세라고 단정합니다. 정말 김기춘 실장은 야당이 만들어낸 가상의 정치적 표적일까요? 야당과 관련 없는 세월호 유족들의 메시지를 유심히 봅니다. 사고가 난 진도 팽목항에서, 분향소에서, KBS와 청와대 앞에서, 이제는 국회에서 이분들이 오열하며 외치는 건 오로지 한가지입니다. 진상규명, 그 하나뿐입니다.

그렇지 않고선 이분들이 무엇 때문에 국회에서 날밤을 지세웠겠습니까. 세월호 국정조사는 국회가 수행합니다. 특검도 국회가 기초 작업을 다집니다. 자식 먼저 보낸 부모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대체 내 아이가 왜 죽었는지, 누가 죽였는지 밝혀내는 것뿐입니다. 국정조사에 누구를 증인으로 부를 것인지를 분명하게 명시하라는 요구는 억지가 될 수 없습니다.

새누리당이 국회법과 관행을 내세웠지만, 이 간단한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김기춘 실장을 증인 명단에 넣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겁니다. '청와대 비서실'까지는 괜찮지만, 비서실장은 안 된다고 며칠을 버텼습니다. '김기춘=청와대'인데, 김 실장이 증인으로 채택되는 순간 청와대 책임론을 인정하는 꼴이 되니까요. 하지만 박 대통령을 직접 불러내서라도 이 황망한 사고의 진상을 밝히고 싶은 게 유족들과 국민들 마음인지라, 얼렁뚱땅 면피용 국정조사를 해보려던 잔꾀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김기춘 실장이 '증인'은 아닐지언정 국정조사에 불려나오게 됐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의 요구가 아니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겁니다.


박 대통령의 그림은 이렇듯 크게 헝클어졌습니다. 안대희를 내세워서 개각 효과를 꾀하고, 김기춘 실장을 유임시켜 만기친람의 국정을 지속해보려던 구상이 초장부터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일은 순리대로 풀어야 합니다. 김기춘 실장을 그대로 두고 이번 사고의 후유증이 시간과 함께 극복되기를 기다려보겠다는 생각부터 고쳐야 합니다. 특히 '유병언 방패'로 책임을 모면하려는 꼼수를 버려야 합니다. '유병언 색출'에 모든 역량을 쏟아 붓는 수사 당국의 태도는 관심 돌리기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물론 세월호 선장은 물론이고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도 이번 참사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사람입니다. 죗값을 치르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번 사고는 유병언을 정점으로 하는 선사 측의 잘못과 그들의 비리를 방치한 국가의 책임으로 크게 나뉩니다. 그 중 유병언 일가에 대한 수사는 지켜보는 대로입니다. 수사당국은 도피 중인 유 회장의 현상금을 5억 원으로 높이는가 하면, '유병언 몽타주'를 방방곡곡에 뿌렸습니다. 보수언론과 종합편성채널은 ‘유병언 색출작업’을 생중계하다시피 하며 대중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습니다.

과하면 의심을 사는 법입니다. 오죽하면 일각에선 도피 중인 유 회장을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고 있다는 의심까지 나오겠습니까. (지방선거가 임박한 시점으로) 적당한 타이밍을 맞춰놓고 터뜨릴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치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 겁니다. 유 회장의 잘못이 크면 클수록 국가의 잘못도 비례해야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국가의 책임은 터럭도 건드리지 못하는 수사당국에 대한 불신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까닭입니다. 일각에선 이 모든 진상조사의 주체를 시민사회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유병언 굿판'의 배경에는 국가의 책임,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을 조금이라도 피해 보려는 얄팍한 발상이 숨어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건 국가 책임론에 직면할 상황이 올 텐데, 며칠 뒤 그 폭이 결정됩니다. 6.4지방선거 얘깁니다. 박 대통령이 급조된 대책을 쏟아낸 것도, 비장하게 눈물을 흘린 이유도, '안대희 카드'를 서둘러 봉합한 까닭도 모두 지방선거를 향한 일념 때문일 겁니다.

새누리당의 완승을 낙관하던 분위기가 세월호 참사 이후, 폭풍을 맞은 듯 뒤바뀌었으니 이해는 갑니다. 지방선거 승리를 토대로 당·정·청을 휘어잡고 국가개조 작업에 속도를 내려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습니다. 임기 말도 아니고 집권 1년 만에 이런 풍파를 만났으니 고민이 이만저만 아닐 겁니다. 분노한 대중들의 마음이 선거로 확인되면 아무리 고집스러운 대통령일지라도 변하지 않고선 배겨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거는 뚜껑을 열어봐야 압니다. 지금까지 나온 거의 모든 여론조사는 야당의 우세를 가리키지만, 분노가 심판으로 연결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세월호 사고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앵그리 맘'들이 좀체 야당 지지로 돌아서지 않고 있고, 보수층은 반사적으로 결집하고 있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입니다. 광역단체장 선거를 떠받치는 기초단체장 선거에선 야당의 고전을 점치는 사람들도 꽤 됩니다. 이른바 '숨어 있는 표심'이 이번에는 보수층에서 나올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런 현상은 야당이 미덥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정치가 문제를 해결해줄 거란 기대 자체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치는 만능이 아닙니다. 모든 정치인들이 민의를 왜곡 없이 대표한다고도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제도 내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해결하자면 정치의 수단을 거치지 않고선 불가능한 것도 현실입니다. 특히 세월호 사고와 뗄 수 없는 이번 선거는 4년짜리 도백을 뽑는 의례적인 행사에 그치지 않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전 말처럼 담벼락을 보고 욕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라면, 반드시 투표하시기 바랍니다. 국가개조의 주체는 국민들일 수밖에 없으며, 그 힘은 우리가 던진 '페이퍼 스톤(종이 짱돌)'으로 확인되니까요.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남북관계·한반도/국제/생태 등 다섯 개 분야로 나눠 정리한 '주간 뉴스 일지'와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정치 선임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남북관계·한반도는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국제는 이승선 프레시안 국제 선임기자, 생태는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맡고 있습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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