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민주당-안철수 깜짝 통합, 독일에선 상상 불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민주당-안철수 깜짝 통합, 독일에선 상상 불가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정당 ② 생활 가까이에 자리한 정당

아마추어 5단, 나는 바둑을 제법 두는 편이다. 처음 독일에 갔을 때 꽤 많은 사람이 바둑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몹시 반가웠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바둑 모임과 관련한 그들의 조직력이었다. 비록 독일의 바둑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은 수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매월 발간하는 바둑 잡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걸 보면 각 도시의 바둑 모임과 독일 전역에서 매월 한두 차례 이상씩 바둑 대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대부분의 주요 도시들에서는 매주 일정한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바둑을 즐기고 있었다.
유학 도중 대학을 옮기게 되어 새로운 도시에 가게 되면, 수소문하여 그러한 모임에 찾아가 보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매주 화요일 저녁 7시가 되면 그 도시의 한 카페에 모여 바둑을 두는 것이다. 꼭 카페만이 아니라 학교 시설을 빌려 모임이 진행되는 곳들도 있었다. 바둑 대회는 주로 주말에 진행되었지만, 이러한 모임이 주말에 진행되는 경우는 없었다. 모임에 나갔다가 종종 10년째 여기에 규칙적으로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여유와 끈기, 그리고 조직력에 놀라곤 하였다. 아마도 우리와 달리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러한 취미 생활도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북부에 위치한 킬(Kiel)이라는 도시에서 두 학기 동안 공부를 했었는데, 이때는 직접 바둑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을 하고 맥주잔 등을 상품으로 받기도 했다. 발트해(또는 동해 Ostsee라고도 한다)에 접한 항구 도시인 킬은 슐레스비히-홀스타인(Schleswig-Holstein) 주(州)의 수도이다. 매년 6월의 마지막 주에 요트 경기 등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되는 '킬어 보헤(Kieler Woche)'라는 축제가 열린다. 독일 잠수함(U-Boot)이 만들어지는 곳이기도 하고, 해변의 고운 모래가 기억에 남는 곳이기도 하다. 바다를 볼 수 있는 까닭에 독일 전역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는데, 이에 부응하여 바둑 대회를 개최한 것이었다.

이처럼 모임을 잘 만드는 독일인들의 성향은 비단 바둑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분데스리가(Bundesliga)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독일인들은 축구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열광하지만, 다른 스포츠들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와 달리 프로 야구나 프로 농구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스포츠 뉴스는 축구 소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누구든지 흥미를 느끼는 스포츠나 취미 활동을 손쉽게 할 수 있는 곳이 독일이다. 그러한 동호인 모임들이 지역별로 체계적으로 잘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세미나의 리포트 작성을 위해 독일인의 특성에 관한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독일인은 3명만 모이면 하나의 단체를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왔을까 싶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감이 가는 말이었다. 이처럼 시민의 일부를 대상으로 하는 소모임도 이렇게 잘 만들어져 누구나 쉽게 참여하고 활용이 가능한데, 국가의 운영과 직결되고 대다수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정당의 조직은 어떻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학이나 시간이 날 때 독일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 가운데 하나는 가는 곳마다 중심 도로변에 각 정당의 사무실들이 쉬이 눈에 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아주 조그만 농촌의 소도시를 지나갈 때에도 낯익은 정당의 간판이 보였고, 그럴 때마다 정말 정당들이 잘 조직되어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곤 하였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어디를 가든지 손쉽게 십자가와 교회를 발견하듯이 말이다.

독일 주요 정당들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자신의 주소를 입력하면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자기 정당의 지역 사무실을 알려준다. 즉 누구나 자신의 생활 가까이에서 정당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일상의 문제나 경조사 등 많은 부분을 교회와 같은 종교 단체에서 함께하지만, 독일에서는 정당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고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 독일 기독교민주당 홈페이지. 오른쪽에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입력하면 해당 지역에 위치한 정당 사무실을 검색할 수 있다. ⓒ독일 기민당 홈페이지 갈무리(http://www.cdu.de)

정당이란 원래 사회와 국가에 대해 자기 자신의 객관적 이상을 실현하고, 자기 당의 인재들을 등용하기 위해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한 하나의 결사체이다. 각 정당은 국정 관련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 형성에 기여하고, 민주 국가에서는 정치적 의사 결정의 중요한 기둥을 형성한다. 또한 이러한 정당이 갖는 특별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과제는 국가 선출직 후보들을 평가하고 지명하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정당의 과제들을 살펴보면, 인재를 충원하고 교육하여 여러 공직의 후보들을 내놓는 것이다. 또 당원과 유권자의 의견과 이해관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국가와 시민들이 연결되도록 상호 작용을 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의 소통 방향이 있다. 하나는 시민들의 이해관계를 모아서 국가 기관에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들에게 국가 기관의 결정에 대한 정보를 주고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다. 또한 장기적인 정당 정책을 개발하는 것이다. 그밖에도 정당은 원내 교섭 단체를 구성하여 의회 기능을 가능케 하고, 이를 통해 정부의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끝으로 정당은 의사 결정의 한 주체로서 잘못된 정책과 그 결과에 대해 반드시 책임을 진다.

독일의 기본법(헌법) 21조 1항은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그 설립은 자유다. 정당의 내부 질서는 반드시 민주주의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 정당 자금의 출처 및 사용 내역, 그리고 재산에 대해서는 반드시 공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당법 2조 1항에서는 "정당이란 시민들의 결사체로서 연방 또는 지방 차원에서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치고, 연방 하원(Bundestag) 또는 주 의회(Landtag)에서 국민을 대표한다. 정당의 당원은 자연인으로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와 다른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연방 차원과 같은 전국 규모에서 뿐만 아니라 주(州) 차원인 지방 규모에서도 정당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정당 설립을 위해 단지 정치적 결사체만을 필요로 할 뿐, 그 밖에 특별한 요건을 요구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55명으로 구성된 한 결사체가 법원에서 하나의 정당이 되기에 조금 적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61명의 당원을 가진 "Nein!-Idee(No!-Idea)"라는 이름의 정당이 2013년 연방 총선에서 하나의 정당으로서 인정을 받았다. 이 말은 당원이 61명이면 정당을 만들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정당의 존속과 관련하여 정당법이 규정한 유일한 제약 조건(정당법 2조 2항)은 한 정당이 6년 동안 연방 총선 또는 지방 선거에 최소한 1번은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어떤 정치적 결사체가 그 당원과 당 지도부의 다수가 외국인이거나 또는 당의 업무를 보는 당사의 위치가 독일법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위치할 경우에는 정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으나, 이는 그다지 중요한 내용이 아니다.

어떤 정당의 당원이 되고 싶은 사람은 자신이 사는 지역의 정당 사무실에 신청서를 내면 된다. 그러면 해당 지역의 정당 지도부가 표결을 통해 가입 여부를 결정한다. 필요할 경우, 당원 신청자에 대한 청문회를 할 수도 있다. 각 정당의 내부 규정에 따라 이와 같은 정당 위원회의 승인 없이도 당원이 될 수도 있다. 당원이 되면 당내 다양한 차원의 위원회(기초 지역, 시/군/구 지역, 주, 연방 위원회 또는 주 전문, 연방 전문 위원회 등)의 위원장이나 위원으로 선출될 수 있다.

연방이나 주 또는 지역의 의원이 되고 싶은 사람은 먼저 해당 위원회에서 후보자로 선출되어야 한다. 각 선거의 직접 후보자는 해당 지역에서 투표권을 갖는 모든 당원이 모이는 '선거구 컨퍼런스(Wahlkreiskonferenz)'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반면에 정당 명부에 의한 비례대표 후보자는 '주 전당대회(Landesparteitag)'에서 몇 차례의 선거를 통해서 선출되는데, 이를 '주 대표단 회의(Landesdelegiertenversammlung)'라고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선거 제도를 논의할 때 다시 이야기하겠다.

독일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정당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정당들은 장기적 안목에서 사회 및 국가 발전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만들고, 이를 수행할 정책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또한 지속적으로 인재를 충원하여 정치인으로 육성하고, 사안에 따른 의견을 공론화하여 국가와 국민 사이에서 소통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 당원에 의한 공직후보자 선출을 제도화하여 정당 민주주의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의 정당들을 살펴보면, 많은 부분에서 상당히 회의적이다. 설립 조건이 까다로워서(예를 들어 당원 1천 명 이상의 시도당이 5개 이상이어야 한다) 일단 정당을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각 정당이 우리 사회를 위한 제대로 된 비전이나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당원들이 자기 당의 공직 선거 후보자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국민에 대한 여론조사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당이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과 여론조사 기관들이 정치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의 숫자가 적기 때문에 당원들에 의한 후보 선출은 아직 곤란하다는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자. 예를 들어 어떤 지역구의 진성당원이 10명뿐이라고 하더라도 과감하게 그들에게 후보자 선출을 맡기면 된다. 그러면 다음 선거에서는 당원의 숫자가 수십 배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당원이 증가하지 않는 것이다. 당원이 중심이 되는 정당이라는 구호만 내세우지 말고, 독일처럼 실제로 당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했으면 한다.

한국의 각 정당이 각종 선거에서 내보낼 후보자 선출 규정을 제도화하거나 사전에(예를 들어 4년 전에) 확정하지 못하고, 왜 매번 선거 직전에 후보 경선 룰을 가지고 다투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도 새로운 인물이 나오는 것을 방해하고자 하는 기존 정치인들의 기득권 때문일까? 미리 합리적인 경선 룰을 정해 놓으면, 그에 따라 정치 신인 등 관심 있는 많은 사람들이 선의의 경쟁을 펼칠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 정치는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항이다. 회사의 사장이 되는 길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듯이, 정치인이 되는 길도 어느 정도 제도화되어 있어야 즉 예측이 가능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유능한 젊은이들이 정치권으로 가는 것을 꺼리게 되고, 따라서 정치권은 발전할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우리 사회에 안철수 현상이 나타난 이후 지속되고 있는 화두가 바로 '새 정치'이다.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새 정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아무런 구체적인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제1야당인 민주당과 안철수의 '새정치연대'가 하룻밤 사이에 통합되는 것이 새 정치는 아닐 것이다. 그런 일은 독일에서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만일 통합이 필요하다면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하고, 반드시 당원들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 그런 깜짝쇼가 가능한 것은 아직도 우리의 정당들이 상당히 부실하기 때문일 것이다. 새 정치란 결국 우리의 정당 정치를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이를 위해 독일의 주요 정당들의 모습을 차례로 살펴보겠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