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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탈취' 삼성서비스 노동자 위한 '양말 한 켤레'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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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탈취' 삼성서비스 노동자 위한 '양말 한 켤레'의 위로

[현장] 파업 10일째 '연대 한마당' 열려…이날부터 교섭 재개

"조합원을 지키지 못했고, 시신도 지키지 못했고, 유골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염호석 열사의 유언을 생각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나, 무엇을 해야 하나 미안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분이 마음을 보태 주시니, 오늘만큼은 마음을 좀 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 (박성주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

2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앞에 상복 입은 이들을 위한 조촐한 잔치가 벌어졌다. 노조가 생기고 1년도 채 안 돼 임현우·최종범·염호석, 세 동료를 연이어 잃은 이들. 벗을 만하면 다시 상복을 입을 일이 생기더니 이제는 '시신 탈취'라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며칠 전엔 위영일 지회장과 라두식 수석부지회장, 김선영 영등포분회장 등 지도부가 구속된 상태.

삼성의 사과와 성실 교섭을 요구하며 맨바닥에서 노숙 농성을 벌이며 파업한 지는 벌써 10일째.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워 기침을 하는 이들이 늘어난다고 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을 이들을 보다 못한 노동자들이 '밥 한 끼, 양말 한 켤레'란 이름의 행사를 만들었다. 오랜만에, 삼성 사옥 앞에 장송곡이 아닌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진다.

▲ 2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파업 중인 삼성전자서비스 하청 노동자들을 위한 '밥 한 끼, 양말 한 켤레' 행사가 열렸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평택분회 조합원의 노래에 조합원들이 휴대폰 불빛으로 답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하얀)

밥, 반찬, 카레라이스, 양말, 손톱깎이까지…"오늘은 웃자"

평소엔 무대를 향해 열 맞춰 앉는 이들이지만, 이날은 작은 원을 여러 개 그리며 둘러앉았다. 원 안에는 쌍용자동차 해고자들과 가족들이 사흘에 걸쳐 준비한 밥과 반찬,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만든 카레라이스와 소고기뭇국,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원회가 준비한 떡 등이 놓였다. 술 한잔을 기울일 법도 한 분위기였지만, 농성 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터라, 콜라와 녹차 등이 대신 놓였다.

먹을거리 말고도 선물이 많다. 현대차·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십시일반 모아 750켤레의 양말을 보냈다. 양말을 빨지 못해 농성장에 발 냄새가 진동한다는 소문을 듣고서다. 이날 행사가 열릴 것을 알고 물티슈, 샴푸, 손톱깎이 10세트를 보내온 시민도 있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쌍화탕 9박스와 각종 파스로 마음을 전했고, 10~40만 원의 성금을 보내 온 노조·단체들도 여럿이다.


▲ 20일 오후 삼성전자서비스 고(故) 염호석 분회장의 시신이 동료와 생모의 반대 속에 화장됐다. 경찰은 '유해라도 돌려달라'는 이들을 향해 캡사이신을 난사한했다. ⓒ금속노동조합 제공

조건 없는 교섭 재개…"열사 뜻 이루자"

행사가 열린 이날은 염호석 분회장이 숨진 지 12일째, 노숙 농성 10일 만에 몇 달 전 중단됐던 교섭이 재개된 날이었다. 노조는 지난 4월까지 각 하청업체들의 교섭권을 위임받은 한국경영자총협회와 교섭을 이어 왔으나 '위장 폐업' 논란이 일고 있는 해운대·아산·이천 센터의 노동자들의 고용 승계 문제, 생활임금 보장, 노동조합 인정 등 핵심 요구에 진전이 없다고 보고 교섭 중단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러던 중 염호석 씨가 '승리한 후 화장해 뿌려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숨졌고, 경찰이 장례식장에 난입해 시신을 탈취하는 초유의 일이 생겼다. 염 씨의 모친이 '유골함이라도 돌려달라'며 화장을 반대했지만, 경찰은 화장터에서까지 노동자들에게 최루액을 쏘며 부친이 유골함을 가져갈 수 있도록 일방적으로 도왔다.

교섭은 이날 오후 3시께 재개됐다. 금속노조 염호석열사투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노조는 사측 교섭대표와 '조건 없는 교섭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앞서 사측은 서초동 삼성사옥 앞 농성 해제와 분향소 철거를 조건으로 교섭 재개를 타진했으나 노조는 이를 거절했다.

남문우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날 "이제부터 조심해야 한다. 뭔가 될 것 같고 어느 순간 교섭이 열리면 그 교섭 내용을 가지고 목소리가 갈라지고 마음이 흩어질 수 있다"며 "어떤 고난과 어려움에 있더라도 열사 뜻대로 합의서에 반드시 노조 활동 보장을 인정받아 76년째 이어지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끝장내야 한다"고 말했다.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 1000여 명은 지난 19일부터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염호석 분회장 사망에 대한 삼성의 사과, 노동조합 인정, 생활임금 보장, 임금·단체 협상 체결 등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호석아 사랑한다. 네가 자꾸 생각나 눈물이 앞선다"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 지원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연대도 이어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29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전국 170여 개 삼성전자서비스 센터(또는 디지털프라자) 앞에서 공동행동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와 녹색연합, 민달팽이유니온, 참여연대 등 20여 개 단체는 같은 날 오후 2시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삼성의 책임 있는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이날 문화제 말미에는 고(故) 염호석 씨와 같은 센터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김종복 씨가 '호석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했다.

"호석아. 이렇게 불러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왜 힘들다고 내색하지 않고 혼자서 모든 짐을 짊어지고 살았니. 평소에 많이 미안했다. 이 글로써 용서를 빌게. 평소에 형하며 잘 따르던 네가 생각나 자꾸 눈물이 앞선다. 이제 모든 짐 훌훌 털어버리고 편안한 세상 가서 편히 잠들기를 빌어본다. 호석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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